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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세스 메이커 (251)화 (251/251)

251화

“앞에 길 조심!”

하지만 부러워하는 것도 잠시, 희연은 다시 현재에 집중해야 했다.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와 함께 가장 선두에서 방패를 들고 길을 뚫어내던 방패 전사 강자의 외침에 희연은 이번에는 또 뭔가 싶어 미리 표정을 구겼다.

탕-!

물론 손은 착실하게 공격과 치료를 반복하고 있었고 말이다. 희연은 저를 삼키려는 듯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드는 스펙터의 입속으로 총을 들이밀며 방아쇠를 당겼다.

깔짝깔짝 거리지 않고 차라리 이렇게 덤비는 것이 그녀 입장에선 더 상대하기 쉬웠다.

“으왓!”

“앞에 조심!”

물론 여전히 상황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희연은 발목을 삼키고 찰랑이는 물을 보며 튀어나올 뻔한 삐약 소리를 애써 삼켜냈다. 모짜렐라가 삐약 소리로 랩을 한다 해서 그녀까지 함께할 수는 없었다.

방패 전사 강자가 주의를 주고 첨벙거리는 소리가 날 때부터 예상했어야 했는데 스펙터를 상대하느라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신발 안으로 들어차고 바짓단을 적신 물의 축축함이 빈말로도 좋다 못 했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안 보여….”

안 그래도 그리 밝지 않은 내부였다. 내부를 구성하는 돌은 색이 칙칙했다. 틈새 사이사이로 이동하는 스펙터를 지금껏 볼 수 있던 것은 스펙터가 그보다 더 짙은 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발목까지 찰랑이는 물로 뒤덮인 길은 나아가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시야마저 가렸다. 그나마 시야를 확보해주어 다행이라 여긴 옅은 빛은 수면 위로 드리워지자 애석하게도 그 밑을 가리는 역할까지 해버렸다.

붉고 어둡게 물든 물을 보며 희연은 초조한 마음에 방아쇠 위에 올린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녀는 애써 불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집중하여 수면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직업이 힐러인 이상 적은 무조건 그녀의 근처를 서성일 터였다.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새까만 무언가가 물살을 위장 삼아 그녀에게로 접근했다.

“<회개하세요>!”

탕!

잡았다. 그러나 동시에 희연의 HP는 쭉 깎였다.

왜냐고 스스로 자문하기에는 그녀 역시 발목을 치고 가는 감촉을 느꼈다. 한 마리는 잡아냈으나 다른 한 마리는 애초에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이다.

다리를 물살 위로 들어 올려 물린 자국까지 확인한 끝에 희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들이 무슨 물고기야…?

물에 닿으면 뒤섞여 사라지게 생겼으면서 잘도 헤엄쳐 다닌다. 희연은 스펙터가 너무 싫었다.

“<철퇴>! 어그로 관리 좀 똑바로 해!”

그리고 그건 모짜렐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막 틈새 밖으로 머리를 내민 스펙터를 지팡이로 두들겨 팬 모짜렐라는 앞에 있을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에게 소리쳤다.

앞쪽에서 뭐라 뭐라 외치긴 했지만 그래봤자 어그로 관리에 실패한 탱커의 변명일 뿐이라며 모짜렐라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등불의 빛>.”

아주 처음에는 <치유의 빛>으로 가벼운 상처 정도야 대상을 하나씩 정해 치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손이 바빠지게 된 이후로는 희연과 모짜렐라는 누굴 맡을지 이야기를 나눈 것이 무색하게도 번갈아 가며 전체 힐을 돌리게 되었다.

힐러가 하나만 더 있었다면… 물론 라쀠 말고 제대로 된 힐러로….

속으로 아쉬움을 토하며 희연도 총을 들어 올렸다.

“<촛불의 숨결>.”

여전히 상황은 안 좋았지만, 웃기게도 보스전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난이도가 올랐다는 점에서 이 지긋지긋한 통로도 끝이 머지않았다는 희망이 생겼다.

이것보다 더한 관문이 남아있다면, 성질머리깨나 있는 유저들이 진즉 회사를 불태워버렸을 테니 말이다.

오랜 전투 상황으로 인해 사고하는 능력이 많이 폭력적으로 변하게 된 희연은 웃음기 하나 없는 낯으로 앞을 내다보았다.

모짜렐라의 외침에 덩달아 찔린 방패 전사 강자가 정말 최선을 다해 온갖 어그로를 휩쓸어갔기 때문에 잠깐은 숨 쉴 틈이 생겼다.

“함정!”

정말 잠깐이었다.

앞쪽의 몸놀림을 놓치지 않고 따라 한 덕에 희연은 날아오던 여러 개의 단검을 모두 피할 수 있었다. 비록 구르면서 피하느라 온몸이 흠뻑 젖고 말았지만, 단검에 맞는 것보단 나았다.

실상 전투하며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물이 튄 상황이었기에 여기서 더 젖는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그저 기분이, 사람 기분이라는 게 참 그랬을 뿐이다.

“…….”

희연은 제 총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서 빨리 발판이나 하나 나오기를 빌었다. 발판만 나오면 그 위로 올라가 찰랑이는 물을 향해 전격 탄환을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적어도 수면 아래 숨은 스펙터만큼은 모조리 튀겨버리는 것, 그것이 현재 희연의 유일한 바람이었다.

“?”

잘못된 꿈을 끌어안고 물을 바라보아서일까. 희연은 갑작스레 눈이 부신 느낌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나 모짜렐라가 사용하는 스킬의 빛이 수면에 비추어진 거라고 하기엔 방향이 조금 이상했다.

눈을 비비려다 손이 젖었음을 인지한 그녀는 대신 눈만 몇 번 끔벅인 뒤 빛이 난 방향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주변이 어둑한 것이 빛나는 것을 찾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 수면 위로 일렁이는 반짝임은 인위적이었다. 빛의 출처를 따라 눈을 굴린 희연은 오래 걸리지 않아 그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스펙터?”

수면의 반짝임과는 반대되는 위치에 있는 스펙터, 정확히는 스펙터의 새하얗게 빛나는 이빨이 빛의 원인이었다.

이가 빛난다? 아니다. 저건, 입속의 빛이 점막과 이빨을 투과할 정도로 강렬한 거였다. 기이한 모습이었다. 내내 어둠을 틈타 움직이던 것들이 스스로 발광하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수상한 일이었다.

희연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다른 스펙터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수면 아래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벽과 천장 여기저기 붙어 있는 것들 중 처음 발견한 개체처럼 입속에 빛을 품은 것들을 더러 발견할 수 있었다.

보통 몬스터가 저런 빛을 다른 곳도 아니고 입속에 품었을 때 이후 벌어질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너무나 답이 쉬운 문제였다.

“쟤네…!”

희연이 외치고, 앞서가던 이들도 고개를 들었을 때. 앙다문 스펙터의 입이 열리며 기어이 그 안에 담겨 있던 것이 수면 위로 내뱉어졌다.

이젠 하다 하다 빔도 쏜다. 마지막까지 참 완벽하다. 희연은 코앞에 떨어지는 빛기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언데드 몬스터면서 왜 공격 색이 하얗냐는 의문은 뒤로하더라도 근접 공격만 하게 생겨서 원거리 공격까지 한다는 점에 스펙터를 너무 강하게 설정한 거 아니냐 조금 따지고 싶어졌다.

사방으로 퍼지는 물세례를 피해 뒤로 물러나며, 만약 저 공격을 그대로 맞을 시 말랑말랑한 힐러는 즉사하는 걸까 희연은 고민해 보았다.

물렸을 때도 훅 깎인 HP니 별님을 만나러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 같았다.

“…….”

그러니까, 이젠 이 공격을 피해서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한단 뜻이다.

빛기둥이 쏘아지는 시간 자체는 짧았다. 스펙터 역시 한번 크게 내뱉은 공격을 곧바로 다시 하지는 못했고 말이다. 그러나 같은 공격을 준비 중인 게 하나도 아니고, 거의 열이 넘었다.

스펙터가 친절하게도 피하기 쉽게 딱딱 차례대로 공격을 해줄 것 같진 않았다.

“모두 물 위 표시 잘 보고 피하면서 뛰어요!”

방패 전사 강자는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그러나 재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물 위 표시를 보고 피하라는 말에 희연은 처음에는 버벅거렸으나 이내 앞서 달리기 시작한 이들이 어떤 식으로 피하는지 확인하곤 금세 그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희연이 발견했던 물 위의 반짝임은 일종의 공격 지점을 표기한 거였다. 물론 그 위로 깔끔하게 공격이 쏘아지지는 않았다. 공격하는 개체와 물 위의 반짝임 간에 각도도 신경 써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펙터들의 공격은 범위도 작은 게 아니었기에 아무리 피하려고 한다 한들 좁은 통로 특성상 공격이 살짝씩 스치는 일도 무척 잦았다.

특히 덩치가 크고 부가적인 장비가 많은 탱커들이 그랬다. 희연은 한 번 공격 범위를 지나갈 때마다 한 번을 빼놓지 않고 HP가 깎이는 트롤 임페리얼 나이츠를 보며 속으로 저주를 날렸다.

“빨리빨리 갑시다!”

가끔은 둘 이상의 스펙터가 비슷한 범위에 공격을 쏘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는 일도 있었으나, 그럴 때는 마늘쫑쫑이나 차일드 롤랜드가 벽을 타고 올라 해당 개체를 해치웠기에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 안 되겠다 싶은 경우 방패 전사 강자가 방패로 공격을 막는 사이 길을 지나가기도 했고 말이다.

물론 빔을 쏘지 않는 스펙터들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것들은 여전히 틈새에 숨어들었다가 공격하는 악독한 짓을 자행했다.

“시야 훈련 참 잘 된다. 그렇지?”

“…….”

삐약삐약 노래하는 모짜렐라와 합주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으며 희연은 마리아를 조금 노려보았다. 까득까득 다리를 무는 스펙터를 귀찮다는 듯 손으로 털어버리는 모습이 참 강인해 보였다.

최강자의 여유라도 보이듯 모든 공격, 함정을 맨몸으로 맞으며 걸어오는 모습은 두렵기도 하고 약오르기도 했다.

누군 발목 좀 물렸다고 피가 3분의 1이나 날아갔는데….

하지만 약오르는 것과 별개로 희연은 마리아의 말에 공감하기는 했다. 시야 훈련?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 덕에 시야 훈련만큼은 참 더럽게 잘 됐다.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눈이 좋았는지 몰랐다. 계속된 긴장으로 극도로 예민해진 귀가 이제는 보지도 않고 익숙하게 적의 위치를 간파하게 될 줄도 몰랐고 말이다.

탕…!

“오오.”

머리를 노리고 뛰어내리는 스펙터를 보지도 않고 겨냥하는 희연을 보며 마리아는 손뼉까지 쳐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보스 몹이라도 되는 듯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스펙터를 절명시키는 사람이 그래봤자 희연의 입장에선 별로 달갑지는 않았다. 놀림받는 기분에 가까웠다.

희연은 한숨을 삼키며 몸을 낮췄다. 그녀의 머리 위로 스펙터가 내뱉은 빛기둥이 지나갔다. 앞쪽에서 들리는 다급한 첨벙거림에 소리 나는 곳을 쫓아 함께 이동했다. 이어 그녀가 서 있던 쪽으로 화살 비가 지나갔다.

“…두 번 다시 안 와야지.”

굳게 다짐하며 희연은 앞으로 달려 나갔다. 두 번이나 이 거지 같은 던전에 내던져지는 일은 없어야 했다.

***

“모두…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울분에 찬 방패 전사 강자의 말을 들으면서도 희연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걸 하기엔 그녀는 너무나 지친 상태였다.

“솔직히 말해서 던전 처음 오신 분들도 많고 또… 아무튼 많아서 걱정했는데…!”

그가 애써 얼버무린 말은 비협조적인 사람이 많단 내용이 아니었을까. 희연은 어림짐작해 보며 자꾸만 흘러내리는 몸을 벽에 더 바싹 붙여 앉았다.

탱커는 체력 높아서 좋겠다. 아, 검사랑 격투가도….

희연은 멍하니 생각하며 감동의 물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방패 전사 강자를 바라보았다.

모짜렐라는 그녀의 바로 옆에서 완전히 엎어져 숨만 내쉬고 있었고, 흑염의 아이 역시 웬일로 넘쳐흐르는 어둠을 자랑하지 않고 소환한 해골 위에 얌전히 누워 있었다.

두 발로 제대로 서 있는 건 탱커와 근접 직업군뿐이니 말랑말랑 힐러로선 그들이 상당히 부러워졌다.

“…….”

진짜 다신 여기 안 와야지.

앞서 했던 결심을 다시 되새기며 희연은 짧은 휴식을 즐겼다.

온갖 함정과 불합리함만이 가득했던 관문을 떠올리면 이런 길바닥 휴식에 감사해야 한다는 점이 조금 슬퍼졌지만, 앞서 한 고생과 비교해 봤을 때 이마저도 감지덕지했기에 그에 대한 싫은 소리는 누구의 입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희연은 다시 꼼지락거리며 벽에 몸을 기댔다. 벽은 거칠거칠한데 입고 있는 옷이 매끄럽다 보니 자꾸만 녹은 치즈처럼 흘러내렸다. 힘내라는 듯 팔을 도닥이는 악령이와 넬이 없었다면 그대로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몰려오는 피로를 애써 몰아내기 위해 희연은 눈이라도 굴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더 이상 스펙터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주저앉은지라 아직 주위 풍경을 살피지 못했다.

모짜렐라도 다독여 주어라 하고, 악령이를 하늘색 머리 위로 얹은 뒤 희연은 차례로 주위 정보를 받아들였다.

마치 선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들과 제법 먼 거리에서 서성이기만 하는 스펙터, 튼튼하게 두 발로 선 이들과 그와 반대되는 허약한 이들.

차일드 롤랜드는 전자였으나 지친 것인지 아니면 생각이 많은 것인지 침잠한 얼굴을 한 채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나아가는 것을 막았으나 동시에 새롭게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줄 문을.

고난과 역경을 뚫고 도달한 통로의 끝에는 접이식 문짝 두 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폭이 넓고 키도 높다 보니 통로의 너비와 문은 크기가 비슷했다.

신비롭냐 물으면, 아니다. 크기를 빼면 특별난 것 없는 문이었다. 그러나 차일드 롤랜드는 마치 홀리기라도 한 듯, 혹은 남들은 보지 못하나 그의 눈에만 보이는 게 있기라도 한 듯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가 요정의 가루에 당해 잠들었을 때 지은 표정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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