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우리는 일종의 인권 없는 배우라고 해야 할까, 이입에 실패한 캐릭터라고 해야 할까, 자유 의지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살아 있지 않은 것도 아니다. 상당히 어중간하고 특이한 위치에서 개념과 이론과 추상과 글자로 존재하는 무언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실연의 아픔 속에서 악마의 노리갯감으로 사는 유은하이자, 동시에 소설을 책임지는 성격 나쁜 ‘나’이다. 벨제뷔트도, 마계를 다스리는 사악한 불의 군주인 동시에, 뒤늦은 사춘기 때문에 내 말을 더럽게 안 듣는 ‘그’이다. 그래서 불의 군주가 식은땀을 흘리며 침실 바닥에 머리를 박을 수 있는 것이다.
“벨.”
악마왕의 아름다운 정복을 잘 갖춘 채, 뒷짐 지고 몸을 기역 자로 구부려, 머리와 발로만 바닥을 지탱하고 있다. 과연 남주인공의 운동 신경이 어디 가진 않는지 자세만큼은 지적이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하고 미동도 없었다. 대신 내가 부를 때마다 흠칫흠칫 떨리는 꼬리가 인상적이었다.
“꼬리 똑바로 들어.”
까맣고 매끈한 꼬리가 군말 없이 등 쪽으로 올라갔다.
이 자세는 ‘바깥 세계’에선 역사 속으로 사라진 가혹 행위다.
대략 알기로, 머나먼 옛날 군대나 학교에서 종종 일어나던 체벌인데 아마도 지금은 자취를 찾아볼 수 없을 거다. 정확한 건 모른다. 나야 소설 속 캐릭터니까 ‘바깥 세계’가 어떤지 알 방도가 없다. 알 필요도 없다. <악마의 비바체>는 우리만의 고유한 시간대로 살아간다. 이 세상은 작가의 연배에 맞춘 옛날 사고방식, 취향, 가치관 등이 고스란히 남은 채 굴러간다. 덕분에 벨에게 기합도 줄 수 있다.
“감히 피폐하지 않으려고 해?”
나는 높이 들린 벨의 엉덩이를 야구 방망이로 세게 후려쳤다. 바지 위로 때렸는데도 고통이 상당한지 그의 꼬리가 뻣뻣하게 굳어 파르르 떨렸다. 아무리 때려도 죽지 않는다는 건 그의 몇 안 되는 장점이다. 나는 연달아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다.
“누구 마음대로 캐릭터를 바꿔.”
“아, 아프다.”
벨이 가냘프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화만 더 났다.
“다음 편만 찍으면 회복될 건데 그냥 버텨.”
우리는 이런 상처로는 죽지 않는다. 하지만 설정을 붕괴시키면 죽을 수 있다.
벨제뷔트만 죽는 게 아니다. 나까지 휘말릴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 남주인공의 삽질 때문에 망할 뻔한 것이다.
“윽…….”
성대를 긁는 낮은 신음이 악다문 잇새로 흘러나왔다. 남자다운 목젖이 꿀렁이고 그 옆으로 핏줄이 돋았다. 끝에 부드러운 털이 달린 까만색 꼬리가 공중에서 휘어지더니 본능적으로 엉덩이를 가렸다.
“꼬리 치우라고.”
“…….”
벨이 눈을 질끈 감고 살며시 꼬리를 치웠다. 검은 바지에 감싸인 엉덩이가 통통했다. 분명 벨은 전형적인 남주인공 몸매로, 어깨는 넓고 골반은 좁은데도, 이렇게 엉덩이를 내밀고 있으니 바지가 터질 것처럼 탱탱해지고 말았다. 나는 무자비하게 그의 포동포동한 살을 야구 방망이로 퍽퍽 때렸다.
“불안불안하더니, 결국 또, 사고를 쳐? 내가 채찍을 안 맞았으니까 너라도 맞아야지.”
그래도 남주인공으로서 최소한은 한다고 해야 하나. 벨은 묵묵히 뒷짐 지고 매를 맞으며 내 화풀이를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다만 꼬리만큼은 어쩌지 못하는지, 꼬리 끝 부드러운 털들이 자꾸만 무의식적으로 상처 부위를 쓸고 문질러 댔다.
꼬리를 잡아당겼다.
“크흑!”
벨의 자세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무너진 김에 배를 걷어찼다.
“그냥 죽어. 죽어! 죽여 버릴 거야.”
그러다 문득 이 모든 게 의미 없고 한심하게 느껴져서 한숨이 푹 나왔다. 내가 비틀거리며 침대에 털썩 앉자, 벨이 눈치 빠르게 자세를 바꾸고는 슬쩍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여전히 눈은 못 마주치면서 이럴 땐 은근히 행동이 빨랐다.
그러고는 침대에 숨겨 왔던 담배를 꺼내 내밀었다.
“…….”
담배를 쥔 그의 손이 형편없이 떨렸다. 받아서 입에 물었다.
“……미안하다.”
벨이 나직하게 사과하며 라이터로 불도 붙여 줬다.
“하.”
니코틴을 빨아들이니까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격한 운동을 하느라 이마에 맺힌 땀을 털 달린 소매로 닦았다.
아, 참고로 난 맨몸에 벨제뷔트의 코트만 입고 있다.
그냥 알몸으로 있으려니까 아까 벨이 얼른 입혀 줬다. 상체가 잘 가려지는데, 사실 여기가 야설 속이기도 하니 내가 몸을 가릴 필요는 없다. 안 입으면 벨이 체벌에 집중을 못 해서 그렇지…….
하여간에 나는 상체만 가리고 하체는 거의 못 가린 상태로 물었다.
“이유나 들어 보자. 채찍 장면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잖아. 왜 그랬어?”
“나도, 나도 조금은…….”
벨이 떨면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은 후회하고 있다.”
“조금?”
“약간, 많이…….”
“많이?”
“미, 미안하다. 급해서 그대가 얼마나 화낼지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 예상 못 했어?”
“……했, 했어. 했는데……! 하지만!”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의 어깨를 걷어찼다. 부조리한 폭력을 당한 벨은 힘없이 쓰러졌다.
“진작에, 진작에 관뒀어야 했어. 63편이나 되기 전에 바로잡았어야 했어.”
벨이 상처받은 표정을 했지만 더 이상은 한계다.
“2편 때부터 이미 조짐이 있었어.”
“너무 초반이지 않나?”
벨이 납득을 못 하는 기색이다. 야구 방망이는 얌전히 맞았으면서 늘 이렇게 꺾이질 않는다.
“네가 뭘 했는지 잊었나 본데. 직접 보여 주지.”
우리는 소설 속 캐릭터니까 그냥 글자로 ‘이전 편을 발췌했다’라고만 서술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전 편의 일부를 발췌했다.
<악마의 비바체> 2편
……여차저차해서 유은하는 악마성 침대에 내동댕이쳐졌다. 주변에 몸을 가릴 만한 것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녀는 두 팔과 다리로 아름다운 육체를 가렸는데, 그 가녀리고도 음란한 모습에 벨제뷔트가 웃음을 지었다.
「지금껏 많은 여자를 안았지만, 이토록 구미가 당기는 여자는 처음이군.」
「왜 이러시는 거예요.」
「말했잖나. 식사라고.」
벨제뷔트는 장갑을 입으로 물어 벗었다. 험악한 분위기인 와중에 조금 뜬금없지만, 유은하는 그의 손이 무척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핏줄이 돋아난 손등과 길게 뻗은 손가락, 그 커다랗고 뜨거우며 남자다운 손……. 그녀의 갈색 눈이 손을 따라가자 벨제뷔트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 손으로 자신의 바지 버클을 잡았다.
「조금 배려해 주도록 하지. 그대의 안에 들어갈 건데 미리 봐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꺄악, 무슨 짓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잠시 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유은하가 의아해하며 벨제뷔트의 표정을 살펴보니 놀랍게도 이 악마왕의 얼굴이 온통 붉었다.
“…….”
갑자기 조명이 꺼졌다.
「꺅!?」
유은하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어둠 속에서 벨제뷔트의 사악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정체불명의 커다란 손이 유은하를 덮쳤다.
「후후. 순진하긴. 네가 봉사해야 할 남편의 몸인데 제대로 받아들여야지. 자, 얌전히 나의 먹이가 되어라.」
「싫어……!」
불의 군주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았다. 유은하는 문득 자신의 허벅지에 닿는 커다랗고 뜨거운 기둥의 정체를 깨닫고 경악했다. 이렇게나 클 수가? 전 남친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이런 물건이 몸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그런데 또 여차저차해서 들어갔으며…… 후략. ---다음 편에 계속---
발췌 끝. 2편을 가리키며 화냈다.
“이거. 여기. 이 부자연스러운 부분.”
중간에 확연하게 이상한 부분이 있다.
지금 보니 기억한 것보다 훨씬 심하다. 과거의 기억은 미화되는 걸까……. 당시의 나는 2편밖에 안 된 어리숙한 여주인공이라 저 사건에서 어렴풋한 위화감만 느꼈을 뿐 구체적으로 얼마나 처참한지는 몰랐다. 하지만 이젠 잘 알겠다. 대놓고 이상하다.
벨도 느꼈는지, 그가 과거의 치태를 다시 보다가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뾰족하게 솟아난 귀 끝이 붉었다.
“초반 편을 꺼내 오다니. 그것도 2편은 너무했군.”
옛날 글을 다시 들춰 보면 창피해 어쩔 줄 모르는…… 작가의 감성을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작가의 피조물이니까 당연하다. 나도 저 미숙한 모습을 다시 보니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하지만 벨은 순순히 잘못을 인정할 줄 몰랐다.
“애초에 찍어야 했던 장면이 더 이상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2편에서 본래 찍었어야 했던 장면은 저것이 아니었다. 벨제뷔트는 발기한 남근을 과시하여 유은하를 부끄럽게 만들어야 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은 그때 내가…… 부끄러워서 제대로 못 할 뻔했다.”
“제대로 뭘 못 해.”
“그러니까…….”
벨이 무릎을 꿇은 채로 난처해했다. 묘한 낌새가 느껴졌다. 원래도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으면서, 뭘 또 새삼 못 할 뻔했다는 건지……. 그러다 퍼뜩 깨달았다.
“발기가 안 될 뻔했다고!?”
애석하게도 벨이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남주인공의 기본적인 자격에서 문제가 있는 줄 몰랐다. 아니, 알았지만, 설마 2편부터 발기를 못 할 뻔한 수준일 줄은 전혀 몰랐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나친 분노와 좌절 때문에 기억이 잠시 끊겼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야구 방망이를 고쳐 쥐고 벨의 머리를 내리치려 하고 있었다.
“그, 그대, 진정해. 미수로 끝났다.”
미수가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남주인공이 발기를 못 한다니. 언제 어느 때건 여주인공만 보면 발정기 원숭이처럼 재깍재깍 세워야 할 놈이 서지를 못 하다니. 목소리가 벌벌 떨렸다.
“왜…… 왜 그랬던 거야.”
벨은 방망이를 한 손으로 잡고 필사적으로 방어하며 변명했다.
“장면이 이상했어.”
벨의 손을 내치고, 그의 엉덩이를 때렸다.
의식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었다.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정신을 차려 보니 벨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엉덩이를 붙잡고 쓰러져 있었다. 꼬리가 한 바퀴 말려 있는 걸 보니 굉장히 아픈 듯싶다. 이 손에 남은 타격감……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기어이 때린 건가? 남주인공의 엉덩이를?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주워다 간절한 마음으로 물었다. 진정하자. 해결할 수 있을 거다.
“장면이 어디가 어떻게 이상하길래 더 이상하게 만들었는지 바른대로 불어.”
벨이 꼬리 끝 붓처럼 부드러운 털들로 등허리를 슥슥 문질렀다. 나름대로 나를 째려보기는 하는 것 같은데 눈에 담긴 원망과 증오가 너무 미약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때렸는데도 나를 미워하지 않다니, 그 착한 심성 때문에 전개가 똑바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벨이 어물어물 변명했다.
“그 장면은 원래 내가…… 그, 남……근을 과시하는 장면이었지.”
“자지라고 똑바로 말해 봐.”
“자…… 상스럽다! 그대의 불필요한 요구엔 따르지 않겠어.”
벨이 버럭 화냈다. 그러니까 맞을 때나 좀 화내라고. 왜 화내야 할 부분에선 화를 안 내고 화를 안 내도 될 부분에선 화를 내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그런데 더더욱 이해되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상식적으로, 남근을 과시해야 할 이유가 없다.”
벨제뷔트가 상식을 들먹인 것이다.
“우리 사는 세계가 소설이라는 거 알고 있어?”
벨이 도도하게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렸다.
“알고 있다. 나는 소설에 필요한 최소한의 개연성을 말한 것이야. 대체 그게 뭐가 자랑스럽다고 과시해야 하는 건지 납득할 수 없다. 그대는 몸의 일부를 과시하는 일이 멋지다고 생각하나? 상식적으로 말하는데…….”
그는 상식을 다시 한번 언급하며 양쪽 손가락 검지와 중지를 까딱였다. 일부러 내가 화낼 만한 말을 강조했다는 뜻이다.
“벗는 쪽이 부끄러워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내 가, 가장…… 창피한, 부분을 보여 주는데.”
심지어 자신의 새로운 창작을 덧붙였다.
“차라리 그…… 그걸 과시하는 것보단 불을 끄는 게 더 야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이니까.”
‘현실적’ 같은 소리 한다. 우리는 현실이 뭔지 모른다. 그래서 작가가 정한 대본을 따라야 한다. 벨은 그 간단한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2편부터 사고를 쳤다. 피폐물을 찾는 독자들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 줄 뻔했다.
혈압이 올라서 이마를 짚었다. 답답하고 뿌연 담배 연기 너머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가늘게 어깨를 떠는 문제적 남주인공이 보였다. 그는 아마도 내가 화낼 거라 생각해서 겁을 먹은 거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자신의 의견을 펼쳤다. 과연 압제 앞에서 굽히지 않는 모습이 주인공답다. 그런데 남주인공다운 게 아니라 여주인공답다.
이런 애를 데리고 피폐 기떡물을 이어 가야 하는 내 처지가 처량했다.
“벗어도 창피하지 않을 정도로 여유롭다는 걸 보여 주는 거지. 다른 소설에서는…….”
담배를 쥔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트렸다. 피곤했다.
“다른 소설에서는 그런 장면 많이 나올 거야. 예를 들어, 남주인공이 아무렇지도 않게 옷 위로 발기한 걸 보여 주고, 여주인공이 그것 때문에 하루 종일 부끄러워하는 그런…… 로맨스 코미디 장면.”
“별로 웃기지 않다. 코미디가 아니다만?”
“코미디라면 코미디야. 작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 너도 알잖아.”
우리는 작가의 지식을 일부 공유한다. 내가 아는 걸 벨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굳이 입 밖으로 꺼내 설명을 해야 한다.
벨은 여전히 이해하기 싫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침실을 서성거렸다.
“다른 소설 남주인공들은 벗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고도의 노출 훈련이라도 수료한 건가?”
그렇게 말하는 벨은 코트만 나에게 넘겼을 뿐 셔츠 단추는 끝까지 채우고 장갑까지 낀 완벽한 무장 차림이었다. 노출이라고는 얼굴과 반장갑 아래 살짝 드러난 손목뿐이다. 작중 내내 거의 변하지 않는 벨제뷔트의 기본 옷차림이었다. 작가가 여캐(나 하나) 옷 갈아입히는 것만 좋아하고 남캐 옷 갈아입히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남주인공을 꽁꽁 싸매는 게 작가와 독자들의 취향이라면 수긍하겠다. 침대에서조차 바지 지퍼만 내릴 뿐 결코 엉덩이를 노출시키지 않는 데에는 어떤 신념이 있는 거겠지. 하지만 그 반작용으로, 벨제뷔트는 장갑만 벗어도 부끄러워하는 남자가 되었다.
나는 손가락을 까딱여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벨은 나를 의심하고 경계하면서도 흠칫거리며 다가왔다.
다리를 걸어, 바닥에 눕히고 벨의 얼굴 위로 올라탔다.
다시 말하는데 코트만 입고 있다. 속옷은 없다.
나는 다리를 벌려 벨에게 여근을 과시했다.
“자, 이제부터 네 것을 잡아먹을 건데 미리 봐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꺄아악!”
벨이 남주스럽지 않은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내 우람한…… 아니, 우람하진 않다. 하여간에 여주인공의 성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정신을 놓아 버린 벨은 필사적으로 몸을 뒤틀며 소리쳤다.
“그대는 부끄러움도 모르나!”
“눈 떠. 네가 봉사해야 할 여주인공의 몸인데 똑바로 봐야지.”
“싫다. 무서워.”
“후후. 순진하긴. 자, 얌전히 나의 먹이가 되어라.”
“싫어……!”
벨이 결국 날 밀치고 침실 바닥을 화려하게 굴렀다. 상태를 보아선 아마 이것 때문에 하루 종일 부끄러워하겠즤. 그런데 세상에 여주인공의 몸을 보는 걸 부끄러워하는 피폐물 사디스트 흑발 악마 남주인공이 어디 있어? 죽여 버리고 싶다…….
“!”
그런데 그때, 시작되었다.
나와 벨은 동시에 경보 같은 위화감을 느끼고 질겁하여 재빨리 하늘을 올려다봤다. 물론 악마성 침실의 천장이 보인다. 그러나 그 너머에, 악마성 지붕 너머, 하늘 너머, <악마의 비바체>의 ‘천장’에, 좌우 반전되어 쓰이는 글자도 보였다.
저곳은 작품의 표면. 작가가 써 내리는 글자가 보이는 곳. 아마도 작가에게는 모니터이고, 우리들에게는 창문이다.
벨제뷔트는 다음 편을 찍을 생각에 사색이 되어 몸을 떨었다.
“왜 벌써 다음 편이 나오지? 작가가 이렇게 부지런하지 않을 텐데.”
나는 그의 말을 부정했다.
“다음 편이 아니야.”
벨제뷔트가 의아해하며 글자를 제대로 읽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악마의 비바체>에 새롭게 쓰인 문장들은 이러했다.
[연재 중단 공지]
죄송합니다. 돌 던지셔도 할 말 없어요.
이게 제 첫 소설이었는데, 준비 없이 무턱대고 시작해서 부족함을 많이 느꼈네요ㅠ
캐릭터들(특히 벨제뷔트ㅜ)이 제 의도대로 안 움직여져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또 현생도 힘겨워져서, 아무래도 더 이상은 연재가 힘들 것 같아 중단 결정을 내렸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인기가 많아서 정말 놀라고 감사했는데ㅠㅠ.. 다들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 드릴게요... 하지만 아직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니까요.
언젠가 새로운 소설을 들고 찾아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