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헉……!”
아팠다.
엄청나게 아팠다.
내가 아팠다.
내가.
뚫린 쪽은 알 바 없고 그냥 내 손가락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무리하게 세게 집어넣어서 그런가, 무슨 살로 된 벽을 강제로 파내고 부수고 찢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진 책임자이자 주인공, 리더로서 강한 모습만 보여 주려 했지만 사실은 나도 남자의 몸을 뚫는 일은 처음이다. 당연히 긴장되고 떨리고, 아프기도 엄청 아프다. 이렇게 여주인공이 용기를 내서 처음을 내어 주는데 남주인공이란 놈은 나를 배려할 생각은 못 하고 허벅지를 바르작대며 끙끙대기만 했다. 매너가 없었다.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그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힘 좀 풀어.”
불의 악마라는 이명이 아깝지 않게 벨제뷔트의 속살은 불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꽉 막힌 살벽을 손가락 하나만으로 뚫는 일이 생각보단 쉽지 않았다.
요령이 필요하려나. <악마의 비바체>에서는 2편에 한 번씩 악마왕이나 대천사가 내 아래를 헤집는다. 물론 남주들이 만졌던 건 질이고 내가 지금 만지는 건 항문이라 경우가 좀 다르긴 할 거다. 하지만 그래도 참고할 만한 게 없으니까, 나는 내가 만져졌을 때를 떠올리며 그의 안을 더듬었다.
손가락을 꽉 감싸는 말캉한 느낌이 생경했다. 지금까지 실감하지 못했는데, 벨도 말랑말랑한 내장이 있는 생물이었구나……. 별로 야한 기분은 안 들었다. 해부 실습하는 기분은 들었다.
벨도 죽을 맛인 듯했다.
“흑, 미안하다…….”
벨은 두 팔로 얼굴을 가리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분명 여주인공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소설인데 이상하다. 남주인공이 더 많이 우는 것 같다. 눈물샘에 뭔가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게 분명했다.
“왜 울어.”
“무섭고, 아프고, 미안하고, 부끄럽고…….”
벨이 뚫린 채 웅얼거렸다.
“속은 기분이고…….”
“참아. 나도 손가락 아프거든.”
“그, 그것도 미안하다.”
벨이 힘을 풀어 보려는 듯 내 손가락을 우물거렸다. 별로 힘이 풀리진 않았다. 그냥 계속 아팠다.
“그대, 정말 이 고행을 견디면 나도 제대로 된 #강압남 #집착남이 될 수 있는 건가. 그냥 ‘벨제뷔트’에게 말 못 할 어두운 과거를 하나 더 만들어 주는 건 아니고?”
“말하지 마. 말할 때마다 조이잖아.”
“미, 미…….”
벨이 사과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벨의 사나운 눈동자에서 맑은 눈물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그래도 잘 어울렸다. 물론 작가는 벨제뷔트를 만들면서 그가 울 거라곤 생각도 안 해본 게 틀림없지만, 원체 조각 같은 얼굴이라 그런지 울어도 멋있었다. 그냥 보는 내가 아니꼬울 뿐이다.
아직 장갑도 안 벗겼다. 엉덩이만 깠다. 상체 셔츠 단추는 목 끝까지 고집스럽고 답답하게 채운 채, 거의 평상시 완고하고 엄숙한 모습 그대로였다.
부끄러움 많은 벨을 배려해서 최소한만 벗긴 건데, 이래도 못 견디다니. 나약한 남자는 필요 없다.
“미안하다…….”
벨은 결국 또 사과했다. 남주인공에게 촉수를 집어넣는 일보다 입을 다물게 하는 일이 더 힘든 것 같다.
흑발의 귀공자, 마계의 대공작이면서 불의 악마왕, 아무튼 멋진 수식어는 다 가지고 있는 그가 아래에 여자의 손가락을 품은 채 서럽게 울었다.
“그대도 처음, 했을 때, 이렇게 싫었겠군.”
“…….”
아마도 이게 그가 서럽게 우는 결정적인 이유인 것 같다.
“별로 그렇게 안 싫었어.”
“날 미워하는 것도 당연하다.”
“별로 미워하지도 않았다고.”
그 말을 뒤집어 보면 벨은 지금 이 행위가 너무 싫고 나도 밉다는 뜻 아니야? 마조히스트의 기분을 이해하랬지, 피폐물 여주인공의 참담한 마음을 이해하라고 한 적 없다. ‘훈련’의 의도와 동떨어진 결과가 나오려 한다.
나는 뜨겁고 좁은 그의 안을 삿된 손가락 모양으로 천천히 왕복하며 탄식했다.
“안 즐거워?”
벨이 울컥해서 내 손가락을 꾹 조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걸 어떻게 즐기지? 차라리 채찍을 맞는 게 낫겠군. 이런 변태적인 행위가…….”
회음부를 살살 쓸자 그가 말끝을 흐렸다.
“읏, 이런 변태적인 행위가…….”
눈썹 끝을 흐물흐물하게 내리고 입술을 살짝 깨무는 걸 보니 무언가 야릇한 감각을 느끼는 게 분명했다. 자꾸 이러니까 만지는 입장에서도 좀 기분이 이상했다. 벨과 같은 이유로 흥분되어서는 아니었다. 누군가가 고통이 아닌 쾌감을 느끼게끔 살펴보면서 배려하는 일을 생전 처음 해봐서 그랬다.
이렇게 섬세하게 상대를 배려하다니……. 여주인공이 침대에서 할 일이 아니다. 이런 건 남주인공이 할 일이란 말이다.
원치 않는 가학적 행위로 남주인공의 마음이 너덜너덜하게 닳아 버린 것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었을까? 박기 싫은데 억지로 박아야 했던 남주인공의 입장을 생각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나약하게 태어난 걸 어쩌란 말이냐. 그리고 채찍질 당해서 피 본 건 나다. 때리는 일을 못 견디는 나약하고 심약한 남자는 <악마의 비바체> 독자들의 취향이 아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
그래서 그가 다시 태어날 수 있게끔, 나는 벨의 연약한 속살을 헤집으며 주름을 섬세하게 더듬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남의 몸을 만지는 건 이런 느낌이었구나. 그 수많은 섹스를 하면서 남주인공들의 몸을 애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연재가 중단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수고스러운 짓은 안 했을 터였다.
별일을 다 해보는구나.
“……이런 짓이 용납될 리가 없다.”
그동안 벨은 이물감을 참으며 어떻게든 나에게 제대로 화를 내려 했다.
“역시 첫 수업에 촉수부터 넣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어.”
“즐기려고 노력해 봐. 아직 손가락밖에 안 넣었는데 엄살이 심하다. 촉수 두 개 한꺼번에 넣어 버리는 수가 있어.”
폭력 반대론자 악마왕이 놀라서 안쪽을 세게 조였다. 아프다고. 악마나 천사, 용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일반인 여주인공의 손가락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벨은 연약한 인간과의 힘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그의 무시무시한 전투 기량을 괄약근에다 발휘했다.
“힘 빼.”
제발, 좀.
“정말로 뚫리기만 하면 다른 건 다 쉬워지는 건가?”
“그렇다니까. 이제 뚫리는 게 기분 좋다는 건 알았으니까, 적어도 이제부턴 나한테 넣을 때마다 아플까 봐 전전긍긍하진 않겠지.”
“아직 안 좋다만?”
“설마. 노력해서 느껴 봐.”
“설마는 무슨, 전혀 좋지 않다! 역시 잘못된 선택이었던…… 하윽…….”
“곧 좋아지지 않을까 해.”
그의 엄살을 무시하고 나는 할 일을 했다.
악마왕의 뜨겁고 자글자글한 주름 사이 어딘가에 자폭 스위치가 있을 것이다. 독자들이 #집착남 #악마남주 #피폐물 #하드물 #감금물 #문란남 등등의 키워드에 건 기대를 모조리 폭파시킬 끔찍한 장르 전환 스위치. 누르는 순간 리버스가 된다. 그리고 한번 리버스가 되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만큼 강력한 파급력을 가졌기에 세상의 멸망 같은 위기 상황이 아니면 누를 일이 없는 그것.
세상이 멸망하려 한다. 눌러야만 한다. 나는 담대하기로는 흑백 영화 마초 주인공들 못지않은 피폐물 여주인공이지만, 그래도 긴장되어 마른침이 넘어갔다.
그것을 찾아…….
그런데 일단 손가락을 뺐다.
자글자글한 내벽 주름이 손가락을 놔주기 싫다는 듯 피부에 붙어 있다가 떨어졌다. 엎드려 있던 벨이 고개를 돌렸다.
“빼, 빼는 건가? 그만하는 건가?”
“…….”
지금 이대로는 불편해서 자세만 바꾸고 다시 넣을 거라고 대답하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벨의 핏빛 눈동자에서 아쉬운 기색이 스쳐 지나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만한 기색은 전혀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다.
착각인가?
하지만 소설에서 ‘착각인가?’라는 말이 나왔다면 그건 그냥 기정사실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기정사실인가?
“아쉬워?”
“무슨 말을!”
벨이 기겁하며 부정했다. 음, 역시 착각이었나 보다. 그런데 또 소설에서 ‘역시 착각이었나 보다’라는 말이 나왔다면 그건 그냥 역시 기정사실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어쨌든, 나는 벨의 어깨를 밀어 그의 몸을 뒤집었다. 얼굴을 보면서 해야 어딘지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랑 마주 보고, 무릎 껴안아 봐.”
“!”
해부당하는 개구리처럼 다리를 벌리란 말이다.
평소 장갑조차 벗지 않는 부끄럼쟁이 벨은 기겁을 해서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꼬리 끝 부드럽고 풍성한 털이 내 손가락에 사락 감겼다. 부드러웠다.
작가가 꼬리 괜히 달아 준 것 같다.
일단 악마니까 뭔가 악마스러운 신체 부위를 하나 만들어 준 것 같긴 한데 정작 벨 본인은 이걸 애교 부릴 때나 쓰고 앉았다. 잔인한 철벽의 악마왕 주제에 괘씸하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가망이 없다. 때가 된 것 같다. 주인님 훈련이고 뭐고 이제 그만하자.
“죽여 버릴…….”
“아, 그, 미안, 미안하다. 그, 내가, 잘못했어. 죽이지 말아라.”
그리고 내가 꼭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을 때 벨제뷔트가 어떻게 눈치챈 건지 재빨리 무릎을 꿇어 버린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 없으니, 그냥 황급히 두 다리를 껴안아 수치스러운 부분을 보여 주었다. 허벅지에서 걸린 바지 밑으로 하얗고 따듯한 살덩어리들이 아무렇게나 늘어졌다.
눈치는 빨라 가지고.
벨이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주며 처연히 고개를 돌렸다. 죽기 싫어서 옷을 벗고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악마왕성 군주의 꼴이 처량했다. 나는 혀를 차며 그의 치부를 살펴봤다.
새삼 남주인공의 몸을 이런 식으로 보는 건 처음이다. 벨제뷔트의 알몸을 본 일이 없었다. 작가가 남주인공은 꼭꼭 입혀 놓고 여주인공만 홀딱 벗기는 걸 좋아하는 바람에, 벨은 손만 노출되어도 창피해하는 극한의 부끄럼쟁이가 됐고 나는…… 옷을 입으면 불편해졌으니까. 그래서 벨의 발기하지 않은 성기와 동글동글 예쁘게 자리 잡은 고환, 그 아래 회음부와 피가 흐르는 항문이 새삼 신기했다…….
피?
“너무 빤히 보지 말아 다오.”
“…….”
손끝으로 핏자국을 쓸어 봤다. 피다.
뭔지 알 것 같다. 이거 그, 그거다. 그거. 그거…… 처녀혈, 아니……. 총각이랄까, 마땅한 단어가 없다.
하여간에 처음이라는 증거로 피가 나왔다.
“…….”
피가…… 나오는구나.
“은하?”
벨이 내 이름을 불러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나는 순발력을 발휘해 그의 성기를 찰싹 때렸다.
“아, 아앗.”
고통스러운 신음 사이로 달콤한 열락이 섞이는 것조차 숫총각 같았다.
아니, 남주인공 주제에…….
피가 나오다니.
<악마의 비바체>는 처녀막이라는 미지의 개념이 실존하는 세계관이다.
우리 세계는 그렇다. 나는 처음 벨제뷔트와 관계를 가질 때 피를 보았다. 심지어 벨제뷔트에겐 그 피를 보고 처음이라는 증거라며 웃는 대사도 있었다. 그는 전통적인 악마니까 처녀성을 민감하게 느낀다는 뭐 그러한 설정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처녀막이 있는데 청년막(가칭)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아니, 무언가 확실히 이상하다. 남자의 동정혈이라면 자지에 붙어 있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여기 붙어 있지?
여성기와 항문은 같지 않다. 전혀 다르다. 어떤 식으로든 등치될 수가 없다. 여성기는 좀 더 위대한 것이다. 그것은 세로로 갈라져 있고 살 주름이 겹쳐 있는 대단한 것인 반면 항문이란 그저 주름이 한 점으로 모여 있을 뿐인 별것 아닌 것이었다.
이해가 안 간다.
일단 다시 한번 쑤셔 봤다.
“윽……. 그대, 정말 내 몸을 마음대로 다루는군.”
“아가리.”
“…….”
피 묻은 장벽이 내 손가락을 빠듯하게 조였다. 피가 나는 게 확실하다.
믿고 싶지 않다.
벨제뷔트 같은 게 아무리 조여 봤자 나만큼은 못 할 텐데.
나는…… 나는, 남주를 셋이나 함락시키고, 수많은 독자들에게 대리 만족을 주고,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 낸 내 육체에, 내 보지에, 자부심이 있다. 내 몸은 최고다. 남자 몸 따위와 비교되고 싶지 않단 말이다.
하지만 어째서 여기에 청년막이 처있고 난리일까. 도대체 누가 여성기와 항문을 등치시켰길래 떡하니 피가 나오고 지랄일까. 대체 누가 이런 생각을…… 누구냐니, 작가인 게 당연하다!
“망할 놈…….”
작가한테 한 욕인데 벨제뷔트가 자기한테 한 말인 줄 알고 상처받은 표정을 했다. 그리고 슬쩍 다리를 더 벌렸다. 벨의 협조적인 자세에는 별 흠이 없지만 나는 굳이 그의 오해를 풀어 주지 않았다.
나는 억울해서라도 벨의 안으로 더 거칠게 후볐다. 물론 이 장벽이 손가락을 빽빽하게 조이기는 한다. 하지만 아무리 조여 봤자 나만큼은 못 할 게 틀림없다. 내 질에서는 미약이 나온다. 야설 안이니까 당연하다. 아무리 금욕적인 남자여도 나랑 자고 나면 수컷으로 타락해서 내 전용 생체 딜도가 되고 만다. 세계관 내 유일한 여캐인 나에겐 그러한 강력한 힘이 있었다.
건방지다. 내 자리를 넘보지 마…….
“벨. 잘못했다고 빌어 봐.”
“잘못했다.”
약간 기분이 풀렸다.
“우리 세계의 신은 형편없구나.”
나는 작가 욕으로 이 상황을 정리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피는 일단 임시로 청년혈 정도로 부르기로 했다.
“이런…… 짓이나 하고.”
피가 나왔다는 사실은 일단 벨에게는 비밀에 부치자. 안 그래도 예민하고 섬세한 남주인공인데 자신이 꿰뚫려서 피를 봤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또 얼마나 날뛸지 두려웠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의 안을 만지작댔다. 그런데 내가 한숨을 쉬자 벨의 표정이 더 굳어 버렸다.
벨은 얼른 꼬리 끝 부드러운 털들로 내 손목을 살살 간지럽혔다.
“그래. 작가의 잘못이지. 우리를 죽게 내버려 두고 도중에 도망가다니 무책임하다.”
다분히 내 기분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작가에게 감정이 있는 척하는 게 티가 났다. 악마왕 주제에 자꾸 애교를 부린다. 본인의 항문 안쪽에서 순결한 막이 찢어지는 바람에 피가 흐르고 있단 건 꿈에도 모를 텐데. 그냥 원래 첫 경험은 이 정도로 아픈 줄이나 알겠지.
“그런데 은하, 화내지 말고 들어 다오. 어디가 좋은지 잘 모르겠어. 아프기만 해. 고통은 참아보긴 하겠다만 이게 그대의 목적은 아니지 않은가. 본편에서도…… 딱히 그대가 기분 좋단 묘사는 별로 없었다.”
……없었나?
그러고 보니 그렇긴 하다. 내가 기분 좋단 묘사는 별로 없다.
“그대는 처음에 기분이 좋았었나?”
“그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랬다니까. 너 내 말 하나도 안 믿는구나.”
“믿을 수 없어. 이런 고통뿐인 소설에서.”
왜 이럴까. 나에게도 고통이 가득하다. 그리고 작가는 결국 연재를 중단함으로써 등장인물에게 궁극적이고도 영원한 고통을 안겨 주고 말았다. 그러게 시작할 때 계획을 잘 세우고 했어야지, 별로 취향도 아닌 걸 지름작으로 시작하니까 이렇게 된 거 아닌가. 나는 급기야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즈음 벨이 돌연 어딘가 묘하고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으, 은하. 뭔가 기분이 이상…… 학, 아앗…….”
자폭 스위치를 찾은 것 같다.
나는 반신반의하는 기분으로 벨의 안쪽에서 살짝 도톰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세게 눌렀다. 벨이 허리를 휘면서 이를 악물었다. 심지어 허리가 그냥 휜 것도 아니고 활처럼 휘었다. 악마왕의 남자다운 목에 벌건 핏줄이 섰다. 아까까지 말랑말랑하게 늘어져 있던 그의 성기가 힘을 받아 커지기까지 했다.
“이게 되네…….”
“이상한 감상 하, 하지 말, 흑…….”
손가락을 미세하게 움직일 때마다 벨이 전신을 떠는 게 약간 흥미로웠다. 본디 눈짓 하나, 손끝 하나로도 남주인공을 조종하는 게 여주인공이겠지마는.
“이렇게 보니까 신기하네.”
뒤를 자극당한 것만으로 부풀어 오르는 게 신기하다. 손가락을 먹은 분홍빛 주름. 힘을 받아 커지는 흉악한 성기. 만져 봐야 마땅했다.
“아, 안 돼. 안 돼. 만, 만지지 말아라.”
만졌다.
“감촉이 이상할 거다.”
감촉이 이상하긴 했다. 민감하고 부드럽고 뜨거운 피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손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악마왕의 치부는 땀인지 뭔지 모를 액체로 조금 끈적했다.
“감촉이 이상해.”
나는 오른손 중지로는 불의 군주의 야들야들한 속살을 헤집고 왼손으로는 따끈하게 익은 거대한 페니스를 살살 간지럽혔다. 손목에 감긴 꼬리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손목을 조였다 풀기를 반복했다. 손을 맞잡은 것 같았다. 손목에 부드럽게 스치는 꼬리 털의 감촉이 작가의 의지를 거스르는 나쁜 짓을 함께 하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왜일까…… 이유는 모르겠는데 가슴이 두근거린다.
두근거렸지만, 침대에 곱게 누워 음탕하게 할딱대는 남주인공을 보니 배알이 꼴리기는 했다.
“괘씸하니까 나보다 더 느끼지 마. 리버스 같잖아.”
“지금도 충분히 리버스다!”
벨이 울컥해서 벌떡 일어나려다가, 내가 안쪽을 살짝 누르자 쓰러지며 야릇한 신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