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벨제뷔트를 쓸 만한 남자로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주인님 훈련’이지만 예상 이상으로 꽤 보람차고 재미있었다. 지금껏 나는 딱히 벨의 몸을 만질 기회가 없어서 더욱더 그랬다. 이 말캉말캉하고 뜨거운 감촉 자체도 꽤 중독성 있는데, 건드릴 때마다 직관적으로 화내고 울고 반응하는 벨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이런 게 절대 금기였단 말이지. 금기치고는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나쁜 짓 하는 게 이렇게나 쉬웠다고?
쓸데없이 덥다. 나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침착하게 그의 몸 안을 문지르며 탐구를 이어 갔다.
“전립선이 아예 없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있긴 하네. 애초에 여기 구멍이 달려 있는 것도 신기하고.”
벨이 장갑 손등 쪽을 물어뜯으며 물었다.
“없, 없었다면…… 으응, 어떻게 하려 했지.”
“없어도 될 때까지 박아야지. 누구는 전립선이 있어서 뒤로 느꼈으려고.”
그렇다……. 난 노련한 피폐물 여주인공. 뒤쪽 경험도 물론 있다. 무리한 전개라고 굉장히 욕을 먹긴 했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그리고 나 정도 되는 경력의 여주인공이라면 어디로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벨은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그대는 전립선도 없는데 어떻게 느낀 거지?”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야설 여주의 신체를 얕보지 말아라…….
“그, 알았다.”
뭘 알아? 쏘아봤더니 벨이 냉큼 알아서 눈을 깔았다. 꼴이 가관이었다. 흑발의 고고하고 잔인한 악마왕이 무릎을 껴안아 음란한 치부를 노출한 채, 수치심에 떨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아 볼을 장미처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남주인공 주제에 재수 없게도 벨이 예상 이상으로 잘 느낀다. 그래도, 이런 경험을 했으니 앞으로는 내 질이든 항문이든 어디에 뭔가를 처박을 때 내가 무조건 고통스러울 거라 지레짐작하고 망설이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계획대로 잘됐다. 계획 이상으로 잘됐다.
“너무 느끼는 거 아냐? 남주인공 주제에.”
“아, 안 돼. 나도…… 이렇게 느끼면 안 될 것 같은데, 그게 안 된다.”
침대에 새까만 머리카락을 부비면서 선홍색 입술 사이로 더운 호흡을 바삐 내쉬는 걸 보니 감이 잡혔다. 작가가 리버스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면 금지까진 시키지는 않았겠지. 작가는 리버스를 경계하고 있었다. 과대평가했다. 작가는 남자가 후장 맛을 보면 다시는 남주인공 구실을 못 하게끔 타락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고, 그 믿음이 이 세상에 반영되었다.
나는 지금 거의 남자의 패배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도 남주인공 구실 못 하는데 혹시 내가 지금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도, 음수에 음수를 곱하면 양수가 되니, 벨제뷔트가 이 시련을 넘어선 순간 그는 진정한 남주인공으로 거듭나게 될 거라고 믿는다.
작가가 안 보는 틈을 타 대놓고 리버스 행위를 하고 있다. 우리 이러면 안 된다. 안 되는데……. 안 된다고 생각할수록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나는 벨의 직장 안 살짝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누르고 비볐고, 벨이 곧바로 엄살을 피웠다.
“흐, 아앗…… 안 돼, 으응, 못, 못 견뎌.”
“견뎌.”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그대의 손가락으로 가버리면 난 다시는, 다시는!”
그러다 악마왕의 강인한 손톱이 그의 옷자락을 찢고 파고들었고, 허벅지를 잡고 있느라 팔에 힘을 주고 있던 벨은 그대로 바지를 찢어 버렸다.
“아!”
<악마의 비바체>에서 항상 유은하의 옷을 거칠고 야성적으로 찢던 솜씨가 악마왕의 옷에도 발휘되었다. 허벅지를 묶던 바지가 제구실을 못 하게 되자 다리부터 벌어졌다. 허벅지와 종아리를 가릴 옷이 없어졌다.
“오, 옷이. 옷이.”
정숙한 남자인 벨에게는 과도한 시련인 것 같다. 그는 다급히 찢어진 천 조각이라도 모아다 부끄러운 성기를 가리려 했으나 그 전에 내가 먼저 그것을 던져 버렸다.
“차라리 잘됐어. 불편했잖아.”
“아니, 아니야. 불편한 게 나아.”
벨은 허벅지를 노출하는 것이, 내가 알기로, 태어나서 지금이 처음이다.
“가리게 해줘. 난…… 하앗…… 아, 싫, 싫어. 부끄러워.”
하의가 사라진 벨은 다리를 저어가며 침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여전히 남주인공은 본디 여주인공을 위해 존재하는 캐릭터이고, 특히 뽕빨물 남주인공은 침대에서 봉사하기 위해 태어난 살아 있는 자위 도구와 다름이 없으므로 벨은 태생적 한계에 저항할 수 없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된다는 뜻이다.
나는 기어가는 벨의 골반을 잡고 끌어당겼다.
“어디 가.”
“이불이라도 덮게 해다오. 아니면 조명이라도 꺼줘.”
벨이 쉴 새 없이 자신의 다리를 힐끔거렸다. 아하……. 시야에 허벅지가 들어오는구나.
“나, 남자가 침대에서 벗다니. 그것도 어…… 엉덩이를 드러내다니. 비상식적이다.”
그 말이 맞다. 남주인공이라면 당연히 바지 버클만 풀고 고추만 꺼내야 한다고 헌법에 적혀 있다. 작가에게서 물려받은 상식에 비추어 보아, 그리고 <악마의 비바체>의 지난 행보에 비추어 보아 아마 ‘바깥 세계’에서도 남자가 섹스할 때 벗는 행위는 불법이겠지. 특히나 여자에게 엉덩이를 보인다면 리버스 특별법 같은 것에 걸려서 가중 처벌을 받게 될 것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많은 피폐물에서 남주인공은 절대 엉덩이를 보여 주지 않는 게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멸망을 앞둔 아주 특수한 상황. 자고로 사디스트 주인님이라면 엉덩이를 보이는 시련을 겪어서라도 진정한 돔으로 거듭나야 하지 않겠는가.
노예 역할의 즐거움을 체험해 봐야지만, 그가 후에 <악마의 비바체>에서 주인님 역할을 할 때 죄책감을 덜 느끼게 될 것이다. 맞고 박히고 묶이고 온갖 일을 당하는 게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단 걸 몸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남주인공의 의무다.
“너 때문에 작가가 연재 중단까지 했는데 엄살이 심하다?”
“그, 그래도 싫다. 문란한 남자 같아……. 나, 나는 그런 남자가 아닌데…….”
벨이 눈물을 글썽였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다오. 더 이상은…….”
침실 바깥에서는 여전히 우리 세상의 ‘배경’들이 무너지고 있다. 그나마 안전한 건 이 침실뿐이다. 벨의 칭얼거림을 받아 줄 시간이 없다.
“무슨 여기까지야. 이리 와.”
“아, 하윽……! 안, 안 돼. 싫다. 싫……!”
벨이 문득, 내 손에 묻은 핏자국을 발견했다.
“!”
찬물을 끼얹은 듯 벨이 뚝 저항을 멈추고 굳어 버렸다.
자주색 눈동자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고 동공이 커졌다. 이리저리 잘만 흔들리던 꼬리도 뻣뻣하게 굳었다. 벨이 저런 식으로 반응하는 걸 전에도 몇 번 본 적 있다. 주로…….
“내가 또 그대를 다치게 한 것인가?”
나를 다치게 했을 때.
벨은 본인의 피를 본 적이 없다.
“…….”
이 예민하고 섬세한 남주인공에게 피의 정체에 대해 설명을…….
하기가 너무 귀찮다.
“아니, 이건 네 피니까 걱정 마.”
“그게 무슨 말…… 헉, 이제 나는…….”
벨이 무언가를 눈치챈 것 같다. 잠자리에서 남주인공의 미세한 감정 변화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나는 그냥 촉수부터 쑤셔 넣으려 했다.
“안 된다!”
벨이 펄쩍 뛰었다. 그 잠깐 사이 말랑해져 버린 촉수 가닥이 비좁은 구멍에 쉽게 들어가지 않았다. 안 그래도 힘이 센 놈인데 날뛰기까지 하니까 제압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싫어하는 벨의 몸에 억지로 무언가를 밀어 넣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주는 어떤…… 짜릿함이 있었다.
“가만히 있어. 너 지금 노예 역할인 거 까먹었어? 세계 멸망 막아야지.”
“어떻게 나에게 촉수를 넣는 일이 세계 멸망과…… 아흑, 모르겠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벨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별로 진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가 이 피의 출처를 알게 된다면 이번에야말로 패닉에 휩싸여 ‘주인님 훈련’이 중지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의 충격을 더 큰 충격으로 무마시키는 게 제일 편하다.
쑤셔 넣자.
“이게 왜 안 들어가. 구멍이 너무 좁아.”
남주인공의 항문에 촉수를 문질러 대는 행위를 통해 세계 멸망을 막고 평화를 되찾는 길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다. 벨이 헐떡이며 애원했다.
“부탁이다. 조금이라도 덜 수치스럽게 해다오.”
“그래. 그렇게 말하면 되는 거야.”
나는 벨의 커다랗게 부푼 성기에 대고 촉수 가닥을 탁탁 쳐서 촉수를 다시 딱딱하게 만들었다. 촉수의 작동 원리에 어딘가 좀 불쾌한 지점이 있었다. 하지만 원래 불쾌함을 느끼게끔 만들어진 생물이니, 이 촉수는 누구와는 달리 제 역할을 톡톡히 잘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엉덩이를 세게 때렸다. 피의 출처 따위는 생각도 못 하게끔.
“흐윽……!”
벨의 비명과 함께 손바닥에 눌린 엉덩이 살이 출렁였다. 굵고 튼튼한 꼬리도 재깍 등 쪽으로 올라갔다.
“가만히 좀.”
“흑, 말 잘 들을 테니까 때리지 말아…….”
벨이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면서 이불에 볼을 비볐다. 포근한 이불에서 위안을 찾는 것 같다.
“치, 침대 위에서 엉덩이를 보여 주고. 내…… 순결도 잃고. 그대는 너무해. 칭찬 한마디를 안 해주나.”
나는 벨의 웅얼거림을 무시하고 손가락을 두 개나 집어넣어 가위질하듯이 벌렸다. 순결을 잃은 내 손가락은 (벨의) 피와 (벨의) 음액이 뒤섞여 더럽고 지저분했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궁지에 밀어 넣는 이런 피곤하고 귀찮은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건 주인공이 할 일이 아니란 말이다.
곱게 수갑에 묶여 있어야 할 나의 예쁜 손가락이 남주인공의 몸 안에 들어가 있다니…….
“반성해.”
벨은 엎어진 채 엉덩이만 들고, 이불을 주섬주섬 껴안으며 고개를 돌렸다.
“잘못했어. 은하. 그대가 매일 밤 침대에서 무슨 고역을 겪는지는 잘 알았다. 다시는 그대를 때리지 않겠다 약조하마.”
목적이랑 반대로 갔다.
“고역이 아니고, 나는 맞는 게 좋다고. 네가 날 제대로 안 때리니까 이렇게 됐잖아.”
“그대가 아무리 이런 일이 괜찮다고 주장해도 난 믿을 수 없어.”
“내가 좋다는데 왜 못 믿어?”
괘씸해서 또 엉덩이를 한 대 때렸다. 네발로 엎드린 채 둔부만 집중 공략당하는 남주인공의 처지가 말이 아니었다. 때릴 때마다 그의 안쪽이 손가락을 압박하듯 조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대로 느끼고는 있었다.
“당하는 것도 기분 좋지?”
“…….”
벨이 입을 다물더니, 베개에 얼굴을 푹 묻고 웅얼거렸다.
“별로 좋지 않다. 그대는 너무 폭력적이야…….”
폭력으로 점철된 소설의 등장인물이 할 대사가 아니었다. 안 좋으면 곤란한데……. 이대로 끔찍한 기억만 남는다면, ‘다음 편’을 찍을 때 이 자식은 이전보다 더 나를 때리지 못할 게 틀림없다.
나는 그의 둔부를 부드럽게 쓸었다. 빨간 자국이 꽃처럼 피어 관능적인 색을 띠었으나, 안쪽에 확실히 단단한 남성의 근육이 느껴졌다. 피부는 부어서 무척 뜨거웠다. 항상 바지 안에서 보호받던 부드러운 살덩어리다. 작가가 계속 연재하며 소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었더라면 바깥 공기와 만날 일도 없던 부위다. 그런 곳이 오늘 노출되어 나에게 여러 번 얻어맞았다.
따끔한 통증과 아릿한 둔통 사이에서 야릇한 쾌락이…… 피어나려나?
적어도 나는 맞으면 기분 좋다.
“새로운 성벽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벨이 즉답했다.
“난 그대와 너무 다르다. 그런 취향은 안 생겨. 마조히스트의 기분을 모르겠다. 지금껏 그대를 너무 많이 때려서 천벌 받는 것 같기만 해.”
“천벌은 지금…….”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달이 쪼개지고 있다.
“저런 게 천벌이고…….”
“우린 죽을 정도로 잘못하지 않았다.”
벨이 새삼 작가에 대한 투지를 불태웠다.
“살고 싶으면 느껴.”
그리고 나도 할 일을 해야 했다.
할 일. <악마의 비바체>의 다음 편을 ‘제대로’ 만들어 연재 중단을 막는 것.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겁박하고 모욕할 때마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몹쓸 버릇을 없애는 것. 모욕당하는 즐거움을 깨닫게 하는 것. 몸 안에 우둘투둘한 촉수가 들어오는 쾌감을 알려 주는 것. 이 체격만 크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흑발 남주인공의 순결한 구멍에 흉악한 촉수를 처박는 것.
“힘 빼.”
“아직 마음의 준비가……!”
벨처럼 유약한 캐릭터가 마음의 준비가 다 될 때까지 기다리려면 세상이 두 번 멸망하고도 모자랄 거다. 바로 이럴 때 필요한 캐릭터가 바로 주인공이다. 이야기의 목표를 향해, 누구보다 피폐해지는 찬란한 미래를 위해 캐릭터들을 이끄는 존재. 나는 단번에 촉수를 쑤셔 박았다.
“큭, 헉……!”
미끄럽고 단단한 촉수가 조그마한 구멍을 우악스럽게 벌리고 진입했다. 손가락으로 흠뻑 자극해 뒀던 전립선까지 단번에 미끄러져 들어가는 감각이 있었다. 벨이 이를 악물었고, 눈동자는 핏빛으로 타들어 갔고, 위기 상황에서나 볼 수 있는 악마왕의 불타는 뿔이 한쪽 관자놀이에서 튀어나왔고, 허리 뒤쪽에서 날개도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 상태로 벨은 갑자기,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뒤로 뻗더니 내 손목을 덥석 낚아챘다.
“어?”
나는 빨려들어 가듯이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순간 그가 매일 구박만 받는 한심한 벨이 아닌 카리스마 있는 벨제뷔트처럼 보였다. 벨은 로맨스 남주인공답게 나를 안았다. 갑자기 숨이 막혔고, 그의 코가 내 목덜미에 박혔다. 내 체취를 들이마시는 거다.
나를 보호하듯이 끌어안는데, 왜일까, 그가 나에게 매달리는 것 같다.
아마 실제로도 그게 맞겠지만…….
울음과 열기에 흠뻑 잠긴 가녀린 목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혔다.
“은하…….”
등이 파이듯이 아픈 걸 보니, 그가 또 내 피부에 손톱을 세운 모양이다. 사정할 때의 버릇이다.
철벽같지만 속은 여린 남자가 몸을 떨었다. 벨의 가장 취약한 순간에 나는 얼떨떨하게 그를 마주 껴안아 머리를 쓰다듬고 말았다. 새까맣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땀으로 축축했지만 여전히 부드러웠다. 손끝에 아찔하고도 관능적인 감촉이 남았다.
아니, 머리카락 때문이 아니다. 내 사지를 꽉 묶은 채 헐떡이는 이 남자의 연약함과 사랑스러움이 마음에 묘한 불씨를 남겼다.
“흑…… 흐윽…….”
벨은 그렇게 나를 안은 채로 울음을 터트렸다.
“은하, 나, 나는…….”
“괜찮아. 잘했어.”
사실 딱히 잘하지는 않았다. 별로 칭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드물게 내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온 이유는, 뭐랄까……. 순결을 잃고 우는 모습이 약간, 공동의 적을 물리치는 데 어떤 공을 세웠다고 해야 하나, 돌이킬 수 없는 선을 같이 넘었다는 동지애가 싹텄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조금 흥분된 걸 수도 있고?
나도 잘 모른다. 자기 마음을 똑바로 아는 캐릭터가 얼마나 되려고. 원래 이런 감정선의 공백은 독자들이 취향껏 채우는 거다.
“나는 이제 순결하지 않다.”
벨이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칭얼거렸다. 내 손도 이제 순결하지 않다. 더러운 손이 되었다.
“흐아앙…….”
벨이 다리를 움찔거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래, 기왕 노예 역할 하는 거 할 수 있는 거 다 해라.
“아, 하, 한 번 갔는데. 촉수가 계속 꾸물거려서……!”
“아.”
박혀 있는 촉수는 멈추지 않는다. 여주인공이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말로만 외쳐도, 남주인공이 멈춰 달라고 진심으로 외쳐도 징그럽게 계속 안을 자극할 거다. 나는 벨의 등을 다독였다.
“가만히 있어.”
“두 번 연속은 무리다.”
“왜 이렇게 엄살이 심해. 뒈질라고.”
다정하게 주먹을 움켜쥐자 벨이 냉큼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더듬어, 그 사이에 박힌 촉수를 더욱 깊이 집어넣었다. 단단한 살을 가르는 감각이, 벨의 울먹이는 표정이 짜릿했다.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건지 의중을 알 수 없고 혼란스럽기만 했다. 정말 왜 저런 표정을 짓지? 벨은 괴롭혀지고 싶은 건가?
나는…… 괴롭히고 싶은 건가?
“빼면 죽여 버릴 거야.”
“주, 죽이지 말아라. 그대의 자비엔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헉.”
나는 주섬주섬 치마와 속옷을 벗고 그의 다리 위로 올라탔다. 나의 뛰어난 신체는 아주 대단해서, 지금까지의 별거 없는 행위로도 이미 질을 흠뻑 적셔 놓았다. 아니면 벨이 좀 야릇하게 굴었을 수도 있고.
아무튼 그의 단단하게 선 뜨거운 음경 위로 내 몸을 맞추고 허리를 내렸다.
먹는다……. 생전 처음 해보는 기승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