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죽여도 되나요-13화 (13/40)

13화

당연한 말이지만, 벨은 충격에 빠졌다. 천지가 창조되고 우리들이 생명을 얻은 1편 이후, 우리가 만들어야 할 소설의 장르가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 이후로 벨제뷔트가 저렇게 놀란 모습은 처음 봤다. 벨은 나를 천하에 둘도 없는 쓰레기를 보듯이 경멸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하라고. 아니면 내가 대신해 줘?”

눈앞에서 얼쩡거리는 성기를 턱 잡았다. 벨은 심각한 추행이라도 당한 것처럼 쓰러지며, 카펫 위에 주저앉아 마구 뒤로 물러났다.

“나, 나, 나도 일단은 남자다. 남자 취급을 해다오.”

“남자 취급이 뭐야.”

“남자아이의…… 소, 소중한 곳을 그렇게 막…….”

다리를 곱게 모은 채, 칭얼거리며 소매로 다시 눈가를 쓱쓱 닦는 모습이 딱히 남자답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남자와 벨이 생각하는 남자가 좀 다른 개념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벨이 틀리고 내가 맞겠지. 나는 항상 옳으니까.

나는 상체를 앞으로 굽히고 부지런히 담배를 빨았다.

“자위해.”

“싫다.”

“너는 야한 일에 좀 내성을 길러야 해.”

“이렇게까지는 필요 없다. 이 정도만 해도 ‘다음 편’을 쓰는 데는 문제 없어.”

“그건 네 생각이고.”

“그대가 매일 이렇게 나를 압박하는 것도 문제다. 나는 그대가 하기에 따라 사디스트가 될 수도 있고 마조히스트가 될 수도 있다.”

갑자기 수련회 교관 같은 대사였다.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리 와.”

벨이 나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면서 슬쩍 다시 다가왔다. 여전히 다리는 한쪽으로 모으고 한 팔로 성기를 가린 채였다.

내 시선으로부터 몸을 가릴 방어구 하나 없이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조금 야했다. ‘본편’을 찍을 때 내가 이런 식으로 보였구나, 하는 공부가 되었다.

공부는 공부고, 황당한 말을 하는 남주인공의 뺨이라도 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오늘 직접적 폭력은 일절 휘두르지 않기로 결심했다.

“혀 내밀어.”

그래서 대신 남주인공을 재떨이 삼았다.

“…….”

벨제뷔트의 시선이 잠시 응접실 테이블 위의 유리 재떨이에 닿았다. 그러다 불만스럽게 혀를 삐죽 내밀었다. 거기다 담배를 비벼 껐다.

불의 악마니까 아프진 않을 거다. 이 정도면 양호하지. 나도 참 많이 물러졌다.

벨은 날 째려보며 혀 위에다 불을 질러 담배를 태우고, 그대로 꿀꺽 삼켜 버렸다. 아마 배 속에서 소각해 버리려는 거겠지. 나를 책망하는 눈빛이다.

“그 불손한 눈빛은 뭐야. 네가 지금까지 채찍질도 못 하는 이유가 내가 지도를 똑바로 안 해서야?”

“그렇게까진 말하지 않았다.”

“나한테 책임 돌릴 거면 촉수 다시 당해.”

“책임 돌리는 말이 아니다. 몰랐던 모양이군.”

벨이 냉정하게…… 아니면 새침하게 말했다.

“나는 그대가 이끄는 대로 취향도 성격도 변한다. 그게 선명하게 느껴져.”

금시초문이다.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모르겠는데, 벨은 겁이 난 듯 황급히 말을 보탰다.

“세계 멸망까지 그대 탓을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매번 말했듯이, 폭력의 강도를 좀 줄이거나…… 예를 들어 나한테 그, 그, 그런 파렴치한 짓은 그만 시키면 좋을 거라고 말하는 거다.”

결과적으로 자위하기 싫다는 말이지만 나는 팔짱을 끼우고 잠시 생각해 봤다. 벨은 내가 말이 없자 안절부절못하고 뭔가를 하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알몸이라 몸을 크게 움직일 수 없어 꼬리만 팔랑팔랑 저었다.

내가 이끄는 대로 취향도 성격도 변한다고? 하지만 우리에겐 기본적인 캐릭터 설정이란 게 있다. 아무리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해도, 설정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터. 벨제뷔트는 대체 무슨 말을 하려던 걸까?

그러다가, 나는 돌연 진실을 깨달았다.

“네 말이 맞구나. 내 책임이 맞네.”

벨은 내 말이 또 어떤 폭력 행위의 전조라고 생각한 듯 어깨를 움츠렸다.

“인정하는 건가?”

“맞네……. 세계 멸망도 결국 내 책임이었구나.”

이곳은 <악마의 비바체>라는 로맨스 소설.

세상은 남자가 지배하고 남자는 여자가 지배한다.

벨제뷔트는 지상을 다스리고 나는 벨제뷔트를 다스린다. 그런데 이 소설은 설정이 치밀하지 못해서, 사실상 그에겐 다스릴 ‘지상’이랄 게 없다. 그저 명목상의 악마왕일 뿐. 부하가 없으니 ‘왕’으로서의 역할은 수행 못 한다. 옷도 벗겨 줄 시종이 없어 스스로 벗어야 했으니까.

투명하게 쓰인 헌법, 완전무결한 문장, 수많은 독자들이 내일을 살아가게 만드는 아편. 그것이 ‘소설 바깥’에서야 그 법칙이 고통스러운 진실을 가리는 달콤한 기만일지언정, 나에겐 물리 법칙이나 다름없었다. 깨달음이 연쇄적으로 터졌다.

“여주들은 다 선생님 같은 거고 남주들은 죄다 말을 좀 안 듣는 불량 학생, 뭐 이런 거였어.”

이것이 대충 내가 해석한 규칙이다.

벨이 찡그리며 불편해했다.

“교사와 제자로 비유하지 말아 다오. 성적인 관계가 있으면 안 되는 사이다. 양심이 아파.”

“너는 #개아가남이잖아. 양심이 아프면 어떡해?”

하지만 벨의 양심이야 어쨌든 듣고 보니 적합한 비유는 아닌 것 같다.

“그럼 여주들은 다 사육사고 남주들은 다 인간 가축이라고 하자.”

벨이 편안해했다.

“그런 사이라면 성적인 관계가 있는 게 당연하군.”

이로써 합의가 끝났다.

“자위해.”

“뭐? 왜지?”

제자리로 돌아왔다. 벨은 방금 자기가 인간 가축이라고 인정했으면서 아직도 자신의 존엄과 명예를 지키며 내 명령을 거부했다. 스트립쇼까지는 괜찮은데 그 이상은 도저히 못 하겠다 이거지? 혹시 반항하는 것까지 그가 생각하는 ‘노예 역할’에 포함된 건가? 그래서 반항하나?

아니, 벨은 진짜로 반항하는 것이다. 진실로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곳은 피폐물 소설 속인데 나보다 남주인공이 더 노예 역할을 잘하면 어쩌자는 거야.

벨의 허벅지를 퍽 찼다.

“손 치워. 수치심을 내려놓고 음란한 일에 익숙해져야 더 완벽한 주인님이 될 수 있는 거야.”

“가혹하군.”

“그럼 흑발 사디스트가 되는 일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원래는 이런 일은 1편이 시작하기도 전에 끝났어야 했는데 한참 늦었다. 실무에 투입한 지 한참 됐는데 이제야 실무 능력을 배우다니 뭔가 이상하다. 설마 바깥세상도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겠지? 여기는 소설 속 세상이니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지만, 바깥에서는 모든 일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흘러가겠지?

하여간에 벨제뷔트는 이제야 납득하고, 이를 악물고는 고개를 돌렸다. 덜덜 떨리는 악마왕의 손이 드디어 고간에서 수줍게 물러났다. 내가 그렇게 모욕했음에도 여전히 그의 성기는 여자의 몸을 즐겁게 하기 위한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었다.

문득 순수하게 궁금해져서 물었다.

“왜 서 있어?”

벨제뷔트가 화냈다.

“나도 남주인공으로서 기본은 한다.”

여주인공 앞에서 세울 줄은 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욕을 먹었는데도 말이다.

내 생체 딜도의 성능이 좋음을 확인해서일까, 나는 정확한 이유도 모르고 기분이 좋아져서 입꼬리를 올렸다.

“시작해.”

“…….”

벨은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얼굴만 봐도 ‘그대는 잔인하군.’이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다.

그는 애매하게 비틀었던 몸을 바로 세우고, 내 앞에서 자세를 바로 해 무릎 꿇었다. 시선은 피하지 않았다. 부끄러워서 시선을 피할 바에는 그냥 나를 똑바로 노려보며 원망하는 편을 택한 것 같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몸을 스스로 애무하기 시작했다.

악마왕의 크고 거친 손이 제 성기를 어색하게 쓰다듬었다.

“으…….”

벨이 의미가 불분명한 신음을 흘렸다. 그는 나를 끝까지 노려볼 생각인 것 같았으나 결국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돌렸다.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가 무엇을 떠올리고 있을지 짐작이 간다.

<악마의 비바체> 40편, ‘유은하’가 마물의 체액을 마시고 몸이 달아올라 혼자 위로하는 장면.

사실은 나도 자위해 본 경험이라고는 그때가 끝이다.

40편이었을 때만 해도 나는 감히 작가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에게 생체 딜도를 3개나 쥐여 주고도 왜 스스로 수음하게 하는지 아주 약간 의문이 들었으나 나는 창조신의 의도를 충실히 이행했다. 나는 그의 신실한 종이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끔찍하게도…….

아니, 이런 생각에 빠질 때가 아니지. 아무튼 요지는, 벨이 참고할 만한 장면이 딱 그거 하나 뿐이라는 거다.

“……읏, 이런, 이런 거…… 내가 원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벨은 가련한 피폐물 여주인공처럼 행동하게 된다.

“그대가 억지로 시켰으니까…….”

40편에서 내가 저런 식으로 대사를 읊으며 수음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위는 이런 식으로 보는 사람을 크게 의식한, 불필요한 독백과 함께 몸을 야릇하게 틀어 가며 예쁜 표정을 짓는 것뿐이다. 그 외 다른 방식은 모른다.

이 원칙은 남캐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벨은 내가 그의 얼굴부터 아랫도리까지 번갈아 가며 훑어보고 있단 걸 또렷하게 의식하고 있다. 내 발치에 무릎 꿇은 채로.

어설픈 손길이 커다랗고 흉측한 살 기둥을 기계적으로 문질렀다. 흠 없이 아름답고 날카로운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성적인 흥분 때문이 아니고 순수한 수치심 때문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64편 동안 몸을 섞었던 사이니만큼 벨제뷔트가 얼마나 어떻게 흥분하는지 제법 잘 알게 되었다. 성기에 핏줄이 안 선 걸 보니 그는 그다지 흥분하지 않았다.

급기야 벨은 화를 냈다.

“즐겁나? 대체 남자가 자위하는 걸 보아서 무엇 하려는 거지?”

“도와줄까?”

그를 무시하고 발을 뻗어 근육으로 꽉 찬 허벅지를 툭 건드렸다. 오늘은 스타킹도 없고 그냥 맨발이다. 발가락이 피부에 닿으니까 벨은 공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화들짝 놀라서는 몸을 가렸다.

“무슨 짓이지?”

나를 파렴치한 성희롱범처럼 쳐다보는 시선을 매일 받는데 매일 짜증 난다.

“혼자 힘들어 보여서.”

“혼자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차마 내 발은 만지지도 못하고, 나와 닿지 않게끔 아주 조심스럽게 다리를 옮겼다.

“원래 이……런 건 혼자 하는 거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벨제뷔트의 자율에 맡겼다간 시간 초과로 세계가 멸망하고 말 거다.

“손 치워.”

“헉…….”

그의 단단한 허벅지 안쪽으로 발을 미끄러트렸다. 벨이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을 떨었다.

“아, 안 돼.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벨제뷔트는 나의 극악무도한 발짓에서 소중한 성기를 보호하듯 그의 남근을 두 손으로 감쌌다. 내 두 손으로 감싸면 귀두가 비죽 튀어나오던데 그는 손이 커서 그런가 그 정도로 성기를 완전히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만 방어해 봤자 별 소용은 없다. 나는 발을 높이 들어 악마왕의 강인한 대흉근 한쪽을 꾹 눌렀다.

“!”

그가 팔로 가슴을 가리며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나야 항상 부드럽고 말캉한 내 몸을 자주 만지고 살았으니까, 발끝에 닿는 단단한 감촉이 다소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작가가 여주인공 몸과 남주인공 몸의 경도 대비에 어떤 환상이 있었던 듯하다. 내 파트너는 온몸이 철벽 같았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근육이 꽉 찬 그의 팔뚝과 겨드랑이 사이로 발가락을 꾹 밀어 넣었다. 거기도 어쨌든 틈새라고 피부 사이를 파고드는 기분이 묘했다. 발바닥의 볼록한 부분이 유두에 스치자 벨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 그대…… 그, 속옷이 보인다.”

“…….”

지금 내 팬티 보이는 게 문제야?

“너는 아예 옷이 없는데?”

“그래서 내 속옷은 안 보이니까 괜찮다.”

지나친 수치심이 벨제뷔트에게 천재적인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준 듯하다.

“네 몸 희롱당하는 건 괜찮고?”

벨이 짐짓 쌀쌀맞은 척 대답했다.

“그 말은 이상해. 나는 남자 몸을 희롱한다는 개념을 듣도 보도 못했다.”

“그건 나도 그래.”

“그게 문제다, 은하. ‘훈련’의 취지는 알겠지만, 우리의 역할을 억지로 바꾸니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그대는 내 몸을 어떻게 희롱할 셈이지? 내 몸을 예쁘다고 칭찬할 수는 없을 텐데.”

“음…….”

그 부분에 있어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벨의 말대로다. 남자 몸을 예쁘다고 칭찬하는 개념은 우리 세계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전 편’과 ‘다음 편’의 공백 속에서 하는 모든 일들은 전부 세상의 규칙과 상식을 뒤엎는 행위들뿐이다.

나는 밀어붙여 보기로 했다.

“아니야. 네 몸은 예뻐.”

“…….”

벨이 비상식적인 말을 듣고 충격에 빠져 입을 벌렸다.

나도 소소한 충격을 겪었다. 말하기 전까지는 그의 강인하고 철벽 같은 몸이 예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말하고 난 직후부터, 그의 몸이 예뻐 보였다. 남자의 몸을 예쁘다고 칭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와…….”

감탄이 나왔다. 작가가 막아 뒀던 리버스 행위 중 일부를 뚫었다.

짜릿한 배덕감이 느껴졌다. 작가의 속을 긁을 만한 행위는 그게 무엇이든 강한 쾌감이 되었다. 나는 신이 나서 말했다.

“게다가 귀여워.”

벨은 거의 발악을 했다.

“말도 안 돼. 그대, 내 몸에다 그런 수식어를 붙인 게 맞나? 내 행동이 아니고?”

“…….”

그런데 대답이 뭔가 좀 이상하다.

“뭐야, 잠깐. 너 네 행동이 귀엽다고 생각했었어?”

“그런 게 아니다. 예시를 든 것뿐이다.”

내 파트너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고 벌떡 일어났다. 지금 옷이 없다는 사실도 까먹고 주먹까지 쥐었다. 그리고 그 직후 다급하게 다시 몸을 가리며 뒤로 물러나려 했는데, 내가 손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벨이 소파에 털썩 쓰러졌다. 그 위로 올라타서 그의 날카로운 턱을 쓰다듬었다.

“네가 하는 짓이 귀여운 줄 알았어?”

맹세코 벨제뷔트에게서 귀여운 부분이라고는 그의 꼬리밖에 없다. 행동은 전혀 귀엽지 않다. 속이 터질 뿐이다.

애초에, ‘행동이 귀엽다’란 오로지 여주인공인 나에게만 허락되는 문장이다!

그것을 벨제뷔트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너…… 속으로 계속 네 행동이 귀엽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헐떡대다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오해다. 내 몸이 귀엽다는 것보단 행동이 귀엽다는 쪽이 조금이나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게 그 말이야! 네가 귀여울 거라 생각했어?”

“오, 오, 오해라고 말했을 텐데. 귀엽다는 새, 생각은 해, 해본 적 없다. 내가 귀여울 리가 없어. 그대의 기대에는 모자랄지언정 나도 엄연히 피폐물 남주인공이다. 그, 그, 그대는…… 내 노예일 뿐이고. 누가 그대의 주인인지 잊은 건 아니겠지?”

“!”

벨제뷔트의 입에서 자발적으로 주인님 선언이 나왔다!

“바, 방금은 말실수…….”

심지어 말을 뱉은 본인도 놀랐다.

이것이 ‘주인님 훈련’의 효과인가? 그가 사디스트 흑발 남주인공에 한 발 가까워졌다. 비록 그 과정이 조금 이상한 것 같지만…… 대단한 성과다. 우리는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

“말실수 아니잖아. 너 왜 귀여워할수록 제대로 된 주인님이 되는 거야?”

“아니, 아니다. 아니란 말이다.”

“뭐가 아니야?”

“난 귀엽지 않다.”

동의한다.

벨제뷔트는 내 팔 사이에 갇혀서 마구 고개를 저었다. 자기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흰 얼굴에 핀 붉은 홍조가 야릇했다. 그는 어딘지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으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필사적으로 내 눈을 피했는데, 지금 알몸이라는 사실도 까먹은 게 분명했다.

“견디기 힘들군. 이런 종류의 수치심은 겪어 본 적 없어…….”

나도 이런 종류의 황당함은 겪어 본 적 없다. 잔인한 악마왕의 눈꼬리에 아까 멎은 줄 알았던 눈물까지 다시 맺혔다.

귀여워할수록 주인님다워지다니. 이런 말랑말랑한 교육 방식이 정말 효과가 있구나. 몰랐다. 64편이 될 때까지 그에게 맞는 교육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 소설의 유일한 주인공으로서 반성해야겠다.

왜 스트립쇼보다 칭찬이 더 효과적인 걸까? 우리 세상은 야설인데 왜 이 남주인공에게는 에로스보다 플라토닉이 더 효과적일까?

한심한 남주인공을 거짓으로 칭찬하려니 혀가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주인공. 그 어떤 시련도 극복해 내는 선택받은 인물. 내 밑에 깔린 잔인하고 사악하며 사랑엔 서툰 남주인공을 칭찬함으로서 세계 멸망이라는 시련을 극복해 보겠다.

“넌…… 너무 가련해서, 지……켜 주고 싶고…… 사랑스러워.”

“그럴 리가 없다!”

벨제뷔트가 내 밑에 누운 채로 빽 소리쳤다. 힘들게 칭찬한 보람이 있었다. 이 남자가 칭찬 몇 마디 듣고 흥분해서 헐떡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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