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죽여도 되나요-16화 (16/40)

16화

<악마의 비바체> 68편

이번 편에서 섹스할 구실은 이렇다.

여전히 악마성에 갇혀 있는 유은하. 그녀는 진짜 부모님을 만난다는 둥 중요한 이유로 악마성 바깥과 연락을 시도했다가, 벨제뷔트에게 탈출을 시도했다고 오해받는다. 그래서 분노한 벨제뷔트가 유은하를 다시 침실로 끌고 갔다. 이상.

침대 위에서 오들오들 떠는 유은하에게 벨제뷔트가 밧줄을 던졌다.

「이건……?」

「너의 말은 믿을 수 없다. 그냥 내 침대에 묶어 놓는 게 가장 낫겠어.」

벨제뷔트의 붉은 눈동자는 분노로 타올랐는데, 또 한편으로는 묘하게 자신감이 넘쳐 보이기도 했다. 마치 아까까지 누군가에게 듬뿍 사랑받아서 자신감을 충천한 애완견처럼……. 벨제뷔트는 얇은 슬립만 입은 유은하의 손발을 착착 묶었다.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세련되고 전문성 있는 손길이었다.

유은하가 포장당하면서 매우 기뻐하…….

는 게 아니라, 유은하는 끔찍한 절망을 느꼈다.

「이런 건 싫어요.」

「싫어도 어쩔 수 없어. 네가 잘못한 거니까.」

이 둘은 대강 상투적인 대사를 나누었는데, 이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악마의 비바체> 전개와는 약간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바로 벨제뷔트가 상의를 벗은 것이다.

셔츠를 멋지게 풀어 헤치고 옆으로  던졌다. 이 소설에서 남자의 상의 탈의 장면이 처음 나왔다. 넓은 어깨와 선명한 복근, 당황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가슴, 왜 달려 있는지 모를 분홍색 젖꼭지…… 하여간에 남자답고 강렬한 모습이었다. 유은하는 갑자기 펼쳐진 맨살의 향연에 당황했다.

「벨제뷔트!」

유은하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지만, 벨제뷔트는 웃으며 그녀의 턱을 잡았다. 이미 악마의 성기도 바지를 뚫을 것처럼 발기한 채였다.

「왜 놀라지? 너는 수없이 벗었으면서, 내가 벗으니까 당황스러운가?」

「다, 다, 당연하죠. 그런…….」

「똑바로 봐라. 너의 주인 될 자의 몸이다.」

로맨스 소설에서 남주인공이 조각 같은 상체를 과시하는 정도는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다. 모든 일이 올바로 돌아가고 있다. 벨제뷔트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서 묶여서 꼼짝 못 하는 그의 노예에게 자랑스럽게 잘 가꾼 몸매를 과시했다.

「눈 돌리지 말아라.」

「하지만… 꺄악!」

유은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렇게 밝은 빛 아래에서 저 악마의 젖…… 아니, 가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작가 없이 이만큼이나 해낼 줄도 몰랐다. 등장인물끼리 이런 장면을 만들어 냈다. 남주인공이 멋진 몸을 과시하면서 여주인공을 부끄럽게 만드는 장면 말이다.

내친김에 벨제뷔트는 한 발 더 나아간다. 고추를 꺼낸 것이다.

「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군.」

밝은 빛 아래에서 벨제뷔트의 성기가 드러났다. 핏줄이 흉흉하게 선 그것은 이미 분홍색으로 곱게 익어서는 유은하가 예뻐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벨제뷔트는 성기를 배꼽까지 세워 놓고는 그렇게 부끄러워 보이지도 않았다. 약간 수줍어하는 기색만 있었을 뿐이다.

아무래도 야설이니만큼 벨제뷔트가 고추를 꺼낸 적은 종종 있긴 했다. 그러나 매번 어둑어둑한 곳, 그늘진 곳에서 후다닥 꺼냈다가 얼른 유은하의 몸속에 숨기는 것이 지금까지의 수순이었다. 이번 편은 다르다.

「부끄럽지도 않나요!」

「내가 왜? 그대의 몸 안에 수백 번은 들락거린 건데.」

「꺄악!」

벨제뷔트가 유은하를 성희롱까지 했다. 모든 일이 완벽하게 잘 되고 있다. 정말로 작가 없이도 해냈다. 벨제뷔트는 부끄러움을 극복한 대가로 유은하의 신뢰를 얻었다. 그는 내친김에 바지도 완전히 벗었다. 침대 위에서 알몸이 된 것이다.

「무, 무슨 짓을…….」

유은하가 얼굴이 빨개진 채 가련하게 고개를 꺾었다. 벨제뷔트가 웃으며 다시 그녀의 턱을 잡았다.

「너와 곧 몸을 섞을 것이니 벗었다. 뭐가 문제지? 훑어봐도 좋다.」

「표현이 저질스러워요!」

유은하는 벨제뷔트의 위압적인 벗은 몸을 위아래로 끈적하게 훑어보며 공포를 느꼈다. 벨제뷔트가 벗으면 벗을수록 유은하가 부끄러워한다.

그렇다면 더 벗어야 된다.

이미 다 벗었는데…….

벨제뷔트는 고민하다가, 유은하의 앞에서 뒤돌았다. 그리고 엉덩이를 잔혹하게 보여 주었다.

「벨제뷔트!」

유은하가 수치와 모멸감을 참을 수 없어 소리를 질렀다. 그녀가 괴로워할수록 이 사디스틱한 악마왕은 더욱 더 즐거워했다. 벨제뷔트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너에게만 허락한 것이니 영광인 줄 알고 똑바로 보도록.」

「흑, 흑……. 보고 싶지 않아요.」

「네가 충분히 볼 때까지 비키지 않겠다.」

「싫어……!」

완전 사악했다.

진짜 피폐했다. 그야말로 이 소설에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벨제뷔트가 또 유은하를 잔인하게 괴롭히면서 즐거워한다. 유은하의 비명과 슬픔만이 벨제뷔트의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유은하에게 엉덩이를 보여 주는 것…… 이것은 벨제뷔트가 지금껏 저질렀던 수많은 악행과 비교해 봐도 손색없을 만큼 잔인한 짓이었다.

유은하는 대략 이렇게 슬퍼했다.

「이런다고 제가 굴복할 것 같나요?」

그러자 벨제뷔트가 이렇게 말하며 화를 냈다.

「그건 해봐야 알겠지. 또 나에게 반항하는군.」

벨제뷔트는 직접 그 돌 같은 엉덩이를 잡아 벌리기까지 했다.

단단한 엉덩이에 반쯤 가려져 있던 분홍색 항문이 드러나고 만 것이다.

「꺄아악……!」

유은하는 수치심에 압도되어,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다음 편에 계속---

“음.”

악마성 응접실은 말이 응접실이지 사실상 배우 휴게실 정도로 쓰고 있어서, 우리는 보통 시간이 비면 여기로 모인다. 우리의 미래, 운명, 목숨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에 여기만 한 장소가 없다. 나는 테라스 야외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벨제뷔트는 멋지게 벽에 몸을 기댄 채 와인을 홀짝였다.

여기서는 부서지는 마계의 아름다운 전경이 잘 보인다. 특히 오늘 같은 날씨에는 말이다.

햇빛이 밝다.

늘 어둡고 음침해야 하는 마계의 날씨가 캘리포니아처럼 밝고 건강하다.

나는 담배 연기를 깊숙이 빨아들인 다음, 꽁초가 가득한 재떨이에 담배를 갖다 버리고, 엄숙히 선언했다.

“우리 개좆됐어.”

68편을 이상한 변태 소설처럼 쓰고 말았다…….

“아악!”

“은하, 우린 죽는 건가? 기어이 끝나고 마는 건가?”

“악!”

관자놀이 붙잡고 소리 지르는 동안, 벨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잔에 술을 채워 넣었다. 잘생긴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표정만 보면 이미 우리들의 합동 장례식이라도 치르는 것 같다. 벨은 자기 눈물이 술잔으로 뚝뚝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계속 사죄했다.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내가, 그, 얼마나 어디까지 벗어야 하는지 몰라서…….”

우리는 엄청난 사고를 쳤다.

그것도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큰 사고를 쳤다. 65편에서 남주인공이 채찍을 버렸던 정도는 사고도 아니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사고였다.

“왜 이렇게 됐지!? 원인은……!”

원인은 한두 개가 아니겠으나, 일단 하나는 확실하다. 벨제뷔트가 엉덩이를 벌리는 데 내가 막지 못했다.

“이래서 작가가 남주들은 장갑도 안 벗기려 했구나……!”

막지 못한 수준이 아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눈치도 못 챘다. 68편을 다 쓴 다음에야 깨달았다. 벨제뷔트가 어디까지 벗어야 하는지 나도 몰랐던 거다.

남주인공이 벗는 것도 정도껏 벗어야 하는구나. 지금까지 쟤가 벗어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아니, 그래도 그렇지……!

벨이 텅 빈 술병을 들고 소매로 쓱쓱 눈물을 닦았다.

“은하. 역시 나는 안 될 것 같다. 남주 자리에서 내려오겠어.”

이미 68편은 써버렸는데 이제 와서 무슨 말이냐?

“닥쳐.”

“날 때려라.”

“내가 너 마음 편하라고 때려 주기까지 해야 해? 널 때리면 시간이 되돌려지기라도 해?”

“아니, 그런 게 아니다. 잘못했다.”

고행을 통해 죄책감을 덜려는 짓이 아주 습관이다. 괘씸한 새끼. 화풀이로 이 자식을 죽기 직전까지 채찍으로 패고 싶은 심정은 굴뚝같으나, 이번만큼은 나도 잘못했다. 나도 공범이다. 같이 폭주했다. 주인공인 주제에 이런 실수를 하다니.

“뭐가 문제지? 원인이 뭐였지? ‘훈련’에 문제가 있었나?”

“으흑흑…….”

벨제뷔트가 술병을 안고 쓰러졌다. 부끄러움을 극복한 벨이 독자들 앞에서 항문을 보여 주고 만 것은 이 사태의 표면적인 원인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말리지 못한 것도 표면적인 원인일 뿐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작가가 떠난 것 말이다.

……역시 화풀이라도 해야겠다.

“널 때려야겠어.”

“좋아. 맞겠다.”

벨이 냉큼 테라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자세를 갖췄다. 늘 하던 짓이 마음에 안정을 줄 것이다. 나는 힐 신은 발로 벨의 허벅지를 밟으며 채찍을 꺼내 들었다.

“벨. 네가 뭘 잘못했는지 네 입으로 읊어 봐.”

“내 엉덩이는 노예인 그대만 볼 수 있는 것인데 함부로 독자들에게 보여 주었다.”

“잘 알고 있네.”

채찍을 바닥에 내리쳤다.

“말을 듣지 않는 주인님은 벌을 받아야겠지?”

“무엇이든 하겠다.”

벨은 비장하게 셔츠 단추를 툭툭 풀었다. 여긴 반쯤 야외인데도 불구하고, 부끄러움을 극복했으니 이제 탈의를 망설일 이유가 없는 듯하다. 남주인공이 노출의 재미를 깨달은 것은 환영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을 위한 것이었지, 내 허락도 없이 아무 데서나 벗으면 곤란하다.

장갑 낀 손등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누구 마음대로 옷을 벗어?”

“큭…….”

벨은 손만 움찔거렸지 반항은 일절 없었다. 그저 쇄골을 드러낸 채 얌전히 뒷짐 지고 눈을 내리깔아 처벌을 기다렸다. 벌 받을 때만 유난히 자세가 칼 같고 각이 잡혀 있다. 어쩌면, #개아가남을 연기할 때보다도 훨씬 열의와 성의가 있을지도 모른다. 괘씸하다.

“손 내밀어.”

벨은 이로 장갑을 물어 벗고, 순종적으로 하얀 손바닥을 내밀었다. 상처 하나 없어 보이는 손바닥이지만 내가 여기에 얼마나 많이 매질을 했고 또 재떨이로는 얼마나 많이 썼었는지. 하지만 그런 짓을 해서 벨이 괴로워했었나? 육체적으로만 좀 아파하고 말았지, 진정으로 괴로워한 적은 없었다. 벨을 제대로 괴롭히려면 때리면 안 된다.

‘진짜’ 체벌은 따로 있다.

나는 벨의 손에 채찍 손잡이를 쥐여 주었다.

“잡아.”

“음……?”

“날 때려라.”

“!”

그는 눈을 부릅뜨며, 채찍을 으스러트릴 기세로 손잡이를 세게 쥐었다. 표정이 마구 일그러지고 공포에 빠졌다. 이런 표정을 바랬다. 벌 받는 자의 얼굴은 이래야만 하는 법이다.

벨은 즉각 두 손 모아 싹싹 빌었다.

“그것만은 싫다, 은하. 다른 건 다 해도 그것만큼은 안 된다.”

“뭐든지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면서?”

“그래도 안 된다.”

“이기적인 새끼.”

입맛에 맞는 체벌만 찾는 기만적인 놈. 체벌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건 체벌이 아니다. 나는 익숙하게 놈을 걷어찼다.

“주인님이면 날 똑바로 때리란 말야. 내 주인 하기 싫어? 관두고 싶어?”

“어떻게 그런 말을!”

“알면 똑바로 하라고.”

쓰러진 벨을 하이힐 굽으로 퍽퍽 걷어찼다. 피폐물의 #굴림여주에게 깡패 같은 발길질을 시키다니, 이런 끔찍한 주인은 살다 살다 처음 본다. 어떻게 이런 최악이 주인이 있을 수 있지?

“너 이러면 주인 갈아치울 거다.”

“!”

배를 마구 걷어차이던 벨이 내 발을 턱 잡고 날 노려봤다.

“정말 너무하는군. 그대는 너무 잔인하다. 나를 얼마나 쥐어짜 내야 만족할 셈이지?”

그러고는 바닥에 떨궜던 채찍을 낚아채며 일어나, 나를 향해 휘둘렀다.

짜악.

“!”

한 줄기 날카로운 채찍이 내 팔을 날카롭게 후려쳤다. 알싸한 고통, 모멸감, 그리고 환희가 즉각적으로 찾아왔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맞은 부분을 붙잡고 벨을 올려다보았다.

“입으로는 싫다고 하면서 몸은 솔직한데.”

“그렇지 않다. 그대의 무리한 요구에 맞춰 준 것뿐…….”

벨은 당장이라도 채찍을 쥔 손을 자르고 싶은 것처럼 내려다봤다. 자고로 능욕물 히로인이라면 능욕당하는 자신을 혐오하게 되는 법. 지금 벨이 딱 그 꼴이다……. 아니, 능욕물 히로인은 나지만, 아무튼 그렇다. 벨은 기도하듯 채찍 손잡이를 꼬옥 쥐고 울먹였다.

“때리고 싶지 않다. 안 때릴 수는 없는 건가?”

“때려.”

“싫다.”

“두 번은 명령 안 해.”

“나는…….”

아마도 벨은 반항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아무런 강제 없이 말로만 명령했다. 그를 옭아매는 구속이라고는 우리의 관계뿐이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식은땀을 흘렸다. 필사적인 내적 갈등을 하고 있는 게 뻔했다. 그의 독백이 읽히지는 않지만, 분명 나에게서 벗어날 논리를 찾고 있는 거겠지.

어떤 논리든 상관없다. 내가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산산조각 나고 말 테니까.

“벨.”

“!”

짝.

벨은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채찍을 휘둘렀다. 허벅지를 겨냥한 정확한 공격에 전신이 오싹 떨렸다. 이 정확하고 아름다운 타격. 채찍질만 보면 닳고 닳은 훌륭한 주인님이 따로 없다. 입으로는 싫다 해도, 몸이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나는 내 몸을 감싸 안으며 벨을 매도했다.

“잘하잖아. 나를 수백 번은 때렸던 주제에 이제 와서 깨끗한 척을 하다니.”

“아, 아, 아니야. 그렇지 않다.”

“아니긴, 네 꼴을 봐. 악마왕이 따로 없어.”

“나는 악마왕이 아니다!”

“맞거든……?”

“싫어, 싫다. 또 때렸다간 기절하고 말 거다. 이런 짓, 더는 하고 싶지 않아……!”

벨은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면서 장갑으로 눈물을 마구 닦았다. 지금까지의 설움을 한꺼번에 터트리려는 듯 원통하고 커다란 울음소리였다. 그 자리에 선 채로 대성통곡을 터트리다니, 전혀 주인님답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 꼴을 보고도 웃음이 났다. 왜냐하면 벨은 그렇게 울면서도, 채찍을 꽉 쥔 채 놓지 않고 있었으니까.

이미 벨은 마음속까지 주인님으로 길들여져 있다. 언뜻 심약해 보이는 척 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잔혹한 일면이 숨겨져 있겠지. 틀림없다. 나의 피폐함과 가련함을 걸어도 좋다. 음탕한 수컷 같으니……. 자꾸 이런 순종적인 주인님 같은 면모를 보이니까 내가 그에게 괴롭힘당하기를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우니까 훨씬 더 주인님 같은데.”

“어떻게, 어떻게 이런. 너무하다. 그대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다고 봐줄 줄 알아?”

나는 네 발로 엎드려 벨에게 엉덩이를 내밀었다.

“내 엉덩이를 때려라.”

“허억.”

벨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너무해, 너무한다. 어떻게 나에게 엉덩이를 내밀 수가 있지? 차라리 내 엉덩이를 받아라.”

“네가 협상할 처지가 된다고 생각해?”

“흐윽, 흐아앙…….”

내 엉덩이는 이미 채찍을 맞기 위한 준비가 끝났다. 벨은 울음 때문에 도통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을 번쩍 들고 있었다.

이제 내려치기만 한다면……!

“지랄들을 한다.”

그 때 어디선가 퍼진 눈 부신 빛이 시야를 가리는가 싶더니, 커다란 날개를 펼친 천사가 테라스 난간에 착지했다.

그자는 우아하게 날개를 접고 훌쩍 바닥으로 뛰어내려, 긴 다리로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왔다.

악마가 있으니, 당연히 천사도 있다.

항상 여주인공에게 친절하고, 다정하고, 헌신하는 영원한 이인자.

미카엘은 곱슬 끼가 있는 금색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 우는 벨에게서 냉큼 채찍을 뺏었다.

“왜 못 해?”

그리고 내 엉덩이를 향해 휘둘렀다.

“아흑……!”

방금 맞았던 부분이 구둣발로 지긋이 짓밟혔다. 강렬하고 아릿한 고통이 전신에까지 퍼졌다. 미카는 구두 코로 내 허벅지를 툭 밀어 나를 쓰러트렸다.

남자 두 명에게 학대당하자 아랫도리부터 만족스러운 전율이 피어올랐다. 나는 이렇게나 매력적인 사냥감이다. 위험한 늑대들 사이에 내던져진 한 마리 불쌍한 아기 토끼다. 나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 엉덩이로 느껴진다. 황홀한 삶의 쾌감…….

“후우.”

“우와, 개변태…… 암캐…….”

미카가 내 표정을 보고는 완전히 질린 듯한 눈으로 채찍을 뒤로 휙 던졌다. 옆에서 벨이 버럭 화냈다.

“어떻게 은하에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 그대가 #다정남이 맞긴 한가?”

“어.”

미카는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불량하게 쪼그려 앉아 나를 내려다봤다. 우리 소설의 남주들은 기본적으로 밑에서 올려다보면 더 잘생겨 보인다. 특히 이 대천사는 후광 같은 것을 달고 다니니까 더욱 그렇다.

“미카.”

다음 편부터 출연할 서브 남주, 미카엘이 내 볼을 손가락으로 콕 찔렀다.

“야, 나 이제 남주 관둔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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