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뭘 관둬? 남주를 관둬? 왜?
대천사의 빛나는 얼굴이 일그러진다 싶더니, 미카는 그 자리에서 폭소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일단 미카의 명치를 한 대 때리려 했는데, 미카가 냉큼 피하고는 근처에 있던 의자에 털썩 앉았다.
미카는 한쪽 발목을 다른 쪽 무릎 위에 턱 올리고 계속 웃었다.
“아하하. 역시 일부러 구경 온 보람이 있어. 지금이 아니면 언제 네 그런 표정을 보겠냐?”
놀리러 왔나? 죽일까?
“출연을 안 해?”
“말 그대로. 안 한다고. 섭남 관두겠다고.”
미카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미 ‘벨제뷔트’ 이미지도 씹창이 났는데 이제 뭘 어쩌게?”
68편을 읽고 왔군.
미카가 다리를 꼬며 손으로 추잡한 모양을 만들었다.
“난 네가 갑자기 벨한테 스트립쇼를 시키길래 장르를 바꾸려는 줄 알았지.”
“보았나!?”
나보다는 벨이 먼저 반응했다. 벨은 악마왕의 위엄 따위 어디다 내다 버렸는지 얼굴이 불타는 고구마처럼 되어 버렸다. 미카가 여유롭게 나와 벨을 번갈아 봤다.
“보여 주려는 거 아니었어? 창가에서 하길래.”
오해가 있는 듯하다. 미카가 앉아 있는 의자를 턱 잡아 퇴로를 막았다. 작가의 뒤를 잇겠다는 원대한 과업, 주인님을 훈련시키는 방법에 대해 미카는 아무것도 모른다. 같은 배를 탄 인물로서 내가 벨에게 뭘 시켰는지는 말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미카. 우리가 했던 건 말이지…….”
이하로 ‘주인님 훈련’에 대해 설명했다.
미카는 질색했다.
“개변태 새끼……. 아, 그래서 벨이 노출에 대담해졌구나.”
옆에서 벨이 침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벨은 한 번 스트립쇼를 했기에 노출에 대담해졌다.
“순결을 잃었으니까.”
……응?
“그 말이 맞다.”
응?
“나는 은하에게 남자로서 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을 바쳤어. 반면 그대는 어떻지? 이 정도 각오도 없이 은하의 관심을 원했나?”
“윽……. 네가 뭘 알아, 걸레 새끼야. 결혼도 안 했는데 뚫려 놓고서. 정신 좀 차려. 너 더러워졌어. 허니문까지 어떻게든 아껴 뒀어야지.”
“어차피 소설 끝에선 은하와 결혼할 예정이었으니 문제없다.”
“그건 아직 모르고.”
“뭐가 모른다는 것이냐!”
뭔 소린지 모르겠는데 둘이 싸우려고 한다. 일단 말려 보았다.
“둘 다 닥쳐 봐. 왜 싸워?”
“은하, 미안하지만 이건 남자끼리 얘기할 문제다.”
“그래. 여자는 무신경해서 이런 거 잘 몰라.”
“뭔…… 뭐?”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얘기 때문에 당혹스러웠다. 나를 제쳐 두고서 남주 둘의 눈빛은 아주 진지했다. 둘이 무슨 주제로 얘기하고 있는지 감도 안 오고, 왜 심각한지도 짐작이 안 간다. 심지어 둘은 서로의 말에 계속 상처를 받으며 점점 억울해했다. 왜? 뭐가?
미카가 벨에게 비아냥거렸다.
“은하가 피 보고 고마워했어? 아닐걸? 너한테만 의미 있는 걸 바쳐 놓고 은하가 알아주길 바라냐?”
“알아주길 원하지도 않았다만, 아무 피도 바치지 못한 그대보단 사정이 낫겠지.”
“등신아. 세상에 어떤 여자가 중고품이랑 결혼하고 싶어 하겠냐? 네가 그렇게 도덕 관념이 무너졌으니까 독자들 앞에서…….”
“그만 말해라! 이미 지난 일을 추궁해 봤자 그대에게 무슨 이득이 있지?”
“남주인공 가랑이는 50도 이상 벌어지면 안 되는 거 몰라?”
잠깐만……. 남자가 처음으로 애널을 개통당할 때 피가 나온다는 사실이 상식이었나?
나는 처음 벨의 몸에서 피가 나온 걸 봤을 때도 그게 뭔지 몰랐는데……. 아무래도 남자아이들끼리만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무언가였던 모양이다. 남자아이들이 사춘기 때부터 겪는 마법인가? 아니면 일종의 남성 질환 같은 건가?
저 둘이 항문의 순결을 두고 싸우는 걸 보고 있자니 원인 모를 죄책감이 피어났다. 남자에게 순결이 저렇게나 중요한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의 영혼을 파괴하려 했던 건가……. 벨을 지켜 줬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계속 싸우게 놔둘 순 없다. 미카가 그냥 혼란을 가중시키기 위해 찾아온 것이라면, 조금 다듬이질을 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한 대만.
“억.”
지켜보던 벨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은하. 폭력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
“다음부턴 네가 대신 때리라고 할 거야.”
“너무하군! 나는 동료에게 체어샷을 날리고 싶지 않다.”
의자와 함께 쓰러진 미카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으, 농담도 못 해.”
너네 말싸움은 농담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물론 우리 소설의 남주들은 조금 맞는 정도로는 기세가 죽지 않는다. 이 자식들의 유일하게 남자다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미카는 이마에 멍이 들었지만 비열한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뻔뻔하게 의자를 다시 세워다가 다리 꼬고 턱 걸터앉았다.
“은하 양.”
<악마의 비바체>에서 천사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다.
“네가 나름대로 작가의 뒤를 이으려고 애쓰는 건 알겠는데, 다 소용없어.”
“힘 빠지는 소리만 할 거면 한 대 더 맞아라.”
“아니, 잠깐, 잠깐!”
손을 올리자 미카가 반사적으로 날개로 몸을 가렸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소설 남주들은 나를 내려다볼 때 가장 잘생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잘 어울리는 건 바로 이런 겁먹은 표정이었다. 분명 표정만 보면 아픈 걸 싫어하는 게 분명한데, 왜 저렇게 맞는 모습이 익숙하고 편안해 보일까? 게다가 나는 또 왜 남자들을 때리는 게 이렇게 자연스러울까? 복장이 터진다.
하여간에 미카는 억지웃음이라도 잃지 않은 채, 나에게서 슬쩍 한 걸음 물러나며 손사래를 쳤다.
“왜 이래. 말 좀 들어 봐. 어차피 한계가 있었다니까? 만약 우리끼리 내용을 계속 잇는다고 해도, 엔딩은 어떡할 거야?”
“!”
엔딩.
“엔딩……?”
“엔딩.”
나는 섬뜩한 깨달음에 감전이라도 된 듯 손을 떨었다. 몸이 그 자리에서 못 박힌 것처럼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미카가 덮어 뒀던 끔찍한 진실을 들춰 냈다. 그의 말이 맞다. 나의 목적은 단순히 연재를 이어 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없는 이상 엔딩까지도 내가 내야 하는 것이다.
엔딩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소설에 있어 필수적인 부분이건만 아예 생각지도 못했다.
왜냐면, 작가도 엔딩 낼 생각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엔딩을 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겠지. 그러나 그걸 실감하는 것은 다른 말이다. 작가는 소설 쓰는 일이 처음이었다. 엔딩을 내 본 적이 없다. 우리 세계의 신은 별다른 준비 없이 그저 인기 있을 만한 소재만 가지고 뭔가 기회가 올 때까지 무한히 소설을 이을 생각이었다.
플롯이나 기승전결 따위가 있을 리가 없지. 준비해 둔 엔딩 또한 있을 리가 없다. 나의 아마추어 작가에게 있는 능력이라고는 씬을 무한하게 잇거나 회수할 수 없는 복선을 던지는 정도뿐이다. ‘유은하’의 지옥엔 엔딩이 없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나도 잊었다.
그것을 서브 남주인공이 지적한 것이다.
미카는 내 난처한 표정을 보고 보란 듯이 날 비웃었다.
“엔딩 못 내겠지?”
분하지만 미카의 말이 맞다……. 작가도 못 한 걸 내가 어떻게 하지?
“그냥 포기하고 같이 멸망이나 지켜보자. 솔직히 너도 이 소설 유치하고 재미없어서 싫었잖아.”
한 대만 더.
“악.”
명치 맞은 천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날개를 밟았다.
“소설 욕하지 마. 까도 내가 까.”
“허접한 건 사실, 아악…….”
미카가 <악마의 비바체>를 싫어하는 건 알고 있었다. 그의 집필 태도를 보면 뻔했다. 벨처럼 작중에서 채찍을 내던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그는 지각을 했다. 작가의 연재 텀을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최대한 집필 현장에 늦게 나타났다. 내가 아무리 쥐어패도 끝까지 그랬다.
덕분에 미카만 나오면 소설이 방향을 잃는 것처럼 보였단 말이다. 마치 작가가 #다정남 캐릭터를 못 다루는 것처럼…….
그러나 그런 나날도 이제는 끝이다. 세상의 멸망이 코앞이다. 미카를 박아 버리든가 죽여 버리든가 해서, 어떻게든 ‘다음 편’에 출연시키고 말겠다.
“포기는 안 해.”
나는 테라스 난간을 짚고, 작가가 남긴 세상을 내려다봤다. 내 눈엔 묘사되지 않은 배경만 보이는 게 아니다. 설계부터 잘못된 세상.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다음 편’을 잇는 데에만 급급하던 결과물. 어중간하게 생명을 얻는 바람에 역할과 성격이 따로 놀게 되어 버린 우리들. <악마의 비바체>가 보인다.
이 세상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나는 주인공이야. 무슨 수를 써야지.”
구석에서 우울해하고 있던 벨이 슬쩍 물었다.
“그대, 혹시 남주인공을 바꿀 건가?”
“뭐!”
미카가 티 나게 깜짝 놀랐다. 지각하는 주제에 남주 자리에 욕심이 있었나? 어이가 없다.
“남주 교체는 없어.”
“하지만 나는 이미 더러워진 몸이다. 어떤 낯으로 독자들 앞에 서야 한단 말이지?”
“아직 세상이 멸망하지 않았잖아.”
나는 난간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남주인공이 여주인공 앞에서 항문을 벌리는 정도는 괜찮다는 뜻이지.”
“그, 그런, 그럴 리가……!”
그러나 당연한 말이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 작가가 남긴 유산을 한 글자라도 더 지켜 내야 한다. 먼저 그 첫 번째 단계로 벨을 꽁꽁 싸맬까 한다. 정조대를 채우거나.
“결국 너는 연재를 계속 할 생각이구나.”
등 뒤에서 천사가 중얼거리더니, 내 어깨에 얼굴을 턱 올렸다. 나를 습관적으로 받침대로 쓰는 버릇은 #다정남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저기서 의기소침해 있는 어떤 #개아가남과 역할이 바뀌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은하 양. 그럼 이렇게 할까?”
“어떻게?”
미카가 씨익 웃었다.
“‘다음 편’을 강제로 진행시켜서, 소설을 망친다거나?”
<악마의 비바체> 69편
「…….」
69편이 시작되었다.
「이게 무슨…….」
분명 저번 편까지만 해도 벨제뷔트가 훌렁훌렁 옷을 벗고 있었는데, 여기는 어디지? 갑자기 장소가 바뀌었다. 악마성 침실이 아니라, 새하얗고 아름다운, 또 다른 고풍스러운 방이었다. 분명 아까까지의 일이 꿈은 아닌데……. 얼떨떨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유은하의 갈색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리고 주먹도 떨릴 정도였다.
…….
아니, 주먹은 떨리지 않았다. 눈동자만 떨렸다. 가녀리고 연약한 그녀는 폭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유은하는 그저 순진한 눈망울로 주변을 둘러봤을 뿐이다.
창가에 날개 달린 천사가 공허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
친 새끼야…….
「카엘님?」
유은하는 미카엘을 불렀다가 깜짝 놀랐다. 그녀를 돌아보는 그 푸른 눈이, 마치 자유를 갈망하는 새처럼, 아니면 메인 남주 자리를 탐하는 서브 남주처럼, 또 아니면 소설에 테러를 가할 생각에 신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미카엘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깼구나?」
「미카엘 님. 여기는 어디죠? 저는 방금까지 악마성에 있었는데…….」
개연성도 없이 배경을 바꾸면 어떡하냐는 무언의 추궁이 있었다. 미카엘은 유은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피곤하지? 푹 쉬어. 은하 양은 아무것도 알 필요 없어.」
평소라면 이럴 때마다 얼굴이 빨갛게 익어서 허둥지둥할 그녀였으나,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유은하는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그녀는 조금 몸을 뒤로 물리며 경계하듯 물었다.
「미카엘 님. 대답해 주세요. 여기는 어디죠?」
그러다 발목에 감긴 족쇄를 발견했다.
「설마! 저를 가둔 것인가요?」
「은하 양을 보호하려면 어쩔 수 없었어. 가만히 누워 있어. 여기가 제일 안전하니까.」
지금까지 다정하기만 했던 친절한 섭남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유은하는 두려워하고 또 의아해했다. 미카엘이 상의도 없이 섭남의 키워드를 #다정남에서 #흑막남으로 바꾸려는 건 분명 잘못이다. 하지만 큰 잘못은 아니다. <악마의 비바체>라는 소설의 정체성은 아직 무사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미카엘이 위험하고 끈적한 눈빛으로 유은하를 훑어봤다. 보고 배울 모델이라고는 벨제뷔트밖에 없을 텐데도 얼추 그럴싸했다. 이 천사는 정말 메인 남주 자리를 노리고 있는 건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미카엘이 대사를 쳤다.
「계속 도망치겠다면 나의 본모습을 보여 주는 수밖에.」
「본모습이라니, 미카엘 님은 다정하신 분이셨잖아요.」
「오해야. 은하 양, 너를 원해. 은하 양에게 나에 대해 알려 줄게.」
미카엘이 유은하의 위로 올라타더니, 갑자기 부드러운 천국의 끈으로 그녀의 가는 손목을 묶었다.
오!
「은하 양, 반항하지 말아 줘.」
미카엘은 거칠게 외투를 벗어 던지고, 유은하와 조심스레 입술을 맞췄다. 다정한 척하는 키스였기에 오히려 더 괴롭고 숨이 막혔다. 피폐가 끝이 없었다. 유은하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미카엘 님이 어떻게 저에게 이럴 수가.」
미카엘이 미소를 지었다. 별달리 불순한 의도가 느껴지지 않는 성스러운 얼굴이었다. 유은하는 그의 금빛 속눈썹에 홀린 듯이 시선을 뺏겼다. 그래서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미카엘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유은하의 치마를 걷고, 하얗고 부드러운 허벅지를 커다란 손으로 쓸어가며 끔찍한 짓을 하고 있었다. 이 천사는 타락했어도 얼굴만큼은 성스러워 보였다. 그가 설마 벨제뷔트와 비슷한 짓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끔찍한 짓을 할 줄은, 유은하는 몰랐다. 그렇게까지 예상하진 못 했다.
설마 미카엘이, 유은하의 허리춤에 흉측한 페니스 벨트를 채울 줄은…….
「…….」
신비로운 물질로 만들어진 페니스 벨트다. 유은하의 가련한 몸에 어울리지 않게 불쑥 뭔가가 솟아올랐다.
미카엘은 인격이 바뀐 것처럼 음험하게 웃었다.
「은하 양은 내가 원하는 대로 가만히만 있으면 되는 거야.」
그러면서 자기 옷을 훌렁훌렁 벗기 시작했다. 유은하는 잠깐 무엇이 지면에 기술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가, 경악하며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이, 게, 무슨. 안 돼.」
미카엘이 싸늘하게 유은하를 내려다보며,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외로 기울이고 소곤거렸다.
“후타나리로 할 걸 그랬나?”
그거가 이거나! 미쳤냐!?
「은하 양이 싫어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
그는 실실 웃으면서 가증스러운 대사를 쳤다. 소설을 망친다는 게 이런 뜻이었다. 피폐물의 신념을, 장르 규칙을, 독자들의 성벽을 정면으로 부수려 하다니. 그런 건 만에 하나 작가가 용납하더라도 내가 용납할 수 없다. 똑같은 등장인물 주제에, 한배를 탄 주제에 어떻게 이런 짓까지 할 수가! 이제 확실히 알겠다. 미카엘의 목적은 다 같이 자멸하는 것이다.
천사의 사악한 미소 앞에서 유은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독자들이 이 모습을 읽고 있다. 여주인공이 페니스 벨트를 찬 모습을.
미카엘이 소곤거렸다.
“직접 만들었어.”
“이 씨발 놈이…….”
“쉿, 목소리 낮춰. 욕하면 안 되지.”
미카엘이 검지를 입술에 대고 윙크를 했다. 유은하는 화병으로 죽을 것만 같았다……. 아니, 화병은 피폐물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여간에 유은하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저 자식이 직접 준비해 온 페니스 벨트는 온통 하얀색이고 매끈하고 은은하게 빛까지 났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웹툰에서 모자이크 당한 자지랑 똑같이 생겼다. 그래서 여주인공의 몸에 직접 뭐가 돋아난 것처럼 보였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물건은 피폐물 소설에 존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직접 만든 것인가……? ‘본편’ 도중에 박히기 위해?
미카엘은 약 올리듯이 유은하의 연갈색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우리 둘 다 하얀 옷이라서 꼭 신혼 같지 않니? 조금 이르지만 오늘부터 허니문이라고 하자.」
「저는 결혼한 적 없어요.」
「하지만 섹스한 적은 있지. 아쉽게도……. 대신 은하 양이 내 처음을 가져가 줄래?」
유은하는 허리춤에 무려 페니스 벨트 같은 것을 차고도 어떻게든 소설을 정상 궤도로 돌려놓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미카엘이 훌렁훌렁 옷을 벗기 시작했다. 무척 즐거워 보였다. 유은하는 지난 편의 악몽이 떠올라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은 감을 수 있지만 귀는 닫을 수 없다. 미카엘이 씨부리는 대사를 모두 들어야 한다.
「은하 양은 이걸로 나를 범해야 할 거야.」
귓가에 끈적거리듯 남는 웃음소리가 증오스러웠다. 독자들의 비명 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미카엘이 항문의 순결을 잃게 된다면 이번에야말로 멸망뿐이었다. 소설이 길을 잃는다. 끝나 버린다……. 그렇게 놔둘 수 없다.
피폐물 여주인공의 이름을 걸고 서브 남주인공의 항문을 지켜야 한다. 여남박은 안 된다. 여남박만큼은 안 된다. 정말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