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그러나 미카엘의 눈이 완전히 돌아 있었다. 빙하처럼 새파란 눈 속에서 희미한 광기가 흘러나왔다.
유은하가 소곤거렸다.
“너 순결 잃기 싫은 거 아니었어?”
“복잡한 문제야. 이게 다 네가 무심해서 그래. 내 섬세한 마음을 몰라줬잖아.”
“제발 헛소리 좀…….”
미카엘이 훌렁훌렁 옷을 벗기 시작했다. 답답할 정도로 완벽하게 차려입었던 천계의 하얀 군복이 한 겹 한 겹 침대로 떨어졌는데, 얄밉게도 군번줄은 남았다. 유은하는 눈앞에 천사의 새하얀 살결이 드러나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녀는 대사를 쳤다.
「미카엘 님. 이러지 마세요. 저는 미카엘 님과 이런 사이가 아니었잖아요.」
「은하 양……. 날 가진 적도 없다는 소리는 하지 말아. 슬퍼. 진심으로.」
미카엘은 동물이 애교를 부리듯 유은하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볐다. 부드러운 바닐라 냄새가 몰칵 풍기며 눈앞에 천사의 하얗고 깊은 쇄골이 가까워졌다. 벗지 마. 리버스 하지 마……!
그러나 손목을 묶고 있는 하얀 비단은 야설의 강력한 물리 법칙에 의해 강철 수갑처럼 풀리지 않았다. 도대체가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미카엘을 쥐어패기 위해 몸부림치는 유은하의 가련한 몸부림은 별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작가가 보고 싶었다. 신 없이 혼자 소설을 이끌어 가는 게 이렇게나 힘들었다.
천사의 커다란 손이 유은하의 뒤통수를 거칠게 붙잡았다.
「빨아.」
젖꼭지였다.
「…….」
「혀 내밀고.」
여기서부터 <악마의 비바체> 69편은 대사도 무너진다.
「남…… 남자 젖꼭지를 뭐 하러……!」
「하하……. 사디스트 역할은 처음 해보지만, 괴로워하는 은하 양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게 생각보다 즐겁네. 은하 양, 울어 봐.」
대사만 떼어 놓고 보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미카엘이 소곤거렸다.
“그리고 정사로 따지자면 은하 양의 첫 경험은 내가 가져가는 거야.”
여남박 첫 경험을!?
「자,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똑바로 혀 내밀고, 나를 기분 좋게 해줘. 은하 양은 예전에 나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잖니. 설마 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여주에게 페니스 벨트 채우고 젖꼭지를 빨라고 강요하면서 미카엘은 정말 즐거워 보였다. 유은하는 소설을 지켜야 했다. 피폐물의 법칙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유은하는 미카엘을 어처구니없이 쳐다보다가, 처연하고 굴욕적으로, 그리고 불쌍하면서도 음란하게 혀를 내밀었다. 아무리 연약해 보이려 노력해 봤자 그녀가 핥는 것이 남자의 좆이 아니고 젖이라는 한계점이 있었지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피폐한 분위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주인공이니까.
분홍색 유두에서는 생크림 같은 맛이 났다. 천사의 몸이라서 여러 가지 비현실적인 보정이 많이 있었다. 색깔이 예뻐서 더욱 짜증 났다.
불쾌한 감정을 담아 조그마한 유두를 깨물었지만, 그녀는 장르적 한계에 부딪혀 그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없었다.
「아!」
개새끼가 신음 소리 내는 것만 도왔을 뿐이다.
「흐으……. 역시 기분 좋을 줄 알았어. 은하 양 혀가 뜨겁고…… 미끄럽고…… 으응…….」
일부러 신음 소리를 과장해서 낸다. 충격적이다. 섭남이 작정하면 소설을 이렇게까지 망칠 수 있었다.
미카엘의 능청스러운 윙크를 보고, 유은하가 작게 으르렁거렸다.
“너 끝나면 두고 보자…….”
“글쎄. 끝 이후가 있을까.”
미카엘이 큭큭 웃고, 대사를 이어 갔다.
「은하 양을 향한 마음 때문에 나는 변했어. 타락 천사가 되고 말았어.」
「!」
이 소설, 어디까지 갈 것인가?
「난 이제 신에게 버림받은 천사…….」
「그, 그만하세요.」
유은하는 얼른 미카엘의 말을 막으며 정신이 피폐한 듯 굴었다.
「미카엘 님이 저를 취하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강제로 하는 걸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실 거예요.」
이 대사에서 중요한 점은 ‘저를 취하고 싶으시다면’ 부분이다. 네가 날 따먹으라는 뜻이다. 여주인공에게 이상한 벨트 채우지 말고 삽입 방향을 바로잡으라는 메시지였고 미카엘도 분명 알아들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미카엘은 유은하의 필사적인 신호를 무시했다. 오히려 보란 듯이 그녀 앞에서 바지와 속옷을 벗었다.
「미카……엘, 님.」
유은하는 괴롭게 고개를 돌렸다. 최근에 안 사실인데, 남주인공이 침대에서 엉덩이를 보인다는 것은 곧 박히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미카엘은 웃으며 손가락을 빨더니, 사악하게 자신의 엉덩이를 더듬었다.
「하아……. 은하 양의 처음이 들어갈 자리인데, 흐읏, 미리 준비해 두지 않아서…… 미안해?」
미카엘은 숨소리를 과장해 내며 얄밉게 허리를 비틀었다. 전혀 미안해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그가 자신의 뒤를 쑤시는 음란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는 포지션을 바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왜 이런 짓을 하시는 거죠?」
「은하 양. 입이 쉬고 있어.」
미카엘은 유은하의 머리를 끌어안아 젖꼭지 애무를 강요했다. 그래서 유은하는 그의 유두를 끊을 기세로 씹었다. 그러나 장르적 한계에 막혀, 그녀의 입질은 조금 짜릿한 애무 정도로 표현되고 말았다.
유은하는 문득 의아함을 느꼈다. 이 ‘장르적 한계’가 살을 물어뜯는 건 막으면서 페니스 벨트는 제한하지 않는다. 뭘까…….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미카엘이 친 새로운 대사 때문에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은하 양은 남자가 스스로 순결을 바치는 게 좋은 거니?」
「X…….」
가련한 여주인공이 욕을 할 뻔했다.
「무슨 뜻이죠?」
「내가 혼자서 넓히고 있잖아. 은하 양은 남자를 너무 험하게 다루는 것 같아. 은하 양도 처음이지만 나도 여기를 바치는 건 처음인데……. 그렇게 노려보지 말아 줄래?」
씨발……. 이미 충분히 리버스 아닌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진작에 넘었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덜 리버스 같을지 모르겠다.
「그래, 은하 양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
나가 죽으라는 말?
「빨리 끝내라는 거겠지.」
미카는 페니반 위에 자리를 잡고, 억지로 허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윽…… 아윽.」
「아, 안 돼. 미카엘 님. 그만하세요.」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유은하의 허리춤에 달린 것은 그저 장난감이다. 그녀에게 무언가 느껴질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신체적인 감각에 국한된 이야기. 그녀의 정신에는 타격이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타격이…….
「미카엘 님, 그만……. 이 개새끼야!」
저지르고 말았다.
유은하는 뒤늦게 자기 입을 틀어막으려 했으나, 그녀의 손목은 이 세상 그 어느 수갑보다 튼튼한 천국제 비단 천으로 단단히 옥죄여 있었다. 게다가, 입을 틀어막든 안 막든 이미 늦었다. 욕을 하고 말았다. 연재가 무한히 이어지는 동안 내내 구르고 굴러도 욕 한마디 안 하고 고결해야 할 그 유은하가!
그리고 섭남은 박히고 말았다……!
미카엘은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에 신음했다. 그런 얼굴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비장미가 있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그에게 이제 남주다운 부분이라고는 외모밖에 안 남았고, 그나마도 <악마의 비바체>는 소설이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었다.
미카엘은 모조 성기를 뿌리까지 삼킨 채 헐떡거렸다.
「아프다…….」
「그러면 얼른 내려가든가, 이 씨……, 아니, 미카엘 님.」
유은하는 희미한 피 냄새를 맡았다. 시선을 내리자, 가짜 성기 밑으로 처음의 증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날개 달린 근육질 성인 남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멋대로 유은하를 쓰러트리고, 느닷없이 페니스 벨트를 채우더니, 그 위에 냅다 올라타 버린 이 천사 때문에 돌아 버릴 것만 같았다.
심지어 이래 놓고 딱히 기분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은하 양 것이 너무 커서 찢어질 것 같아.」
자기가 무식하게 크게 만들어 놓고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유은하는 이제 소설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도 모르고 혼란에 빠졌다. 비록 금발 #다정남의 항문에 모조 성기가 깊숙이 들어가긴 했지만 어떻게든 피폐물로 되돌릴 방법은 없을까? 정말 없을까?
당연히 정말 없다.
「나를 이렇게 따먹었으니…… 은하 양한테 시집가는 수밖에 없어. 이제 나 책임져.」
미카엘은 힘겹게 허리를 들며 대사를 쳤다. 유은하의 허리 위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그 모습 자체가 죄악이었다. 한 피폐물 소설의 여주인공이 보아서는 안 되는 장면이었다. 유은하는 가련하게 눈물지었다.
「시집이라니요……! 미카엘 님. 이제 그만 정신을 차려 주세요. 남자의 순결에는 아무 가치도 없다는 걸 알 텐데요.」
유은하는 일부러 미카엘의 화를 돋울 만한 말을 했다. 피폐물의 패턴상, 대충 이러한 말을 하면 남주인공이 화를 내며 그녀를 거칠게 범하는 순서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로서도 미카엘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그녀에게 박기를 예상한 건 아니었다. 그냥 저 새끼 저러는 게 재수 없어서 속이라도 긁고 싶은 것이었다.
「미카엘 님이 저에게 아무리 이러셔도 아무 의미도 없어요.」
「아하, 은하 양……! 지금 나를 화나게 해서 좋을 게 없을 텐데?」
「그래 봤자 제가 미카엘 님을 돌아볼 일은 없을 거예요.」
「!」
미카엘이 갑자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분노로 폭발하기 직전인 듯한 그 얼굴은 어느 피폐물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만큼 위험해 보이고 또 아름다웠다. 유은하는 문득 자신이 그의 어떤 버튼을 눌렀단 걸 깨달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도대체 미카엘은 왜 이러고 있는가에 대한 힌트가 되어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은하가 무언가 생각을 잇기도 전에, 미카엘이 허리를 비스듬히 외설스럽게 움직였다.
「윽, 좀 버겁다……. 은하 양 걸 받아 내려면 좀 더 준비했어야 했나 봐.」
아닌 게 아니라 미카엘은 고통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의 시야가 이 파렴치한 대천사의 맨살로 꽉 차 있었다. 특히 근육으로 판판한 가슴에 달린 분홍색 유두가 유난히 그녀의 정신을 어지럽혔다. 미카엘은 유은하의 허벅지 위에 타고 있으니 당연히 그녀의 시선이 그의 가슴에 머무른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높이가 딱 맞았다.
미카엘은 유은하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또다시 가슴을 요망하게 쭉 내밀었다.
「빨아도 돼. 빨아 주겠니? 은하 양의 사랑이 조금 버겁고 아파서…….」
「저는 당신을 사랑한 적이, 으읍……!」
유은하는 피폐하고 또한 비참하게 미카엘의 젖꼭지를 강제로 빨았다. 유두는 단단하게 섰음에도 혀끝에서 녹을 것처럼 부드러웠다. 유은하는 이 와중에 어떤 위기감을 느꼈다. 내 젖꼭지가 더 부드럽고 분홍색이다, 이러한 경쟁심이 치솟았다.
하지만 남주인공과 이런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의 피폐함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어쨌든 피폐하긴 했다. 그녀의 마음이 황폐해지고 메말라감으로써 이 소설은 여남박의 위기에도 무너지지 않고 존속되고 있었다.
이곳은 아마추어 피폐물 뽕빨 야설.
여주인공의 동정마저 탈취해 가는 사악한 남주가 도사리는 세계.
이곳에서 유은하는 절대적 을이다.
그렇다고 믿는다.
유은하는 이를 악물고 목소리를 낮췄다.
“섭남 엔딩 내고 싶어? 그래서 이러는 거야?”
미카엘이 웃었다.
“아니? 난 그냥 소설을 망치고 싶은 건데?”
“그럴 리가. 네가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어.”
유은하는 눈을 질끈 감고 생전 처음으로 미카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정말로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 이 섭남은 분명 10편 즈음까지는 협조적이고 순종적이었다. 그가 삐뚤어지기 시작한 시점은, 정확히…….
“섭남이랑 결혼 못 한다고 했을 때부터……?”
“…….”
미카엘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 갑자기 허리를 격렬하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으앙, 은하 양. 너무 흥분한 거 아니니, 하앗…… 아앙, 아!」
미카엘이 과장된 신음을 흘리면서 허리를 활처럼 휘었다. 딱히 기분이 좋지도 않으면서 일부러 저렇게 휜 게 분명했다. <악마의 비바체>를 파멸로 이끈 그 문제의 물건, 하얀 모조 성기가 그의 몸 안에 파묻혔다 뽑히기를 반복했다. 모조 성기에 투명하고 끈적한 정체불명의 액체와 천사의 피가 묻어 있었다.
게다가 문제는 거듭하여 나타났는데, 미카엘이 가짜 신음을 능숙하게 잘 냈다. 소리만 들으면 진짜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래서 세상은 여자가 지배하고 여자는 남자가 지배한다는 말이 있구나. 유은하는 속절없이 미카엘에게 끌렸다. 그가 정신 나간 반역 행위를 하고 있는데도 그의 목소리가 야릇하게 들렸다.
미카엘은 가짜인지 진짜인지 모를 신음 소리에 숨소리를 섞어 가면서, 소설을 돌이킬 수 없는 리버스의 길로 이끌었다.
「응…… 아프지만, 뭐랄까, 점점 기분이 좋아지는 게…….」
……가짜 신음이 아닌가?
시선을 내려보니 일단 미카엘의 성기는 발기해 있다. 그러나 자지라는 물건은 본래 여성의 질 안에서 2단, 3단 진화까지 하는 신체 기관이니 이 정도로는 그가 쾌감을 느끼는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아프지만 은하 양을 위해 움직여 볼게.」
미카엘이 가증스러운 말을 하며 허리를 비틀었다.
「미카엘 님…….」
유은하는 형용할 수 없는 어떤 감각이 지배되어 저도 모르게 미카엘의 이름을 불렀다. 아마 그녀는 지금 불쾌한 것 같았다. 피가 끓고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등허리가 짜릿한 걸 보면 그런 것 같았다.
「아프면 그만두세요.」
「고통이 남자를 완성시킨다면서.」
……그런 말을 하긴 했다.
역시 그중 제일의 고통은 첫 경험의 고통이다. 첫 경험이란 것은 원래 죽을 만큼 아파서 몸이 두 개로 쪼개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총상이나 교통사고와도 같은 고통을 수반한다. 물론 그에 반비례하여 남주는 녹을 것만 같은 쾌락을 경험하고……. 참고로 그때부터 벨에게 가해 트라우마가 생겼다.
아니, 그런데, 지금 유은하는 녹을 것만 같은 쾌락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데? 뭔가 불공평하다.
「은하 양, 집중해.」
어디에 집중하란 거야. 너의 음란한 얼굴에? 홍조와 땀으로 흐물흐물해진 금발 섭남의 야릇한 표정에?
미카엘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쩐지 초조해했다.
「윽, 생각만큼, 잘 안 되네. 빨리 은하 양을 기분 좋게 해줘야 하는데.」
「도구인데 뭘 어떻게 제 기분을 좋게 한다는 말씀이세요!?」
「이것저것 있잖아. 눈요기라든가.」
미카엘이 힘겹게 허리를 들 때마다 땀에 젖은 군번줄이 흔들렸다. 하얀 흉물에서 질퍽질퍽 피거품이 났다. 처음이라는 증거가 너무 선명했다.
그나저나 피가 나오는데도 미카가 안 놀라는 걸 보니 청년막의 존재는 정말로 남주들 사이에서 상식이었구나. 유은하는 반성했다. 나이를 69편이나 먹어서는 남자아이들끼리 은밀히 공유되는 성적인 상식을 몰랐다니.
미카엘이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지금 눈요기가 되고 있니?」
「이거 풀어요.」
유은하는 머리 위에서 묶인 손목을 흔들었다. 미카엘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싫어.」
일단 사디스트긴 하다.
그녀는 마음을 차갑게 닫은 피폐물 여주인공답게 그를 무표정하게 올려다봤다. 저 자식이 서서히 느끼고 있었다. 점점 가빠지는 숨이나 붉어지는 얼굴, 움찔움찔 떨리는 허벅지를 대놓고 눈요깃거리로 제공하고 있었다.
「은하 양, 그 표정 좋다. 타락 천사가 되고 나니까 은하 양에게 박히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알게 됐어.」
타락 천사 설정을 진심으로 밀고 있다.
미카엘이 소곤거렸다.
“이걸로 이제 <악마의 비바체>는 끝났어.”
“너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네가 날 안 봐주니까?”
미카엘이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허리를 부드럽게 돌렸다. 과연 서브 남주여도 엄연히 남주인공. 벌써부터 요분질 하는 요령을 터득한 듯했다. 물론 그가 아무리 환상적으로 허리를 돌려 봤자, 어차피 유은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니까 별 소용이 없지만 말이다.
「으흑……. 앗, 기분 좋아. 안에 꽉 차…….」
게다가 아직도 신음이 과장되어 있다. 그가 연기하는 미카엘 캐릭터는 정말로 끝났다…….
……어?
유은하는 초조하게 입술을 씹다가, 문득, 그의 행동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야, 너……. 소설을 망치는 게 목적이면, 왜 아직도 연기를 하고 있어……?”
“…….”
미카엘이 말없이 싱긋 웃었다. 유은하는 울컥 분노가 치밀어, 허리를 치켜올렸다. 불시에 쳐올려진 미카엘이 날개를 움찔 떨며 허리를 젖혔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반항이 이 정도밖에 없었다.
설마 싶지만, 진짜로……?
“너 설마, 내가 안 봐줘서 이런다는 게 진심이야?”
“으, 하앗…… 앗! 아, 잠깐, 우, 움직이지 마…….”
“진짜로 내가 너한테 관심 안 줘서 이런다고?”
돌연, 유은하의 손목을 묶고 있던 비단 천이 풀렸다. 유은하는 그대로 미카엘을 쓰러트렸다. 죽여 버리고 싶었다. 남주를 죽이는 게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비슷한 짓이라도 해야겠다.
「미카엘 님, 쑤셔 박히는 게 그렇게 좋다면 제가 주먹이라도 넣어 드릴게요.」
「뭐? 주먹은 싫어.」
미카엘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 때, 갑자기 배경이 일렁였다. 알고 보니 지금까지 유은하가 겪은 것은 리버스가 아니라 한 때의 백일몽, 꿈, 외전이었던 것이다. 미카엘이 나타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사건이 <악마의 비바체> 정사에서 빠진다…… 꿈에서 깨어난다…….
「핫.」
유은하는 알람시계를 끄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 보니 이곳은 현실 세계, 자신의 방 안이었다.
그녀는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
「미카엘 님과 있었던 일이 다…… 꿈이었나?」
「여보, 일어나셨어요?」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른 그녀의 남편이 나타났다.
<악마의 비바체>의 3번째 남주인공, 강태을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