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가방 안에서는 개 목걸이가 나왔다.
“……뭔데?”
“개 목걸이다.”
“그건 나도 보면 알아.”
그것도 빨간색 가죽 개 목걸이다.
SM 소설의 필수 장비라 할 수 있는 근본 중의 근본. 튼튼한 만듦새와 선명한 발색이 실용적이면서도 로망을 자극한다. 물론 딱 기분 좋을 정도로 목을 조이는 감각도 다른 개 목걸이와 비교할 수 없다. 아름답고 가녀린 미녀에게 더없이 걸맞게 품격있는 개 목걸이이며, 벨은 평소 이 물건에 손을 대는 것조차도 혐오스러워했다.
이 타이밍에, 이 물건이 나오는 이유는?
“좀 쉬자.”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 의자에 걸터앉아 담배를 꺼냈다. 벨이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내 발치로 기어와 단정히 무릎을 꿇었다.
“은하, 이걸 나에게.”
“말하지 마. 닥쳐.”
“내 목에.”
“닥치라고.”
개 중에도 급이 있다. 말하자면 벨은 아직 초보 개. 털이 번지르르하고 혈통이 고결한 고급 개이고, 나는 더럽고 천하고 변태 같고 그 어떤 고통도 쾌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최고의 마조히스트 잡종 암캐라 할 수 있다. 내가 더 서열이 낮다. 개 목걸이는 내 것이다.
하지만 개 목걸이를 들고 나를 올려다보는 벨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너무 비참해진다.
담배를 물었는데 불이 안 붙는다. 벨을 꼬나봤다. 벨도 세모꼴로 눈을 뜨고 팔짱을 꼈다.
“개 목걸이를 채워 주지 않는다면 불도 안 붙여 주겠다.”
“뭐?”
“내가 주인이다. 잊지 않았겠지.”
나는 벨을 마주 째려보다 주머니를 더듬었다. 당연한 말인데 요정 날개 원피스에 주머니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벨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이 방엔 나 외의 라이터가 없다.”
“이 새끼…….”
“그대가 언제까지 반항하는지 두고 보지.”
그의 눈이 악마처럼 빛났다. 남주인공의 체취가 바뀌었다.
“!”
짐승 같은 후각으로 그것부터 감지했다. 등허리를 타고 찌르르 올라오는 이 전율이 오랜만이었다. 주인을, 그것도 진정한 주인님을 앞에 두었을 때나 반응하는 나의 피폐한 하반신 레이더가 바짝 섰다. 젖었다.
그래서 나는 굳은 채, 그리고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떨며, 사슴처럼 큰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겁쟁이이면서도 겉으로는 용기를 내는 척하면서도 아방하고 현명하면서도 야무지고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하고 의존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완벽한 여주인공의 모습으로 말이다.
“망설이는 것 같으니, 그대의 결심에 좀 도움을 줘야겠군.”
주인님이 셔츠를 벗어 열어젖혔다. 갇혀 있던 커다란 가슴이 튀어나왔다. 순간 흔들리는 걸 본 듯했다.
뭐야? 가슴 왜 보여 줘? 나더러 어쩌라고?
그런데 이 악마는 젖소 같은 가슴을 가지고서도 지배자의 눈빛을 했다. 새빨간 시선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저 시선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가슴이 아니라! 시발 놈아.
피폐물 여주로서의 욕망이 휘몰아친다.
반항하고 싶다……. 그리고 제압당하고 싶다. 혼나고 싶다!
“싫어, 개 목줄은 내 거야.”
“그대가 원하는 대로 감금해 줬는데도 불만이 많군. 나는 지금 그대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도그 플레이를?”
“그래. 그대가 아무리 안하무인에 손이 먼저 나가는 폭군이라고 해도 내가 이렇게까지 나오면 쉽게 거절할 수 없겠지.”
“은근슬쩍 욕을 해?”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
나는 팔짱을 끼우고 벨제뷔트를 훑어봤다.
그래, 잊고 있었는데 우리는 평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렇다……. 내가 때리고 벨이 맞는 사이. 즉, 벨이 주인이고 나는 노예인 사이일 뿐이다. 그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야 한다. 설령 그게 엉덩이를 때리거나 개 목걸이를 채우는 일이여도 나에게 선택권은 없다.
인간의로서의 굴욕감, 수치심, 무력감 등이 마음속에서 어우러져 거의 예술에 가까운 고통을 만들어 냈다. 이 슬픔과 비참함이 나를 완성시킨다. 지금까지의 나는 그저 원석일 뿐이었고, 눈물로 다듬고 깎아 내야지만 피폐물 노예 여주로서 빛날 수 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진정한 ‘노예 훈련’이구나.
“야.”
“말해라.”
“한 대만 때려 줘.”
“…….”
보는 것만으로도 델 것 같던 그의 시선이 순식간에 미지근해졌다. 벨은 스윽 자리에서 일어나, 망설임도 뭣도 없이 내 뺨을 후려쳤다.
“!”
순간 눈앞이 번쩍였다. 전율이, 황홀한 전율이 온몸을 관통했다. 입을 틀어막고 온몸을 떨었다. 이번 스윙은 완벽하고 우아했다. 벨이 지금까지 때렸던 따귀 중 가장 아름다웠다! 찬탄하는 신음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흑…… 아앗…….”
벨제뷔트의 얼굴이 갈수록 떨떠름해지는 것 또한 흥분의 재료가 되었다.
“이제 확실히 알겠다. 그대는 바닥도 아니군. 그보다 더 아래, 그냥 이상 성욕의 심해에 가라앉아 있다.”
“그래, 난 더러운 잡종 암캐야.”
“그렇게까진 말하지 않았…….”
“씨발 놈아, 머리채 안 잡아!?”
“아, 아, 알았다.”
벨이 얼결에 내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렸다. 약간 조심스러워하는 느낌은 있었으나 이 정도면 훌륭하다. 허리가 떨렸다.
벨제뷔트는 조금 망설이더니, 다시 화난 듯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그대는 내 개다. 내가 시키는 것만 하고, 내가 정해 준 공간에서만 살고, 내가 허락한 것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감히 나에게 반항할 생각은 말아라.”
“어디 더 매도해 보시지.”
“은하, 그대가 자초한 일이다. 그대는 정말 더러운 잡종 암캐나 다름없군.”
“더 해.”
“내 밑에서 다리나 벌리는 게 어울려.”
“계속해.”
“그리고 또…….”
벨이 잠깐 고민했다.
“실망……? 스럽군.”
“그게 다야?”
“레퍼토리가 떨어졌다.”
“아오.”
명치를 무릎으로 퍽 찼다.
“아까는 내 욕 잘만 하던데 왜 멍석 깔아 주면 등신이 돼? 네가 그러고도 피폐물 남주야? 69편이나 연재됐으면 매도하는 대사는 저절로 나와야 할 거 아냐, 멍청한 새끼야. 69편 동안 대체 뭘 배운 거야? 나를 실망시키는 방법만 배웠어? 몸뚱이가 아깝다! 버러지. 숨 쉬지 마. 죽어.”
“그, 그만. 울고 싶다.”
벨이 소매로 눈가를 쓱쓱 닦았다. 물론 주인님 1번이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다. 벨은 돌연 고개를 쳐들고 나를 향해 삿대질했다.
“노예가 건방지군.”
“!”
재도전한다. 강해졌다!
“채워라. 명령이다.”
“…….”
그러고 보니 벨은 #개아가남이다.
비록 명령 내용은 마음에 안 들지만, 벨이 아까 따귀를 훌륭하게 때리고 머리채도 잡았다는 점을 기특히 여겨 이번 한 번만 봐주기로 했다. 손가락을 까딱이자 벨이 무릎걸음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내가 피폐해져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야.”
몸을 낮춰, 악마왕의 단단한 뒷목을 잡았다. 질 좋은 가죽 목걸이를 뒷목에서부터 감고, 적당히 조이며 버클을 채웠다. 잠금장치가 찰칵 맞물리는 소리가 경쾌했다.
벨은 묘한 표정으로 개 목걸이를 더듬었다. 처음으로 목걸이를 찬 소감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
“은하, 처음으로 목걸이를 채운 소감이 어떤가?”
내 소감을 물어……?
“소중한 걸 잃어버린 기분이야. 주인공으로서의 존엄성, 뭐 그런 거…….”
“앞으로도 계속 그럴 테니 빨리 익숙해져라.”
비참하네. 내가 개가 아니라니,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아니, 근데 왜 너는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여? 개 취급이 좋아? 아까 뺨 때릴 때보다 표정이 훨씬 폈다?”
“좋을 리가 있나? 봐줬더니 자꾸 기어오르는군. 네발로 기겠다.”
“싫어, 하지 마!”
벨제뷔트가 위협적으로 네발로 기었다. 좋을 리가 없다면서 꼬리가 좌우로 휙휙 흔들렸다. 아아, 사악하고 잔인한 불의 군주가 나를 너무 강렬하게 원한 나머지 날 납치해 성에 억지로 가두고 자신을 개 취급할 것을 강요하다니. 불쌍한 나는 저항할 힘이 없다. 너무 싫지만 이 섹시한 남자를 어쩔 수 없이 벗겨서 네발로 기게 하며 짖으라 명령하는 수밖에…….
“이상해!”
이상하다.
벨이 동감했다.
“이상하다고 말해 주어 고맙군. 실은 나는 그 말을 그대가 처음 나에게 촉수를 박았을 때부터 하고 싶었다.”
“그럼 왜 그때 말 안 했어?”
“이상한 걸로 따지자면 채찍 맞으면서 흥분하는 그대의 존재 자체가 제일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 도그 플레이를 강요하는 악마왕도 이상하다. 지금 누구한테 무슨 훈련을 하고 있는 거지?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이고 꼬인 개돼지의 늪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벨이 멋대로 네발로 기어서 앞서 나갔다. 방 안 산책을 강요하는 엉덩이에 이끌려 나는 개 목줄 손잡이를 잡고 일어났다. 애완견 키우는 기분이 끔찍했다.
벨은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 꼬리는 대체 왜 붕붕 돌고 있는 거지?
근원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애초에, 너는 나를 왜 좋아해?”
“그것 또한, 드디어 물어봐 주는군!”
벨이 반짝이는 눈을 하고 휙 뒤돌았다.
나는 정말 드물게도 그의 박력에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는 아예 양반다리를 하고 털썩 앉아서 헛기침을 했다. 기뻐 보였다.
“드디어 우리 관계에 진전이 생기는군. 나는 지금껏 그대가 ‘자기는 내 어디가 좋아?’라고 물어봐 줄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물은 적 없다.
“지금껏 여러 번 내 마음을 그대에게 전해 보려 했지만 기회가 없었지. 어쩐 일인지 <악마의 비바체>는 로맨스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소설인데도 내가 그대를 왜 좋아하는지 설명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대놓고 흥분한 티를 내며 벨이 빠르게 뱉어 냈다. 불의 군주가 오타쿠처럼 보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길고 안 궁금한 강의가 한참 동안 이어질 것 같다. 칠판이 있었으면 벌써 꺼냈을 기세다.
“혹시 그대가 나를 그대의 몸만 보고 만나는 파렴치한으로 생각할까 봐 걱정했었다.”
“아니야?”
“걱정할 만했군! 절대 아니다. 물론 그대가 육체적으로도 아름다운 건 사실이다. 사실이지만, 애초에 사랑에 빠지는 데 그런 저차원적인 이유를 댄다는 것부터 거부감이 느껴지는군. 난 정신적인 면을 얘기하고 싶다.”
“잠깐, 잠깐.”
이 길고 장황한 고백은 소설 ‘바깥’에서 하기에 적합지 않다.
“그런 말은 ‘본편’에서 제대로 해.”
벨이 장난감 뺏긴 강아지 같은 표정을…… 아, 아니, 이런 표현은 하고 싶지 않다. 벨제뷔트는 삭막한 군주 생활 중 유일한 줄거움인 나와의 즐거운 티타임 시간을 뺏긴 것처럼 허망해했다.
“그대가 남주인공들에게 상과 벌을 1:9 비율로 주며 절묘하게 길들였다고 지금 말할 수 없는 건가?”
“뭐? 그게 무슨…… 기법이 있어?”
“지금까지 모르고 한 건가? 타고났군.”
나에 대한 사랑 고백의 주된 내용이 상과 벌의 1:9 비율에 대한 거였다니, 이딴 말은 ‘본편’에서 할 수 없다. 현기증이 난다.
“됐어. 빨리 하고 끝내자.”
괴로운 마음으로 목줄을 당겼다.
“잘 생각했다.”
이 새끼는 왜 의기양양해하는 거야?
줄을 당기는 대로 잘생긴 얼굴이 딸려 왔다가, 이내 순순히 고개를 푹 숙였다. 악마성 꼭대기층의 실내는 넓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황폐한 여주인공이 갇힐 만한 곳이었다. 언젠가 이 방 안에서 알몸 산책 플레이를 강요당할 날을 손꼽았는데, 결국 알몸 산책 플레이 강요를 강요당했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내가 너무 불쌍하다.
게다가 이걸로 끝이 아니다. 나는 벨이 나를 완벽히 노예로 길들이기 위해 본인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완벽한 개가 되는 것을 상상했는데, 현실은 그 이상이었다.
벨은 무려, 수줍어했다.
“사, 상상했던 것보다 더…… 창피하군.”
몇 걸음 걸었다고 붕붕 흔들리던 꼬리가 축 처졌다. 나는 목줄 끝에 걸리는 그의 무게감만으로도 기절할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그의 멱살을 잡고 바닥은 내 자리라고 외치고 싶었다. 좌절감, 슬픔, 안타까움이 나를 더 완벽한 주인공으로 빚어 줄 것이다. 이 희망만이 나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원래 피폐물 여주인공이 이런 심정이어야 하는구나.
“은하, 걸음이 느리다.”
“닥쳐.”
“흥, 당장이라도 이 목걸이를 뺏어다 그대 목에 채우고 싶겠지.”
“!”
“그대의 그…… 추잡하고 더럽고 끔찍하고 처참하고 상식적으로 이해 가지 않는 그 취향을 나에게 강요하고 싶은 거 안다. 나는 맞춰 줄 생각이 없지. 오히려 반대로 해야 할 거야. 나를 부끄러운 꼴로 만들어야 할 거다.”
왜…… 매도 잘하지? 하라고 할 땐 못 하고?
결국 짜증 나서 명치를 걷어찼다.
“컥…….”
“개가 왜 말을 해?”
“!”
검은색 개가 재빠르게 무릎부터 꿇었다. 무릎 꿇는 자세에 각이 잡히고 반듯했다. 내가 꿇어도 저거보다 잘 꿇을 자신이 없다.
“짖어.”
“머…… 멍.”
벨이 수줍게 눈을 내리깔며 짖었다. 기념비적인 첫 ‘멍’이다. 벨은 새삼 가슴이 콩닥거리는지 꼬리를 가만히 두지 못하고 허공에 빙빙 휘저었다. 나는 새삼 선언했다.
“그래, 넌 개야. 그것도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를 더러운 잡종 개지.”
내가 당하고 싶은 것을 벨에게 해주고 있다. 마음이 뜯겨 나가는 것 같다!
“알았다.”
“하지만 사실 너는 원래 요정 개 왕국 같은 데서 자란 고귀한 신분의 순혈 개인데 저주받은 개라는 예언 때문에 오해를 받아 주변 개들한테 배신당해 가슴에 어릴 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만 품고 억울하고 피폐하게 망명 생활을 하며 길바닥에서 구르다가 우연히 북쪽 왕국 군주인 내 눈에 띈 거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이 모든 설정들은 내 것이 되어야 했다.
화려한 이력을 가진 개가 될 남자는 이런 말을 듣고도 당황해했다.
“……그렇게 세심한 설정을 가진 매도가 그대의 취향인가?”
“참고로 그 주변 개들은 나중에 후회할 예정이야.”
“제기랄, 벌써 헷갈리는군. 그렇다면 내 목적은 뭐지? 원래 자리로의 복귀인가, 아니면 그저 모든 걸 잊고 흐릿하게 여생을 보내며 사는 것인가? 아니면 흐릿하게 여생을 보내는 척하면서 원래 자리로의 복귀 요청을 끝없이 받는 것인가?”
“당연히 그거지. 요정 개 왕국에서 아무리 돌아오라고 처절하게 요청해도 절대 돌아가지 않는 거야.”
“하지만 북쪽 왕국 군주의 애완견이 되는 삶도 바라지 않았을 것 같군. 나는 이후 도망칠 예정인가?”
“이해가 빠르네. 맞아. 기왕이면 임신한 채로. 그러면 내가 눈이 돌아서 널 찾으러 가는 거지.”
“받아 주겠다.”
“그러면 안 돼.”
“왜지?”
“내가 후회한다는 게 이 설정의 핵심이라서!”
“하지만 난 그대가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았으면 해. 당당한 모습이 좋다.”
이렇게 소소한 토론을 하며 설정을 정한 후에 본격적으로 더러운 잡종 개의 교육이 시작되었다.
“나는 개에게 옷 따위 입히지 않아. 벗어.”
숨겨진 사연이 있는 잡종 개는 군말 없이 굴욕감에 떨며 처연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미 가슴은 풀어 헤쳐져 있다. 바지도 느슨하다. 그런데도 그가 본격적으로 벗기 시작하자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몰려왔다. 나는 이렇게 완벽하게 갖춰 입고 있는데 남자만 알몸이 되고. 반대여야만 한다.
나는 착잡하게 그의 알몸을 감상했다.
잘 발달된 가슴 근육과 도톰한 분홍빛 유두, 그 아래로 가늘게 빠진 허리, 그리고 존재감을 뚜렷이 나타내는 거대한 가슴…….
“너는…… 남자 중에서는 가슴이 큰 편인가?”
“!”
벨이 재빠르게 팔을 교차시켜 가슴을 가렸다. 아까 잡종 개의 설정을 토의하던 때와 다르게 벌써부터 얼굴에 야릇한 홍조가 가득했다. 사납게 눈썹을 잔뜩 찌푸렸지만 별로 위압감은 들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일일이 말이 너무 많다. 발끝으로 그의 고간을 툭 쳤다.
“마저 벗어.”
“윽.”
추측인데, 남자들은 고간으로 들어가는 여자의 발을 거부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미끄럽게 젖은 바지 위를 엄지발가락으로 문질렀다. 그 아래 단단히 발기한 살덩어리가 뜨겁게 끓고 있었다. 좋아? 나한테 이런 취급 당해서 좋아?
“성희롱하지 말아라.”
개 목걸이 차고 뭔 말이야?
“그대가 건드리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벗겠다.”
그는 정중하게 내 발을 물리고 바지와 속옷을 내렸다. 갇혀 있던 성기가 천에 눌린 반동으로 위로 퉁 튕겨 올라 그의 배를 쳤다. 분홍색 귀두에서 새어 나온 맑은 애액이 발목에 튀었다.
그러나 성기를 꺼냈음에도 내 시선은 자꾸 그의 가슴으로 올라갔다. 강인한 팔뚝 사이에서 꿈틀대는 대흉근이 계속 신경 쓰인다.
언제부터 몸이 저렇게 탐스러웠지. 만지고 싶다. 그의 몸을 여기저기 주무르고 그가 헐떡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내가 무슨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