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미친 거 아니야?
“……실없는 놈. 바보야?”
“큼, 그래. 나도 그대가 좋다.”
“뭔 소리야?”
벨은 여전히 내 허벅지를 베고 누운 채로 눈만 굴려 나를 올려다봤다. 그림처럼 잘생긴 남자의 미소가 진해졌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왠지 갑자기 굉장히 재수가 없었다. 이 새끼가 지금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벨이 멋대로 일어나 앉았다.
“그대를 위해 준비했다.”
벨은 손가락을 튕겨, 아까 그가 이 방에 들어왔을 때 가지고 왔던 가방을 마법적인 힘으로 멀리서 끌어 왔다. 네모난 가방에 장식이 화려한 것이 불길했다. 분명 음란한 도구가 들어 있을 것이다.
도구까지는 괜찮다. 나는 도구를 좋아한다. 그걸 이 준비된 암캐인 내가 아니라 벨에게 쓰게 될 것 같아서 문제지.
벨이 심각한 표정을 하고 나에게 상자를 내밀었다.
“열어 보아라.”
상자를 열어 봤더니, 비단 천 위에 놓인 멋진 붉은색 페니반이 나타났다.
“…….”
이럴 줄 알았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우리 소설에서 삽입 장면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날 위한 선물이 아니라 너를 위한 선물이잖아.”
“그대, 싫은가?”
“당연하지?”
“그대가 싫어하면 나는 강요해야 한다. 사디스트 주인님이니까.”
“…….”
“다쳐도 내가 다치니 마음은 훨씬 편하군. 그대는 편하게 누워서 피폐해하고 있도록 해라. 내가 다 할 테니.”
피폐해하고 있으란 게 뭔 소리야? 이 시발 놈, 불필요하게 헌신적이다. 벨은 태연하게 흉측한 페니스 벨트를 들고서는 뭐 조절 장치인지 뭔지 끈을 조정했다. 채워 주려는 속셈이다. 직접 내 골반에 장착하고 올라타서 마음대로 신음하며 건방진 암캐를 단단히 교육시킬 셈이었다.
그런데 페니반을 만지는 손길이 익숙해 보인다. 등골이 싸해졌다.
“너 그거 어디서 났어?”
“직접 만들었다.”
“!”
세상에 어떤 사디스트 악마가 자기 노예에게 채울 페니스 벨트를 직접 처만들어!?
하지만 미카도 직접 만들었었다. 이 세계엔 페니스 벨트가 없으니까 쓰려면 만드는 수밖에 없다. 나는 남주들이 자신의 몸에 들어갈 도구를 직접 만드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끔찍했다. 모양이 빠져서 눈물이 났다.
그래, 이만하면 노예 훈련은 충분히 한 것 같다. 이제 #피폐란 게 무엇인지 충분히 알았으니까.
“너한테 안 넣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하다는 듯이 손목 잡혀서 침대로 끌려 들어갔다.
“은하, 그대에게 거부권은 없다.”
벨은 내 위에 올라타서는 입술부터 비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로맨스 소설 남주인공. 키스만큼은 황홀하리만치 잘한다. 입술을 벌리자 곧장 혀가 들어오더니 애교를 부리듯이 내 혀에 치댔다. 코가 스치고 호흡이 얽혔다. 눈을 떠 보니, 벨은 눈을 꼬옥 감고 달달 떨며 키스하고 있었다. 뭐야, 주인님답게 굴어.
그는 입술을 떼고 목과 쇄골에 키스하며 점점 내려갔다. 콧날이 날카로워서 꾹꾹 눌린다. 벨은 빨간색 눈동자만 굴려서 나를 올려다봤다.
“질색하는 모습을 보니 신선하군. 그런 면이 있었나?”
“질색이 아니야. 피폐해하는 거야.”
“……난 이제 피폐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대도 모르는 것 같다. 작가도 모르는 것 같고.”
“시비를 걸어?”
“가만히 있어라.”
벨은 내 무릎을 잡고 들어 올리더니 갑자기 허벅지 안쪽을 깨물었다. 조금 세게 깨물렸다. 알싸한 고통에서 쾌감이 피어났다. 그와 몸을 섞은 것만 수십 번이다. 벨은 내가 아픈 걸 좋아한다는 건 아직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깨물리는 걸 좋아한다는 건 경험으로 터득했다. 나 좋으라고 일부러 깨문 것이다.
그래놓고 깨문 자리를 곧장 혀로 핥았다. 아플까 봐 걱정된다는 게 뻔했다. 상처를 핥는 게 과연 좀 개 같기도 하고.
벨은 눈썹에 힘을 주고 멋있는 척 말했다.
“어지간히도 빨아 주는 걸 좋아하는군.”
노력한다……. 가슴이 찌잉 울리는 사디스틱한 대사다. 개 목걸이만 아니었더라면 완벽했을 텐데.
나도 가련하면서도 비장한 대사를 쳤다.
“빨리 하고 끝내.”
완벽해……. 삽입 방향만 반대였더라면 진심으로 흥분했을 거다.
벨은 몸을 낮추더니, 내 다리 사이에 입을 맞췄다. 음부에 뜨거운 혀가 닿았다. 지금까지 벨이 한 짓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일이었다. 나는 비로소 만족하며 허리를 휘었다.
“앗…….”
모름지기 남주면 잘 빨아야 한다. 여주인공의 클리토리스를 입술로 물고 빨며 침대에서 살살 녹일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어디를 핥고 빨아야 하는지 알고 있으며, 여주인공과 몸을 섞으면 섞을수록 혀 놀림이 정교하게 발전한다. 그야말로 생체 딜도라는 역할에 걸맞게 진화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와 69편이나 같이 지낸 벨제뷔트가 내 다리 사이에 얼굴을 처박으면 나는 도리없이 황홀경을 맛본다. 음핵을 혀끝으로 몇 번이나 쓰다듬다가 질구를 쑤시기도 하고 가끔 나를 올려다보며 허벅지를 쥐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허벅지로 그의 머리를 조르며 헐떡였다. 그럴 때마다 그의 루비 같은 눈에서 충성심 같은 것이 떠올랐다.
게다가 또 하필 벨은 체온이 높았다. 혀까지 뜨겁다. 아무래도 내 아래를 핥을 때는 일부러 더 뜨겁게 하는 것 같다. 입 안에서 담뱃재를 태워 없앨 수 있는 악마니까 그 정도 농간은 별것도 아니겠지. 벨은 나에게 맞춰 섬세하게 혀를 놀리며 세로로 갈라진 살 주름 사이를 조심스레 훑었다. 아래에서 위로 핥아질 때마다 등허리가 오싹오싹 떨렸다.
그래, 이게 맞다. 상황이 옳게 돌아간다.
나는 허벅지로 그의 귀를 마구 문질러 가며 그의 뒤통수를 꾹 눌렀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콧날이 눌려 살 틈 사이로 파고들었다. 잘생긴 얼굴을 자위 도구로 쓰는 기분이 썩 괜찮았다. ‘본편’에서 이런 건 못 하니까. 아무래도 나는 성적인 일에 늘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역할이니만큼 머리를 누를 수가 없다.
오랜만의 제대로 된 애무 때문인지 저 끝까지 도달할 것도 같은데 약간 모자랐다. 나는 남주인공의 얼굴 위에 올라탔다.
“읍…… 으읏…….”
벨이 괴로운 듯 신음을 내며 발버둥 쳤다. 그러나 나의 쾌감은 한층 더 강해졌으니 멈출 수 없다. 그가 필사적으로 뻗는 혀끝에 음핵을 마구 비비면서 교성을 질렀다. 벨은 숨이 막힐수록 더욱 절박하게 봉사하는 것 같았다. 피폐물 여주인공의 축복받은 몸은 길고 강도 높은 쾌락 속에서 허덕이다가, 마침내 절정에 올랐다.
허벅지로 벨제뷔트의 얼굴을 꽉 조이며 허리를 떨었다. 안쪽이 수축하며 벨의 입술을 빨아들이려 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개 목걸이의 손잡이를 깨물며 전율했다.
“거긴 안 돼, 아앙……!”
참고로 내 입에서 나오는 ‘안 돼’는 ‘꿀꿀’과도 같은 뜻이다.
“흐으…….”
길게 한숨 쉬며 허리를 들어 올렸다. 벨이 곧장 숨을 들이켰다. 흠뻑 젖어 든 질구 때문에 그의 얼굴이 엉망이었다. 야설 속에서 얼굴이 음액으로 지저분해졌다는 것은 추해졌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숨은 매력을 끌어내 새로운 각도에서 비췄다는 뜻에 가깝다. 내 얼굴이 정액으로 더럽혀질 때마다 벨제뷔트가 미쳐 버렸듯이, 나도 벨제뷔트의 얼굴에 주저앉았다 일어나 보니 미쳐 버려……?
기침하는 벨의 뺨을 툭툭 쳤다.
“정신 차려.”
“은하, 만족했나?”
벨은 얼굴도 닦지 않고 그것부터 물었다.
“얼굴이나 닦아.”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의 얼굴을 대충 문질렀다. 나는 항상 손수건을 들고 다니는 가녀린 여자니까, 만국기 마술처럼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이 무한히 나온다. 전부 좋은 향기가 나고 꽃 자수가 새겨진 것들로, 이걸로 문지르면 뭐든 대충 닦였다. 위생적인 면은 일부러 대충 고증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에 남은 음란한 흔적이 금방 사라졌다. 조금 아쉬웠다.
“은하. 누워라. 다리를 벌려.”
“!”
벨이 돌연 내 어깨를 밀어 덮쳤다.
환영하는, 당연히 환영하는, 쌍수 들고 짖으면서 환영하는 바였다. 방금 아래를 사정없이 빨려 절정에 이르렀는데 틈을 주지 않고 나를 눕힌다니. 정석적이고 고전적이면서도 늘 잘 먹히는 클리셰였다. 아까 벨제뷔트가 마구 주물러 대서 붉은 자국이 남은 내 흰 허벅지 사이로 개 목걸이를 찬 그가 자리 잡았다. 이렇게 보니 개 목걸이도 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개아가남과 잘 어울린달까.
그러다 그가 손에 든 붉은빛의 몽둥이를 보고 현실을 깨달았다.
“야, 그거!”
나에게 페니스 벨트를 채우려는 개수작이다!
“싫은가? 이제 와서 늦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어쩐지 몽둥이가 좀 유난히 길다 싶었더니만, 내 안으로 그게 쑥 들어왔다. 젖은 음부를 열어젖히고 부드럽게 침입하는 뜨거운 물건에 허리가 비틀렸다. 지옥제 페니반이 어떻게 생긴 건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 그건 검은색 바탕에 붉고 현란한 무늬가 새겨진 형태 같았는데, 생김새를 관찰할 기회도 없이 살아 있는 것처럼 꾸물거리며 질 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그리고 자리를 잡으며 예민한 살 벽을 빨아들였다.
그래 놓고도 내 허리춤엔 남근이라도 자란 것처럼 흉측한 몽둥이가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뭐지?
어떻게 된 건지 의아해하는데, 벨이 수줍은 듯 말했다.
“그…… 양방향이다.”
“!”
생각지도 못했다.
“그대도 같이 즐길 수 있으면 좀 낫지 않을까 싶었어.”
남자를 페니반으로 범할 때, 단방향이 나을까, 양방향이 나을까?
둘 다 싫다.
나는 그냥 남자가 느끼는 게 싫다.
나만 느끼고 싶다. 너희는 고작해야 인상이나 좀 찌푸렸으면 좋겠다. 그래 놓고도 내 안에 넣는 것만이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유일한 쾌락이었으면 좋겠다. 부, 명예, 권력, 외모 모든 걸 갖춘 남자의 인간관계가 나뿐이었으면 좋겠다. 알파메일의 정신만이 딱 섹시할 정도로 황폐해서 오로지 나의 몸으로만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 근데 재수 없으니까 앙앙거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남자들에게 바라는 건 이 정도뿐이다.
단방향이든 양방향이든 박기 싫다. 그러나 벨은 내 골반 언저리에서 눈을 못 뗐다. 이미 결심을 마친 눈이다.
“역시 그대는 하얀색보다 검은색이 더 잘 어울려.”
“지금 색깔이 중요…….”
……설마, 미카랑은 하얀색 페니반을 썼던 걸 계속 신경 쓰고 있었나?
“윽.”
몸을 일으키려다 위화감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안에서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느낌. 수축하고 깨물고 계속해서 미끈거리는 액을 뿜으면서도, 내 안에서 절대 빠져나가지 않으려는 이 생물이 친숙하다. 내가 남주인공들 다음으로 좋아하는 자위 도구의 낌새가 느껴졌다.
“촉수야?”
“그래. 그걸로 만들었다.”
손재주 왜 좋아? 그런 설정이 있었나?
“한때는 촉수가 싫었지만……. 지금 내 손으로 그대의 몸 안에 촉수를 넣었군.”
“…….”
따지자면 정말 그렇다. 벨제뷔트가 자기 손으로 내 안에 촉수를 집어넣었다. 비록 그것이 양방향으로 돋아난 형태라 할지언정, 이전 같았으면 확실히 상상도 못 했을 행동이다.
좋은…… 건가? 발전한 건가?
벨은 페니반을 찬 내 모습을 흐뭇하게 훑어봤다.
“잘 어울린다.”
“닥쳐. 징그러워.”
“촉수가?”
“페니반이! 그리고 네 표정이!”
이렇게 징그러운 물건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이제 보니 천국제 페니반과는 디자인이 완전히 반대였다. 그건 매끈하고 아무 장식도 없었는데, 이거는 대놓고 화려하고 장식도 많았다. 길쭉한 검은색 봉을 붉은 장식이 거미줄처럼 울퉁불퉁하게 덮었다. 본인들이 만들었으니 본인들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을 거다. 공통점이라고는 둘 다 크다는 것뿐……. 미카의 취향은 놀랍지 않으나, 벨의 취향은 놀랍다.
손으로 만져 보았더니 손바닥에 감기는 느낌이 불쾌했다. 단단하고 오돌토돌한 촉감은 둘째 치고, 내가 무슨 자지라도 만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럽다. 그리고 아무래도 사이즈가 본인 것을 참고한 듯하다.
확인차 물었다.
“너 이런 징그러운 게 취향이었어?”
“징그러운가? 화려하다만.”
경악스럽게도 벨은 태연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페니스 벨트를 화려하게 꾸며서 어쩌자는 거야?”
“그대는 화려한 게 어울리는 미인이다. 내 노예를 내 취향으로 꾸미는 게 뭐가 문제가 되지? 설마 그대의 신분을 망각했다고는 하지 말아라.”
벨제뷔트는 불리할 때마다 자꾸 주종 관계를 들먹이면서 나를 협박했다. 이렇게 나오면 나로서는 반박을 못 한다. 나는 언제 어디서든 협박당하는 걸 좋아하는 인간 이하의 짐승, 그야말로 성욕의 노예, 개돼지 마조히스트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페니반은 징그러웠다. 벨은 내 표정을 살피고 음담패설로 마무리했다.
“남근이란 것의 근본적 한계가 있는 듯하다. 영 징그럽다면, 차라리 얼른 내 안에 넣어서 감추는 편이 낫지 않겠나?”
그게 말이냐?
벨이 내 위로 올라타서는 다짜고짜 메마른 구멍 안으로 삽입하려 했다. 당연히 들어가지 않는다. 항문은 성관계하라고 있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젖지 않는다. 굳이 저딴 구멍 안에 넣으려는 이 행위 자체가 바보 같고 회의감이 들게 하는 짓이다.
그는 다리를 벌린 채 허리를 낮추려 끙끙댔는데, 알몸의 남자가 내 위에서 이러니까 눈물이 나왔다. 어느덧 그가 옷을 입은 모습보다 벗은 모습이 익숙해지고 있다. 나는 대체 어디까지 타락한 걸까. 작가를 돌아오게 만들기 위해 작가를 배신하고 있다니. 게다가 대체 언제부터 섹스가 진기명기 도전이 된 건지 모르겠다.
“멍청아, 안 들어가.”
벨은 고집을 부렸다.
“조금만 기다려 보아라. 나는 악마왕이다. 튼튼하니까 이 정도는 험하게 다뤄도 괜찮을 거다.”
“뭐라는 거야. 안 들어간다니까? 누워.”
“안 된다. 그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말고…… 으악, 싫다.”
삽질하는 튼튼한 악마왕의 어깨를 밀쳤다. 무게 중심이 무너진 그의 허벅지를 당겨 몸을 돌리게 했다. 싫다면서 곧바로 내 손목에 꼬리가 감겼다. 부드러운 감촉에 심장이 쿵 떨어졌다. 일부러 그러는 건가? 꼬리를 무시하고 그의 둔부 한쪽을 잡고 벌렸다.
“힉.”
근육으로 꽉 찬 엉덩이라 은근히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남주인공의 연약하고 탱글탱글한 엉덩이는 쥐는 대로 모양이 변하며 그 사이에 숨어 있던 분홍색 구멍도 덩달아 가로로 늘어났다. 유연하구나. 습기 하나 없고.
“뭐, 뭐, 뭘 하는 거지!”
“조용히 해. 빨리 끝낼 거니까.”
“너무 빤히 보지 말아라.”
주인님 주제에 요구 사항이 많아.
꼬리 끄트머리가 파르르 떨리며 내 손목을 탁탁 쳤다. 그는 약점을 잡혀 엎드린 자세로 굳어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융단에 얼굴을 처박고 중얼거렸다. 뾰족한 귀 끝이 벌겠다.
“생각해 보니 내 거기가 예쁠 리가 없다.”
그딴 걸 걱정하고 있단 말이야……?
분홍색 주름이 조그맣게 오물거리는 모양이, 완벽하고 사악한 남주인공에게 달린 것이라기엔 너무 예쁘고 깨끗했다. 그렇다고 잔혹한 악마왕이 달아 마땅한 항문은 어떻게 생겼는지 묻는다면 그건 또 모르겠지만……. 아예 항문이 없어야 맞는 거 아닌가?
하지만 있다. 엄지로 주름을 문지르면 그에 맞춰 구멍이 요란하게 벌름거렸다.
“여기서 물이 나올 리는 없겠지?”
피는 나왔는데 말이다. 벨이 벌떡 고개를 들었다.
“그럴, 그럴 리가 없잖는가! 물이 나오면 더 흉측할 거다. 전에는 무슨 자신감으로 벌렸는지 모르겠어…….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창피하다.”
“소설 망친 것보다 네 흑역사 쌓은 게 중요해?”
“은하……. 나는 남주인공이다. 나에게 있어서 그게 그거야. 다 연결되어 있어…….”
응? 듣고 보니 그건 맞는 말이다.
“나에게 제일 중요한 건 그대에게 잘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발 그만 보아 줄 수 없겠나? 아름다운 것만 보고 사는 그대가 볼 만한 것이 아니야.”
벨은 숫제 울먹이고 있었다. 나한테는 흉측한 벨트를 달아 줬으면서 새삼 미추를 논하다니, 내 주인님은 이렇게나 제멋대로다. 뒤에서 물도 안 나오고.
물론 진짜로 항문에서 음액이 나왔으면 내가 화냈을 거다. 뭐 다른 윤활제 없으려나…… 아.
나는 내 안에 들어와 있던 흉측한 물건을 뽑아냈다. 내 몸에 들어와 있던 쪽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
어차피 촉수로 만들었다니까, 뒤집어서 쓴다고 해도 어긋나는 위치는 알아서 맞춰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