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아니, 아무래도 부족하겠지……?
나는 방에서 굴러다니는 향유 통을 집었다. 판타지 세계관에 갇힌 여주인공이 쓸 만한 병답게 아름답고 입구가 좁다. 내가 뚜껑을 여는 걸 보고 벨이 습관적으로 사과했다.
“미안하군. 젖지 못하는 몸이라, 번거로운 일까지 해야 해서…….”
병 입구를 항문에 꽂았다.
“으힉!?”
벨이 꼬리를 빳빳이 세우며 머리를 쳐들었다. 통통한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허리 들어. 안 들어가잖아.”
“들, 들어가, 그걸, 그걸 그냥 통째로……!”
아마도 벨은 향유를 천천히 항문에 흘려 손가락으로 적시는 일을 예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벨의 말대로 번거롭다. 직장 안에 직접 향유를 들이부어 보겠다.
병 입구를 꽉 문 항문 주름 틈으로 향유가 질질 새길래 병을 조금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생각 같아서야 그냥 바늘 없는 주사기로 찔러 넣을까 했는데, 우리 소설은 그런 현대적인 도구는 제공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병을 집어넣었다. 병 안 내용물이 줄어들고, 벨의 배 속으로 향유가 꼴딱꼴딱 넘어갔다.
벨은 엉덩이를 든 채 굳어 버렸다. 병을 뽑아내자 경쾌한 소리가 났다. 꽉 물고 있었던 모양이지. 벨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 그, 그걸, 그걸 어떻게, 어떻게 내 안에.”
벌름거리는 구멍의 좁은 틈으로 향유가 주룩주룩 흘러나왔다. 내가 원했던 그림이다. 나는 페니반을 반대로 잡고 깨끗한 쪽을 다시 한번 내 안에 밀어 넣었다. 빠듯하고 야릇한 느낌과 함께 이상하리만치 수월하게 들어갔다. 좀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억울하니까 벨이나 매도해야지.
“벌써 이렇게 흠뻑 젖었어? 와…… 징그럽네. 추하고.”
“아, 아아, 보면 안 된다.”
꼬리가 휘어져서 조그마한 구멍을 필사적으로 가렸다. 울려고 한다. 나한테 어떻게 보일지 그렇게 신경 쓰인다면 애초부터 나에게 맞으면 안 됐다. 때렸어야지.
“박아 줄 테니까 고맙다고 해.”
그의 좁은 골반을 잡았다. 내 허리 밑에서 양방향 페니반의 한쪽이 튀어나와 흉측하게 번뜩였다. 진정으로 징그럽고 추한 건 벨의 분홍색 항문이 아니라 이 울퉁불퉁한 도구다. 새삼, 세상의 그 어느 피폐물 여주인공도 양방향 페니스 벨트로 남주인공을 범하기를 강요당한 적은 없을 거란 확신이 든다.
저항하는 남주인공을 찍어 누르고, 향유를 벌름벌름 토해 내는 비좁은 구멍에 페니반을 들이밀었다.
“윽, 아앗…….”
항문을 짓누르자 살짝 눌리면서 꾸역꾸역 들어갔다. 남자의 몸이 이 도구를 거부하는 걸 어렴풋이 알겠다.
“큭…… 으윽…….”
고통에 익숙한 벨제뷔트로서도 드물게 많이 아픈 것 같은 소리가 나왔다. 무슨 고통을 겪는지 알 것 같다. 원래 이 소설이 그렇다. 이 피폐한 세상, 삽입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몸 안에 무언가 들어올 때마다 몸이 두 개로 쪼개지는 듯한, 총상 혹은 교통사고와도 같은 고통을 겪는 게 당연하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런데 그의 몸 안에 꾸역꾸역 도구를 넣고 있자니, 내 안에도 들어와 있던 이 양방향 도구의 크기가 커지는 게 느껴졌다.
“윽, 뭐야.”
심지어 뜨거워진다. 뭔가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거 촉수로 만든 거였지.
“이거 설마 박을수록 안에서 마찰한다거나.”
“아윽, 아, 은하, 시, 싫어, 그만, 빼줘…….”
벨은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페니반의 울퉁불퉁한 부분이 입구에 걸렸다가 주름을 학대하며 밀려 들어갔다. 벨이 기어이 울음을 터트렸다.
“아파……. 싫다.”
자기가 디자인한 거를 가지고 엄살이 심하다. 나는 벨의 ‘싫어’도 ‘꿀꿀’이란 뜻인지 잠시 고민해 봤는데, 진실이 어떻든 내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페니반을 뿌리까지 밀어 넣었다.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등 근육이 사납게 일그러지고, 침대 시트를 그러쥐는 손등에 핏줄이 솟았다. 새삼 조금 당혹스러웠다. 내 의지로 남주인공을 범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읏, 뭐야.”
내 안에 있던 도구도 같이 자라나 깊은 곳까지 돌기를 뻗어 왔다. 아니, 이거 움직이네. 역시 벨이 페니반에다 무슨 짓을 해놨다.
추측하기로는, 내 움직임에 맞춰 내 몸속에 들어온 촉수도 같이 움직이는 구조인 듯하다.
확인해 보기 위해, 그의 몸 안에서 도구를 서서히 빼냈다. 벨이 죽으려 했다.
“크흑…… 아, 제길, 은하!”
얘가 나한테 욕도 하네…….
그리고 내 몸속에 있던 촉수도 길이를 줄였다. 뭔지 짐작이 간다.
“깜찍한 짓을 해놨네……. 이래서 양방향이구나.”
내가 벨의 몸 안에 깊숙이 집어넣으면 내 안에도 촉수가 깊숙이 자라나고, 벨의 몸에서 도구를 빼면 내 안에 있던 촉수도 크기를 줄인다. 게다가 뜨겁기도 하고 미미하게 떨리는 게 진동 기능도 있는 것 같다. 확실히 벨이 야심 차게 상자에 담아 내밀 만하다. 공들여서 만들었구나.
“내가 나한테…… 박는…… 거랑 똑같네.”
중간에 벨제뷔트가 약간 희생을 해야 하지만 말이다.
나는 천천히 허리를 저으면서 내 몸 안에서 꾸물거리는 촉수의 감각을 느꼈다. 뿌리까지 집어넣을 때는 이 양방향 페니반이 딱 벨제뷔트의 성기 크기 정도로 부풀었다. 이 자식, 일부러 크기를 이렇게 했군. 나는 벨의 골반을 단단히 쥔 채 자세를 고쳐 잡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남자한테 박아 본 적이 없다. 허리를 움직이는 게 어색하고 낯설었다.
그래도 내 쾌감을 따라 움직이면 된다. 요령을 알 것 같다. 나는 한 손에는 목줄을 쥔 채, 주인님을 도구 삼아, 거의 자위 행위에 가까운 것을 시작했다.
내 밑에 깔린 벨은 대화를 한다거나 할 정신이 없어 보였다.
“윽, 크흑, 하악…….”
깊이 박아 넣을 때마다 그가 고통에 겨운 신음을 흘렸다. 이상하게도 이 전혀 악마왕답지 않은 모습이 기특해 보였다. 그는 침대에 머리를 박은 채 고개를 들지 않고, 주먹만을 꽉 쥐어 바닥에 붙여 놨다.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충성스러운 의지가 보였다. 내가 야구 방망이를 들었을 때마다 늘 보던 익숙한 태도였다.
역시 헌신적인 성격이지.
그러나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요란한 딜도의 감각은 별로 익숙하지 않았다. 딜도는 내 안을 찌를 때마다 조금씩 모양이 변하는 것 같았고, 아무래도 중간에 오돌토돌한 돌기의 크기도 변하는 듯했다.
그의 충격적인 디자인 취향이 징그럽긴 했는데, 확실히, 눈에 안 보이니까 나쁘지 않다. 질벽을 자극하는 느낌이 상당히 괜찮다.
땀에 젖은 검은색 머리카락, 고통에 찬 옆얼굴, 잘 뻗은 목이 전체적으로 예뻤다. 내 안에서 파도처럼 애정이 불쑥 자라났다. 그래서 세게 치댔다.
“아!”
이젠 눈을 뜨지도 못한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노려보면서 허리를 쳐올렸다. 스스로에게 박는 느낌이 무척 생경했다. 야설 주인공이라고 정말 별 경험을 다 해보는구나. 천사한테 박고 악마한테도 박고 나한테도 박고.
벨이 간신히 말했다.
“하윽, 아, 아아…… 너, 너무 거칠다.”
괜찮은 추임새다. 나는 벨이 도움을 구하는 목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내 안을 푹푹 찔렀다. 동시에 벨의 안도 푹푹 찔리고 있을 테지만, 그다지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건 페니반이 미약하게 진동하고 있단 사실이었다. 질벽을 누르고 강하게 압박하며 마찰하는 느낌이 좋았다. 숨이 떨렸다. 내 다리 사이에 껌처럼 찰싹 붙은 검은색 덩어리 중 일부가 음핵에 모여들더니 거기를 세게 빨았다.
“흐…….”
……잘 만들었네.
몸을 낮춰 벨의 옆구리를 쓰다듬었다. 벨이 겨우겨우 눈을 떠서 날 돌아봤다. 순간 이 보석 같은 빨간색 눈을 먹어서 삼키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죽을 때까지 때리고 패다가 따먹고만 싶었다.
“…….”
이게 무슨 생각이지? 제정신이 아니다. 나는 가혹한 정신적 학대를 못 이겨 기어이 정신마저 잃고 있는 건가.
“으흑, 은, 하. 부드럽게…… 응?”
나는 부드러운 거 별로 안 좋아한다.
잠깐, 이거 연습하면, 남주인공들을 제치고 내가 제일 잘 박을 수 있는 거 아닐까? 내 성감대를 가장 잘 아는 건 나니까 말이다. 물론 남주인공들의 솜씨도 쓸만하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다.
반쯤 눈이 풀린 채로 내 안을 헤집었다. 동시에 벨의 안쪽도 헤집었다. 양방향은 대단하구나. 체온이 흠뻑 올라 뇌까지 뜨거웠다. 쾌감에 정신이 흐려졌으나 더 큰 쾌락을 추구하는 내 짐승 같은 본능만은 날카로웠다. 나는 이 페니반이 언제 내 클리토리스를 빨아들이는지 눈치채고 말았다.
“네가 조이면 이게, 으응, 내 클리도 같이 빨아 줘? 꼼꼼하게 쌍방향이네…….”
“하, 윽, 만들 때는…… 그대에게 헌신할, 생각에.”
“너는 말이 너무 많아.”
땀에 젖은 엉덩이를 한 대 치고, 그의 전립선이 어디였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그렇지만 위치를 알아 봤자 익숙하지도 않은 도구로 거길 찌르는 건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대충 이 언저리…… 문지르면 될까?
“아아!”
악마왕의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 동시에 페니반의 안쪽 일부가 튀어나와 클리토리스를 누르고 비볐다. 맞힌 것 같다.
“하아…….”
나는 나직하게 한숨을 흘리며 벨의 약한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검은색 페니반을 물고 있는 남주인공의 항문이 부들부들 떨리며 세게 수축하면, 내 음핵과 질에 가해지는 자극도 한층 거세어진다. 무식하게 퍼부은 향유 냄새에 음란한 땀 냄새가 섞였다. 확실히 공들여 만든 물건이긴 했다. 남자를 편하게 정복하는 매뉴얼이라 해야 할까. 나는 도구에 홀려서, 벨의 살 오른 엉덩이와 근육이 도드라진 등, 그리고 뒷목을 덮은 붉은색 개 목걸이와 뒤통수를 노려봤다. 박는 대로 무력하게 흔들리는 몸뚱어리가 지독하게 선정적이었다.
방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끈적해졌고 온도도 올라갔다. 벨이 선물해준 요망한 도구는 내 클리토리스를 자근자근 깨물고 질 안을 푹푹 쑤시며 헤집었다. 그러니까 밖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얼마나 압박을 받느냐에 따라…… 아, 복잡해. 벨이 느낄수록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뿐이다!
“흐윽, 은, 은하. 이런, 이런 거, 크흑…….”
벨은 계속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뭐라 계속 중얼거리며 기어갔다. 내 쾌락을 내버려 두고 도망가려는 태도가 괘씸했다. 그의 허리를 잡고 끌어당겼다.
“이리 와.”
“아!”
평소의 그 악마왕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높고 달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대로 풀어 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화풀이에 가까운 짓을 하는데 벨은 잘만 참았다. 문득 벨이 움직이는 게 묘하게 아까보다 나른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접합부에서 향유가 요란하게 찌걱거렸다. 음란한 냄새가 머리를 어지럽혔다. 살짝 내려다보니 벨의 엉덩이 사이에서는 거의 거품이 일고 있었다.
남주인공의 벗은 뒷모습을 감상할 기회는 흔치 않다. 그것도 내 앞에 엎드린 채 끅끅거리는 모습을 볼 기회는 더더욱 흔치 않다. 기왕이면 영원히 몰랐으면 좋았을 걸 싶지만……. 나는 몸을 낮춰 그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벨, 좋아?”
“흑, 아흑…… 윽, 으, 은하, 나는…….”
벨이 고개를 돌려 옆모습을 보였다. 눈물과 침과 땀으로 엉망이 되어 평소보다 배는 더 색정적이었다. 순간 등줄기를 타고 전기가 흐르는 감각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를 악물다니, 남주인공들이나 하는 짓을 내가 했다. 그러나 반성할 여유가 없었다. 그가 눈물이고 침이고 질질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꼬리가 정신 사납게 자꾸 내 몸을 간지럽히길래 덥석 낚아챘다. 후배위로 박고 있으니 손잡이 삼을 만한 게 하나 필요하기도 했다. 벨은 이제 꼬리가 잡힌다고 놀라지도 않았고, 그냥 허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손마디가 하얘지도록 주먹을 세게 쥐기만 했다.
“내, 내가…… 흐윽, 희, 생해서, 그대가, 기분 좋아진다면…….”
벨이 헐떡임 사이로 어처구니없는 말을 띄엄띄엄 내뱉었다.
“나, 나는, 얼마든지…….”
“허어.”
충직한 붉은 눈에 기사도가 엿보였다. 전통적인 역할 분배였다. 나는 탑에 갇힌 공주나 다름없으니, 분명 이 사디스트 남주인공은 공주를 사로잡는 사악한 용이 되고 싶어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벨은 나를 구하는 기사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기사 역할이 남자들의 로망을 자극하는 모양이지. 희생하고 헌신하며 성적인 만족감을 느낄 정도로.
그렇지만 벨의 말은 기만이다. 그는 자기가 희생해서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벨. 말은 바로 하자. 희생은 내가 하고 있잖아.”
나는 몸을 낮춰 그의 뾰족한 귀에 속삭이며 가슴을 덥석 잡았다.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가슴은 손에 쥐자마자 약간 넘칠 정도로 탱글거렸는데, 당연한 듯이 유두가 뾰족하게 서 있었다.
“허억, 앗, 은하, 거기는.”
벨이 허겁지겁 내 손목을 쥐었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유두를 몇 번 꼬집고 비비자 내 손목을 잡던 손에서 흐물흐물 힘이 풀렸다.
그가 가슴으로 느끼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남주인공의 성감대가 이따위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지금까지 일부러 안 만졌을 뿐이다. 괘씸한 놈. 흑발 남주 주제에 나한테 별 반항도 없이 매를 맞고 재떨이로 쓰이고 의자로 쓰이고 샌드백으로 쓰일 때부터 알아봤다. 나는 그의 안을 사정없이 파고들며 그의 귀를 깨물었다.
“그래, 내가 많이 봐준다.”
짖을 수 있는 기회를 양보해 주마.
“짖어 봐.”
“흑, 아, 머, 머어엉…….”
벨제뷔트가 형편없이 짖으며 얼굴을 카펫에 묻었다. 그가 흘린 눈물과 침과 땀이 내 방 바닥을 마구 더럽혔다. 그의 목에 채워진 개 목걸이가 더없이 잘 어울렸다. 힘없는 울음소리와 몸의 떨림이 심상치 않아서 나는 벨의 어깨를 잡고 그를 돌려 눕혔다.
벨은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내가 몇 번 더 안쪽을 잘게 문지르자 허덕이며 얼굴을 보여 주었다. 굵은 손목으로 가린 눈 아래, 뺨과 입술이 액체로 엉망이었고, 그보다 한참 아래 복근이 정액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너 짖으면서 사정한 거야?”
“우, 우읏…… 으, 은하, 이제 그만…….”
“난 아직 안 갔거든.”
그가 공들여서 만들었다는 이 페니스 벨트는 내 움직임에 맞춰 부지런히 내 안을 자극했다. 내게 어떻게 박아야 절정에 도달하는지는 당연히 내가 가장 잘 안다. 이상하다. 원래는 나와 벨이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속도가 거의 비슷, 아니, 완벽하게 똑같은데, 지금은 벨만 사정하고 나는 아직 한참 남았다. 벨제뷔트는 뒤쪽을 쓰면 조루가 되는 모양이다.
이래서 작가가 리버스를 경계했구나. 작가는 남주인공이란 존재들은 다 애널만 뚫리면 형편없는 개새끼로 타락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거다. 심지어 여주인공보다 더 느낄 거라고.
아무튼 내가 아직 만족하지 않았으니 그를 풀어 줄 리가 없다. 남주의 숙명이 그렇다. 나는 벨의 무거운 다리 한쪽을 내 어깨에 걸쳤다. 벨이 감히 내 몸에 다리를 올린다는 충격에 동공을 떠는 것도 무시했다.
옆으로 보니까 악마왕의 완벽한 몸매가 이런저런 음란한 액체로 젖고 흥분에 못 이겨 여기저기 붉게 물든 게 잘 보였다. 그대로 허리를 움직였다.
“윽, 하읏, 응, 그대 역시, 자비심이라곤, 티끌도…….”
사실을 너무 세게 말해서 늘 약간 욕처럼 들리는 화법은 개 목걸이를 차고도 여전했다. 나는 닥치라는 의미에서 눈을 질끈 감고 그의 안을 거칠게 들쑤셨다. 동시에 내 안에 자리한 딜도도 마구 진동했다. 이거 지금까지 써본 도구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 생긴 것과 쓰는 방법은 흉측해도 이것이 주는 쾌락 자체는 훌륭했다.
내가 박는 대로 벨의 커다란 성기가 힘없이 따라 흔들렸다. 저 커다랗고 흉흉한 남근이 나를 얼마나 즐겁게 할 수 있는지 안다. 저건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나, 지금은 그의 천박함을 돋구는 장식품이자 눈요깃감으로 전락했다. 어처구니없었다. 그리고 벨은 울면서도 입을 닥치지 않았다.
“은하. 나, 나아…… 잘하고 있나?”
이게 주인님이 할 말이야? 어이없어.
그의 성기를 콱 잡았다.
“아흑!”
“좋냐? 언제부터 좋았어?”
분명 처음엔 아파했으면서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음란하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했다. 정확히 알아야 정확히 화를 낼 것 아닌가. 감히 나를 두고 박혀? 나보다 더 좋아해?
벨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그대가 기분 좋아 보일 때부터…….”
“!”
그러니까 그게 언제……?
“그대, 평소보다 훨씬 기분 좋아 보인다.”
벨이 헤실헤실 웃으며 내 손등을 엄지로 쓸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나는 자부심이 있는 작가 공인 암퇘지다. 묶이고 맞고 강제당할 때 가장 흥분한다. 이 새끼, 박히는 즐거움에 눈이 돌아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잃은 게 틀림없다. 그의 뒷구멍이 순결하기만 했더라도 저런 끔찍한 소리는 안 했을 텐데! 어쩐지 우리 소설 독자들이 뒷구멍이 순결한 남주인공만 찾더라니 이런 사연이 있었다.
나는 몰랐다. 주인님 훈련이든 노예 훈련이든 그런 걸 시작할 때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흘러갈 줄 전혀 몰랐다. 이제라도 바로잡을 수 있을까? 벨에게 아가리 좀 닥치고 제발 내가 시키는 것만 하라는 나의 피학적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요원한 일이었다.
나는 슬프고도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그럴 리가 없잖아. 좀 닥쳐……. 사디스트가 되어야 하는 네 본분을 잊지 마.”
“그건 처음부터 불가능, 흑, 아읏, 응, 아! 아, 안 돼, 방금 갔는데, 흐응, 연속으론 무리다. 안 돼, 못 버텨, 나 망가져어엇……!”
“닥치라고……!”
나는 아예 그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손 틈새로 그의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는데, 입을 막으니 왠지 더 흥분한 것 같았다. 사디스트 남주인공의 끈적하고 요란한 신음이 그의 헛소리보단 약간 더 듣기 좋다고 인정해 주겠다. 하지만 아주 약간이다. 그만큼 벨이 카리스마 없다는 뜻이다.
나는 몇 시간이고 섹스해도 지치지도 않고 만족하지도 않는 피폐물 여주인공이니까, 벨이 나에게 페니스 벨트 같은 것을 줬을 때부터 그의 운명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딴 짓을 하는 내 운명도. 덧붙여서 이후로 대충 뒤 내용은 생략될 이 훈련의 운명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