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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죽여도 되나요-27화 (27/40)

27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

나보다 불행한 놈들은 모두 죽여서 없애 버리겠다.

설령 그게 남주인공일지라도.

……마음만큼은 이렇지만, 남주를 죽일 수는 없다. 그러니 차선책으로 그를 행복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저절로 내가 가장 불행해지겠지. 또한 불행과 슬픔을 깨달아 가는 것이 나를 위한 ‘노예 훈련’이기도 하고.

미카를 위한 배경은 나의 집으로 정했다.

“다 왔어.”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갑자기 크고 따듯한 손이 내 어깨를 감싸 쥐더니 반대쪽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희고 긴 손가락이 유려하게 우리 집 도어 록 비밀번호를 톡톡 눌렀다. 미카가 표정 없이 애인처럼 굴었다. 술기운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였다.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1편에 쓰여 있었잖아. 들어가자. 춥다.”

그리고 미카는 자연스럽게 현관에서 신발을 벗……지 않고, 침착하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뚝뚝 흘렸다.

“드디어 날 죽이려는 거지?”

그러고 싶다.

“이, 씨발……. 예뻐해 준다고 했잖아. 뒈질래?”

“사형수 죽이기 전에 마지막 만찬을 먹이는 거…….”

“아니거든? 일어서.”

미카는 일어나려다 다리에 힘이 풀려 도로 주저앉았다.

“가지가지 한다…….”

“미안, 죽여 줘…….”

“마음 바꾸기 전에 울음 그쳐.”

나보다 더 슬퍼하지 말란 말이다.

우리 소설의 규칙은 간단하다. 남주인공들이 나에게 박는다. 똑바로 못 박으면 내가 때린다. 이상이다. 69편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남주인공들은 때로 나에게 반발하거나 항의하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이 규칙을 지킨다. 일탈했던 미카도 예외는 아니다.

미카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다시 눈물을 흘렸다. 한숨을 삼키며 몸을 낮추고 눈물을 닦아 줬다. 꺽꺽거리는 울음소리 사이로 들리는 웅얼거림을 해독해 보니 미카는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흑……. 벌, 줄 거야?”

“예뻐해 준다니까.”

“상이랑 벌은, 같은, 거잖아. 어차피 똑같은 거…….”

“…….”

제길…….

“안 같아, 미카. 진정해. 내가 지금까지 너희를 엎드려뻗쳐 시켜 놓고 팼던 게 상은 아니잖아.”

“……아마도, 어느 정도는?”

“뭐라고?”

그리고 차분하게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이제 와서 잘해 주지 마.”

피폐한 대사 좀 하지 마……!

폭력을 부르는 듯한 태도를 못 참고 그를 걷어찼다.

“끄흑…….”

내가 찬 게 아니다. 미카가 몸으로 내 발에 부딪힌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 차라리 걷어차.”

미카는 순종적으로 차였다. 그는 현관을 기어 다니며 울었다. 덩치도 큰 놈이 커다란 날개 달고 좁은 집에서 이러니까 자리도 좁고 버거웠다. 미카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중얼거렸다.

“은하 양이 결국 날 죽일 거야. 평생 은하 양이랑 관계를 회복해 보지도 못하고 난 그냥 죽을 거야. 역시 그냥 도망갈래. 벌 안 받아.”

미카가 현관 바깥으로 기어가길래 습관적으로 날개를 밟으려다가 멈칫했다. 더 이상 미카에게 고통을 주어선 안 된다. 그에게 잘해 줘서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폭력의 연쇄를 끊어야만 했다.

나는 그의 날개를 밟는 대신, 손으로만 잡아챘다.

“윽…….”

나는 #무심녀다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감히 네가 도망을 가?”

……#무심녀 아닌가? 아무튼 차갑게 말했으니 됐다. 그런데 미카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터졌다.

“가망 없는 나한테 치대지 말고 그냥 계속 벨 군이나 예뻐하라고……!”

“!”

순간 직감했다. 미카가 말하는 ‘예뻐한다’는 개념은 단순히 칭찬하거나 쓰다듬는 행동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야설 캐릭터…….

“벨 군이 나보다 잘 조여?”

미카는 페깅당하는 걸 질투하고 있었다.

“내가 자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잘 조이는지 어떻게 알아……!”

“은하 양 때문에 비참해.”

미카는 품 안에서 팩 소주를 꺼냈다. 내 눈앞에서 술을 마시려 하다니 간이 부었다. 손등을 쳐냈다. 우리는 여전히 현관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있다.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멱살을 잡고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너를 꼭 예뻐해서 행복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각오해라.”

“왜애애애……? 은하 양은 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비참하게 사랑 구걸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닥쳐, 오늘 배가 터질 때까지 사랑을 먹여 줄 테니까 그런 줄 알아.”

“그거 뭔 말…….”

“사랑해.”

거실 한중간에서 멱살 잡고 키스했다.

“!”

닥치게 하는 데에는 이것만 한 게 없다. 아까 키스했을 때보다 더 입술이 짰다. 울지 마. 웃어. 행복해져. 원하는 만큼 예뻐해 줄 테니까 너 대신 나를 비참하게 만들라고. 놀라서 크게 뜨인 눈, 빙하 같은 파란색, 그리고 파르르 떨리는 금색 속눈썹이 빛나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미카의 눈은 보석 같아서 하루 종일이라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마음을 전하면 되는 건가?

입술을 떼고, 집게손가락으로 뜨거운 눈물을 훔쳤다.

“울지 마.”

미소도 지어 보였다. 다소 기계적으로 만들어 낸 웃음이지만 결과물이 훌륭할 건 뻔하다. 나는 타고난 배우나 마찬가지니까.

물론 키스 두 번 정도로 미카의 황폐해진 마음이 회복되진 않았다. 미카는 계속 울었다.

“거……짓말 하지 마. 사, 사…… 사랑한다면, 날 왜 그렇게 귀찮아하는데!”

“별로 안 그러는데?”

그러나 미카는 정말 억울해 보였다.

“그럼 왜 날 방치했어?”

방치……. 설마 벨보다 잘하니까 덜 때린 걸 방치라고 표현하는 건 아니겠지?

일부러 더 때려 줬어야 했나? 남자애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랑하니까 방치한 거야.”

내가 만약 너한테 관심을 가졌더라면 발목도 꺾고 채찍질도 했을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미카는 이해하지 못하고 황망해했다. 미카가 이해했건 하지 못했건 할 일을 해야겠다. 그의 턱을 잡고 들어 올렸다.

“내가 널 사랑한다는 걸 실감할 때까지 안아 주면 되는 거지?”

야설이다. 모든 일이 대충 섹스하면 해결된다. 나는 다시 미카의 멱살을 잡으려다가 관뒀다. 대신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내 침실로 끌고 갔다.

미카가 순순히 따라오면서 토라진 듯 물었다.

“……진짜 예뻐해 줄 거야?”

“그렇다니까.”

“……나한테 넣을 거야?”

“…….”

왜 그게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기대하는 눈빛 때문에 차마 욕을 내뱉을 수 없었다. 주인님 2번과의 노예 훈련 첫 단계. 그는 조금 행복해지고, 나는 조금 불행해진다. 오늘 밤이 지나거든 그는 완전히 행복해지고 나는 눈물 나게 비참해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카한테 박아야 한다.

“어. 누워.”

“…….”

미카가 긴장한 얼굴로 침대 위에 살포시 누웠다.

천사를 눕혔다……. 절경이었다.

헐렁하게 풀린 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 아래 피부가 바짝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참고로 말해 두는데, 도망은 나만 갈 수 있어.”

오로지 나만 박힐 수 있듯이 나만이 도망칠 수 있다. 비록 내가 먼저 리버스를 시작했더라도 다른 인물들이 마음대로 나대서는 안 된다. 나는 주인공이고, 나머지 인물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문자 그대로.

미카가 마음대로 #도망남주가 되도록 놔두지 않겠다. 나는 내 밑에서 겁에 질린 남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은하 양이 도망갈 건 아니잖아.”

“그렇지.”

하얀색 셔츠를 잡아 뜯었다.

“꺄악!?”

놀이터에서 술 마시느라 반쯤 풀어 헤쳐져 있던 제복 단추들이 튕겨 나갔다. 갑자기 하얀색 속살을 보이게 된 미카는 비명을 지르면서 두 팔로 가슴을 가렸다. 어이가 없다.

“너 저번에는 잘만 벗었잖아.”

69편에서.

“‘잘만’은 아니었어. 힘들었다고.”

“내가 더 힘들었으니까 싸물어라.”

셔츠가 벌어지고 가슴이 드러나자 조금 어깨를 움찔거리기는 했지만, 그는 가슴을 가리는 대신 얼굴을 가렸다.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펼쳐진 날개 때문에 내 싸구려 침대도 명화에서나 나올 법한 왕족의 침대로 보였다. 그러나 제일 아름다운 건 날개가 아니라 그의 외모 그 자체다.

망토를 잡아당기고 등 뒤를 더듬었더니 뜨거운 피부가 느껴졌다. 한 꺼풀만 벗기면 등판부터 드러나는 의복 구조가 새삼 부러웠다.

무릎으로 미카의 다리 사이를 지그시 눌렀더니 다리가 살며시 벌어졌다.

“그런데 내가 선물한 페니스 벨트 또 쓸 거야?”

“…….”

그건 다시는 쓸 생각이 없다…….

“안 써. 난 가련한 피폐물 여주인공이야. 그런 게 어울리겠냐?”

“이미지를 신경 쓰고 있었어……?”

놀이터에서 술 마시던 천사에게 이런 말 들으니까 아니꼬웠다. 미카는 다리를 벌리면서도 입으로는 여전히 틱틱거렸다.

“말로만 예뻐해 준다고 하면서 사실은 나를 먹고 버릴 셈이지.”

남자들은 너무 귀찮다…….

“버리기는.”

대충 대답하면서 그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

“오래 쓸 건데.”

“내가 물건이야? 나를 은하 양 전용 오나홀로 쓸 거지!”

우리 소설은 야설이긴 하지만 일단 여성향이고 피폐물이란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저런 단어 및 저런 단어 조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안 쓸 거거든? 예뻐해 준다니까?”

“물건이 될래. 미움받는 것보단 훨씬 나아.”

왜 남주인공들은 내 말을 안 믿을까? 벨도 그렇고, 미카도 그렇고, 둘 다 모두 남주라기엔 나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부족하다. 하지만 이제 부족한 남주들을 탓하지 않을 거다. 다 내 부덕의 소치다. 반성하자.

희디흰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잡아당겨 벗겼다. 아직 발기하지 않은 분홍색 성기와, 그 아래로 쭉 뻗은 새하얗고 튼튼한 허벅지가 드러났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미카가 또 울먹였다. 이번에는 흐르는 눈물을 핥아 보았다. 단맛이 났다.

우는 남자를 달래는 일은 정말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사랑 표현을 계속하다 보면 울음을 그치지 않을까? 발목을 꺾어 감금한 다음 매일같이 피 말리게 협박하는 일 말이다.

그나마 남아 있던 미카의 상의도 거의 찢듯이 벗겨 냈다. 사랑받지 못해서 성격이 비틀려 버린 이 천사는 내가 옷 좀 벗겨 줬다고 벌써부터 기분이 나아지는 듯했다. 어이가 없었다.

“은, 은하 양.”

말은 왜 더듬어.

“왜.”

“……오늘 진짜 예뻐해 줄 거야?”

“그렇다니까.”

나 정말 인망이 바닥이구나.

미카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럼 나 뭐…… 요구해도 돼?”

“말해 봐.”

“때리지 말고 상냥하게 해줘. 그리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짜증 내지 말고 받아 줘.”

“…….”

그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아니, 아니다. 주인님 2번과의 노예 훈련에 필요한 일이다. 힘겹지만 나는 미카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거면 돼?”

“은하 양……!”

감동한다.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미끄러트렸다. 피부는 부드럽고 그 안에 꽉 들어차 있는 근육은 단단했다. 만지고 있는 다리가 오므라들더니 미카는 수줍어하며 무릎을 비볐다.

“진짜, 진짜 예뻐해 줄 거지? 믿어지지 않아……. 은하 양이랑 리버스를 해봤자 거의 얻어맞기만 할 줄 알았는데.”

손이 멈췄다.

“리버스당하는 걸…… 상상했어?”

“어……. 아무래도?”

우리 소설 남주들은 모두…… 정신에 심각한 하자가 있는 모양이다.

내가 말을 받아 주니까 미카가 들떴다.

“은하 양은 남자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여자에게 박히고 싶은 남자의 마음……?”

천사 같은 얼굴이 수치심에 붉어졌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은하 양에겐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피폐물인데 사랑이 왜 필요해?”

“……나한텐 필요해.”

그는 내 손을 잡고 손목에 입 맞췄다. 성물에 입 맞추듯 경건한 키스였다.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

나는 불쑥 충동적으로 제안했다.

“너한테 제일 좋은 걸 해줄게.”

“제일 좋은 거……?”

천사의 눈에 얼핏 기대감과 불안감이 맴돌았다. 회복이 빠르네. 아까까지 울면서 도망치겠다고 하던 남자의 눈빛이 아니다. 그는 언제든 내가 불러 주기만을 기다리며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이 혼자서 피폐물을 찍고 있었다.

정말로, 남자의 마음은 도무지 모르겠다. 나는 주인공으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곳은 피폐물 소설 속의 침실. 팔만 뻗으면, 채찍 정도는 그냥 나온다.

손에 착 감기는 마편을 허공에 휘둘렀다.

“원래는 내가 맞아야 하지만, 특별히 양보해 줄게.”

“사, 살…… 살려 줘, 은하 양. 잘못했어. 때리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나 속은 거야……?”

조금 혈색이 돌았던 그의 얼굴에서 도로 핏기가 가셨다. 옷은 벗겨지다 말아서는, 하얀 가슴과 성기를 모두 드러낸 채 오들오들 떨며 나의 자비만을 바라는 모습이 도무지 남주 같지가 않았다. 뭘 살려. 내가 죽여?

왜 겁먹지? 보통 사랑하면 채찍으로 때리잖아.

나는 마편의 만지작거리다 내 실수를 깨달았다.

“아. 채찍도 ‘때린다’의 범위에 포함되는구나.”

“당연하지!”

“그럼 어렵네……. 어떻게 때리지 않고 예뻐하지?”

채찍을 뒤로 던졌다. 미카가 버럭 소리쳤다.

“은하 양은 사람 때리는 것 말고는 좋아하는 방법을 몰라?”

미카가 또 울려고 한다. 소통의 장애 때문에 어리둥절하다. 폭력이 아니면 대체 어떻게 사랑을 증명하지?

문득 눈치챘는데, 나는 우리 소설의 서브 남주인공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남심이란 것은 어렵다. 그냥 원래 하던 대로 주먹으로 팬 후 ‘올바른’ 방향으로 따먹고 싶다.

“안 때릴 테니까 걱정 마.”

“헉, 허억……. 헉.”

입으로 숨을 쉰다.

침통하다. 주인공이 된 주제에, 등장인물들의 취향 하나 파악하지 못하다니.

물론 미카의 취향은 나일 것이다. 악마에게 핍박받으며 하루하루 메말라 가지만 본성은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갈색 머리 인간 여자.

그러나 그뿐이고, 구체적으로 또 미카가 뭘 좋아하는지는 모른다.

“미카. 그럼 넌 뭘 좋아해?”

미카가 멍청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봤다.

“네가 좋아하는 걸로 해줄게.”

“……그런 질문 안 하는 거?”

똑바로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그냥 내 마음대로 해야겠다. 얌전하게 허벅지 위에 늘어져 있는 하얀 성기를 잡았다. 발기하지 않은 성기는 의외로 감촉이 좋아서, 손바닥에 착 감기는 느낌이 무척 중독성 있었다. 뜨끈뜨끈한 살을 만지자마자 미카가 고개를 젖혔다.

“아!”

하얗고 단단한 허벅지가 움찔 떨렸다. 이번엔 미카도 다리를 오므리지 않고 힘없이 벌렸다. 허벅지 안쪽을 쓱 쓸며 물었다.

“말해 봐. 어디다 뭘 넣어 줄까?”

“본편에 내 분량을…….”

“…….”

게슴츠레한 시선이 오갔다.

“그래. 알았어.”

“정말!?”

나랑 몸을 섞는 게 처음도 아니면서 미카가 새신랑처럼 손목으로 얼굴을 가렸다.

“오, 오늘 왜 이렇게 잘해 줘? 역시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 같은……. 아!”

가슴을 꼬집었다. 손가락 끝에서 녹을 것처럼 부드러운 유두를 당겼더니 드디어 이 남자가 헛소리를 멈췄다. 생각보다 감촉이 좋았다. 채찍질을 못 한다면 대신 몸이라도 만져야지. 도대체가 채찍 없이 어떻게 섹스를 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벨 만큼은 아니지만 꽤 컸다. 살이 손바닥에 착 감겼다. 힘주어 주무르면 손가락 틈 사이로 살이 삐져나오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미카 본인도 이 정도 애무는 싫지 않은가보다. 볼을 붉히고 얌전히 가슴을 내민 채 눈을 꼭 감은 걸 보면.

그는 입관하는 시체처럼 두 손을 모으고 오들오들 떨었다.

“나, 나아…… 오늘 죽는 거 아니지? 죽도록 맞는 게 아니라 이런, 다, 다정한 애무라니……. 진작에 솔직해질걸.”

“네가 한마디 할 때마다 그냥 패고 싶으니까 닥치고 있어라.”

“으, 응.”

하얀 목에 입술을 대고 빨았다. 이번에도 단맛이 났다. 천사의 몸은 어디를 빨아도 단맛이 나는 걸까? 입만 닥치고 있으면 꽤 괜찮은 몸이었다. 비록 그는 가만히 누워 있고 내가 애무해 주는 절망적이고 귀찮은 상황일지라도, 생각보다 썩 나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비참해져야 하는데.

“은하 양. 하나만 더 요구해도 될까.”

미카가 조심스레 운을 뗐다.

“뭐.”

내 어깨에 살며시 손이 올라왔다.

“나를 너무 사랑해서 욕정을 참지 못해 안는 거라고 해줘. 그게 아니면 은하 양에게 안길 이유가 없어.”

“…….”

덕분에 비참해졌다. 고맙다.

대답을 망설이자, 미카가 상처받은 눈을 하고서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 너무 큰 걸 바랐지. 나 같은 건 눈에 차지도 않을 텐데.”

“금방 우울해하는 버릇 고쳐라.”

“너 때문에 생긴 버릇인데 어떻게 고쳐? 사랑하지 않을 거면 그냥 확실하게 물건 취급해 줘. 난 ‘2번’이니까. 어중간하게 희망 고문당하고 싶지 않아.”

“물건 취급당하면 흥분되잖아?”

“은하 양은 상식이 안 통해.”

미카가 씩씩거리며 나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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