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죽여도 되나요-28화 (28/40)

28화

“네가 다 잘못했어. 처음엔 소설 장르를 오해할 정도였으니까.”

“뭔 말이야.”

“1편 때부터 말이야……. 은하 양이 너무 주인님 같길래, 나는 당연히 <악마의 비바체>가 너한테 지배당하는 내용인 줄 알았어. 근데 반대였고……. 게다가 나는 섭남이었고.”

“뭐? 나는 딱 봐도 노예지.”

“은하 양. 그건 아니야…….”

유두를 깨물어 벌을 줬다. 품 안의 몸이 부드럽게 튕겼다. 미카는 내게 몸을 최대한 찰싹 붙이고는 애교 부리듯 말했다.

“나도 언젠가 은하 양의 노예나 애완동물이 될 줄 알고 나름대로 각오도 했었는데……. 소설 장르를 알고 나서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니까. 한때는 너의 아기 강아지가 되는 상상도 많이 했고.”

나는 몰랐던 남주인공의 비밀이 밝혀진다…….

“야, 네가 어딜 봐서 강아지……!”

“나는 지금도 #대형견남이잖아!”

미카가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빽 소리쳤다. 듣고 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미카엘은 #대형견남, 클리셰를 집대성해 깊은 연구 없이 5초 만에 만들어 낸 캐릭터다.

다만 말 뱉은 장본인은 엄청 창피해했다.

“됐어. 안 어울리는 거 나도 알아. 그냥 한번 말해 봤어. 연재 편수가 어릴 때 했던 철없는 생각이고.”

천사의 얼굴이 수치심에 벌게졌다. 우리 소설 남주들은 어째 하나같이 홍조를 띨 때 가장…… 봐줄 만한 얼굴이 된다.

“그때는 #대형견남이라는 게 사랑받는 골든 래트리버, 뭐 그런 뜻인 줄 알았거든. 사실 이해 가는 키워드가 하나도 없었고 소설의 모든 게 다 혼란스러웠어. 너는 맞을 때마다 행복해 보이던데 뭐가 피폐하다는 건지 이해도 안 갔고.”

“암캐는 나야.”

“아, 개 자리 별로 탐 안 나!”

미카가 빽 소리쳤다. 탐을 안 낸다니 다행이지만, 왜 안 내는지 이해가 안 간다. 게다가 따지자면 그도 개가 맞다. 왜 지금까지 이 생각을 못 했지? 나에게 라이벌이 있었잖아.

“개는 나고, 너는…… 다른 걸 하자.”

“어떤 거. ‘2번’?”

“너는 강아지라기보단…… 고양잇과지.”

“…….”

그의 얼굴이 서서히 경악으로 물들었다. 왜 놀라는지는 모르겠으나, 보고 있으니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그의 가슴을 쥐어짜듯 힘주어 비틀고 유두를 깨물었다. 다소 과격한 애무에도 오히려 그는 내 허리에 다리 한쪽을 감기까지 하며 더 밀착했다. 아니, 느끼지 마. 남주들이 느낄 때마다 반사적으로 화가 난다.

그런데 더 화나는 일이 생겼다. 미카가 집게손가락을 깨물며 이딴 말을 한 것이다.

“내가 귀여운 아기 고양이……?”

아니거든!?

“날 예뻐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광대뼈가 올라가 있다. 나는 하지도 않은 아기 고양이 취급으로 좋아 죽으려 하는 게 무척 거슬렸다. 이게 바로 누군가를 예뻐한다는 행위인가? 과연, 괴롭다. 이것 또한 나의 ‘노예 훈련’이 되기에 충분할 만큼 고통스럽다. 자, 더 행복해해. 그만큼 나는 비참해질 테니까. 올바른 위치로 돌아가자.

나는 처참한 심정으로 짓씹듯 말했다.

“……내 고양이.”

“!”

품 안의 몸이 펄쩍 뛰었다.

“왜, 왜, 왜? 왜? 왜? 이, 이, 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돼. 나, 나도 알아. 나는 애완 고양이 자리에 안 어울리는 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제발 고양이 취급해 달라고 빌고 있다. 말 한마디로 단번에 미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니 가성비가 좋다. 2번에게 이런 면이 있었다니…….

“차라리 고양이 키워드는 벨 군에게 더 어울려! 그, 흑표범처럼 우아하단 묘사가 종종 나오잖아. 나는 아니고. 나, 나, 나를 계속 고양이 취급할 건 아니겠지? 안 어울려. 아무리 봐도 나는 귀여운 아기 고양이가 아니잖아.”

그렇다. 아무리 봐도 귀여운 아기 고양이가 아니다. 진실을 잘 알고 있군.

생각해 보니 되려 벨은 고양이보다는 강아지가 더 잘 어울린다. 1번과 2번, 개와 고양이…… 둘이 바뀌었다. 나와 남주들의 역할이 뒤바뀐 것처럼.

큰 결심을 했다.

“강아지인지 고양이인지 애완동물 취급해 줄게. 이러면 되냐?”

그러나 미카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안 귀엽다니까!”

때리고 싶다. 남주를 때려도 되나?

“넌…… 귀여워.”

남자에게 귀엽다고 하려니 가시를 삼키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으앙.”

미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꼬리가 있었으면 프로펠러처럼 돌아갔을 것이다. 저런 모습을 보는 것 또한 괴로웠다. 목적을 이루었다. 미카는 행복하고, 나는 불행하고.

“난 고양이가 아니야.”

씨발……. 주먹을 꽉 쥐고 일어났다. 미카가 곧장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불안하게 날 쳐다봤지만 무시하고 옷장 문을 열었다. 내 진짜 옷장은 악마성에 있으니, 이 옷장은 옷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다. 작가가 소설에서 쓰려다 만 도구들을 내가 모두 주워다 보관해 놨다.

고양이 귀와 꼬리도 있다. 꼬리는 항문에 쑤셔 넣는 식으로 장착하는 가짜인데, 내가 쓸 뻔했다. 작가가 26편 즈음 이벤트성으로 나에게 진짜 귀와 꼬리를 달아 주면서 쓸 일이 없게 되었다. 가짜 꼬리를 다는 건 바보 같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내 눈에는 괜찮아 보였는데……. 아쉬운 마음으로 보관해 뒀던 거다.

물론 나에겐 가짜 꼬리보다 진짜 꼬리가 더 잘 어울렸다. 가련한 여주인공에게 돋아난 꼬리는 사랑스러웠다. 남주들도 꽤 좋아했고.

……가만, 그때만 해도 다들 제법 남주다웠네. 별로 안 맞았을 때라 그런가?

왜 나의 매질과 그들의 남주다움이 반비례하는 것 같지? 괘씸하다.

“날 고양이로 만들려고!”

지금의 미카는 많이 맞아서 그런가, 남주다운 구석이라고는 흔적도 없다.

일단 머리띠를 씌우려는데, 미카가 앙탈을 부렸다.

“씌우지 마. 안 어울려.”

히죽대고 있다.

인내심이 거의 한계에 달했다. 뺨이라도 때리고 싶다. 하지만 때리는 순간 나는 행복해지고 미카는 불행해질 게 뻔하다. 피폐하다는 건 힘들구나. 나는 피폐물 여주니까 좋을 줄 알았는데, 정말…… 피폐하구나. 새삼 내가 불운한 운명을 타고났다는 걸 실감한다.

생떼를 부리는 천사의 턱을 잡고, 머리띠를 턱 씌웠다.

“아!”

“…….”

씌우자마자 잔뜩 발기한 음경이 꺼떡이는 걸 봐버렸다.

연갈색 고양이 귀는 내 머리카락 색깔과 맞춘 것이라, 그의 금발과는 맞지 않는다. 그래도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나름대로 어울렸다. 아무리 질 좋은 머리띠여도 색이 다르니 소품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천사에게 이런 걸…….

“……어울려?”

미카가 너무 좋아하지만 않았더라도 좀 즐거웠을 것 같다. 이를 악물고, 한 자 한 자 씹어 뱉어 내듯 말했다.

“어울려, 내 아……기…… 고양이.”

“!”

태양이라도 뜬 듯 미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미카는 가증스럽게 손을 둥글게 말아 고양이 흉내를 내며 소리쳤다.

“나 같이 덩치 큰 남자가 이런 걸 쓴다고 귀여울 리 없잖아!”

닥쳐……. 제발 말을 좀 하지 마……. 안 어울린다고 말할 거면 손이라도 그렇게 하지 말든가. 내가 귀여운 소품까지 양보해 줬는데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닌가? 때리고 싶다…….

때리는 것과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다.

“꼬리도 넣자.”

“아무리 은하 양이 나를 귀여운 아기 고양이로 본다고 해도 안 어울릴…….”

갑자기 말이 없다. 고양이 꼬리 끝부분에 달린 구슬로 그를 툭툭 쳤다.

“엎드려.”

“너무 큰…… 크지 않아?”

“그걸 이제 눈치챘어?”

구슬이 무식하게 크다. 얼마나 크냐면, <악마의 비바체> 68편에서 미카가 나에게 들이밀었던 페니스 벨트랑 비슷한 크기다. 그건 괜찮고 이건 안 괜찮고? 뒤쪽이 총각이었을 때는 잘만 처넣었으면서 이제 와서 엄살 부리지 말아라. 모든 걸 다 포기하고 같이 동귀어진하려던 때랑 이제 막 예쁨받기 시작했을 때랑 시력이 다른가?

미카가 겁먹기 시작하자 그제야 나의 기분도 조금 돌아왔다. 그의 허벅지를 잡았다.

“엎드리는 게 싫으면 눕든가.”

“……나, 나, 나는 이제 은하 양이 아끼고 사랑하는 아기 고양이니까…….”

아기 고양이도 아니고 아끼고 사랑한 적도 없다. 미카가 안 눕고 버팅겼다.

“이거 그…… 고양이에 대한 훈육……인 거지?”

“마음대로 생각해.”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받는 고양이 훈육이지?”

“왜 그렇게 구체적이야?”

밀어서 넘어트리고, 구슬로 그의 음경을 툭 쳤다. 썩어도 남주라고 여전히 빳빳하다. 미카는 겁을 먹어서, 다리를 벌리는 것도 아니고 방어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자세로 오들오들 떨었다.

“한때는 강아지가 될 줄 알고 이런저런 마음의 준비를……. 고양이는 훈육이 안 되던가?”

마음의 준비를 왜 그렇게 하지? 남심은 어렵다. 나는 죽을 때까지 남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난제. 주인공에게 밀어닥치는 시련 그 자체다.

사실 남자들은 모두 여자에게 박히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건가? 아무리 작가가 우리들을 엉성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피폐물 남주 중 두 명이나 나한테 박히고 싶다는 건 뭔가 암시하는 바가 있다. 나의 상식을 다시 점검해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남주들을 주기적으로 안아 줘야만 하는 여주인공의 운명……. 끔찍하다. 이것이야말로 피폐물의 본질일지도.

“고양이는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도 처음이다.

“일단 말을 줄여.”

입 안에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부드러운 입술이 반사적으로 내 손을 물었다. 입질이 좀 있네. 일주일에 세 번씩 훈육하다 보면 고쳐지겠지. 주인공 팔자야…….

“잘 빨아. 네 안에 들어갈 거니까.”

“읍…….”

파란 눈에 겁먹은 기색이 스쳤다.

“고양이로서의 첫날인데 잘해야지.”

가짜 웃음을 지으며 그의 옆구리를 톡톡 쳤다. 옆구리도 전혀 부드럽지 않았고 단단하기만 했다. 얼굴만 보아서는 섬세하고 선이 가는 온미남이어도 머리 아래로는 거의 야수나 다름없었다. 이런 몸을 가지고 고양이라고 우겨 봤자…… 차라리 호랑이에 가깝다.

혀가 조심스럽게 피부를 핥기 시작했다. 극도로 방어적이었다. 그러나 어딘지 행복해 보였다. 정말 이런 게 좋아? 이런 걸 원하고 있었단 말이야? 섹스가 아니라 정신적인 교감을 원하고 있었다고? 믿기지가 않는다.

지금까지 미카는 피폐했겠지. 이제 그 불행은 내 거다. 얼른 미카를 행복하고 순종적인 멍청이로 만들어야지.

뜨거운 입 안에서 손가락을 거칠게 빼내고, 그의 밀부를 더듬었다. 긴장해서 바짝 굳는 입꼬리에 입을 맞췄다.

“금방 기분 좋아질 거야.”

립서비스를 너무 많이 해서 오장육부가 뒤틀릴 것 같다.

“은하 양, 굳이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 힘들게 안 해도…… 아윽.”

꽉 닫혀 있던 천사의 항문을 강제로 힘주어 뚫었다. 이 새끼 방금 뭐라 하려 했던 거지? 뒈질려고?

원망과 분노와 억눌렸던 짜증을 담아 닫혀 있던 내벽을 억지로 갈랐다. 근육으로 꽉 찬 남주인공의 몸은 어쩌면 내장까지 강할지도 모른다.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은 아픔을 참고 단단한 내벽을 살살 달랬다. 아픈데도 기쁘지 않다니, 드문 일이다.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남주인공이 정신을 못 차리고 아파했다.

“으윽…… 은하 양, 나, 나아…….”

미카가 꺽꺽거리며 헐떡였다.

“은하 양이 예뻐해 준다면 뭐든…….”

그건 내 대사야……!

하얀 손이 내 등 뒤로 올라오더니 살며시 내 옷을 잡았다. 내 옷은 조금만 힘줘도 찢어진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영악하게도 살짝만 잡는 것이다. 나를 벗길 생각이 아예 없다. 미카는 오늘 철저하게 을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거야, 고양이니까…….

아, 짜증 나. 고양이 귀를 진짜로 달아 본 건 오히려 나다. 애완동물 자리 또한 나의 것이다. 또 내 자리를 뺏겼다!

이런 내 심정을 읽은 건지 어쩐 건지, 미카가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울었다.

“야옹…….”

닥쳐……. 입에 구슬 물렸다. 물린다고 그걸 또 순순하게 무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다 싫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미카가 각성해서 내 뺨을 때린 후, 고양이 머리띠를 나에게 양보하고, 꼬리를 억지로 삽입한다면 나는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나 #피폐여주와는 한참이나 멀어지겠지.

나는 잘하고 있는 거다. 필사적으로 되뇌며 안을 쑤시다 말고 그의 음경을 잡았다. 언제나 강하고 철벽같은 남주인공들의 몇 안 되는 약점이라 해야 할까, 사실 남주인공들은 강해 보이지만 약점투성이라, 마음만 먹으면 제압할 수 있다. 이 소설은 겉으로 보기엔 남주인공들이 날 조종하는 것 같지만 실은 내가 그들을 조종한다는 설정이니까.

천사의 늘씬한 배도 쓸었다. 벨처럼 선명하게 복근이 도드라진 건 아니지만 손바닥 아래 분명한 요철이 느껴졌다. 색깔이 안 맞는 바보 같은 고양이 귀만 아니었더라면 근사했을 텐데.

아니, 저 사랑에 빠진 표정만 아니었더라면 멋졌을 거다.

미카는 쑤시기 좋으라고 몸을 비틀어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배려 고맙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미카의 엉덩이를 꽉 움켜잡았다. 착잡하다. 나에게 엉덩이를 만지는 수고스러운 짓을 시키다니.

그는 꼬리 구슬을 문 채로 눈알을 굴렸다.

“나는 귀여운 아기 고양이라서 엉덩이 만져 주는 게 좋아.”

“고양이 자리 박탈당하고 싶어?”

“우읏…….”

미남이 순식간에 우울해하는 걸 보니 기분이 나아진다. 다시 촉촉한 안쪽을 헤집었다. 손가락을 틈 없이 꽉 조이는 게, 제법 명기인 것 같다. ……내가 무슨 생각을?

“미안. 계속 고양이 하고 싶어. 천사는 싫어.”

저 말은 처음 듣는다.

“천사가 싫다고……?”

“별로야. 귀엽지도 않고…….”

“귀여운 게 문제야?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었어?”

“멋지지도 않아. 악마가 훨씬 섹시해. 벨 군이 부러워. 걔는 메인 남주기도 하고…… 흑발에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군. 하지만 흑막 사디스트 역할을 잘 해낸다면 그 정도 설정이야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차라리 내가 처음부터 고양이였다면…….”

아니, 고양이는 악마에게 상대도 안 된다. 천사가 낫다.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엎드려.”

“꼬리 넣게!? 나, 아, 아직 마음의 준비가.”

“귀여운 고양이가 되고 싶으면 견뎌.”

미카는 눈을 질끈 감고 네발로 엎드렸다. 엉덩이가 하얗고 동그랬다. 일단 손을 올렸다.

남주인공의 엉덩이는 피부가 약해서 조금만 만져도 금방 벌겋게 물든다. 깨끗한 도화지를 마음대로 칠하는 기분이랄까……. 아무것도 안 한 근육질의 엉덩이 사이, 분홍빛 항문도, 그 아래 잘 익은 열매처럼 달려 있는 고환도 내가 얼마든지 망가트릴 수 있다. 목이 바짝 탔다.

적셔야 할 텐데. 손가락이야 그냥 침 묻혀서 밀어 넣었지만, 꼬리 구슬은 무식하게 커서 그 정도론 안 될 거다.

내가 쓰는 핸드크림 정도면 되겠다.

“어? 그거!?”

불안하게 뒤돌아보던 미카가 화들짝 놀랐다. 무시하고 복숭아 향 핸드크림을 손에 짜서 구멍 안에 쑤셔 넣었다. 한꺼번에 손가락 세 개다. 뜨거운 살의 고리가 단번에 수축해 손가락을 조이는데, 힘으로 밀어 넣고 억지로 벌리는 느낌이 괜찮았다. 그의 날개가 뻣뻣하게 굳었다.

“으, 은하 양의 핸드크림을…….”

“그게 뭐?”

“아흑, 기분이 이상해.”

“총각도 아니면서.”

“그치만, 그때는 내가 억지로 널 묶고 올라탄 거라 이런…… 이런 애무는 못 받았잖아.”

그때를 다시 생각해 보니 새삼 화가 치밀어서, 꼬리 구슬을 조그마한 구멍에 우악스럽게 밀어 넣었다. 미카가 뭐라 말하려다가 숨을 멈췄다.

“은하 양이 아까 웃어 주는 바람에, 흐악……!”

“…….”

방금 미카가 뭔가 정상적인 말을 하려 하지 않았나?

하지만 이미 밀어 넣어 버린 구슬은 어쩔 수 없다. 검은색 구슬 하나가 그의 괄약근을 억지로 비집고 쏙 들어갔다. 손에 남은 감각 때문에 당혹스러웠다.

“왜 헐렁해?”

“뭐라고!? 은하 양, 그게 남주한테 할 말이야?”

미카가 기겁했다.

“이 정도면 아직 순결한 몸이라고……!”

아파서 식은땀까지 흘리는 주제에 변명이 필사적이었다. 미카가 혹시 개변태가 되어서 나도 모르는 새에 스스로 뒤를 풀고 왔다거나, 그런 것 같진 않다. 나는 꼬리를 잡고 구슬을 하나 더 밀어 넣었다.

“흐윽!”

미카가 등을 휘었다. 아니, 역시 부드러운데……. 뻑뻑한 감은 있지만, 이 몸이 만약 동정이었더라면 이렇게 수월하게 들어가진 않았을 거다. 나는 계속해서 구슬을 밀어 넣었다. 항문이 벌어지면서 구슬을 꾸역꾸역 삼켰다. 구슬의 가장 굵은 부분이 들어가면, 나머지는 쏙 들어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넣을 때마다 날개가 파르르 떨렸다.

“윽, 거북해…….”

사람에서 고양이로……. 아니, 천사에서 고양이로 타락하는 과정이 쉬울 리가 없다.

“다 넣었어. 기어 봐.”

한 걸음 떨어져서 미카의 모습을 감상했다. 네발로 엎드린 천사에게 돋아난 안 어울리는 귀와 꼬리……. 날개 달린 고양이.

……이거 스핑크스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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