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죽여도 되나요-31화 (31/40)

31화

<악마의 비바체> 78편

주인공이 어디 갇혀 있는데, 다른 남자가 나타나 그녀를 구해 준다.

<악마의 비바체>에서 인물만 바꿔 가며 계속 써먹었던 패턴이다. 작가가 없는 지금은 더욱이 패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작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패턴이 나올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게 등장한 벨제뷔트다.

「은하. 네가 왜 여기 있는지 설명해야 할 거다.」

벨제뷔트가 불타는 검을 땅에 내리찍으며 싸늘하게 말했다. 여전히 천사가 쓰러져 있다. 유은하는 슬쩍 미카엘을 발로 찼다. 미카엘이 허리를 짚으며 비틀비틀 일어났다. 죽은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악마의 라이벌, 이 소설의 서브 남주가 입을 열었다.

「…….」

힘들어서 입만 열고 대사는 못 쳤다. 78편에 수상한 공백이 생기려 한다. 주인공은 얼른 다음 행동을 개시했다.

유은하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긴…… 이쪽 세계? 벨제뷔트. 당신 설마, 이런 곳에 저를 불러낸 이유는……!」

이곳은 대로변 한복판. 그녀가 다니던 회사 앞. 마침 <악마의 비바체> 1편에서 그녀를 비참하게 찼던 전 남친도 있고, 학창 시절에 그녀를 괴롭혔던 악녀도 있고, 유년 시절에 그녀를 괴롭혔던 보육원 원장도 있고, 하여간에 온갖 사악한 엑스트라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들은 평소 무시하던 유은하의 곁에 눈부신 미남이 둘이나 등장하자 눈이 휘둥그레져 이쪽을 주목했다.

이런 곳에 불러내서 무얼 하려는 것이지……! 유은하는 불길함에 사로잡혔다. 벨제뷔트가 멋진 주인님 1번 미소를 지었다.

「네가 자꾸 신분을 망각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 확실히 해두려고.」

이번 편은 사이다다.

벨제뷔트가 유은하의 가느다란 허리를 꺾어 안았다. 그리고 그녀를 주목하는 악역 엑스트라들을 향해 사이다를 날렸다.

「이 여자는 내 여자다.」

「!」

아직도 잘 먹히는 클래식한 장면이다.

유은하가 가련하게 두 손을 모았다. 벨제뷔트가 그런 그녀를 비웃으며 말했다.

「네가 이쪽 세상에 미련이 있는 것 같길래, 내가 꿈을 넘어 찾아왔다. 아예 이 자리에서 그대는 내 노예라고, 저 하찮은 인간들에게 똑똑히 말해 주지. 다들 똑똑히 보도록.」

라고 하며 기습적으로 키스했다.

게다가 입술을 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짐승처럼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었다. 귀가 물리자 유은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신음 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그렇긴 한데.

벨제뷔트가 틈을 보아 유은하의 귀에 대고 물었다.

“그대,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나? 왜 그대의 얼굴에선 광이 나고, 미카는 쓰러져 있지?”

“……내 얼굴에서 광이 나?”

“물론 그대 얼굴에서는 항상 빛이 났다만.”

“너 새로 연재된 부분 보지 않았냐?”

“보았다.”

“…….”

그런데도 벨제뷔트는 미카엘이 왜 쓰러져 있는지 감을 못 잡았다. 딱히 #아방남 같은 키워드에 욕심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유은하는 벨제뷔트의 어깨를 밀어 내는 척하며 대답했다.

“지금은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까, 우선 ‘자극적인 전개’로 밀고 나가자.”

벨제뷔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우리 소설 순위를 올려서 작가를 불러오는 것 말이지.”

항상 대답만큼은 잘한다.

“그런데 그대, 나는 여기서 대체 뭘 더 해야 자극적인지 모르겠다. 78편이나 되었어. 우리는 이미 할 수 있는 모든 소재를 다 한 번씩 건드려 보지 않았나?”

그 문제는 주인공인 유은하에게 해답이 있다.

“아니, 아직 안 한 게 있어.”

“무엇이지?”

“쓰리썸.”

“!”

벨이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뗐다. 그리고 놀라지 않은 척 아무렇지도 않게 엑스트라들을 향해 대사를 쳤다.

「보았나? 이 여자는 나의 것이다.」

순발력 괜찮은데……. 그러나 독자들은 못 볼 테지만 가까이 붙어 있는 유은하의 눈에는 보인다. 그의 루비 같은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다. 벨제뷔트는 미카엘을 힐끔거렸다. 미카엘은 벽에 기대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 여자는 나의 것이다.」

대사 중복이다.

벨제뷔트는 실수를 깨닫고, 갑자기 전 남친 엑스트라를 지목하며 순발력을 발휘했다.

「큼. 거기 너, 불만이 있으면 말해라.」

엑스트라에게 대사를 떠넘겼다. 본인이 대사를 칠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알자마자 일단 시간을 번 것이다. 벨제뷔트는 나이를 78편이나 먹는 동안 대체 뭘 배운 걸까? 주인공을 때리는 기술은 제자리걸음이면서 꼼수만 늘었다.

전 남친 엑스트라가 「저 여자에게 특별한 게 있을 리가 없어!」라고 시작하는 긴 비난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서술과 묘사가 엑스트라에게 쏠리는 틈을 타 벨제뷔트는 이번엔 미카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미카. 설마 싶지만, 힘들어서 복상사 직전까지 갔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설마.”

미카엘이 억울해하며 받아쳤다.

“너처럼 씬을 길게 써 본 적이 없어서 이렇거든?”

그런데 미카엘의 표정이 이상했다. 완전히 억울하기만 한 건 아닌 것 같고, 어딘지 야릇한 느낌이 있었다. 저번 편까지 아름다운 글래머 여주인공과 격정적인 정사를 나눈 여파일지도 몰랐다.

전 남친 엑스트라의 대사가 끝났다. 그다음으로 악녀가 나를 비난하는 대사가 시작됐다. 엑스트라들이 차례로 한마디씩 하며 유은하를 린치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생각 같아서는 유은하에게 직접적 폭력을 행사하고 싶었다. 그러나 벨제뷔트가 눈을 무섭게 뜨고 버티고 있다. 그래서 차마 다가가진 못 하고 치졸하게 말로만 그녀를 공격했다……는 서술이다.

시간을 벌기 위해 한 명씩 말하게 하니까 좀 라디오 같았다. 벨제뷔트가 미카엘을 보며 당황한 듯 헛기침을 했다.

“그랬군. 음, 큼, 미안하다. 하지만 은하가 아직 진동기를 품고 있길래, 그대의 차례가 아직 안 끝난 줄 알았지. 체력이 부족할 줄은 몰랐다. 아, 아니, 비난하려는 건 아니었다. 걱정하는 거지. 일단 ‘이번 편’은 내가 맡을 테니 그대는 쉬어라.”

“…….”

벨제뷔트의 말 중에 뭔가 이상한 키워드가 있었다.

“진동기?”

벨제뷔트가 유은하를 보고 눈을 깜빡였다.

“……아니었나? 어디서 진동 소리가 들린다만.”

“…….”

진동…… 뭔가 생각날 듯 말 듯 한데.

미카엘이 원망하는 눈으로 유은하를 째려봤다.

“!”

맞다……. 넣고 왔다.

암캐처럼 구르느라 까먹고 있었다. 저 새끼, 몸 안에 진동기를 품은 채로 8편이나 굴렀단 말이야? 어쩐지 이상하게 금방 지친다 했다.

리모컨. 어디 있지?

“은하 양.”

미카엘은 유은하를 악당 보듯이 쳐다보며 뭔가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전에 엑스트라들이 벌어 둔 시간이 끝났다. 엑스트라들은 이제 벨제뷔트의 품에 안긴 유은하를 보며 불합리하고 이상한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다.

「유은하를 죽여야 해!」

너무 갔다.

이쯤 되면 그저 말로 제압하는 거로는 사이다를 먹일 수 없다. 벨제뷔트가 몰래 한숨을 쉬고는 검을 빼 들어 그들을 향해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이제 다 끝났나? 더 이상 내 노예에 대한 모욕을 듣고 있어 줄 수가 없군.」

벨제뷔트는 그들을 향해 성의 없이 검을 휘둘렀다. <악마의 비바체>는 성적으로는 잔인하더라도 고어하게 잔인하진 않다. 작가가 싫어해서인지, 아니면 그런 건 독자들이 싫어할 거라 생각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벨제뷔트는 엑스트라들을 설렁설렁 위협했다. 표정만큼은 차가운 남주인공이었다.

「유은하는 내가 데려간다. 은하가 보는 앞에서는 살생을 하지 않을 거다. 너희들은 유은하가 모르는 사이 잔인하게 죽여 주지.」

대사 왜 저래? 너무 작위적인 설명 아니야?

하여간에 벨제뷔트가 사이다 연출을 하는 동안, 미카엘은 독자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허리를 짚고 울상을 지었다.

“리모컨, 저 위에…….”

“음.”

리모컨을 천국에 놓고 왔나 보다.

“은하 양. 진동이 켜져 있어……!”

미카엘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위험하다.

‘본편’ 중에서 남주인공이 울었다간, 그것도 여주인공을 잃고 상실감에 한줄기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진동기 때문에 힘들어서 어린애처럼 울었다간, 우리는 모두 다 죽을지도 모른다.

“다 은하 양 때문이야.”

당연히 세상의 모든 일은 유은하 때문이다. 그녀는 원인이며 근본이고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카엘의 시선이 수상했다. 그는 소변이 마려운 것처럼 허리를 비비 꼬면서 벨제뷔트의 등을 힐끔거렸다. 마치 눈치를 보는 것처럼…….

“!”

유은하는 미카엘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미카. 벨한테 들키기 싫어?”

“당연하지!”

“음…….”

아까 못 했던 야외 플레이를 마저 할 수 있겠다.

“참아. 들키면 고양이고 뭐고 죽여 버린다.”

미카엘이 입을 벌렸다.

‘진짜’로 들키면 안 되는 원격 진동 플레이가 시작됐다.

아무래도 벨제뷔트는 그녀가 여주인공의 육체를 놔두고 설마 다른 구멍에 진동기를 꽂았으리라곤 생각지도 못 하는 것 같다. 사실 야설 세계의 진동기는 사실상 소음이 아예 없다고 보아도 좋은데, 벨제뷔트는 그 좋은 청력으로 미미한 진동 소리를 잡아냈다. 그래 놓고도 미카엘이 아닌 유은하가 즐긴다고 생각한다. 편견이 이렇게 무섭다.

벨제뷔트가 뒤를 돌아보며 미카엘에게 살짝 말했다.

“그대는 크게 움직일 체력이 없을 테니, 여기서 차라리 우리가 말싸움이라도 하면서 얼른 78편을 끝내는 건 어떤가? 은하는 쓰리썸으로 가자고 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좀…….”

“그건 좀, 뭐.”

“좀…….”

프로 의식이 부족한 벨제뷔트는 쓰리썸하기 싫어서 팔짱을 끼우고 심각하게 고민에 빠졌다. ‘본편’을 한창 찍고 있는데 남주인공 1번이 입을 다문다는 것은 다른 캐릭터에게 장면을 넘긴다는 뜻이다. 미카엘이 나설 차례다.

물론 미카엘은 말싸움이고 쓰리썸이고 뭐고, 어떤 것도 할 상태가 아니다. 진동기가 그의 안에서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

악마가 아름다운 미녀를 데려가려 한다. 천사가 나서서 막아야겠지. 이제 미카엘이 대사를 칠 차례다.

말해!

「윽…….」

미카엘이 주먹을 꽉 쥐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벨제뷔트 군. 내가 그렇게 놔둘 거라 생각해?」

78편은 무사히 이어진다.

미카엘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유은하를 힘없이 끌어당겼다.

「은, 하 양. 이쪽으로……와. 너를 저 악마가…….」

「저 때문에 싸우시면 안 돼요!」

「하윽!」

미카엘의 허리를 끌어안자마자 그가 수상하기 짝이 없는 신음을 터트렸다. 다행히 독자들에게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벨제뷔트는 들었다. 악마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유은하는 미카엘에게 소곤거렸다.

“이번 편 망치면 죽여 버릴 거야.”

“은하 양, 말이 되는……!”

“미카…….”

벨이 미카를 착잡하게 보았다. 미카가 눈에 띄게 몸을 굳혔다.

“많이 맞았나 보군…….”

“…….”

잠시 아무도 말이 없었다. 소설에 짧은 공백이 생겼다.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벨제뷔트가 미카엘에게 검을 겨누며 대사를 읊었다.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네놈은 사지를 찢어 죽일 테니 그렇게 알아라. 내 노예를 멋대로 빌려 가는 동안 좋았나? 어지간한 남자로는 성에 안 차는 여자일 텐데.」

「그러게…….」

유은하는 슬쩍 미카엘의 엉덩이를 쓸었다. 커다란 날개가 가림막 역할을 해줘서 수월했다. 잠깐 정신을 놓았던 미카엘이 퍼뜩 눈썹에 힘을 주고 비틀거렸다.

「읏……. 은하 양도 즐겼으니까 그런 줄 알아.」

「헛소리가 지나치군.」

「은하 양에게 의견을 물어볼까? 은하 양은 어느 쪽이 좋았어?」

미카엘이 재빠르게 유은하에게 장면을 넘기고 뒤로 물러났다. 외투와 날개로 앞섶을 자꾸 가리는 게 어설프고 수상했다. 78편을 망치기 싫어서 저러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인물에게 수치스러운 모습을 들키기 싫어서 저러는 걸 안다. 아니꼽다. 하지만 주인공인 그녀는 78편을 망치기 싫으니 이번만큼은 봐주겠다.

유은하가 불안해하며 두 남자를 번갈아 봤다.

「저는…….」

여기서 분량 초과. 78편 끝!

벨제뷔트와 미카엘의 표정에서 힘이 풀리고, 엑스트라들이 자아를 잃은 채 흐물거리려는…… 때에,

「잠깐.」

분량을 초과시키며 세 번째 남주인공, 강태을이 등장했다.

「너 뭔데!?」

미카엘이 되게 싫어했다.

그러나 강태을은 뻔뻔하게 양복을 휘날리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가 악마와 천사의 화려한 비주얼에도 기죽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무슨 일이지요? 아까 듣기로는, 제 팀원을 멋대로 데려간다, 만다, 그런 황당한 말들을 하는 것 같던데.」

그리고 불안해하는 유은하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이미 제 아내입니다만.」

그리고 진짜로 78편 끝.

---다음 편에 계속---

<악마의 비바체> 79편

곧바로 79편이 이어진다.

쉬려던 미카엘이 화를 냈다.

「너 누군데? 결혼하려면 상호가 합의해야 하는 거야.」

그녀를 감금하던 남자가 할 말은 아니었다. 힘들어서 점점 대사와 본심이 마구 뒤섞이기 시작했다.

태을은 미카엘을 무시하고, 유은하한테만 들리게끔 귓속말로 말했다.

“은하 씨. 도우려고 나왔어요. 지금 연재를 쉬면 안 돼요.”

“왜?”

“연재 사이트 시스템 때문에요. 은하 씨 덕분에 <악마의 비바체>가 벌써 8편이나 올라갔잖아요. 한꺼번에 많이 올리면 랭킹에 유리하거든요.”

“!”

“이런 문제는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저나 잘 알겠죠……. 끝나면 자세히 설명 드릴게요. 지금 당장은 연참을 해야 해요.”

태을이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자아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등장인물치고는 대처가 능숙했다.

강태을 팀장은 안경을 한번 치켜올리고, 마치 오래된 연인을 대하듯 유은하의 왼손을 조심스레 감싸 쥐었다. 그러자 갑자기 아름다운 빛무리가 그녀의 왼손 약지에 번지더니, 없던 반지가 나타났다. 사실 이것은 유은하의 전생에서부터 이어온 반지로, 엄밀히 따지자면 결혼반지가 아니라 약혼반지였다. 그러나 강태을은 그녀를 뺏기기 싫어서 조금 거짓말을 했다.

「이 정도면 천사니 악마니 하는 당신들도 인정하겠지요? 유은하는 내 아내라는 걸.」

「팀장님……? 저번에 갑자기 신혼부부처럼 나타나더니, 꿈이 아니었나요?」

아직 그의 정체를 모르던 유은하가 어리둥절하게 강태을을 올려다봤다. 강태을이 그녀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지금은 태을 씨라 불러 주세요.」

벨제뷔트가 강태을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네놈, 평범한 인간은 아니군.」

「원래는 때가 될 때까지 은하 씨에게 비밀로 하려 했는데, 어쩔 수 없죠. 은하 씨. 놀라면 안 돼요.」

강태을의 주위로 빛무리가 몰아쳤다. 그 후로는 뭔가 판타지 소설에나 걸맞은 아름답고 눈부신 장면 묘사가 이어졌다. 강태을 팀장의 회색 머리카락 사이에서 사슴 같은 뿔이 자라났다. 잘못하면 마법 소년의 변신 장면처럼 보일 법한 묘사였지만 <악마의 비바체>는 멋지게 해냈다. 유은하가 눈을 깜빡이자, 유능한 팀장님은 사라지고 고대부터 살아왔던 동양풍 용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물론 용이라고 해도 진짜 비늘이 있는 거대한 뱀은 아니고, 그냥 미남이 머리에 뿔을 단 것뿐이다. 뿔이 돋아나 있는 걸로도 대충 용이라고 치는 소설이다. 저기 악마는 웃기는 꼬리나 성의 없이 나 있고, 천사는 환절기만 되면 깃털이 숭숭 빠지는 날개 한 쌍만 달고 있으니 말이다.

「팀장…… 아니, 태, 태을 씨? 뿔이라니요, 용이셨어요?」

거의 작위적인 대사밖에 없었다.

유은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 세 명의 남자들을 번갈아 봤다. 악마, 천사, 그리고 용……. 아니면 그냥 코스프레한 남자들. 어쩌다 이렇게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남자들이 그녀를, 오로지 그녀만을 원하고 지키고 탐하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유은하는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잔혹한 악마가 명령했다.

「은하. 이쪽으로 와라.」

「!」

유은하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사악하고 잔혹하지만 어딘지 가끔, 지독히도 외로워 보이는 저 남자. 그에게도 한 줄기 구원이 내려온다면, 그녀가 손을 뻗기만 한다면, 이 악마왕은 더 이상 고독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유은하의 뒤에 서 있던 강태을이 부드럽게 웃었다.

“은하 씨. 아까 쓰리썸 얘기하는 것 같던데, 기왕 자극적인 전개로 나갈 거면 포썸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이 새끼는 뭐라는 거지?

그리고 천사도 말했다.

「흑, 아읏, 더 이상 한계…… 아, 아앗……!」

아니, 천사는 신음했다. 미카엘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음란하게 사정했다. 날개가 부들부들 떨리고, 하얀 바지 위로도 토정의 증거가 선명하게 새어 나와 부글부글 거품을 만들어 냈다.

이 장면을 독자들도 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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