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무슨 혼전순결이야.”
몇 대 더 때렸다. 새로운 소설 속에서도 남주의 명치를 때리는 감각만큼은 주먹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명치로 성에 안 찬다. 폭력이 폭력을 불렀다. 야구 방망이가 내 손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태을이 맞으면서도 훌쩍훌쩍 변명했다.
“그렇지만, 은하 씨. 저 원래 몇천 년 살던 동양풍 용이라는 설정이라구요. 제가 유교 사상을 안 따지면 설정에 구멍이 나요!”
원래도 구멍이 많은 소설이었는데 거기서 구멍 하나 더 늘어난다고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할 독자는 없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해. 뚫리기 싫어서 갑자기 그런 설정 끌고 온 거지?”
“아, 아니에요. 혹시 제가 은하 씨를 안게 되더라도 말하려고 했어요. 정말 기억 안 나세요?”
미스터리 계열 미남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절박해하니까 청순해 보였다. 억울하다. 신은 나에게만 청순함을 허락했는데, 오로지 나만…….
하여간에 전직 용이자 현직 마법사는 내 손을 맞잡았다.
“저희 전작에선 약혼했던 사이예요.”
“음.”
금시초문이고 기억도 안 난다. 태을이 소설의 존폐와 우리들의 목숨을 걸고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고, 그냥 별로 중요하지 않은 설정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은하 씨에게 제 모든 처음을 바치기로 한 건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사이가 아니잖아요.”
태을이 이불을 마구 끌어당겨 몸에 휘감더니, 갑자기 침대 밑으로 내려가 호위 기사처럼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가 새로운 상자를 꺼냈다.
이번 상자는 크기가 작았다. 불길했다.
“은하 씨. 저도 은하 씨의 남주인공 중 한 명으로 삼기로 하셨으면, 이건 약속해 주셔야 해요.”
“뭘.”
상자가 열리고, 그 안에서 페니반이랑 똑같은 재질과 색상의, 파랗게 빛나는 반지가 언뜻 보였다.
“저랑 결혼…….”
걷어찼다.
그리고 다시 침대 위로 끌어 올리고, 둘둘 말고 있는 이불을 억지로 벗겨 낸 후, 널브러진 천 쪼가리로 등 뒤에서 손목을 묶었다. 입도 묶었다. 이번에는 눈까지 가렸다.
로브에서 찢어 낸 천들은 하얀색이지만 눈을 가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야설에서 눈가리개라는 것은 가리개 아래로 살짝 보이는 것도 없이 완벽하게 시야를 가려 주니까 말이다. 믿음직하다.
남주인공 하나를 포장하는 과정이 무척 익숙했다. 방금 전 약혼 설정 때랑은 달랐다. 이 편안함. 내가 해야 할 것을 하고 있다는 안정감. 나는 분명 수없이 남주인공들을 묶고 때리고 괴롭혔겠지. 그럼으로써 피폐해했을 것이다.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는 감각은 얼마나 보람찬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아까보다 조금 더 범죄 같아졌다.
“으읍, 읍……!”
태을이 날뛰니까 더욱 그랬다. 찢어진 옷 사이로 살결이 무방비하게 보이고, 반쯤 내려가 엉덩이만 보이는 팬티는 여전히 남근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짜증 나는 정조대. 이런다고 내가 야한 짓 하는 걸 막을 순 없다. 그러니까 그냥 나에게 생체 딜도들을 돌려주었으면 한다. 서로 편하고 얼마나 좋아.
그러나 작가가 고집이 세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던 바였다. 여전히 남주의 팬티는 강철처럼 단단했다. 내 옷도 안 벗겨졌다. 대체 내 육체를 검열해서 어디다 쓰려는 건지.
분한 마음을 담아 그의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으읍!”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깨끗한 분홍색 항문 주름이 둔부를 따라 가로로 늘어났다. 이 마법사가 마른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남주인공이라, 손 아래 느껴지는 엉덩이 근육이 제법 단단했다. 하지만 항문은 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지 녹아내릴 만큼 부드러웠다. 삽입 방향이 확고한 소설에서는 이런 게 함정이다. 공격에 약하다.
둔부 한쪽을 잡아 벌린 채 항문의 표면을 문질렀다. 살결이 비단처럼 고왔다.
표면에 마나 포션을 들이부었다. 병만 빛나는 게 아니라 내용물도 빛났다. 마법사가 만든 거면 일단 다 빛나게 하는 성의 없는 설정도 빛났다. 판타지 배경답게 예쁜 병에 담겨 있는 아름다운 액체가 음란한 곳으로 가차 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엉뚱녀답게 별다른 애무 없이 일단 손가락에 액체를 흠뻑 묻혀 안으로 쑤셔 넣었다.
“읍!”
태을이 괴로운 듯 얼굴을 침대에 비볐다.
“원래 다 처음엔 아픈 거야.”
그리고 곧 순식간에 기분 좋아진다. 고통과 쾌락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 있는 야설의 물리 법칙에 조교당하면 마조히스트가 된다. 내가 그렇게 돼지의 길에 눈을 떴다.
“나는 너를 뚫을 거지만, 너는 마조가 되면 안 돼.”
안쪽의 부드럽고 말캉한 살을 문지르며 당부했다. 태을이 뭐라고 읍읍거렸다. 아픈 것 같다. 기왕이면 끝까지 아팠으면 한다. 남주가 뒤로 느끼면 내가 눈물이 날 것 같으니까.
하지만 결국 느끼겠지. 슬프다. 나는 슬플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보다.
손가락을 꽉 무는 내벽의 조임이 아팠다. 벌써부터 손이 아렸다.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근데 이거 꼭 문질러 줘야 하나?”
“읍…… 읍!”
태을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뿔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고갯짓이 눈에 띄어서 편했다.
“고통을 없애는 치유의 주문 같은 건 할 줄 몰라?”
절박한 도리도리.
“너도 피폐물 등장인물이면 버텨.”
태을이 앞날을 예견하고 천 너머에서 마구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세 번째 남주인공은 출연한 지 얼마 안 돼서 시련이 부족하다. 빛나는 페니반을 그의 엉덩이에 문질렀다. 이 음란한 도구의 이름은 페니스 ‘벨트’지만 딱히 벨트는 안 달려 있었는데, 내 배꼽 아래 적당한 위치에 가져다 대자 자석처럼 찰싹 붙었다.
기억이 서서히 돌아온다. 여주인공 된 몸으로 페니스 벨트를 사용하는 건 이번이 세 번째라는 느낌이 든다.
페니반의 크기는…… 딱 이 마법사의 남근과 비슷한 정도.
셋 다 자기 물건과 비슷한 크기의 페니반을 만들어 나에게 주었다. 남주인공들은 여주인공에게 박히는 상상을 하며 수제 페니반을 만들 때 자신의 성기를 참고하는구나. 하기야, 그럼 뭘 참고하겠어.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이번 소설에서는 내가 제일 엉뚱해야 한다. 나보다 더 엉뚱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뿌리 쪽을 잡고, 끄트머리를 그의 분홍색 구멍에 들이밀었다.
“읍……!”
엎드려 있던 태을이 얼굴을 침대에 박았다.
구멍이 강제로 벌어지면서 한 줄기 피가 흘렀다. 굳이 정성 들여 애무하지 않아도 청년막 같은 게 존재하는 세계관인 이상 어차피 어딘가 찢어졌을 거다. 이 선혈은 처음이라는 증거. 나를 위해 헌신한다는 증거다. 강제로 묶인 채 저항하며 보내는 현신이다. 강태을은 쓸 만한 남주인공이었다.
“읍, 으읍!”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페니반을 끝까지 들이밀었다. 가련한 여주인공이 또 강인한 남주인공을 범한다. 이런 고생을 하는데, 남주라는 놈은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가 없다.
“박아 줘서 고맙다고 말해 봐.”
“읍, 읍.”
물론 입이 막혀 있어서 말을 못 하고, 할 수 있다고 한들, 비명이나 지르겠지. 괘씸한 자식이다.
도구에 감각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니 그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알 수 없다. 나는 한결 여유로운 심정으로 이 마법사의 엎드린 뒷모습을 감상했다. 땀에 젖은 등과, 목덜미에서 살랑이는 회색 머리카락. 분홍빛이 도는 어깨…….
아니, 남주인공 주제에 어깨에 분홍색이 들어가다니. 주제 파악을 못 하는 건가? 어깨와 무릎에 분홍색을 넣는 건 오로지 나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내 특권들 하나하나가 전부 조각조각 흩어져서 남주들에게 부여되고 말았다. 작가야……!
“읍…… 흑…….”
눈가리개가 젖었다. 입을 막고 있던 천도 같이 젖었다. 그래, 계속 힘들어해. 고통이 남자를 날카롭게 만든다. 태을은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으니 내가 직접 다듬어 주는 거다. 이렇게 나는 작가의 일을 일부 대신할 만큼 그에게 헌신한다. 그러니 작가도 정신 차리고 어서 이 소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길 바란다.
뻑뻑한 안쪽을 힘으로 파헤쳤다. 힘겹기는 하지만 페니반이 확실히 끝까지 들어갔다. 들어갈 수 있는 거였다. 이 소설, 전체 이용가가 아니지?
태을이 자신의 성기를 참고하여 만든 이 빛나는 페니반은, 아마도, 그의 기분 좋은 곳을 정확히 짓눌렀을 것이다. 왜냐면 지금 그를 쑤시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건드리는데 못 느낄 남자는 없다. 섹스를 좀 이상하고 변태적으로 해도 예외는 아니다.
“으읍, 읍…….”
태을은 펑펑 울면서 허리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면서 내 손에 하얀색 빛무리가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마법사라는 설정인 그가 마법이라도 쓴 줄 알았는데,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이 허접한 빛 이팩트는 내가 만든 것이다.
그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얌전해졌다.
“흐윽…….”
태을의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조금씩 끈적해지기 시작했다.
“왜…… 벌써 느껴?”
생각보다 너무 빠르다.
당황스러운 감에 나는 더욱 세차게 허리를 앞으로 밀었다. 일부러 아프라고 한 건데도 그의 틀어막힌 입에서 찐득한 교성이 터졌다.
“흐읍……!”
등골이 싸했다. 또 뭔가 잘못됐다. 그의 좁은 허리에 모여드는 빛무리가 수상했다. 이것은…….
“헉, 나는 성녀였어!”
백작가 막내딸은 사실 사람들을 치유하는 힐러였던 것이다.
내 주변에 있기만 해도 고통이 사라지는 통에, 여러 가지 의학적 문제를 안고 있던 남주들은 나에게 집착하게 된다……! 는 것이 이 최종고라 주장하는 <악마의 비브라토>의 기본 골자였다.
심지어 방금 정해진 설정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봤더니 작가가 메모장에다 이런저런 설정과 간략한 스토리 개요를 적어 넣는 중이었다. 도입부 쓰고 난 그다음에서야.
나는 그의 땀에 젖은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그럼 너 안 아파?”
경악해서 다그쳤다.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쩐지 점점 안쪽을 파고드는데 힘이 덜 들어간다 싶더라니, 내가 힘이 센 게 아니고 그가 힘이 풀려서였던 모양이다. 태을은 손목도 묶이고 앞도 못 보는 피폐한 상태로 내가 박는 대로 흔들리며 끙끙댈 뿐이었다.
굳이 말로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다. 그의 몸을 뒤집었다.
“큭…….”
팬티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너…… 이 더러운 돼지 새끼……!”
언제부터? 결국 이렇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너무 빨랐다. 나에게는 남주들을 괴롭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건가? 내 운명은 대체 어디까지 처참해질 셈이지?
태을이도 이제 다른 남주인공들처럼 개돼지로 타락하고 마는 걸까?
“안 돼. 정신 차려. 느끼지 마. 남주인공이 뒤로 느끼면 안 돼.”
뒤로 잘 느끼는 남자는 남자로서 안 꼴린단 말이야, 안 돼! 태을도 나의 상대 중 한 명인 이상 이렇게 쉽게 타락하게 놔둘 수 없다. 비록 내가 그의 자폭 스위치를 쿵쿵 쑤셔 대고 있긴 하지만, 하다못해 좀 나중에 느끼라고. 지금 느끼지 말고.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의 다리를 잡고 안쪽을 헤집었다. 성인 남자의 무게가 무거웠고, 그 버거운 무게를 들쳐 올릴 때마다 그가 크게 신음했다. 눈과 입을 막아서 소통의 여지를 없애 그를 완벽하게 물건 취급하는 척했지만 사실 나는 그를 무척 의식하고 있었다. 정신적으로는 완전히 그에게 묶여 있었다고 봐도 좋다. 이것도 일종의 마조히즘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태을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쾌락을 주고 싶은 게 아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그의 위로 몸을 숙이고 허리를 빠르게 치댔다.
“으읍, 응, 읍……!”
그가 도리질 치면서도 숨 가쁘게 헐떡였다. 처음에 비하면 천에 틀어막힌 신음 소리가 확연히 달콤해졌다. 팬티 속에 갇힌 남주인공의 커다란 남근이 허공에서 우습게 흔들리며 내 배를 툭툭 쳤다. 흥건히 젖은 그의 속옷과 내 옷 사이에 끈적한 실이 이어졌다. 태을이 묶인 채 범해지며 음란한 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가 느끼는 만큼 나는 슬퍼졌다.
“나한테 강제로 당하면서 느끼는 게 아니라고 해.”
“흐응…… 응…….”
“마음대로 사정하면 죽여 버릴 거야.”
힘이 잔뜩 들어간 허벅지를 잡아 벌리고, 무방비하게 드러난 가슴을 더듬었다. 발목을 묶어 두지 않았더니 태을이 긴 다리로 내 허리를 세게 안고 졸랐다. 어느새 보니 그는 나에게 맞춰 허리를 위아래로 흔들고 있었다. 눈가리개가 흠뻑 젖은 걸로 보아서는 아무래도 의식적인 행동은 아닌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조르고 있다는 게 더 화났다. 더 이상은 눈가리개와 입마개를 하는 의미가 없다. 매듭을 뜯어내듯이 잡아 풀었다.
태을이 눈물로 흠뻑 젖은 눈을 뜨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하……!”
그리고 바로 콜록거리며 나를 슬프게 올려다봤다.
“죄, 죄송……해요.”
“뭐가 죄송해.”
“기분 좋아서…….”
“!”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흐윽……!”
페니반을 뿌리까지 쳐넣었다. 본인의 성기를 참고해 만든 이 도구는 얄밉게도 그의 전립선을 정확하게 누르는 모양이었다. 이건 다들 결국은 자기 자신을 좋아한다는 암시일지도 모른다. 여자가 가짜 좆으로 남자에게 박는 이 장면에 이렇게 심오한 의미가 있었다. 이 소설에도 나름의 멋이 있는 것이다. 남주인공이 박혀서 신음한다는 것만 빼면.
“태을아. 아니라고 해. 빨리 아프다고 해.”
눈물이 울컥 밀려 나왔다. 결정적인 순간에서만 나와야 할 여주인공의 눈물이 치밀어 올라왔다. 이상하다. 이 소설은 분명 발랄하고 밝은 소설일 텐데, 왜 나는 이렇게 괴롭지? 피폐물로 돌아온 것 같다.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땀에 젖은 남자의 몸을 내리누르고 억지로 다리를 잡아 벌린 채 그 안을 범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웠다.
“아!”
태을이 허리를 비틀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죄, 죄송, 해요. 전혀…… 안, 아파요. 흐윽, 아앗, 응, 은하 씨가, 고통을 지우니까…… 이젠, 기분 좋기만…….”
“그런 말 하지 마.”
“저도, 이제는 다른 분들처럼…… 이전으론 돌아갈 수 없게, 됐……!”
“안 돼. 죽지 마!”
강태을의 남주인공으로서의 수명이 끝나 갔다. 처음부터 박으면 안 됐다. 이 소설을 전체 이용가로 놔두고 작가가 고민하다 결국 다시 내 자아와 기억을 지우게 놔뒀어야 했다. 후회된다. 기어이 내가 #후회녀 키워드까지 섭렵하고 말았다.
그의 안쪽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나는 괴로워했다.
“너까지 마조히스트가 되면 우리 소설에 인간은 안 남아.”
그러나 그는 처연하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은하 씨는 저를 의심했지만…… 저는 은하 씨, 자리를…… 아읏, 아앙…… 위협하고 싶진, 않았어요.”
“!”
이렇게 기특한 생각을!
드디어 본인이 마조가 되면 내 자리를 위협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남주가 나타났다. 하필 남주로서의 수명이 꺼지기 직전에 말이다.
마지막 남은 남주를 잃는다는 것.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일 중에서도 손꼽게 피폐했다. 나는 눈물 젖은 그의 뺨을 툭툭 쳤다. 어느새 내 뺨도 눈물로 젖어 있었다.
“정신 차려.”
“더 이상은 한계, 아, 아아……!”
강태을이 허리를 활처럼 휘며 사정했다.
아, 짜증 나!
남주인공의 정액은 천으로 된 정조대를 뚫고도 거품을 내며 새어 나왔다. 더 이상 속옷을 입는 게 의미가 없다. 팬티가 온통 음액투성이가 됐다. 태을은 눈동자에 하트를 띄울 기세로 나를 올려다봤다.
“은하 씨, 좀 더……!”
“닥쳐.”
뺨을 때렸다.
그러자 태을이 더 좋아했다.
“하앙……!”
“아!”
남주인공이란 존재는 본래 한 번 사정한 걸로 만족하지 않는 법. 태을이 내 허리에 다리를 세게 감은 채 적극적으로 허리를 흔들었다.
“타락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조금만 더어…… 흐앙…….”
“듣기 싫어.”
더 이상 돼지의 꿀꿀거림을 듣고 있어 줄 수가 없었다. 나는 천 뭉치를 다시 그의 입에 쑤셔 넣었다. 화려한 귀걸이가 잘 어울리는 회색 머리 미남의 얼굴을 엉망으로 다루는 내 심정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참혹했다. 이 와중에 이미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태을은 더 적극적으로 가짜 좆을 졸라 대며 애교를 부렸다. 심각한 일이었다.
감각이 연결되지 않은 페니반은 장단점이 분명했다. 쾌락에 약한 야설 여주인 내가 맨정신으로 버틸 수 있게 해준다는 장점, 그리고 그 멀쩡한 맨정신으로 이 꼴을 봐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간극에 나는 숨이 막혀 채찍을 들었다. 수퇘지 새끼의 등짝을 향해 휘둘렀다. 그가 맞을 때마다 성기에서 고장 난 것처럼 음액이 퓻퓻 튀어나와 정조대를 적셨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슬픔과 절망에 빠져 그의 몸을 헤집었다. 작가의 커서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깜빡일 뿐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이런저런 설정만이 쓰였다가 지워질 뿐이었다.
지금의 태을은 울부짖을 뿐이라 쓸모가 없으나, 멀쩡했던 시절의 태을은 맞는 말을 했다. 작가는 다음 편을 쓰지 못하고, 리메이크는 없던 일이 될 거다. 그렇게 우리 등장인물들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작가가 듣지 못할 기도를 올렸다.
“작가 새끼야……. 제가 도와드릴게요. 당신이 없던 시절처럼, 79편이나 쓴 <악마의 비바체>로 돌아가서 저희끼리 다음 편을 쓸게요.”
덧붙여, 그 편이 마지막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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