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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신입생(1) (2/167)



〈 2화 〉신입생(1)

『지금까지 따라와 주신 독자분들께는 정말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이렇게 연재 중단 공지로 찾아 뵙게 되어….』

-시발 또 연중이냐?

-다음 화 가져와! 다음  가져와!

-정신나갈거같애정신나갈거같애정신나갈거같애

-이 새끼를 또 믿은 내가 병신이지

-아아…또 《완성》해버린거냐…


이 몸에 빙의하기 전, 나는 내가 쓰던 소설의 연중 공지를 올렸다.  번째 연중이었다.

글이 써지지 않아서. 같은 일반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취미에 가까웠다. 빙의물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한 이후, 자기가 쓴 소설로 빙의하는 망상을 위한 재료를 만들기 위한 취미.

그 취미는 연재 중단 하나만은 아니었다. 나만의 작은 소설, 독자가 거의 없는 마이너 중 마이너. 그런 소설들을 끝까지 따라가는 것도 취미활동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작품의 연중 공지를 올린 그 날, 그렇게 따라가던 마이너 소설 하나가 완결이 났다.

그 소설의 이름은 [아카데미의 낙제생]. 최신 편당 조회수는 1. 나를 제외하면 보는 사람이 없는 소설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왜 완결까지 연재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이었다. 쓸 데 없이 세밀한 묘사로 가득 찬 설정 덩어리 소설이었으니까.

[이 세계의 결말은 멸망이었습니다. 당신이라면 이 결말을 바꿀  있을까요?]

그리고 소설의 작가 후기를 보았을 때, 나는 피식 웃었다. 작가가 후기에서 친 장난이 꽤나 재미있었으니까. 장단에 맞춰주듯이 클리셰대로 댓글을 달았다.


-완결 축하합니다 작가님. 배드 엔딩은 아쉽지만 마지막까지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의 그 문장은 무슨 뜻인가요?

ㄴ말 그대로입니다. 독자님이라면 이 결말을 바꾸실 수 있을까요?

ㄴ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싶네요. 저는 해피 엔딩을 좋아하거든요.

ㄴ그러면 한 번 해보세요. 이 소설을 끝까지 봐주신 독자님이라면 하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꽤나 재미있는 장난이었다. 자신처럼 빙의물 클리셰를 따라하는 취미가 있는걸까 싶었으니까. 그때 갑자기 댓글에 답글이 달렸다. 작가가  답글이 아니었다.


ㄴ이 새끼  소설은 연중하더니 남의 소설이나 쳐보고 있었네.

ㄴ소설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냐? 그래, 보내준다. 대신 바라던  아닐거다.

소설 쓰는 계정과 읽는 계정을 분리했는데도 나를 알아본 댓글. 내 취미까지 간파한  보고 소름이 돋아 나는 댓글을 삭제하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나는 [아카데미의 낙제생]의 세계에 들어와있었다. 내 소설의 히로인, 루시아 그란데우스의 몸에 빙의한 채.

“좆됐네.”

그리고 이건 매우 큰 문제였다. 내가 설정한 루시아 그란데우스는 궁술과 정령술을 쓰지만, 압도적인 정령 친화력에 비해 낮은 수준의 궁술 탓에 완결 직전에는 거의 정령술만 사용했으니까. 그게 왜 문제냐고 묻는다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세계관에는 정령이 없었다. 즉, 나는 미쳐버린 망작 소설의 파워 밸런스에서, 주무기를 잃은 채 살아남아야 했다.



***


내가 빙의한 소설의 장르는 아카데미물이다. 즉, 소설 속 주 무대는 아카데미다. 영웅 사관학교. 현대에 갑자기 발생한 게이트를 해결하기 위한 영웅들을 육성하기 위한 기관. 그리고 [아카데미의 낙제생]은 주인공이 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빙의 이후, 일주일 동안 집과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본 결과,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첫 번째, 지금 시점은 원작 시작 직전이다. 즉, 주인공은 아직 사관학교에 입학하지 않았다.
두 번째, 내가 빙의한 이 몸의 이름은 유시아. 주인공과 같은 학년이 될 예정이다.
 번째,  몸의 주인은 가족이 없다. 친구도 없다. 등록된 신원을 제외하면 정말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니까 진짜 엑스트라물 주인공이네."

다년간의 웹소설 짬밥으로 내가 처한 상황을 깔끔히 정리했다. 그리고 이런 빙의물 장르에서는 당연히 주인공에게 특전이 주어지는 법이다. 스토리를 바꾼 만큼 상태창에서 스탯을 올리거나 상점에서 여러가지 능력을 살  있는 포인트를 주는 특전 말이다.

"상태창!"

아무 일도 없었다.

"스테이터스!"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다.

"시...시스템?"

마찬가지로 띠링! 하는 소리와 반투명한 창이 떠오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나는 끝내 이마를 부여잡았다.

"...이러면 나가린데."

[아카데미의 낙제생]은 망작소설답게 맛이 간 전개를 자랑했다. 주인공이 너무 빠르게 강해져서 중후반부부터는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도움이 안 될 정도인데, 파워밸런스에 따라가지 못하는 엑스트라는 심심하면 죽어나갔으니까. 즉, 맨몸뚱이로 덩그러니 떨어진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뜻이다.

"학교를 탈주할 수도 없고."

아니, 탈주할 수는 있다. 기본적으로 사관학교의 자퇴는 자유니까.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렇지.

하지만 [아카데미의 낙제생]의 엔딩은 세계 멸망이었다. 즉, 탈주해도 어차피 주인공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 그러므로 나는 상태창 하나 없이 맨몸뚱이 하나로 주인공을 도와  세계의 엔딩을 바꿔야했다.

"인생 하드모드네. 망할."

아무래도 좆된 것 같다.

***



"즉, 학생들은 세상의 안전을 지키는 영웅의 새싹으로써 타의 모범이 되는 행실을 보이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연설을  귀로 흘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연설이 지겨운지 멍한 얼굴을 한 학생들 사이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녹색이 살짝 도는 흑발이 인상적인 소년이었다. 빤히 바라보는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소년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돌려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머리색을 보면 역시 아직 각성은  한 모양이네.'

 소년의 이름은 이도영. [아카데미의 낙제생]의 주인공이었다. 가지고 있는 능력은 자연지체. 각성하면 머리카락이 완연한 녹색으로 변하며, 압도적인 마법 적성과 마나 친화력을 갖는 능력이었다. 나중에는 칼도 쓰지만, 초반에는 순수법사인 주인공에게 최적화된 능력이었다.

'각성까지는 한 달 정도 남았나.'

[아카데미의 낙제생]은 당연히 정상적인 소설이 아니었다. 주인공이 각성하기  고구마 장면은 대개 1~2화로 끝나는게 정상인데, 이 소설에서는 무려 20화를 할당해서 하루당 한 화씩 고구마를 먹여줬으니까. 게다가 쓸  없이 세세한 수련 장면만 또 20화를 쓴 맛 간 소설이었다. 그 덕에 정확히 언제 각성할지는 확실히 알지만. 참고로 지금  연설도 소설에 전부 실려있었다.

"이상으로 입학식을 마치겠습니다. 학생들은 질서에 맞춰 이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생각을 이어가던 도중 입학식이 끝났다.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어 주위를 살피자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주인공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한 듯, 주인공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은 뒤 나는 지시에 맞춰 발걸음을 옮겼다.

***



배정받은 기숙사는 꽤나 컸다. 적어도 내가 빙의하기 전 살던 원룸보다는 넓었다. 별 일도 없었지만 내심 긴장했었는지, 기숙사에 들어오자마자 피로가 확 밀려왔다. 나는 살짝 기지개를 펴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역시 사관학교인가. 지원은 짱짱하네."

TV, 컴퓨터, 냉장고, 침대  웬만한 가구들이 전부 설치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유일한 영웅 양성소라는 이름답게, 빵빵하게 지원을 해주는 모양이었다. 나는 터벅터벅 걸어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푹신한 촉감이 엉덩이에 와닿았다.

"하아...내일부터 어떻게 해야 하냐."

내일은 신입생 특별 실기시험을 치른다. 신입생들의 수준을 확인해서 커리큘럼을 진행하기 위함이라나 뭐라나. 원작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압도적인 꼴찌가 되어 비웃음을 사는 고구마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주인공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활 쏴본 적도 없다고..."

실기시험에서는 미리 등록해둔 주무기를 사용해서 시험을 치른다.  주무기로 등록된 무기는 당연히 활이었다. 문제는 내가 활을 쏴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까딱하면 주인공보다 못한 성적이 나올지도 몰랐다. 아니, 사실상 확정이었다. 주인공은 적어도 마법을  줄은 아니까. 게다가 주인공은 필기 성적이라도 1위지만, 나는 그런 것도 없으니  문제였다.

"아니, 빙의자 특전 하나 없이 어쩌라는건데."

한숨을 내뱉으며 침대에 완전히 몸을 뉘였다. 멍하니 천장을 올려보던 도중 가슴에서 답답함이 밀려왔다. 갑작스레 밀려온 답답함에 대충 손을 넣어 속옷을 벗어던졌다. 가슴을 조이던 압박감이 사라지자 그제야 조금 편안해졌다.

"좆같네. 진짜."

난 먼치킨 빙의물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거지. 여자가  채로 살아남기 시리즈를 찍고 싶진 않았다고. 속으로 투덜대기도 잠시, 이내 긴장이 풀려 노곤해진 몸에 졸음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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