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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마력충전(1) (7/167)



〈 7화 〉마력충전(1)


깜짝 놀라 찌푸려진 인상을 펴고 생글생글 웃고 있는 김유진을 바라보았다. 원작에서는 불 계열 마법사답게 화끈한 성격이라고 묘사됐는데, 어째 생글생글 웃는 꼴을 보면 화끈하다기보단 푼수 쪽에 가까운 것 같다.

뭐, 그건 그렇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김유진과 친구가 되면 얻는 이익은? 일단 첫 번째, 원작의 히로인이니까 친구가 되면 원작 흐름에 개입하기 쉽다. 두 번째, 히로인이니까 그걸 핑계로 이도영에게 어느정도 접근할 수 있다. 세 번째, 밥을 혼자 먹지 않을 수 있다.

뭐, 왜, 뭐. 난 지금 사관학교에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아싸의 아우라라도 풍기는지  거는 사람도 없어. 이대로라면 빼박 혼밥각이란 말이야. 이도영이한테 같이 먹자고 해볼 수도 있지만, 얼굴만 봐도 쪽팔린데 같이 밥을 먹자고 한다고? 적어도  못한다. 보기만 해도 쪽팔려서 입맛 떨어질 것 같아. 어, 근데 얘가 히로인이 되면 결국 같이 먹겠네. 젠장.

아무튼, 장점은 저 정도고. 단점을 생각해보자. 흠...딱히 있나? 별로 생각나는 건 없는데. 애초에 오히려 내가 먼저 접근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하고. 원작, [아카데미의 낙제생]에서 나온대로 흘러간다면 충분히 쓸만한 전력이 되는 캐릭터니까. 이 엿같은 세계는 멸망이 예정된 세상이기 때문에, 일단 살아남으려면  놈들이랑 커넥션을 맺어둘 필요가 있다. 멸망을 막건 뭘 하건, 일단 내가 살아야 뭐라도 하지. 안 그래?

뭐, 오케이. 대충 계산을 마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친구하지, 뭐."

"엥? 진짜?"

지가 말해놓고 뭐라는거야.

"문제 있냐?"

"아, 아니! 그냥, 처음 봤을때는 인상이 조금 차가워보여서...그, 조금 노는 애들 같았다고 해야하나."

뭐지? 시비 터는건가?

어이가 없어서 인상을 팍 구기자 김유진이 깜짝 놀라 울상을 지으면서 입을 연다.

"아...아니이...그, 그래도 그런 애는 아닌 것 같아서 말 걸어본거야... 그, 욕하는게 아니라..."

음, 그래. 알겠다. 애가 그냥 좀 멍청한 것 같아. 말투도 그렇고. 그래도 외모가 되니까 귀엽긴 하네. 확실히 외모가 무기인지, 이유 모를 친밀감이 느껴졌다. 어렸을 때 나한테 달려들던 고모네 멍멍이 같네.

"그래?"

"으, 응! 헤헤헤..."

 웃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헤실거리는 꼴도  강아지 같다. 사람만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멍멍이. 무의식중에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뭐하는거야?!"

오, 파닥대는거 봐. 머리를 쓰다듬자마자 감전이라도 된 듯 쭈뼛거리다가, 부끄러운지 손을 움찔거리며 안절부절 못한다. 새하얗던 볼이 지 머리카락처럼 새빨갛게 물이 들어있다. 아, 이래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건가. 애니멀 테라피도 좋네. 새빨개진 얼굴을 구경하며 손으로 머리를 몇  더 쓰다듬고 입을 열었다.

"왜?"

"왜...왜라니..."

이런 타입은 대충 적반하장으로 밀어붙이면 아무 말도 못할 것 같아서 진짜 해봤는데, 될 줄은 몰랐다.  괜찮은거 맞냐? 나중에 사기라도 당하는 거 아니야? 애가 많이 얼빵해보이는데. 그래도 마법사니까 머리는 좋으려나?

"너, 되게 귀엽네."

"으으...아까는 이런 인상은 아니었는데."

칭찬해줘도 뭐라 하네. 빡치게. 뭐, 그래도  덕에 기분 전환은 됐다. 교실 안은 공기청정기 덕에 숨 쉬기 불편하지도 않고.

"흠흠! 아무튼. 유시아? 시아 양?"

"그냥 시아라고 불러."

뭔 격식을 그리 차리냐. 애들끼리. 아, 나는 애가 아니긴 한데. 아무튼간에.

"그, 그럼 시아야! 우리 진짜 친구인거지?"

"응."

대충 대답해주자 김유진은 헤실헤실 웃더니  손을 잡았다. 화염계열 아니랄까봐 따뜻한 손이 내 손을 뎁혔다. 으음...초면에 머리를 쓰다듬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왜 이리 거리감이 없지.

"사실, 나 친구를 사귄게 처음이거든. 그래서 처음 사관학교 입학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싶었는데, 벌써부터 친구가 생길 줄은 몰랐어!"

"그러냐."

보기에는 참 인싸틱한 녀석인데, 사실 아싸에 내가 첫 친구라니. 이 무슨 씹덕망상의 결정체 같은 캐릭터냐. 어이가 없네. 어라...그런데 첫 친구라고?

잠깐만, 이제야 기억났다. 원작 소설, [아카데미의 낙제생]에서 김유진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 내가 아니라, 이도영이랑 친구가 된다. 즉. 원래 이 녀석은 내가 아니라 이도영에게 말을 걸었어야 한다는거고. 그렇다는 건...

아, 꼬였다.

어디서부터 꼬인거지? 아니, 애초에  이도영이 아니라 나한테 말을 건거지? 벌써부터 나비효과가 일어난다고? 아직 아무것도, 아니 아무것도  한건 아니지만, 실기시험 외에는 딱히 개입한 게 없는데?

쯧, 아무리 생각해도 건덕지가 나오질 않는다.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그냥 물어볼 수밖에. 뭐, 아직 크게 꼬인건 아닐테니까. 아마.

"야, 하나만 물어보자."

"응?"

"왜 하필 나한테 말 건거냐?"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김유진은 한껏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으음...그냥?"

에라이.

"아, 아니. 그,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그...뭔가 본능적으로 친밀한 느낌 같은게..."

성의 없는 대답에 인상을 살짝 구기자 김유진이 어쩔 줄 몰라하며 횡설수설한다. 뭐, 나도 얘한테서 뭔가 친근한 느낌이 들긴 하는데. 잠깐.

"친밀한 느낌이라고?"

"응...왜인지 자주 본 것처럼 친근한 느낌이 들어서..."

친근한 느낌. 친근한 느낌. 아, 설마.

원작 소설, [아카데미의 낙제생]에서 김유진이 타고났다고 하는 특성은 화염지신. 불 계열 마법에 강력한 적성과 화염 친화력을 지닌 특성이다. 참고로, 빙설지체를 가진 이설화랑은 상극인 특성이라고 하더라.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딴  아니라, 화염 친화력. 그래 원작에서도 비슷한 서술이 있었다. 이도영이 지닌 봉인된 자연지체의 친화력을 무의식중에 느끼고 접근했다고.

자연지체는 자연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는 특성. 즉, 그 하위 속성에 대한 친화력도 당연히 보유하고 있다. 원작에서는 자연지체가 품은 화염 친화력에 이끌린 거겠지. 화염지신에는 조금 모자라도, 강력한 친화력이 잠재되어 있으니까. 아직 각성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약간의 이끌림 정도는 있을거다.

원래는 그랬어야 했는데. 문제는, 여기에 순수 엘프조차도 뛰어넘는 자연 친화력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는 거지. 나 말이야.

하, 잠깐만. 좆됐네. 아니, 아니지. 만약 이 녀석이 내 자연 친화력에 이끌린 거라면, 그건 친화력에 이끌릴 만큼 순수한 마나를 지니고 있다는 뜻. 그렇다면 만약. 만약에.

"야, 그러면 부탁 하나만 하자."

"으응? 부탁? 뭔데?"

"네 냄새 좀 맡아봐도 되냐?"

"음. 냄새....머, 머, 뭐, 뭐라고?!"

 잠깐만. 너무 뒤도 안 보고 바로 박아버렸다. 아니, 그래도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니까. 만약 김유진에게서도 마나를 흡수할  있으면, 굳이 이도영에게 마나를 흡수할 필요는 없으니. 조금 노빠꾸로 가도 괜찮지 않을까. 괜찮을거다. 살짝 붉어지려는 뺨을 억누르고 당당한 태도로 김유진을 바라보았다.

"안 돼?"

"아, 아, 아, 안 되는 건 아닌데. 그, 그게..."

"그게?"

어제의 흑역사에서 내가 하나 배운게 있다면, 상대가 당황했을 때는 되묻기가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망할. 시련에서 얻어낸 성장을 통해 김유진을 몰아붙이자, 결국 김유진이 백기를 들었다.

"으으...후...아, 알았어! 맡아봐!"

뭔 긴장을 그렇게 하냐. 내가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김유진은 부끄러운지 살포시 눈을 감고 상체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그래."

허락해줬으니 사양 않고. 얼굴을 새하얀 목에 가져다대자 김유진의 꼭 감은 눈이 긴장으로 파르르 떨렸다. 빨개진 볼을 바라보며 목덜미에 코를 가져다댔다.

"히잇...!"

아 깜짝이야. 갑자기 목덜미에 와닿은 숨결이 간지러웠는지, 이상한 신음성을 내뱉은 김유진을 무시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풋풋한 살내음과 무언가 살짝 달콤한 냄새가  끝에 맴돌았다. 우유 비슷한 달큰하면서도 포근한 향기. 음...

"아니네."

"으...으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하아...역시 그렇게 쉽게는 안되는 건가. 개빡치네 진짜. 물론,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원작에서 주위의 마나를 정화한다는 서술은 오로지 자연지체에만 있었으니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깐 혹시나 하는 가능성에 꽤나 흥분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휴우우...그, 그래서 이거면 된거야...?"

"그래. 고맙다. 내겐 꽤 중요한 일이어서."

뭐, 그래도 순순히 협조해줬으니 삐딱하게 굴 생각은 없다. 고맙다는 표시로 머리를 한  더 쓰다듬어주자,  다시 얼굴이 빨갛게 변한다. 와, 얘 진짜 애완견 같네. 이러다가 턱도 긁어주면 골골대는거 아니야? 말랑말랑한 볼을 꾹 누르자 찹쌀떡처럼 뭉그러졌다가 퍼졌다.

"으에에...머하는거야..."

재밌네 이거. 툭 건드리기만 해도 퍼뜩 반응하는 게, 놀리기 제격이다. 한참을 볼을 만지작거리자 결국 울상을 짓는 걸 보며 피식 웃고 손을 떼었다. 새하얗던 볼에 손자국이 자그맣게 남아 빨갛게 물들었다.

"으으...너 이런 성격이었어?"

눈물이 살짝 고인 눈을 치켜뜨고 김유진이 나를 찌릿 노려보았다. 그래봤자 딱히 위압적이진 않았다.

살짝 삐친듯한 김유진을 무시하고 대충 고개를 돌리다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이도영과 눈이 마주쳤다.

"....!"

뭐지? 개빡치네?

눈이 마주치자마자 이도영이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눈을 피하고 고개를 숙인다. 뚫어지게 쳐다보니 숙인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는게 보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내가 저러면 저랬지, 저 새끼가 저 정도 반응은 아니었는데 갑자기 왜 저러지. 아.

설마 본건가. 방금 전에 김유진한테 한 그거. 하긴 교실에서 그랬으니, 아무리 구석자리라고 해도  보일리는 없겠지. 음...어...그러니까...

어제까지 쌓은 흑역사에 더해,  흑역사를 쌓아버렸다. 주위 눈치를 보면 쟤 빼면 본 사람은 없는 것 같긴 한데...아니, 그러면 뭐하냐. 저 새끼가 봤는데.

이제 저 새끼가  뭐라고 생각할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뭐, 틈만 나면 사람 체취를 맡는 미친 변태새끼 정도로 생각하지 않을까. 와! 신난다! 신입생 이틀차부터 주인공 대가리에 변태새끼 이미지를 깊숙이 박아버렸네!

"아...하하하..."

"시, 시아야? 갑자기 왜 그래?"

공허한 웃음을 흘리며 책상에 대가리를 박았다. 갑작스런 개지랄에 놀랐는지, 김유진이 내 몸을 잡고 흔들었다. 아, 시발. 다 꺼져 그냥. 말 걸지 마.

진짜 내 이미지 어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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