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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마력충전(2) (8/167)



〈 8화 〉마력충전(2)


30년 전, 게이트가 처음 열린 이후. 세상은 대격변을 맞이했다. 게이트에서 뿜어져나온 다량의 마나가 흘러들어, 각지에 던전을 형성했다. 던전에서는 인류의 주적, 통칭 몬스터라 불리는 존재들이 서식하고 있었으며, 던전 내부에 일정 이상으로 몬스터의 수가 쌓이면 대붕괴, 통칭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켰다. 다행히도, 게이트에서 뿜어져 나온 마나는 인류가 다루기에 매우 적합한 에너지원이었고, 인류는 그 힘을 다루는 기술을 각기 발달시켰다. 그 기술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뉘었는데, 신체에 마나를 깃들여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기술을 무예, 자신이 품은 마나를 통해 세계의 이치를 다루는 기술을 마법이라 칭한다. 개 중에는, 마나를 받아들여 신체 일부가 변질되는 이도 있었는데, 그러한 마나에 의한 변형을 '특성'이라 칭했다. 그러한 이들은...

"으으...졸려어..."

 자리에 앉은 김유진이 책상에 엎드려 앓는 소리를 냈다. 지루하냐? 나도 지루하다.

심심풀이로 읽고 있던 교과서에서 눈을 떼고 손에 턱을 괴었다. 따분한 눈빛으로 교관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어떻게 첫 날부터 수업을 할 수가 있지. 보통 적당히 자기소개만 하는게 정상 아니야? 다행히도 어제 능력 측정을 치렀기 때문인지 오늘 예정엔 실습 계열의 수업은 없었지만, 지루해 죽겠다. 진짜.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인지 학생 대부분이 대가리를 책상에 박을랑 말랑 하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자, 그렇게 마나를 다루는 힘을 얻은 인간은 다행히 게이트와 던전이라는 미증유의 재해를 극복했단다. 하지만, 마나라는 힘이 꼭 좋게만 작용한 건 아니었는데..."

사실 이 수업은 수면 보충시간이 아닐까. 흰머리가 희끗희끗 나기 시작한 교관은 학생들이 잠을 자건 말건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대충 고개를 돌리다 유일하게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이도영의 얼굴에 시선이 닿았다.

와, 역시 주인공인가. 진짜 이딴 수업에 어떻게 집중하는거냐.

경이로운 것을 발견한 시선으로 이도영을 빤히 바라보자, 이내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이도영이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기 전에 황급히 고개를 돌려 교과서를 바라보았다.

"헤에..."

김유진이 갑자기 이상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뭐냐, 왜 쳐다봐.

"뭘 봐?"

"헤헤...그냥!"

뭐라는거야.

티나게 말을 돌린 김유진은 이내 자겠다는 듯 책상에 엎드렸다. 아니, 좀 빡치게 하네. 그래도 귀여우니 봐줬다. 교관의 단조로운 목소리만 울려퍼지는 교실에서, 나도 이내 눈을 감았다.


***

"시아야! 점심 같이 먹자!"

"그래."

진짜 더럽게 지루했던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사관학교의 요리는 한국 유일한 양성소답게 호화로운 퀄리티로 나오므로, 웬만큼 입맛 까다로운 사람도 환장하고 먹는다고 원작에서 그러더라. 나? 나는 별로. 애초에  몸으로 빙의한 이후 크게 식욕을 느낀 적도 없고, 애초에 교실에서 나가자마자 다시 입맛 팍 떨어질텐데.

아, 잠깐만. 생각해보니 진짜 그러네. 급식을 먹으려면 당연히 교실에서 나가야하고, 교실에서 나가면 다시 기분이 더러워질게 틀림 없었다. 굶는건 에바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공기청정기를 바라보았다. 공기청정기는 친구가 없는 모양인지 자리에 혼자 남아 멍을 때리고 있었다. 음, 흐음...

"잠깐만."

수치심과 입맛을 저울질해본 결과, 이내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걸기  뻘쭘해질텐데. 차라리 빨리 해결하는게 낫겠지. 김유진에게 기다려달라는 말을 뱉은 후, 이도영에게 향했다.

"야."

"...어. 어? 응!"

뭐지 이 성조 변화. 뭔 3단고음이라도 내지르나. 당황하는 이도영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 씹. 얼굴 보니까 또 쪽팔려. 심호흡. 심호흡.

"후우...야. 혹시 같이  먹을 사람 있냐?"

"어? 그...없는데...왜?"

어제, 오늘 아침. 두 번에 걸쳐 열심히 쌓은 흑역사 때문에 생긴 수치심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도영도 내 얼굴을 마주하는게 뻘쭘한 모양인지 목소리가 떨리는게 훤히 보였다.

"그럼 같이 먹자고."

"아...그래. 나야 고맙지."

이대로 가면 무조건 혼밥각인 녀석을 구원해주는 내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영. 그런데 이 새끼, 아까부터  시선을 자꾸 피한다. 시발. 티 내지마 새끼야.  쪽팔려. 또 밀려오는 수치심으로 살짝 붉어진 볼이 보이지 않게 등을 돌렸다. 알아서 따라오겠지. 이도영을 뒤에 달고 다시 김유진에게 향했다.

"시아야, 쟤는 누구야?"

내가 다가가자 이도영이 누구냐고 묻는 김유진. 내 공기청정기라고 답할 수는 없고, 이름을 밝히기에는 생각해보니 내가 얘랑 통성명을 한 적이 없다. 뭐, 나란히 같은 사격장을 썼으니 이름 정도는 말할 순 있겠지만. 근데 진짜 뭐라고 소개해야 하는거지. 생각을 정리하던 사이 이도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난 이도영이라고 하는데. 너는?"

"난 김유진. 으음...혹시 시아랑은 이미 알던 사이야?"

"음...굳이 따지자면 어제 처음 대화하긴 했는데."

나랑 대화할 때랑은 다르게 멀쩡하게 말하는 이도영을 보고 살짝 어이가 없었다. 아, 그래, 변태새끼랑 일반인이랑 대하는데 차이가 있긴 하겠지. 근데 그걸 또 티를 내네. 개빡치게. 말 한   더듬고 대화를 나누는 이도영을 살짝 노려보았다.

"헤에에...어제 처음...그렇구나."

뭔데, 쟤. 왜 또 쪼개지.

뭔가 나와 이도영을 번갈아보며 음흉한 웃음을 짓는 김유진을 보고 인상을 살짝 구겼다.

"시아야! 이제 가자! 도영이 너도!"

내 표정을 보고 기분이 나빠졌다는 걸 알아챘는지, 김유진이 화제를 돌리려는 듯 내 팔을 잡아 끌었다. 알았다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도영에게 따라오라는 눈짓을 보냈다. 근데 벌써 친근하게 부르네. 얘 사실 인싸 아니냐? 아무리 친구가 없었다고 해도, 태생 인싸는 어떻게든 인싸가 된다는 건가. 헐. 개쩌네.

***



식사를 빠르게 마치고,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확실히 사관학교답게 급식은 만족스러웠다. 급식이 뷔페식으로 나오더라. 원작에서 서술한 걸 보긴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꽤나 문화충격이었다. 공기청정기를 데려간 덕에 밥맛 상하는 일도 없었고.

그래도 밥을 같이 먹은 덕분인지, 이도영과 조금 덜 어색해지긴 했다. 역시 한국인은 밥의 민족이 맞다. 밥 한 번 먹었다고 이렇게 일이  풀리네. 하지만 역시 가장  소득은.

[현재 보유중인 마나]

5/20

역시 마나지. 교실에서 나갈 때까지만 해도 4에서 미동도 않던 마나가, 밥 좀 같이 먹었다고 1이 회복됐다. 개꿀. 하루 할당량의 절반은 벌었네. 그래도 아직 한참 부족한 양. 앞으로 마나 걱정 없이 살려면.

"역시 더 친해져야하나."

"응? 뭐라고?"

무의식중에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무슨 뜻이냐는  김유진이 얼굴을 들이민다. 뭐, 왜, 치워.

"아무 것도 아냐."

"흐으음...알았어!"

내 성의 없는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김유진은 또 아까 지었던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아, 얘 왜 자꾸 이러지. 아까부터 내가 뭐만 하면 자꾸 음흉하게 웃는데. 외모가 되니 망정이지, 보다 보니 애가  이상해보인다.

"그런데 도영이랑은 어쩌다 알게 된 거야?"

흐음? 이건 왜 물어보는거지. 설마 벌써 관심이 생긴건가. 이걸 벌써 히로인 역할을 해서 대단하다고 해야 되나?
음, 근데 얘네 둘이 아예 사귀어버리면 마나를 충전하기 오히려 더 힘들어지려나. 어차피 원작에선   다보기 전까진 사귄다는 묘사는 없으니 상관 없을 것 같긴 한데.

그건 그렇고  질문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강제로 끌고가서 냄새를 맡은 사이? 아무리 생각해도 에바잖아. 시발. 진짜라는게 더 골 때리지만.

"그, 그냥 어쩌다보니 알게 됐는데."

"그런 것치곤 꽤나 신경 쓰는 것 같던데?"

아, 마나때문에 조급해서  번 쳐다봤었는데, 그걸 들키네. 뭐, 신경 쓰는 건 맞으니까.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그렇구나!"

그러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김유진.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점심시간도 끝났는데 교관은 대체 언제 들어오냐...

***



방과 후, 주문한 화초가 배달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받고 빠르게 기숙사로 향했다. 보관소에 들어가자 화초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하나하나 들고 내 방으로 옮기자, 금새 기숙사 안이 식물로 가득찼다.

"아, 이제야 좀 낫네."

상쾌한 감각까진 아니어도, 어제처럼 불쾌하진 않은 공기. 이제서야 숨이 조금 트이는 느낌이었다. 약간이나마 맑아진 머리로 상태창을 띄워 보유 마나를 확인했다.

[현재 보유중인 마나]

3/20

점심에 봤던 5/20에서 하루 할당량인 2만큼 차감된 양. 점심 이후엔 이도영과 별로 접촉이 없어서인지, 딱히 마나 양이 바뀌진 않았다.

"역시 그렇게 자리가 멀면 마나 흡수하긴 글렀나."

그냥 내일부턴 조금 가까이 앉을까. 이제 어색한 것도 좀 풀었고. 아니, 그래도 바로 그렇게 가까이 가긴 조금 그런데.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대충 생각을 끝내고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


아침에 일어나니 확실히 불쾌감이 덜했다. 어제 식물을 산 보람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으그그..."

가볍게 몸을 풀어준 뒤, 적당히 몸을 정돈하고 기숙사를 나서 학교를 향했다. 바깥 공기는 여전히 불쾌했다.

"아 진짜 저혈압이라도 있나. 아침만 되면 기분이 거지같네."

저혈압이 아니라 그냥 바깥 공기가 별로인거지만. 살짝 밀려오기 시작하는 두통에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시아야! 안녕!"

"그래."

교실로 들어서자 김유진이 인사를 건넸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아, 역시 교실이 최고야. 공기청정기 만세. 이도영을 잠깐 바라보았다가 시선을 옮겨 예정을 확인했다.

어제와는 다르게 실습 시간이 꽤나 많이 잡혀있었다. 적어도, 오후 시간에는 마나를 어느 정도 소모할 걸 각오해야 할 것 같았다.

"으음...역시 급식 같이 먹는 걸로는 부족한데. 진짜 몰래 말을 걸어야하나..."

"헤에..."

부족해질 마나에 고민을 쌓던 도중, 옆에서 누군가가 작게 탄성을 흘렸다. 당연히 김유진이었다. 이번엔 또 뭐 때문에 저러냐.

"으, 응? 아무것도 아니야!"

의문 섞인 시선을 보내자 고개를 젓는 김유진. 아, 그래.  마음대로 해라. 그러던가 말던가. 대충 고개를 돌리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아침시간을 보내던 도중, 교관이 들어왔다.

"다들 적응은 끝냈는지 모르겠군."

그렇게 말한 교관은 고개를 돌려 학생 전원을 훑어보았다. 들어오자마자 꽤나 소란스럽던 교실이 단숨에 조용해지는게, 저게 카리스마인가 싶긴 했다.

"미리 오늘 예정은 확인했겠지. 아직 컨디션이 제대로 맞춰지지 않았다면 오늘까지 적응을 끝내는  좋을 거다."

그렇게 말하던 교관은 잠시 말을 쉬었다가 씨익 웃으며.

"내일은 1학년 종합 대련시험이 있을 예정이니까."

내게 폭탄을 떨어뜨렸다.

아니, 입학 4일차부터 대련 시험이라고? 미친거 아냐? 잠깐만, 근데 그러면 마나가.

[현재 보유중인 마나]

3/20

아무래도 오늘 마나를 겁나 벌어야 할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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