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마력충전(3)
“좆됐네….”
점심시간 직전, 지금까지 이도영에게 접근할 틈이 전혀 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반 한복판에서 다른 사람 몸에 코를 들이박기는 조금 그렇기도 하고. 어제 김유진한테 하긴 했지만, 그것도 이도영한테 들켰으니까. 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안다. 그리고 이도영이랑 김유진은 경우가 다르기도 하고.
솔직히 말해서, 엄청 시선 끌고 있으니까. 저 새끼. 능력치 측정 시험 꼴찌라는 건 그렇다쳐도, 한 머저리가 시험 후에 교관한테 깝쳤다가 조져진게 며칠 전인지라. 아직까지 그 후폭풍이 남아 꽤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거다. 뭐, 그 관심이 좋은 쪽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도영에게 다행인 점은, 괜히 시비 털다가 교관한테 걸려서 그때의 그 머저리처럼 되고 싶지는 않은지, 직접적으로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은 없다는 거다. 물론, 딱히 말을 거는 사람도 없지만. 날카로운 아싸각이시라는 거지.
아, 근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네. 매일 인상을 찌푸리고 있어서 그런가. 김유진은 의외로 다른 사람들이랑 친해진 모양인데, 나는 아직 친구가 얘를 빼면 없다. 뭐, 딱히 이제와서 애새끼들이랑 친구 먹을 생각은 없기도 하고.
“애초에 쟤 말고는 별 관심 없지만.”
까놓고 말해서, 이 반, 아니 1학년 대다수는 미래에 쓸모가 없다. 원작, [아카데미의 낙제생]에서 주연이었던 재능충들만 껴안고 가도 힘들 판에, 별 떨거지들까지 관리하기엔 내 능력이 부족하거든. 그리고 애초에 관리할 생각도 없다. 쓸모가 없으니까.
뭐, 그렇게 말은 하지만, 지금 친해진 원작 인물도 김유진 하나뿐이라는 건 웃기긴 하다. 이도영은 솔직히 좀 애매한 사이고. 내가 쟤랑 친해진 게 맞긴 한가? 친구라기보단 밥만 같이 먹는 사람 같은 느낌인데.
어제 점심시간에 보니까 어째 주인공과 히로인 아니랄까봐 걔네 둘이서 거의 대화를 주도하더라. 난 적당히 맞장구만 쳐줬고. 저 새끼, 내가 말 걸면 아직도 뻘쭘해하던데.
점점 쓸 데 없는 곳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상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옆자리에 있는 김유진을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뺨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뭐지.
약간의 호기심을 담아 계속 쳐다보고 있자, 이내 시선을 느꼈는지 김유진이 고개를 돌려 내 눈을 마주보았다. 눈이 마주쳤는데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계속 빤히 바라보자 당황한 모양인지 이내 김유진이 입을 열었다.
“무,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얘를 좀 어떻게 하면 마나 공급이 수월하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답이 없는데.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와, 징한 새끼. 어떻게 저렇게 수업에 집중할 수가 있지. 아주 초롱초롱한 눈으로 교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괜히 필기시험 유일한 만점자가 아니라는 건지.
아니, 그보다 지금 중요한 건 어떻게 접근하냐인데. 딱히 생각나는 방법이 없다.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애초에 지금은 필기 수업이니까. 자리도 멀어서 마나 공급하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훈련 시간을 기대해봐야 하나….”
답답한 마음에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래, 적어도 오후에 있을 훈련에서는 어느정도 접근할 기회가 생기겠지. 훈련 도중 마나가 떨어질수도 있다는게 불안하긴 한데, 그래도 지금 접근하는 건 무리가 있으니까.
아니면 점심시간에 한 번 기회를 노려봐도 되니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시선을 그대로 이도영에게 향한 채, 생각을 정리하던 도중. 이도영이 내 시선이 따가웠는지 나를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
저 새끼, 또 눈 피하네. 그 반응에 저 새끼한테 쌓았던 흑역사가 또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하, 시발. 진짜. 적응될 때도 됐는데 아직도 생각하기만 하면 좆같아지네.
“하아….”
몰려오는 수치심에 한숨을 한 번 푹 내쉬고 고개를 돌리자, 김유진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홍채의 불꽃의 형태가 일렁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뜨거운 눈빛이었다. 뭔데 이번엔 또…얘 진짜 이상해.
“시아야….”
“왜.”
“내가 꼭 도와줄게!”
갑자기 나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영문 모를 도움 선언을 한다. 뭐지. 뭘 도와준다는 거지?
“어…고맙다고 해야 하냐?”
“아냐! 내가 도와주고 싶어서 도와주려는건데!”
그래서 대체 뭘 도와준다는 건데. 어이가 없네.
“여러가지로! 난 그래도 꽤 아는 게 많으니까!”
어이가 없어서 묻자 저딴 대답을 하더니 갑자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다. 얘 진짜 어디 아픈거 아니냐.
아 모르겠다. 얘 때문에 나까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는 것 같다. 대충 고맙다는 말을 해준 뒤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
오늘도 필기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어제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이도영을 불러서 급식실을 향했다. 그리고 급식실에서 음식을 받아 어제처럼 자리에 앉으려던 순간.
“시아야! 오늘은 내 앞에 앉을래?”
어제처럼 김유진의 옆에 앉으려던 순간, 김유진이 내게 이상한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 뭐, 어쩌라고.
“왜?”
“얼굴 보고 이야기하면서 먹으려고!”
아, 뭐. 그래.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김유진의 앞에 앉았다. 김유진과 이도영이 대각선을 그리며 앉은 탓에, 내가 앉은 자리는 이도영의 왼쪽이었다.
마주보고 앉았던 어제와는 달리, 조금 더 근접해서 앉은 덕분인지 공기가 한 층 더 맑게 느껴졌다. 폐를 가득 채운 상쾌한 공기가 찌릿하게 척추를 간질였다. 찌푸려졌던 얼굴이 살짝 펴졌다.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고 있는 김유진과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까 이야기하면서 먹는다는 말을 한 것 치곤, 딱히 그리 어제에 비해 말을 많이 하지도 않았다. 왜 굳이 그런 핑계를 댄 거냐는 의문이 담긴 눈빛을 김유진에게 보내며 식사를 하던 도중, 우연히 이도영과 손이 부딪혔다.
“아.”
불편하네 이거. 지금보니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이도영은 왼손잡이였다. 차라리 자리를 바꿔 앉았어야 했는데.
“아, 미안.”
“됐어.”
딱히 미안할 것 까지야. 내가 지금 좀 스트레스가 많긴 해도, 다른 사람 손 좀 닿았다고 짜증 낼 정도로미친 놈은 아니었다. 아니, 이제 년인가. 아무튼.
쓸 데 없이 각 잡힌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가, 다시 폐로 들어오는 상쾌한 공기에 표정을 풀었다. 무슨 마약도 아니고, 어이가 없네. 피식 웃으면서 식사를 다시 시작하자 김유진이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고보니 시아랑 도영이는 처음 만났을 때 어떻게 만났길래 친해진거야?”
“…그리 안 친한데.”
아, 씨. 깜짝이야. 먹다가 놀라서 뿜을 뻔했잖아. 이도영도 놀라긴 놀랐는지, 사레가 들린 듯 컥컥거린다. 어휴, 병신. 팔을 들어 등을 툭툭 쳐주자, 김유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안 친하다기엔 되게 행동이 자연스러운데?”
“아니, 그건….”
그러고보니 그러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쪽팔려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었는데, 자리에 앉고 나니까 갑자기 그런 거부감이 사라져 있었다. 뭐지. 갑작스레 든 이질감에 고민에 빠지려던 찰나, 김유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응? 둘이 어떻게 만난거야?”
아, 묻지마 제발. 또 다시 밀려오는 수치심에 뺨이 살짝 붉어졌다. 입을 닫은 채, 김유진의 시선을 조용히 마주하던 순간이었다.
“아…그게….”
이도영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야, 잠깐만. 진짜? 진짜 말한다고? 이걸?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손으로 이도영의 입을 막았다.
“읍!”
“그, 그게 왜 궁금한데.”
이도영의 주둥이를 막은 채, 이 사태의 근원을 노려보자 김유진의 안색이 살짝 질렸다. 눈깔에 내가 너무 힘을 줬나. 아니, 약간 시선이 비틀어져 있는게 나를 보는게 아니라….
“저, 저기? 시아야? 도영이…죽을 거 같은데?”
아.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이도영을 바라보자, 숨이 막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다. 바로 이도영의 입을 막은 손을 풀어주자, 급하게 숨을 들이쉰다. 야, 근데 그렇다고 팔에서 힘을 갑자기 빼면.
땡그랑!
손을 떼자마자 이도영의 몸에서 힘이 확 빠지더니, 테이블에 올려진 접시와 물컵을 엎었다. 다행히도 엎어진 음식이 나와 김유진 쪽으로 오진 않았지만, 직격으로 맞은 이도영의 셔츠부터 바지는 음식이 잔뜩 묻었다. 이도영은 당황한 눈으로 음식으로 범벅이 된 옷을 내려다보았다.
"야, 미안하다…. 세탁해줄게."
아, 이건 진짜 좀 미안하네. 테이블에 있는 휴지를 몇 장 뜯어 옷에 묻은 음식을 닦아주며 사과의 말을 건넸다.
"그…. 괘, 괜찮아. 내가 할게…."
뭐가 괜찮아, 새끼야.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이도영의 몸을잡고 셔츠에 묻은 음식을 닦아냈다. 얼룩진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람이 성의가 있지. 뭐, 사실 닦으면서 가까이 가서 마나 흡수하는게 목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해준다는데.
"아, 아니! 진짜 괜찮으니까…!"
그나마 좀 멀쩡해진 셔츠를 내버려두고, 흠뻑 젖은 바지를 닦기 시작하자 이도영이 작게 비명을 질렀다. 이 새끼, 왜 이리 발광이지. 마나 좀 충전하게 가만히 좀 있어라. 다행히도 바지엔 음식은 거의 쏟아지지 않았지만, 대신 물컵이 그 위에 떨어진 모양인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리고, 닦을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내리자마자 깨달았다.
"아…."
시발. 왜 이 새끼가 하지 말라고 그랬는지 알겠네. 축축해진 옷감 뒤로, 지금 내게서 사라진 그것이 자신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아니, 아니.아, 시발. 그래. 나는 지금 여자니까. 그것도 꽤 미인이니까. 그럴 수 있긴 한데. 이해는 하는데. 아니, 씨발 이해 못해. 좆같네 진짜.
"그, 그냥 이제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
거의 빼앗듯이 내 손에서 휴지를 낚아챈 이도영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김유진은 완전히 새빨개진 얼굴을 숨기려는 듯 테이블에 거의 코를 박고있었다. 멍한 눈으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 그냥 이 새끼 죽이고 멸망 엔딩으로 달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