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화 〉마력충전(4) (10/167)



〈 10화 〉마력충전(4)


방금의 그 일 이후, 식사하는 내내 침묵이 자리를 맴돌았다. 김유진은 여전히 얼굴을 붉힌 채 음식만 노려보고 있었고, 이도영은 황급히 옷을 닦아낸 뒤 김유진과 마찬가지로 음식을 깨작거렸다. 그리고 나는….

“하아….”

여전히 멍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방금 전부터 완전히 박살난 멘탈 탓에 욕을 뱉어낼 기운도 남지 않았다.

“저….시아야…?”

“왜.”

진짜 그냥 죽을까. 아니, 쟤를 죽일까. 오늘만큼 이 몸뚱아리의 성별에 회의감을 느낀 적은 처음이다. 시발. 겁나 기분 더럽네. 남자새끼들한테 시선 끌렸던 것도 좆같았는데. 아예 나한테 그런 욕구를 품었다는 게 눈 앞에 보이니까, 차마 말로 표현할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그…그냥…!”

“그래.”

김유진이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듯, 운을 떼었다가 이내 입을 닫았다. 아, 진짜. 이게 뭔 꼬라지지. 급격히 현자타임이 밀려와 뒷목을 잡았다. 진짜 내가 살면서 이런 좆같은 일을 경험할 줄은 몰랐는데.

고개를 휙 돌려 이도영을 쏘아보았다. 방금 전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인지, 이도영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채로 테이블 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빵한 모습에 스트레스로 달궈진 머리가 팍 식었다.

그래. 저 새끼가  잘못이냐. 내가 병신같이 뻘짓한 게 잘못이지.

“…야.”

“어, 어! 응!”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다 이내 입을 열자, 이도영은 거의 팔짝 뛰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나게 몸을 움찔했다. 자꾸 의식하지 말라고. 개자식아. 또 밀려오는 수치심을 억지로 찍어누르고 입을 열었다.

“너,  옷 괜찮냐?”

“아…갈아입을 옷은 있으니까 괜찮아.”

갈아입을 옷이라. 하긴, 훈련할 때는 전투복으로 갈아입을 테니까. 전투복으로 갈아입으면 되겠지.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도영이 얼룩으로 지저분해진 옷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잡다한 생각을 멈추고 이도영을 향해 고개를 숙인  입을 열었다.

“그…미안하다. 내가 실수했네.”

“아…괜찮아.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내 잘못도 있으니까.”

“그래….”

그렇게 말한 이도영의 말에 고개를 까닥이고 시선을 돌렸다. 뭔데, 이  같은 분위기. 김유진은 언제 얼굴을붉혔냐는 듯, 다시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매단 채, 나와 이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쟤는 진짜 왜 저러는 걸까. 이젠 태클 걸기도 지친다.

“아무튼 미안하다.”

또 이상한 기색을 풀풀 풍기기 시작한 김유진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이도영에게  번 더 고개를 까딱여 사과를 보냈다. 말을 마치고, 다시 식사를 이어가기 힘들 정도로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침묵이 잠깐 흐르고,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나, 나는 먼저 가볼게…. 옷도 갈아입어야 하니까.”

“그래라.”

“잘 가, 도영아.”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뜬 이도영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김유진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도영이 자리를 뜨자 살겠다는 듯 한숨을 내쉰 김유진과 적당히 대화를 나누며, 상태창을 확인했다.

[현재 보유중인 마나]

6/20

점심시간 전까지 가지고 있던 양에 비하면 두 배나 늘어났지만, 여전히 부족한 마나. 그래도 어제 식사했을 때 얻은 마나는 1이었는데, 그 세 배나 모였다는 데 의의를 둬야 하나. 확실히,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회복량이 꽤나 많아졌다. 물론, 방금 전처럼 근접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아, 생각하니까  빡치네. 그래도.

“옆 자리에 앉은 의미는 있었나….”

그 꼬라지를 당한 건 매우 빡치지만, 옆 자리에 앉은 보람은 충분히 있었다. 마나 회복량이  배라니. 방금  일만 없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문제는 대련 시험이 바로 내일이라는 점이지만.

아무리 내가 사관학교 성적 자체에 그리 안중을 두지 않는다고 해도, 역시 아예 쪽도 못 쓰고 나가떨어지고 싶진 않다.

“역시 한 번 더 노려봐야겠네.”

적어도 최대 마나량의 절반은 채워둬야 안심이   같으니까.

그렇게생각을 정리하던 도중, 이상하게 조용한 김유진을 바라보자 어째서인지 볼을 한가득 붉힌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리더니 눈이 마주치자마자 훽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숙여 다시 바닥을 쳐다본다.

얘 진짜 왜 이래.

***

오후의 훈련이 끝났다. 그리 어렵진 않았다. 그냥 주무기를 활용해서 적당히 표적을 맞추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시스템이 적용되는 상태의 내게는 그리 어려운 훈련은 아니었다. 그래도  훈련에서 얻은 건 있었다. 시스템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수 있었으니까.

대충 오늘 알아낸 사실을 정리하면.

첫째, 내 스킬은 무조건 최대한 높은 랭크로 적용되는게 아니라 조정해서 적용이 가능하다.

둘째, 고랭크의 스킬일수록 적용하는데 소모하는 마나량이 늘어난다. 이 이유 탓에 첫 번째 사실이 중요하다는 거다. 필요한 만큼만 적용하면, 마나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으니까. 마나의 수급이 용이하지 않은지금 상황에서는 마나를 최대한 절약해야 하므로, 랭크 조정 기능은 필수라고  만했다. 애초에 너무 높은 랭크는 신입생 수준에선 별 필요 없기도 하고.  잡는 데 소 잡는 칼 쓰는 격이니까.

셋째, 한  조정해서 적용한 스킬은 당분간은 랭크를 높여서 적용할 수는 있어도 낮출 수는 없다. 즉, 까이는 마나를 고려하면 전략적으로 스킬 랭크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은, 어떤 행동을 취하는데 어느 정도의 스킬 랭크가 필요할지는 자동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더라. 이런 편의기능이 없으면, 스킬 랭크를 조절하기 개같이 힘들어질 테니까. 이거 하나는 다행이었다.

"그만. 유시아. 합격이다. 먼저 올라가도록."

"예."

교관의 합격 소리에 머리를 가볍게 숙여인사를 한 뒤, 여전히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반 학생들을 훑어보았다. 시선을 굴리던 도중, 김유진과 눈이 마주치자 곧 올라오겠다는 듯 김유진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대충 고개를 까딱여 답해준 뒤,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역시 한참 남았네. 아무래도 훈련 시간에 마나를 회복하는 일은 그른 듯 싶었다.

발걸음을 바삐 옮겨 교실로 향했다. 교실에 들어서자, 아직 다른 사람은 아무도 올라오지 않아 텅 비어있는 내부가 보였다. 가볍게 숨을 들이키자 맑은 공기가 느껴져 호흡이 한결 편해졌다.

잠깐. 왜?

고개를 돌려 교실 안을 둘러봐도 이도영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 이 맑은 공기는 어디서 나온 거지?

의문을 품고 교실을 돌아다니던 도중, 꽤나 금방 그 원인을 찾아냈다. 가까이 갈수록 공기가 더욱 맑아지는 무언가. 지금 교실에서 공기청정기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건, 이도영의 가방이었다. 정확히는, 가방 속에 들어있는 더러워진 이도영의 교복이었다.

“흐음….”

미묘한 탄성을 내며 가방에서 이도영의 옷을 꺼냈다. 축축하던 바지와 와이셔츠는 꽤나 말라서, 내 손이 축축해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교복이 얼굴에 가까워지자, 한층 더 맑아진 공기를 체감하며 손에 쥐고 있는 이도영의 교복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원인이라고…?”

아니, 그 새끼 체질은 그렇다 쳐도, 이건 그냥 교복인데? 그냥 입고 있었던게 다인데, 그런데도 이 정도로 공기가 맑아진다고?

“허…미쳤네.”

탄성을 흘리며 손에 들린 교복을 내려다보았다. 더러워진 교복이 마치 금덩이처럼 보였다. 고개를 돌려 상태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현재 보유중인 마나]

4/20

“부족해….”

훈련에서 스킬을 조금 사용했다고 2나 되는 마나가 깎였다. 오늘 시스템 유지를 위해 또 2가 차감될 걸 고려하면, 마나를  수 있으면 무조건 벌어둬야 했다.

“그래도 이건….”

옷이잖아. 그것도 이도영이 방금 전까지 입던, 곧 빨래통에 들어갈 옷. 내게 아직 남아있던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마나를 보급할 것을 요구하는 이성.  가지 상반된 필요가 머릿속에서 충돌했다. 초점이 흔들리기 시작한 시선으로 손에 쥐어진 교복과 현재 마나의 양이 띄워진 상태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힘이 가득 들어가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진동하는 손에 의해 가볍게 펄럭이는 옷에서상쾌한 향기 흘러나와 코에 닿았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머릿속 저울에, 엘프의 본능이라는 무게추가 더해졌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고개를 살짝 숙여 손에 들린 천에 코를 가볍게 가져다댔다. 그대로 숨을 들이마시자 푸릇푸릇한 숲의 향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짜릿한 쾌감이 척추를 가볍게 간질였다. 마치 비가 내린 이후의 산에서 산림욕을 하는 듯한, 마음을 평온히 진정시켜주는 냄새.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느낌에, 다시 한 번 숨을 들이켰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처음 느꼈던 꺼림칙함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서서히 깎여나가, 마침내 아무 망설임도 남지 않았다. 셔츠에서 배어나오는 상쾌한 향기를 탐닉하듯 숨을 들이켰다. 그 순간.

-끼익

“시아야!  왔어!”

김유진이 문을 열고 교실 내부로 들이닥쳤다.

아, 시발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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