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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화 〉마력충전(5) (11/167)



〈 11화 〉마력충전(5)

“시아야! 뭐…해…?”

활발하던 목소리가 급격히 힘을 잃는다. 점점 낮아지는 데시벨이 마치  평판처럼 느껴졌다. 아, 인생 진짜.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바닥까지 숙였다. 변명, 변명을 해야 하는데.

모르겠다, 시발. 도저히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내 인생 진짜 왜 이따윈데.

“어…그거…도영이 옷이지?”

“…그래.”

확인사살하듯 질문을 던지는 김유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변명은 개뿔. 이딴걸 어떻게 변명해. 격한 스트레스로 위에서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뱃속을 헤집었다.

감정이 한도를 넘어가면 뇌에서 퓨즈가 끊긴다고 했던가. 확실히 그런  같았다. 적어도 머리는 멍해졌으니까. 아무 생각도 이어지지 않는 상태로, 김유진의 입이 열리는 걸 바라보았다.

“그…시아야…?”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내 고막을 간질였다. 당혹스러움이 얕게 실린 목소리. 다음에 나올 말은 대충 예상이 갔다. 방금 내 행동은 내가 생각해도 미친 변태새끼 같으니까. 차라리 집에 가져갈 걸 그랬나. 아니, 그냥 맡지 말걸 그랬나. 후회도 잠시, 마치 사형을 코 앞에둔 사형수처럼, 체념을 마치고 김유진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아까 음식 묻은 게 신경 쓰였던 거야?”

뭐?

어, 그런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나? 그렇겠지. 상식적으로, 만난 지 며칠 안 된 남자  냄새를 맡는 미친 년이 어딨어. 여기 있긴 한데. 아무튼,  본거지? 적어도 내가 냄새를 맡았던  못 본  맞지?

벼랑 끝에서 동아줄을 잡았을 때의 감정이 이러할까. 벌벌 떨리던 다리에서 순간 힘이 풀려 주저 앉을 뻔했다. 다리에힘을 다시 주고 손에  옷을 내려놓았다. 아직, 아직 활로가 남아 있다. 떨리는 목소리를 필사적으로 가다듬고, 담담한 목소리를 연기했다.

“그, 크흠. 그래. 나 때문에 더러워졌으니까. 어떤지 상태를 좀 확인하려고….”

“흐음….”

젠장, 역시 안 먹히나? 의미심장한 콧소리를 내며 김유진이 미소를 지었다. 차마 김유진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침묵이 감돌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이 마치 유치원 선생님을 연기하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남의 가방을  뒤지면 안 되지! 이따 도영이한테 사과해!”

아. 살았다. 평판이 진짜 아스팔트에 갈린 것처럼 가루가 되는 일은 피했다. 몰려오는 안심감에 살짝 한숨을 토해냈다. 책상에 올려  옷을 힐끗 바라보았다가, 상태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현재 보유중인 마나]

7/20

얼마 들이키지도 않았는데, 3이나 되는 마나가 회복되었다. 게다가 방금 느꼈던 상쾌함을 고려하면, 아직도 교복에는 꽤 많은 양의 마나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위기를 넘기자마자, 갑자기  마나 덩어리를 포기하는  아까워졌다. 저거 하나면 당분간 마나 걱정은 없을지도 모르는데.

시선을 다시 김유진에게 돌렸다. 김유진은 왜인지 싱글거리는 낯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역시 아까운데. 찰나의 고민을 마치고, 이내 결정을 내렸다.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마침 쓸 만한 핑계도 하나 떠올랐으니.

“그…역시 빨아주는  좋겠지?”

“응…어, 응?”

김유진은 내 말을 듣자마자 당황한 낯빛을 띄웠다. 뭐, 내 성격이랑 조금 안 맞는 말이긴 하니까. 보통 세탁비를 던져주고 끝이지. 더럽힌 옷을 세탁까지 해주는 사람은 드물기도 하고. 그래도  지금 절박하니까. 어쩔  없다.

“교복 말이야?”

“그래, 내가 더럽혔으니까, 세탁비만 주긴 좀 미안하기도 하고.”

“아…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괜찮은 것 같아!”

미묘한 표정을 짓는 김유진은 잠시  동의하는 기색을 보였다. 생각보다 괜찮은 핑계였던  같네. 애매한 충족감에 살짝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그 전에 도영이한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아.”

그러네. 뭐, 달라고 하면 주겠지. 걔야 뭐, 어째 사람이 만만하니까. 대충 생각을 마치고 교복을 다시 이도영의 가방에 넣은 뒤, 자리로 향해 이도영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

훈련이 끝나고, 대부분의 학생이 교실로 돌아왔다. 아니, 한 명만 빼고 모든 학생이 돌아왔다. 내겐 불행하게도,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 한 명은 이도영이었다.

“망할.”

그래. 그러고보니 원작 이름부터가 [아카데미의 낙제생]이었지. 이 새끼. 아마 혼자 보충수업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원작에서도 그럤던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뭐, 신유정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그렇겠지. 아무리 허접하다고 해도, 노력하는 학생을 내버려두는 타입은 아니니까.

오지 않는 교관과 이도영을 기다리기도 잠시, 이내 다른 반의 담당 교관이 들어와 하교 지시를 내렸다.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와 김유진은 여전히 교실에 앉아 있었다.

“시아야. 그래서 어떻게 할거야?”

“걔한테 가봐야지. 언제 올  알고. 너는?”

“으음. 나도 갈래!”

김유진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마나 덩어리를 놓칠 순 없지. 그리고, 훈련장에 가면 혹시라도 이도영한테 마나 회복을 더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짐과 이도영의 가방을 챙겼다.

***

훈련장에 도착하자마자,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이도영과 담당 교관, 신유정이 보였다. 땀으로 흠뻑 젖어 바들바들 떨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는 근성이 마음에 들었는지 신유정은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다행히 늦진 않았나 보네.

“그만! 이 이상은 의미가 없겠군. 여기까지 하도록.”

“저…저는 더  수….”

“아니, 이미 한계를 몇 번이나 뛰어넘었다. 이 이상 해봤자몸이 망가질 뿐. 조급함을 버리도록.”

 말을 끝으로, 이도영이 주저앉자마자 신유정은 마음에 들었다는 듯 호탕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근성 하나는 굉장하군. 걱정할 필요 없다. 그 마음가짐대로만 한다면, 언젠가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

확실히 참교관이란 말이야. 저 교관.  말을 듣고 감동한 듯, 이도영의 눈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 음, 뭐. 확실히 감동적이긴 하네. 구경도 잠시, 소년만화라도 찍고 있는 듯 뜨거워진 분위기에서 눈을 돌려 옆을 향했다.

“와아….”

저 분위기에 반하기라도 했는지, 김유진이 이도영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뜨거운 시선을 보낸다. 오, 설마 히로인 이벤트인가. 살짝 기대되는 눈으로 김유진을 바라보자, 김유진이 이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래도 지금 보니까 교관님이랑 도영이…꽤 어울리는  같은데. 으으…”

신유정이랑 이도영? 설마 질투하나. 확실히 그리 나이 차이도 안 나니까. 원작에서는 그냥 조력자 포지션에서 비중이 사라졌지만, 지금은 조금 다를지도.

그나저나 오, 언제 이런 히로인 포지션을 잡았대. 솟아오른 흥미에 마음 속으로 팝콘을 씹기도 잠시, 김유진이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걱정 마, 시아야!”

뭔 걱정? 의문에 찬 눈길로 김유진을 바라보자, 생글생글 웃음만 흘리고 있다. 어이가 없네. 고개를 돌려 다시 훈련장 쪽을 바라보자, 신유정은 어느새 떠난 듯, 이도영이 자리에 앉아 혼자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도영에게 다가가 짐을 건넸다.

“야.”

“어…? 아, 고마워.”

고개를 숙이고 감사인사를 하는 이도영. 가까이 다가가자 다시 청량감이 느껴졌다. 그보다, 어떻게 해야하나. 그냥 직구로 박는게 낫겠지.

“야, 네  말인데.”

“으, 응?  옷?”

“그래, 점심시간에 더러워진 거.”

 말을 듣자마자, 이도영은 아까 그 일이 생각났는지 얼굴을 붉혔다. 시발.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용건을 입에 담았다.

“그거 내가 세탁해준다.”

“어…왜?”

왜긴 왜야. 마나 때문이지. 생각하니까  빡치네.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되냐.

“나 때문에 더러워진거니까. 내가 세탁해준다고.”

“그럴 필요 없는데….”

아, 빡치게 하네. 그냥 받지. 귀찮게.

설득을 관두고 가까이 다가가 가방을 빼앗아 들었다. 놀란 표정을 짓는 이도영과 김유진의 시선을 무시하고, 가방에서 더러워진 교복을 꺼내들었다.

“쯧, 해준다면 그냥 알겠다고 해라.”

꺼내든 교복을 대충 개어서 내 가방에 넣었다. 가방 안에 넣은 교복이 금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살짝 좋아진 기분에 입가에 미소를 내걸었다.

“아…그…고마워.”

내가 고맙지. 마나 개꿀이네.

***

대충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누고, 각자 떨어져 기숙사로 향했다. 기숙사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열고 이도영의 교복을 꺼냈다.

“오….”

꺼내서 살짝 코를 가져다 대자마자 청량한 향기가 달궈진 머리를 시원하게 식히는 느낌이 들었다.

“와, 목캔디 먹고 찬물 마시는 느낌이네….”

겁나 시원해. 어마어마한 청량감이 뇌까지 씻어내리는 느낌이었다. 직접 마나를 흡수했을 때보다는 덜하지만, 강렬한 충만감이 몸을 휩쓸었다. 그렇게 한참을 마나를 흡수하고, 이내 더 이상 들이마실 마나가 남지 않게 된 교복을 대충 세탁물 속에 집어던졌다.

“뭐, 언제까지 세탁해준다고는 안 했으니까.”

이번 주 안에만 가져다 주면 되겠지. 꽤나 상큼해진 기분으로 콧노래를 흘리며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현재 보유중인 마나]

10/20

오, 절반 넘겼네. 그것도 오늘 유지비용이 나간 후에 이 정도 남은 거니까, 확실히 기대 이상의 성과다.

내일 조금 더 수급하면 적어도 내일 마나가 부족할 일은 없겠네. 콧노래를 흘리며 침대에 누웠다. 푹신한 매트리스의 감촉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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