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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대련수업(1) (12/167)



〈 12화 〉대련수업(1)

이제 그리 불쾌하지 않을 정도로는 맑아진 기숙사의 공기를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창문 위에 고정시켜둔 수염 틸란드시아에 적당히 분무기로 물을 뿌려준다. 창문 위에 저렇게 풀떼기를 매달아두니까, 진짜 숲 속에 사는 느낌이네. 침대 옆에 놓은 화분에 심어진 산세베리아를 가볍게 쓰다듬은 뒤 침실을 나왔다.

“겁나 귀찮네. 진짜.”

거실에 놓아둔 아레카야자 화분의 흙을 손으로 꾸욱 눌러본다. 버석버석한게 수분이 부족한 듯 싶어 물뿌리개로 물을 흠뻑 뿌려주었다. 밭침에서 물이 흘러나올 때까지 물을 흠뻑 뿌린 뒤, 분무기로 잎에 살짝 분무를 해주었다. 확실히 식물이 참 좋긴 좋다. 뭐, 화분 몇  가져다 둔 걸로 마나를 회복할 수는 없다만, 그래도 숨 쉬기 편해지는게 어디야.

좆같은 미세먼지 진짜. 중국 새끼들. 미세먼지 작작 보내라고. 숨을  쉬겠잖아.

뭐, 미세먼지 미세먼지 하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공기가 아니라 마나라서. 공기청정기 같은 걸론 해결이 안되서 직접 식물을 키우는 거지만. 그래도 실내용 화초를 고를 때 미세먼지에 효과 좋다는 식물이 마나 정화 효과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사오긴 했다. 그런데 공기청정기라….

“이도영 납치마렵네.”

그 새끼 하나 설치해두면 굳이 식물 키울 필요 없을텐데. 그리고 식물은 임시방편일 뿐, 결국 제대로 마나를 흡수할 수 있는 경로는 이도영 뿐이니까. 빽빽한 숲이라면 혹시라도 마나 흡수가 가능할지 모르겠다만. 적어도 이 지역 근처에는 그 정도 숲은 없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이어지기 시작한 생각을 적당히 끊어낸 후, 몸을 정돈하고 짐을 챙겨 기숙사를 나섰다. 식물을 관리하느라 시간이 좀 지나 지각까지 꽤나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아, 시발.”

나오자마자 호흡기에 직격으로 밀려오는 역한 공기에 눈을 찌푸렸다. 진짜,  번을 경험해도 익숙해지질 않네. 또 밀려오기 시작한 두통에 이마를 부여잡고 바쁘게 발을 놀렸다.

바쁘게 걸은 덕인지, 얼마 걸리지 않고 교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진 청아한 향기에 그제서야 표정을 조금 풀었다.

“시아야, 안녕!”

“그래.”

자리에 앉자마자 옆 자리에서 김유진이 인사를 건넸다. 대충 고개를 끄덕여 대답해주고 상태창을 열었다.

[현재 보유중인 마나]

10/20

정확히 절반. 오늘 대련수업에서 사용할 양은 되겠지. 아마. 물론, 부족할지도 모르니 할 수 있는 한 더 모아야 할테지만. 시선을 돌려 잠시 내 마나셔틀을 힐끔 쳐다보았다.

대련 수업이 걱정인지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어있는 자세. 살짝 하얗게 질려있는 안색. 어차피 나중엔 다 씹어먹을 먼치킨 새싹이 저러고 있는 꼴을 보고 살짝 웃음을 흘렸다. 웃기네. 새끼.

시선을 다시 돌려, 저 앞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바라보았다. 이 몸뚱아리에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궁사답게 시력이 어마어마해서 굳이 시간표를 보러 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대련 수업. 흐음, 점심시간 전에 끝나는 건가. 어, 그럼 점심시간을 노려서 마나 회복은 무리겠네. 젠장.

“시아야! 오늘 대련 준비는 했어?”

“아니.”

뭐, 마나를 열심히 모으긴 했지만, 딱히 대련에서 어떻게 할지를 고민한 적은 없었다. 애초에, 그 정도는 시스템이 알아서 해주겠지.  시스템 믿어. 스킬 믿어.

“그럼 어제 뭐했어?”

“그냥 잤는데.”

“헐….”

요상한 감탄사를 내뱉는 김유진을 무시하고 앞을 바라보았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신유정이 당당한 걸음걸이로 들어왔다. 언제 봐도 강렬한 인상의 누님이었다. 뭐, 내 원래 나이에 비교하면 오히려 나보다 연하지만.

“다들 준비는 됐겠지. 곧 대련 수업을 하러 훈련장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그렇게 말한 신유정은 강렬한 시선으로  전체를 한 번 훑어보았다.

“뭐, 그리 긴장할 필요는 없다. 실전 경험을 위한 가벼운 대련이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형형한 눈으로 반을 노려보는 신유정. 말하시는 거랑 다르게 겁나 무거워 보이는데요. 아니, 그런데 애초에 배운 것도 없는데  벌써 대련이야. 원작자 새끼. 분명 되는대로 플롯 없이 쓰고 싶은 거 막 썼을거다. 나도 처음 글 써봤을 때 그래서 아주 잘 알아.

그렇게 잠시 쓸데 없는 생각을 하던 도중, 신유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수업은 매주 한 번씩 있을 거다. 그리고 입학식 다음 날 치렀던 능력치 평가 등수는 기억하고 있겠지? 그때 거둔 성적을 기준으로 대진표가 짜일 예정이다.”

그렇게 말한 신유정은 손을 들어 문 밖을 가리켰다.

“자세한 설명은 훈련장으로 이동해서 하도록 하지. 모두 훈련장 앞으로 나오도록.”

***



훈련장 근처 공터에 1학년 전원이 집합했다. 큰 공터에 북적거리면서 서있는 사람들을 보니 옛날, 급식 먹던 시절 햇빛이 쨍쨍한  운동장에서 집합한 채로 진행하던 아침조회가 떠올랐다.

그 땐 제발 한 놈만이라도 열사병으로 쓰러져서 조회 끝났으면 했었는데. 교실에서 나오자마자 매캐한 공기를 다시 들이키니까 지금 기분이 딱 그 기분이었다. 아무나  쓰러져서 야외수업 좀 취소해줬으면.  쉬기 너무 짜증나.

“시아야! 너는 대진표 누구랑 될 거 같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뭐, 이 녀석 상대는 알지만. 이설화겠지. 원작에서도 그랬으니까. 그 와중에 정작 원작 주인공의 대진표는 까먹었단게 유머다.

시선을 돌려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사실,  시점에서 이도영은 누구한테든 썰리는 동네북이라 상대가 누군지 굳이  필요는 없긴 하다. 어차피 걔도 허접이니까. 진짜 세계관 최약자들의 싸움이다. 가슴이 쪼그라든다. 뭐 이런거지.

“모르지 그건.”

생각을 정리한 뒤 김유진에게 시선을 옮기고 아까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고보니 얘, 원작에서는 이설화랑 조금 껄끄러운 관계였다고 했는데. 아니, 김유진이 혼자 쩔쩔매는 관계였던가. 아무튼, 자세한 사연은 기억이 안 난다만. 뭐, 불꽃이랑 얼음이니까. 척 봐도 조합이 구려보이긴 한다.

“다들 모였군.”

신유정의 목소리와 함께 1학년 담당 교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 신유정을 제외하면 딱히 별 비중은 없는 사람들이지만. 심심한 눈길을 보내며 바라보자, 이내 신유정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오늘의 대련은 대련 용으로 설치된 링에서 순서대로 진행될 예정이다. 알고 있겠지만, 대련 링의 방호 마법으로 상처를 입을 일은 없으니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물론, 고통은 그대로니까 주의하도록.”

신유정은 잠시 씨익 웃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일정 이상의 데미지가 축적되면 패배 판정이다. 물론, 그 데미지는 각자의 신체 능력에 따라, 그리고 피격 부위에 따라 달라지니 유의하는게 좋을거다.”

그 말을 마친 순간, 능력 측정 시험에서 사용했던 대형 모니터에 여러 개의 이름이 표시되었다. 신유정은 모니터를 손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기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사람은 순서대로 대련 링으로 향하도록.”

모니터를 확인한 여럿이 대련장으로 향하고, 이내 첫 번째 대련이 시작되었다.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링 안의 싸움을 멍하니 구경하던 순간, 김유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시아야. 다음 차례는 누굴까?”

“글쎄. 적어도 순서가 순위별은 아닌  같은데.”

역순이라기엔 이도영이, 순행이라기엔 김유진이 나가지 않았으니. 고개를 돌려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긴장하고 있는지, 빳빳히 굳어 있는 몸. 체질을 각성하지 못한 탓에, 성장이 더뎌 아직까지 애새끼처럼 보였다. 뭐, 사실 그 정도로 엄청 어려보이는  아니지만. 그냥 그렇다고.

“뭐, 순서는 모르겠지만 대련 상대는 순위에 맞춰서 짜주겠지.”

“역시 그럴까…?”

내 무신경한 대답에 김유진이 말끝을 흐렸다. 순위라는 말에 이설화를 떠올린 모양이다. 음. 뭐, 딱히 해줄 말은 없는데. 그러기도 잠시, 첫 번째 순서 대련이 끝나고, 다음 순서가 표시되었다. 아, 말이 씨가 된다고, 진짜 김유진이네. 상대는 당연히 이설화고.

“아….”

대련 상대가 발표되자마자 불안한 표정을 짓는 김유진. 음, 뭐. 그런다고 딱히 격려해줄 생각은 없는데, 원작에서 히로인 플래그였기도 하고. 대충 기억나는대로면, 먼저 이설화에게 패배한 김유진이 나중에 처절하게 패배하는 주인공을 보고 동질감을 느끼는 그런 전개였던걸로 기억한다. 근데 2위가 꼴찌한테 동질감이라니, 솔직히 이건 기만 아니냐?

잡생각을 이어가던 도중, 김유진의 얼굴을 보고 생각을 끝냈다. 쯧, 아무리 그래도, 눈 앞에서 아는 사람이 이런 표정을 짓는데 그냥 냅두긴 좀 그렇지? 내 성격상 격려는 못해주지만.

"야."

"으, 응?"

평소랑 같은 활력은 어디다 뒀는지, 몇 단은 내려간 목소리가 내 신경을 자극했다. 진짜 존나 답답하네.

"기왕 하는거면 당당하게 나가.  처져서 그러지 말고."

“...응!”

"김유진! 빨리 나오도록!"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유정이 김유진을 불렀다. 김유진은 내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내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링을 향해 달려나갔다.

음,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쪽팔리네. 무슨 소년만화도 아니고. 솔직히 오글거린다. 그래도 당당한 꼴이 보기에 낫긴 하다만. 생각을 이어가다가, 내가  말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아, 그나저나 공기청정기는 뭐하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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