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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화 〉대련수업(2) (13/167)



〈 13화 〉대련수업(2)

김유진과 이설화가 올라간 대련용  내부에서 얼음과 불꽃이 휘몰아친다. 꽤나 강렬한 기세로 몰아치는 화염에 살짝 휘파람을 불었다. 오, 역시 마법사들끼리 싸우는 게 화려하긴 하네.

“역시 1위랑 2위인가….”

“둘 다 괴물이네 진짜. 같은 신입생 맞아?”

예민한 청각에 들려오는 경악에 찬 목소리를 흘리며 링에서 눈을 떼고 시선을 뒤로 향했다.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 이도영의 모습을 찾는다. 시선을 이리저리 돌린지 얼마 되지 않아, 검녹색의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저기 있었네?

 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마법 세례에 넋이라도 나갔는지, 이도영은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멍청한 표정을 보고 피식 웃음을 흘린 뒤 가까이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야, 뭐하냐?”

“아.”

살짝 놀랐는지, 고개를 훽 돌려 나를 바라보는 이도영. 멍하니 링 위를 올려다보던 시선에 살짝 생기가 돌아왔다.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다시 느껴진 맑은 공기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무슨  있어?”

그렇게 가만히 공기를 음미하기도 잠시, 내가 불러놓고 입을  닫고 있자 이도영이 용건을 물었다. 음, 딱히 용건이라고 할  없고 숨 쉬러 온건데.

“그냥 저 앞은 공기가 답답해서 왔는데. 시끄럽기도 하고.”

실제로, 매캐한 공기를 계속 마시면서 남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정신이 나갈  같다. 이 몸뚱아리가 청각이심하게 예민하기도 하고. 내 대답을 들은 이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또 침묵이 이어지고, 그 침묵이 불편했는지 이도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왜.”

물어볼 거? 뭘 물어보려고 이렇게 뜸을 들인대. 무신경하게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향수 뿌리는 거 있어?”

이 새끼가?

겨우겨우 기억 속에 묻어뒀던 흑역사를 끄집어내는 말에, 수치심과 분노로 얼굴에 피가 몰리기 시작했다. 튀어나가려는 욕설을 겨우 참아내고 이도영을 말 없이 쏘아보자, 그제서야 이도영은 손사래를 치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거야!”

그래. 그렇겠지. 그렇지 않으면 오늘 내가  죽여버릴테니까. 솟아오르는 화를 겨우 참아내고 짜증 섞인 표정으로 대답을 뱉었다.

“…없어.”

“그, 그래…?”

아, 이 대화. 데자뷰가 느껴진다. 정신 나갈거 같아. 다시 치밀어오른 어색함에 입을  닫았다. 그러기도 잠시,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해결하려는 듯, 이도영이 말을 이었다.

“그…이상하게 너한테는 친근한 느낌이 들어서. 그리고 가까이 가면 뭔가 달콤한 향기가 나기도 하고….”

친근한 느낌. 저번에 김유진한테도 들었던 말이다. 원인은 아마친화력이겠지. 김유진도 그렇지만, 얘도 친화력 하나는 엄청나니까. 뭐, 내가 아니었다면 서로 끌렸을 정도로 강한 친화력들이니,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니, 오히려 화염 계열 친화력만 있는 김유진과는 다르게, 얘는 4대 속성 친화력이 전부 있을테니, 끌림이 더 강할 수도 있겠네. 달콤한 냄새는 뭔지 잘 모르겠지만. 하프엘프라서 그런가? 딱히 체취 관련 설정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

팔짱을 끼고 이도영을 가만히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내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이도영의 몸이 점점 뒤를 향했다. 떨어지지마. 다시 숨을 못 쉬겠잖아. 멀어지는 이도영에게 한 걸음 다시 다가가 거리를 좁혔다. 내게 쏘아지는 당황한 눈길을 무시하며 티가 나지 않게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입을 열었다.

“뭐, 친근한 느낌 정도는 나도 드는데.”

“그, 그래…?”

대답을 돌려주자마자 이도영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이제야 지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은 모양이다. 뭐, 나도 저번에 그  이후, 이불을 오지게 걷어찼는데. 아무래도 이불킥 동지가 생길 모양이다.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이도영을 보고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친화력이라. 생각해보면 친화력이라는 건 그 조합이 얼마냐 좋냐를 나타내는 말이니, 쌍방으로 작용하는게 당연하겠지. 어쩐지, 김유진이나 이도영은  걸기가 꽤 쉽더라니. 단순히 원작 인물이라서, 이미 알고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닌가. 뭐, 강한 친화력을 동시에 보유했다는 건, 거의 절친 이상으로 궁합이 좋다는 뜻이니까.

"달콤한 냄새는 조금 애매하지만."

"그…그래?"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이도영이 다시 말을 더듬었다. 그러더니 왼손을 들어 지 목덜미를 매만진다. 어, 잠깐만. 근데 저거 내가 코를 박았던 곳이잖아. 이런 씹…. 지금 코까지 박아놓고 모를 리가 없다고 따지는거냐? 그런 거냐?

치밀어오른 짜증에 입을 열려던 순간, 김유진이 올라갔던 링에서 폭음이 터졌다.

-콰아앙!

갑작스럽게 들려온 폭음에 이도영과 내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아, 진짜  좋네  새끼.

머릿속으로 헛소리를 중얼거리던 도중, 또다시 터져나온 불꽃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이거 설마 김유진이 이기는 거 아니냐? 원작에서 승패를 이미 읽은 나조차도 순간 헷갈릴 정도로 김유진의 마법은 강력해 보였다. 하지만.

‘역시 아니네.’

김유진의 불꽃이 달라붙어 맹렬하게타오르고 있는데도, 얼음으로 이루어진 벽은 녹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불과 얼음이라는 상성관계까지 감안하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실력차였다. 분함에 입술을 꽉 깨무는 김유진의 얼굴을 응시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이설화가 강하긴 하네. 김유진도 신입생이라고 치기에는 괴물인데, 저걸 저렇게 압도하는  보면. 농담이 아니라, 진짜 신입생 최강자들의 싸움이었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러고보니 이설화도 어떻게 하긴 해야하는데. 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아까 폭음이 들린 이후부터, 이도영이 링 위를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다. 음, 뭐. 부러운가 보네. 꽉 쥐고있는 주먹에 실핏줄이 도드라져있다. 힘이 가득 실려 하얗게 변한 이도영의 손을 힐끗 보고 입을 열었다.

"야."

"으, 응?"

자기가 힘을 주고 있다는 자각조차못했는지, 여전히 손을 꽉 쥔 채 내게 고개를 돌리는 이도영. 말 없이 손을 응시하자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힘을 풀었다. 어이가 없네 진짜.

"무슨 문제라도 있냐?"

여기서 제일 재능충인 놈이 이렇게 빌빌대고 있으니까 웃기긴 한데. 뭐, 사실 저러고 있는게 그렇게 재밌는 꼴은 아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이도영을 바라보고 있자, 이도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아니. 그냥 부러워서."

아, 부러우시구나. 근데 솔직히 나도 부러운데. 활보단 마법이 멋있지 않냐. 누가 나한테 '유시아, 너는 활보다 마법이 어울려.' 이래줬으면 좋겠다.
뭐, 진짜 어울리는  마법이 아니라 정령술이겠지만. 이 세상에는 정령이 없으니까. 중국산 미세먼지로 다 질식해 죽은 모양이지. 젠장.

그건 그렇고, 아까 김유진도 그렇고, 누가 주인공과 히로인 아니랄까봐 똑같이축 쳐져있네. 그나마 김유진은 얼굴이라도 예쁘니까 볼 맛이라도 나지, 남자새끼가 이러고 있는 건 그냥 짜증나는데.

"왜?”

"…나는 평생을 훈련해도저렇게는   것 같으니까."

음, 원작에서 읽었어. 처음 읽을 때는 다른 사이다패스물이랑 다르게  묵직한 전개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긴 했는데. 그 후로도 고구마만 주구장창 처먹이니까 그냥 짜증만 나더라고. 그렇다고 사이다가 시원했던 것도 아니고.

“그래?”

뭐, 그건 그거고. 딱히 달래줄 생각은 없다. 주인공이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 김유진은 맨날 활기차던게 우울해하는 꼴 보기 싫어서 달래줬다만, 너는 알아서 해야지. 맨날 그랬잖아.

“뭐, 그럴 수도 있겠네.”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 침울한 표정을 짓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위로나 격려의 말을 바랬다, 뭐 이런건가? 답정너잖아. 그럴 거면 왜 물어보는데.

“역시 그렇지…?. 차라리 사관학교를 그만두는게 나을까.”

뭐?

이건 아니지. 이러면 안되는데. 각성 이벤트는 한참 남았는데, 자퇴각을 잡는다고? 왜?

아, 이런 젠장. 원작이랑 다르게 나랑 김유진이 벌써부터 엮였구나. 2등, 4등이 꼴등이랑 다니는 꼴이니. 열등감이 심해질만은 하네. 그래도 이건 아니지. 니가 나가면 내 마나는 어쩌라고. 그리고 세계멸망은 어떻게 막을건데. 각성이야 어떻게 한다고 쳐도, 결국 그대로 흘러가면 세계멸망이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양 손을 이도영의 어깨 위에 올리고 눈을 맞췄다. 놀라는 이도영의 얼굴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건 안 돼.”

“…왜?”

왜긴 왜야. 마나가 필요하니까. 배드 엔딩은 막아야 하니까. 그리고 네가 없으면 나는 다시 미세먼지한테 호흡곤란을 겪어야 한다고. 그런데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지. 생각도 잠시, 코 앞에 있는 이도영의 얼굴에 더욱 맑아진 공기를 느끼자, 방금 전과는 종류가 다른 열기가 머리에 쏠렸다. 짜릿한 쾌감이 척추를 스치고 올라갔다. 뇌에 필터링이 풀리고, 생각하던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네가 없으면 숨 쉬기도 힘들어지니까.”

"아…뭐, 뭐?!"

어. 잠깐만.

상쾌한 쾌감으로 가득 찼던 머리가, 이도영의 당황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차갑게 식었다. 내가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엥간한 로맨스 소설에서도 보기 힘든 말인데. 이거.

아니, 아니, 그런거 아니야 시발. 급발진 고백 아니라고. 미친놈아. 다급하게 방금 내뱉은 말을 정정하려던 순간.

"시아야! 나 왔…."

김유진의 외침이 내 귓가에 들려왔다. 활발하게 나오다가 급격히 줄어드는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바로 옆까지 다가온 김유진의 얼굴이 보였다.

"어…그…방해해서 미안해…."

아니, 진짜 그런 거 아니라고. 정신나갈거같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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