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대련수업(3) (14/167)



〈 14화 〉대련수업(3)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것 같다. 하지만 괜찮다. 아니, 사실  괜찮아. 괜찮겠냐?

고개를 들어 이도영을 바라보자, 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차마 얼굴을 마주볼 수 없어서 시선을 피했다. 김유진은 어색한 표정으로 필사적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아, 배려 참 고맙네.

“…아니다. 방금 그거.”

이딴 오해를 사다니. 아니, 왜 그따위로 말을 해서. 미친 진짜. 아니, 그냥 처음부터 잘못했던게 아닐까. 머저리 같은 향수 드립 말고 그냥 처음부터 마나가 필요하다고 말할 걸 그랬나.

“그, 시아야? 그거…라면….”

인상을 찌푸린 채 바닥을 노려보고 있는 내 얼굴을 보고, 김유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와중에, 시선이 이도영을 잠깐 향했다가 다시 내게 돌아온다. 아, 진짜 정신 나갈  같아.

“방금 그거 고백 아니라고.”

 올라온 수치심과 짜증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끼며, 욕설을 내뱉는다. 진짜 왜 이딴 오해를….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침묵이 장내에 깔렸다. 인상을 가득 찌푸리고 있는 나와, 여전히 맛이 간 표정을 짓고 있는 이도영. 그 묵직한 분위기에서, 나와 이도영을 또다시 번갈아 쳐다보던 김유진이 이내 입을 열었다.

“그…고백한 게 아니라고?”

“…그래.”

고백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또 치솟기 시작하는 짜증을 꾹꾹 눌러담고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들은 김유진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저딴 표정인데? 그때, 김유진의 입에서 미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그런데 시아 너. 도영이 좋아하는  아니었어?”

뭐?

이건  개소리지? 미쳤나? 뭔 미친 소리야 대체.

하도 어이가 없는 소리에 정신이 가출하기도 잠시. 방금 전 들은 말의 해석이 끝내자마자, 뒷골이 빠드득 땡겨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진짜 뭔 개소리야. 미친.

“그게 뭔 개소…!”

“그, 그치만!”

생각과 동시에 튀어나온 내 욕설을 자르며, 김유진이 소리쳤다. 아니. 지금 소리 지르고 싶은  전데요. 어이가 없네 진짜.

“시아 너, 항상 표정 찌푸리고 있으면서도 도영이 옆에만 가면 막 웃고 그랬는걸….”

아니, 그건. 숨 쉬기가 힘들어서 그랬던 거고. 쟤 옆에 가면, 적어도 숨은 편안해지니까. 웃는 건 그런거지. 쓰레기장에 있다가 맑은 공기를 쐬면 드는 살겠다는 그 느낌.

“매일 수업할 때마다 도영이 있는 쪽을 계속 힐끔거리고….”

그건 어떻게 해야 마나를 수급할지 고민했던거고. 아니, 근데 너. 수업시간에 집중 안하고 나만 쳐다봤냐? 내 시선 방향은 어떻게 알고 있는건데.

“또, 혼잣말로 그랬잖아! 도영이한테 더 가까이 가고 싶다고!”

거리에 따라 마나량이 차이가 나니까. 근데 내가 혼잣말을 했었나.생각만 한  알았는데. 미치겠네. 그걸 다 들었다고?

와, 근데 진짜 막상 들어보니까 설득력 있네. 처음 들었을  개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던 주장이, 김유진의 말이 이어질수록 근거가 탄탄해졌다. 허, 사실 내가 나도 모르게 진짜 이도영을 좋아했던게 아닐까? 설득력이 넘치네 아주. 나도 내가 그 당사자가 아니었으면 내가 이도영을 좋아하는 줄 알았겠어.

근데 시발 아니라고. 내가 왜 남자새끼를 좋아하는데. 미쳤냐?

아무 생각 없이 굴린 작은 눈덩이가 스노우볼 마냥 커져서 눈사태로 발전한 느낌이다. 이게 이렇게 되네. 순간 반박할말이 떠오르지 않아, 꿀 먹은 벙어리마냥 멍한 표정으로 김유진을 바라보았다. 그런 내 반응에 기세를 탔는지 김유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저번에도 빈 교실에서….”

아, 잠깐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닥쳐.

 교실이라는 단어가 들려오자마자 손을 뻗어 김유진의 입을 막았다. 내 손에 의해 입이 막혀 읍읍대는 김유진과 눈을 마주치고 필사적인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우리 그 얘기는 접어두자. 알았다고.”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김유진의 모습을 보고나서야 손을 풀었다. 아, 미친. 하다하다 이걸 까려고 그러네.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 나서 시선을 돌리자 이도영과 눈을 마주쳤다. 방금 전 김유진의 말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눈을 마주치자마자 이도영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니, 아니라고. 솔직히 나도  말만 들으면 맞는 것 같긴 한데. 진짜 아니야.

 다시 장내에 침묵이 흐르고, 아까부터 계속된 충격에 삐걱대는 대가리를 빡세게 굴렸다. 이걸 어디서부터해명해야 하나. 진짜 돌겠네. 아무래도 저 새끼 체질을 까는 게 낫겠다.  전에 상황 정리부터 하고.

“먼저 하나 확실히 하면, 난 쟤  좋아해.”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내 말을 듣자마자 김유진이 그러면 왜 그런 짓을 한 거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도영? 그냥  화제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표정이다. 나도 동감이야. 이딴 해명을 해야한단 것 만으로 현자타임이 밀려오거든.

“그러면 왜…?”

“필요하니까.”

거의 5,700자 항의 메일을 보내는 독자 같은 기세로, 내게 질문하려는 김유진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말을 듣자마자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는 김유진. 이걸 하나 하나 설명해야하네. 돌겠다.

“내 체질은 조금 특이해서, 이런 도시에서는 마나 회복을 못해.”

정확히는, 마나 회복 뿐만 아니라 스킬 적용도 안 된다. 그냥 민간인이 된다는거지. 그것도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김유진과 이도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나, 즉 마력은 신체 강화건, 마법이건, 어디에나 필요한 진짜기본적인 자원이니까. 저럴 만도 하다. 그것도 잠시. 이내 놀란 표정이 그거랑 이도영이 무슨 관계냐는 표정으로 바뀐다. 한숨을  번 내쉬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쟤한테 다가가면 어째서인지 마나가 회복되더라고.”

이유는 알고 있지만, 어떻게 알았냐는 말을 들으면 할 말이 없으니 숨기는 게 낫겠지. 대충 생각을정리한 뒤 말을 이었다.

“그래서마나를 회복하려고 한 게 전부야. 무슨 감정이 있었던 게 아니라.”

깔끔하게 세줄 요약해서 정리한 것 같다.  정도면 납득하겠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김유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뭔데 또.

“그런데…그럼 시아는 왜 사관학교에 온거야?”

“왜?”

“마나 회복을 못한다면서…? 그런데 사관학교에 왔잖아. 혹시 도영이 말고도 따로 마나를 회복할 방법이라도 있었던 거야?”

아, 그거? 그러게. 내가 뭔 생각으로 왔을까. 그냥 될 대로 되란 식이었는데.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김유진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 뭐. 어쩌라고. 왔음 온거지. 그러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뭐, 알겠어…. 그래도 거짓말은 아닌  같네.”

허, 이거 봐라? 갑자기 빡치네. 대체 왜 내가 왜 얘한테 주절주절 변명을 해야 되지? 인상이 팍 찌푸려지려던 찰나, 김유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러면 결국 시아는 도영이랑 붙어있어야 한다는 거네?”

아, 뭐. 그렇긴 하지. 마나를 모으려면 어쩔 수 없으니까.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자 다시 김유진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헤에…그렇구나.”

다시 미묘한 웃음을 흘리는 김유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태클 걸기도 힘들다 이제. 김유진에게서 시선을 떼고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김유진의 이상한 미소와는 다르게, 뭔가 알겠다는 표정. 니가 알긴 뭘 알아 근데. 혀를 한 번 차고 고개를 돌려 상태창을 열었다.

[현재 보유중인 마나]

12/20

가까이 있는 채로  지났더니, 마나가 더 회복되어있다. 그나마 이건 다행이네. 아, 그나저나 결국 마나 얘기 깠으니까, 이제 자연스럽게 마나 흡수해도 되는거 아니냐? 생각해보니 그러네.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들어 이도영에게 성큼 다가섰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당황이 실리기 시작한 이도영의 얼굴을 응시하면서, 호흡기에 와닿는 청량감에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 어? 자, 잠깐만…!”

“이왕 말한 김에 마나 흡수  도와줘라. 곧 시합 시작할 것 같은데.”

대답은 듣지 않고 더욱 가까이 다가가 숨을 들이마신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깔 걸 그랬네. 괜히 숨겼잖아. 엿같은 오해나 당하고 말이야. 막상 까니까 이렇게 편한 걸.

“하아….”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감각. 등골이 저릿할 정도로 시원한 청량감에 숨이 살짝 거칠어졌다. 밀려오는 상쾌함에 얼굴이 풀리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몇 번을 더 숨을 들이마셨을까. 김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 시아야…저기. 슬슬 그만해야 할 것 같은데….”

이도영에게 고정해둔 시선을 돌려 김유진을 바라보았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역시 보는  부끄럽다는 듯 살짝 붉어진 표정. 아니, 그딴 역겨운 감정 없다니까. 왜 저러는 거냐 진짜.

“왜.”

“너랑 도영이…. 이제  시합인데?”

아, 진짜?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바라보자, 확실히 내 이름과 이도영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음, 그보다 얘랑 동시에 시합인가. 음.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상태창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현재 보유중인 마나]

14/20

그 잠깐 사이에 2나  회복한 마나.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겠지. 고개를 끄덕이고 이도영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다시 느껴지는 매캐한 공기에 살짝 인상을 구기고 입을 열었다.

“뭐, 나가면 되겠네. 야, 너도 대련 잘 봐라.”

“아, 응….”

자신이 없는지 미묘하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응, 근데 내 알 바는 아니야. 알아서 싸우라지. 이도영에게서 몸을  돌리고, 링을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내 상대로 보이는 남자와 신유정이 서 있었다. 으음. 얼굴이  보이네.

"둘  링 위에 올라서도록."

신유정의 말에 따라 링에 올라선 후,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얼굴을 바라보았다. 음, 내 상대는…오, 잘생겼네. 그보다, 상대도 궁사인가.

"너도 궁사야? 아, 네가 4위구나? 되게 예쁘네!"

 듣기 좋은 중저음의 미성. 쾌활한 말투. 또렷하면서도 선이 굵은 이목구비.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손에 들린  자루의 활.

능력 시험 3위, 궁사 박희성이었다.

그리고, 이 새끼는 원작, [아카데미의 낙제생]에서 나중에 빌런이 된다.

"이번 대련  부탁해!"

"어."

아, 얘는  어떻게 상대하냐. 귀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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