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화 〉대련수업(4) (15/167)



〈 15화 〉대련수업(4)

이도영은 자신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같은 마법사. 정확한 측정시험의 등수는 모르겠지만, 아마 이도영과 그리 차이가 나진 않겠지. 하지만, 등수와는 다르게, 이도영과 그의 실력은 까마득한 격차가 벌어져 있을 것이다. 마법에 대한 숙련도가 아니라,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의 총량에서.

마나. 마력. 인간이 종의 한계를 초월해, 이적이라 불릴만한 능력을 발휘할  있게 해주는 자원.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도영은 마나를 제대로 흡수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안에 들어온 마나를 축적할 수 없었다.

마치 모래 위에 뿌려진 물이 순식간에 빠져버리듯이, 기껏 흡수한 마나는 대부분 몸에서 흘러나가 흩어져버리고, 쏟아버린 그릇에 남아있는 몇 방울의 물처럼 극미량의 마나만이 몸에 머물렀다.

‘마나 친화력은 엄청나게 높은데….아쉽구나.’

‘그 체질만 아니었으면 대마법사가 되는 일도 꿈이 아니었을텐데.’

일반적인마나부감응자처럼, 마나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예 마나를 느끼지도, 조종하지도 못하는 몸은 아니었다. 오히려, 감응력 자체는 그 누구보다 강했으니까. 하지만, 감응한 마나는 그저 밖으로 흘러나갈 뿐. 끝까지 남아있는 마나는 얼마 되지 않았다.

노력. 갖은 노력을 다했다. 계속해서 흘러나가는 마나를 필사적으로 주워담아 몸에 담았다. 그렇게 겨우겨우 담아낸 마나조차, 금이 간 항아리에 담긴 물처럼 새어나가는 걸 그저 바라보며,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몇 방울의 마나를 아득바득 긁어모아 서클을 만들었다.

빈약하기 그지없는 하나의 서클. 다른 이들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는 서클. 차라리 검을 사용하는게 낫지 않을까? 검이 아니라, 다른 무기라도. 마나량의 영향이 그나마 적은 무기들을 사용하는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저주받은 몸뚱아리는 무기를 다루기에도 적합하지 않았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유난히 작은 몸. 단련해도 붙지 않는 근육. 쥐뿔만큼도 존재하지 않는 무기에 대한 적성. 마법은, 이도영에게 차악이자 최선이었다.

“3, 2, 1. 시작하도록!”

교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약한 서클에서 얼마 되지 않는 마나를 끌어올려 마법을 시전했다. 매직 미사일. 기초 중의 기초인 마법. 다른 마법은 마나가 부족해 한 번 시전하면 끝이었기에, 이도영에게 유일하게 숙련된 마법이었다.

만들어낸  발의 매직 미사일이 상대를 노리고 날아간다. 상대의 손이 들린다.마법으로 이루어진 반투명한 막, 숙련도가 부족해 흐릿한 실드 마법이 이도영이 쏘아낸 매직 미사일을 가로막았다.

-피시식

미묘한 소리를 내며 소멸하는 매직 미사일. 상대도 실드 마법의 숙련도가 그리 높지 않았는지, 반투명한 막이 약간 흐릿해졌다. 혹시라도, 한  정도는 실드를 깰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의미 없는 희망을 떠올리며 벌써 동나기 시작한 서클을 다시 돌렸다.

“큭…."

몇 발의 매직 미사일이 더 날아가고, 흐릿해진 실드에 미약한 금이 갔다. 겨우 매직 미사일 따위에 실드가 금이   부끄러운지 상대가 침음성을 흘렸다. 여기서 마법을 더 때려박으면 실드를 한 번 정도는 깨뜨릴  있겠지. 하지만.

“…항복.”

이도영은 여기서 더 전투를 이어갈  없다. 고작 열 발이 조금 넘는 매직 미사일을 사용한 것 만으로, 가용할 수 있는 마나를 전부 사용했다. 다른 학생들이, 최하위권에 위치한 눈 앞의 상대조차 백 발은 훌쩍 넘는 매직 미사일을 난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습기 짝이 없는 마나량.

“…엥?”

얼빠진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에게서 눈을 피하며, 링에서 내려온 이도영은 다른 이들의 링을 바라보았다. 자신과는 다르게, 훌륭한 실력을 뽐내며 대련에 임하는 이들. 그 사이로,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눈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상대를 시종일관 압도하는 모습. 방금 전 자신과는 정반대의 결과. 이도영은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아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약간의 동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달라. 마나를 쌓지 못하는 자신과, 마나를 회복하지 못하는 그녀. 얼핏 듣기에는 비슷한 느낌이지만, 전혀 다르다. 결국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실력이, 결과가 다르다.

자신이 선망했던,  때 꿈꿨던 압도적인 재능. 능력 시험 날, 다른 이들을 보며 느꼈던 감정. 선망, 그리고 부러움. 이도영은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필요하다고. 저 사람한테. 뭔가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슬프지는 않았다. 질투? 그런 부정적인 감정은 아니었다. 저런 사람한테 내가 도움이 된다. 기뻐해야 할 일일까? 하지만, 딱히 기쁘다기에는 애매한 감정이었다. 무슨 감정일지 모를 감정을 느끼며, 이도영은 그저 링을 올려다보았다.


***

[궁술(A+)가 적용됩니다.]

[마나가 매우 부족합니다. 궁술(A+)가 궁술(C-)로 하향됩니다.]

교관의 스타트가 끊기자마자 시스템을 통해 궁술을 적용했다. 어색하던 활이 손에 착 달라붙는 감각을 느끼며, 눈 앞의 상대를 가만히 시야에 넣었다.

-쐐액!

선공은박희성이었다. 날아오는 화살을 한 걸음 걸어 피해냈다.  회피를 예상한 듯, 내 몸을 향해 다시 쏘아지는 화살을 눈으로 쫓으며, 활대에 화살을 메겨 그대로 쏘아냈다. 명중. 와, 이게 되네.

“…날아오는 화살을 화살로 맞춘다고? 괴물이야?”

어이가 없다는  중얼거리는 박희성. 나보다 순위 자체는 높다만, 그건 그때 내가 시스템 시간 제한에 걸려버려서 그랬던 거고. 궁술(C-)정도면 신입생 수준은 한참 벗어났지. 뻔히 보이는, 변화 하나 없는 화살을 요격하는 건 어렵지 않다. 뭐, 그렇다고.

-쐐애액!

단숨에  발.  활에서 쏘아진 화살이 제멋대로 궤도를 바꾸며 박희성을 향해 쇄도한다. 각각 미간, 심장, 복부. 급소를 노리고 날아가는 화살을 박희성이 가까스로 피해냈다.

“이런…미친….”

“느려.”

아,  대사 꼭 한  해보고 싶었어. 전투에 들어가자마자 폭발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아드레날린. 강하게 끓어오르는 고양감에 몸을 맡기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순식간에 이어지는 속사. 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내 마력으로 방패를 형성한다. 근데, 막을 수는 있냐?

까앙! 까앙! 까앙! 화살 한 발마다 실린 파괴력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박휘성의 몸뚱아리. 순식간에 방패가 박살나고,  충격에 박휘성의 몸이 하늘을 날았다. 훤히 열린 빈틈을 향해 화살을 또 쏘아냈다.

“큭…!”

쨍그랑!

와, 저걸 막았네. 공중에서 다급히 형성한 마력 방패로 내 화살을 다시 막아낸 박희성.  발을 막아낸 순간 처참히 산산조각났지만, 그 덕분에 시간은 벌었다. 밀려온 충격에 몸을 맡기고, 그대로 한 바퀴 회전한 채 나한테 화살을 쏘아낸다.

음, 막을 수 있나? 막을 수 있다. 왼손을 들어 마나를 집중한다. 유형화된 마력으로 방패를 만들어낸다. 아, 이거, 쟤가 쓴 그거구나.

팅!

방패에 막혀 허무하게 튕겨나가는 박휘성의 화살. 즉석으로 만들어낸 것치곤, 꽤나 단단했다. 아마 시스템 보정 덕이겠지. 잠시 시선을 돌려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현재 보유중인 마나]

7/20

쯧, 벌써 절반을 써버렸네. 진짜 너무 조루인  아니냐고.

“진짜 괴물이네….  4위밖에  한거야? 4위는 커녕 1위도 가뿐해 보이는데.”

“글쎄.”

시원한 웃음을 흘리며 내게 다시 화살을 쏘아낸 박휘성에게 대꾸하고, 화살통에서 남은 화살을 꺼냈다. 세 발. 아까 엄청나게 쏴댔더니, 꽉  있던 화살통이 금새  비어 있었다.

“그게 마지막인 모양이네. 뭐, 근접전도 만만찮을 것 같긴 한데.”

내 화살이 얼마 남지 않은 걸 알았는지, 박휘성이 입을 열었다. 깐족거리는 건가. 빡치게.

“이거면 충분해.”

“…그래?”

내 말에 살짝 자존심이 상했는지, 표정이 살짝 굳은 박휘성을 향해 화살을 쏘아냈다. 니가 빡치면 어쩔건데.

-쐐애액!

여태까지 쏘아낸 화살보다 배는 강력한 화살.  발, 두 발, 세 발. 쏘아낸 화살이 단숨에 방패를 깨뜨리고 박휘성의 몸을 관통했다. 쳇, 급소는 피했네.

“아파라…. 그래도 화살이 다 떨어진 모양이네. 유감이야.”

방금 전 화살에 입은 부상을 참아내며, 박휘성이 나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내 화살에 관통상을 입은 곳은 왼쪽 어깨, 오른쪽 허벅지, 왼쪽 옆구리.

다리를 당해 기동성은 잃었지만, 그래도 내가 다가가는 것보다 지가 활을 쏘는 게 더 빠를 거라는 건가. 이게 내 전력이었으면 확실히 졌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궁술(C-)가 궁술(B-)로 상향됩니다.]

[현재 보유중인 마나]

3/20

 순간, 마나를 때려박아 강제로 스킬 랭크를 끌어올렸다.

'와, B-가 이 정도면 A+는 평생 못 써먹겠네.'

어마어마한 마나 소비량에 놀라기도 잠시, 쓸데 없는 감상을 머리에서 지우고 빈 활시위를 당겼다. 그 순간, 마나가 모여들어 화살의 형태를 이루었다. 아아, 이게 마력 화살이라는 것이다. 너는 못 쓰는거지. 뭐, 원거리에서 유형화를 유지하는게 힘들다나 뭐라나.

-파츠츠츠

“헐….”

경박한 감탄을 흘리며 나를 동그랗게  눈으로 바라보는 박휘성. 그 얼빠진 반응에 웃음을 터뜨리며,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화살을 향해 시위를 놓았다.

-쐐액!

파공음과 함께 쏘아진 마력 화살이 박휘성의 화살을 순식간에 박살냈다. 그러고도 전혀 기세를 잃지 않은  박휘성을 향해 쇄도하는 화살. 회피할 틈도 없이, 정확히 박휘성의 심장을 관통했다.

-휘이익!

"대련 종료!'

대련을 마치는 휘슬 소리가 울려퍼지고, 마지막에 받은 충격에 넘어져 있는 박휘성에게 다가간다. 아직 통증이 남아있는 듯, 살짝 표정을 찌푸리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내가 다가가니 씨익 웃음을 보낸다. 나 참. 웃기는 새끼네.

"와, 진짜 대단하더라 너. 한  배웠어."

박휘성이 손을 내밀어 내게 악수를 청했다. 새끼, 마인 되는 새끼 맞아?  이리 반응이 쿨하지. 아, 이러면 괜히 시스템 빨로 이긴  찝찝해지는데. 묘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내민 손을 마주잡았다.

"뭐, 너도 꽤 대단하던데."

 시스템 빨인데 얘는 실력이니까.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뭐. 싹수 있는 놈은 싫지는 않다. 씨익 웃으면서 칭찬을 보냈다.

-꽈아악

그 말을 건네자마자, 마주잡은 손에 힘이 실렸다. 음, 시비 거는 건가. 살짝 불쾌한 압력에 인상을 찌푸렸다.

"…왜."

"아, 아냐. 칭찬 고마워."

인상을 살짝 찌푸리면서 입을 열자, 그제서야 손에서 힘을 푸는 박휘성. 지병이라도 도지셨는지, 갑자기 눈을 피하고 말을 더듬는다. 뭐지 이 새끼. 애가 맛이 갔네. 역시, 예비 마인이라 그런지 정신이 이상한가보다.

"뭐, 그럼 됐다. 수고했어."

정신 나간 놈이랑 대화하는 취미는 없으니까, 빨리 튀자. 링에서 폴짝 튀어내린 후, 시선을 옮겼다.

[현재 보유중인 마나]

1/20

아슬아슬한거봐. 와, 씨. 까딱하면 시스템 날리고 개쪽당할 뻔했네. 진짜 콩알만큼 남은 마나에 식은 땀이 한 방울 흘렀다. 좀 아낄  그랬나. 뭐, 그래도 이제 마나 모으기 쉬울테니까. 썼으니 다시 채워야지.
반성도 잠시, 대충 합리화를 끝낸 뒤 고개를 돌리며 이도영을 찾았다.

근데 얘, 또 어디 갔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