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화 〉대련수업(5) (16/167)



〈 16화 〉대련수업(5)

“와, 3위를 그냥 압살해버리네.”

“쟤가 왜 4위야? 3위보다 한참은 센 거 같은데.”

유시아의 대련이 끝난 후, 학생들 사이로 웅성거림이 퍼졌다. 압도적인 승리.  놀라운 광경에, 학생들이 연달아 입을 열었다.

“아까 화살을 화살로 맞춰서 요격한 거 봤냐? 그게 말이 돼?”

“그러니까. 마력 방패로 막은 것도 아니고, 그걸 그렇게 맞춰서 막는다고?”

“대체 동체시력이 얼마나 좋은 거야?”

수면에 내린 빗방울로 일어나는 파문처럼, 학생 무리 곳곳에서 일어난 감탄이 서서히 퍼져나갔다.

그 상황에서, 대련의 장본인이 링에서 내려왔다. 호기심이 가득 실린 눈길을 받으며, 화제의 주인공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호기심 담긴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무언가를 찾듯 시선의 방향을 연신 바꾸던 소녀가 이내 고개를 멈췄다. 그 반응에, 소녀가 보내는 시선의 대상을 향해 수십 쌍의 눈길이 쏟아졌다. 그 대상을 확인한 순간, 학생들에게 다른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쟤는 누구야?”

“아,  꼴찌 같은데?”

“꼴찌? 그, 유일하게 원거리 2단계 나왔던 걔?”

“응, 그런데 원거리 2위도 같이 있네? 아까 이설화랑 대결했던 애. 엄청 세던데.”

“그러고보니 쟤네 셋, 꽤 친한  같던데. 점심시간마다 밥도 같이 먹더라고.”

“헐…2위, 4위랑 꼴찌라니. 되게  어울리네.”

그 세 명을 바라보며 학생들이 각자 대화를 나누던 도중, 어느새다음 대련이 시작되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  대부분이 새롭게 링 위에서 펼쳐지는 대련으로 관심을 돌렸다. 방금 전, 대련에서 패배했던 한 사람을 제외하고.


***


이것들은  남한테 이렇게 관심이 많은 걸까.

링에서 내려오자마자 나를 향해 쏟아지는눈길에 표정이 절로 찌푸려졌다. 몸뚱아리의 예민한 청각이 작게 속닥대는 소리까지 전부 잡아챘다. 아, 마나 좀 회복하려고 했는데, 이래서야 시선 때문에  할 수가 없잖아. 시끄럽기도 하고. 짜증을 속으로 삼키며 이도영과 김유진을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향하는 눈길이 부담스러운지 주위를 흘끗흘끗 둘러보는 이도영. 뭐, 태생 인싸인 김유진은 귀찮을 뿐 그리 부담스러워 하진 않는  같지만. 쏟아지는 시선을 무시하고 그들에게 향했다.

“시아야! 왔어?”

“어.”

활짝 웃으며 반기는 김유진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눈짓으로 자리를 옮기자는 신호를 보냈다. 뭐, 어찌어찌 알아들은 모양인지. 이도영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뒤를 따라가며, 김유진이 호들갑을 떨었다..

“아까 진짜 멋있더라! 그 정도 실력인데 왜 시험 때는 4위밖에 못했던거야? 나보다 강한 것 같던데!”

“마나가 부족해서.”

나도 먼치킨물 좀 찍고 싶다. 시간제한 뭐냐고. 그나마, 이젠 마나 수급이  편하긴 하겠는데.

마나라는 단어가 들리자마자, 앞서 가던 이도영이 흠칫한 듯 몸을 떨었다. 그 반응을 캐치한 김유진이 이내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 모르겠다. 머리 아파.

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한 이마를 부여잡고 김유진, 이도영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수업 끝나면 바로  먹으러 갈거냐?”

난 배는  고픈데, 마나는 좀 고프네.  물음을 들은 이도영과 김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럼 조금 이따가 바로 가면 되겠네. 그렇게 수업 종료를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저기!”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까  얼굴. 박휘성이었다.

“왜.”

뭐, 할 말이라도 있나? 음, 대련에서 져서 앙심을 품었다던가. 음, 역시 예비 빌런인가. 멀쩡한 줄 알았는데 역시 그건 연기였나보다.

“그, 혹시 괜찮으면 오늘 밥 같이 먹지 않을래?”

“아니.”

괜찮은데. 예비 빌런이랑 내가 밥을 왜 먹어.

그렇게대답한 후 다른 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흥미로운 눈길로 박휘성을 바라보는 김유진,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이도영을 쳐다보자,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건 무슨 반응이지? 모르겠네.

아무튼, 내 칼 같은 거절에 당황한 표정을 지은 박휘성. 뭐, 어쩌라고. 귀찮음을 가득 담고 눈을 마주치자, 역시 조금 불쾌했는지 박휘성이 얼굴을 붉혔다. 뭐, 열받는다고 당장 덤벼오진 않겠지만. 방금 전에도 졌으니까.

“아…그, 그래?”

“어. 미안. 조금 불편해서.”

진짜 미안하진 않지만, 의례적인 인사를 건넸다. 이제 좀 가라. 너 있으면 대놓고 마나 회복을 못하잖아. 마인 예정자한테 내 약점을 말해주는 건 미친 짓이니 밝힐 생각도 없고.

사실상 축객령에 가까운 말을 듣자, 박휘성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내게서 떨어졌다.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둘에게서 눈을 떼고 식당을 향해 발을 옮겼다. 음, 그래도  쿨하게 가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끝인  알았다.


***


“…왜.”

“혹시 이야기 좀 하지 않을래?”

식사를 마치고 김유진과 함께 교실로 돌아가던 도중, 박휘성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뭐지. 혹시 졌다고 앙심이라도 품었나. 아까 까였는데도 또 따라오네.

“무슨 이야기?”

“음…그냥 친해지고 싶어서?”

어이가 없네. 마인 새싹 놈이.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친해질 생각은 없다. 지금 보니까 정신도 조금 이상한 것 같고. 뭐 결국 마인이 되는 놈이니까. 아마 음습한 녀석이겠지.

생각을 끝내고 옆을 흘끗 바라보았다. 김유진은 흥미 가득한 눈으로 나와 박휘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그 대련으로 멋대로 라이벌 구도라도 상상하는 건가. 역시, 얘 감성은 이해하기가 힘들다니까.

“난 너랑 친해지고 싶은 생각 없는데.”

그건 그렇고, 아닌건 아니지. 단칼에 친구 요청을 잘라냈다. 김유진은 히로인이라서 받았지만,  새끼는 빌런이니까.

 대답에 박휘성은 살짝 침울한 표정을 연기하더니, 내게서 정보를 더 캐내려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그러면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아니, 싫어.”

내가 예비 악당한테 정보를 왜 주냐. 점심시간 전에 했던 것처럼 대답을 거부하자, 박휘성이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마인(예정)답게 연기 잘하네. 누가 보면 진짜 우울한  알겠어. 무시하고 지나가려던 순간, 김유진이 내 팔을 잡았다.

“저…시아야. 그래도 얘기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아, 그래. 여기도   속았네. 김유진의 말을 듣자마자 박휘성의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았다. 김유진을 향해 감사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박휘성의 모습에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뭐. 질문 하나 정도야. 중요한 질문이면 무시하면 되지.

“하아,그래. 물어보고 싶은 게 뭔데?”

“아…그게….”

질문을 하라고 하니까 주저하는 박휘성. 살짝 인상을 찌푸린 순간 박휘성이 입을 열었다.

“호, 혹시아까 걔랑 사귀는 사이야?”

“…뭐?”

이게  뭔 개소리지. 걔? 누구? 내가 사귄다고 할 만한 사람이 있었나?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박휘성을 바라보다가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얼굴을 굳혔다. 아, 설마. 이도영?

“걔…라고 하면?”

“그…아까 너희랑 점심 같이 먹었던 걔 말이야.”

아, 맞네. 이도영. 이런 씹…. 또 이딴 오해를 산다고? 어이가 없네 진짜. 얼굴을 와락 찌푸리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뭔, 개소리야.”

진짜 빡치게 하네. 그나저나 이딴 건 왜 물어보는거지. 만약,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 내가 이도영이랑 사귄다고 한다면 걔를 가지고 위협이라도 하려는 건가? 허, 마인 예비생다운 발상이긴 하네. 짜증스러운 눈빛으로 박휘성을 노려보자, 박휘성이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혹시 다른 사귀는 사람이 있다거나….”

역시. 아무래도, 정면 승부로 깨졌으니 약점으로 보이는 다른 사람을 노리려는 모양이다. 지금 김유진을 노리지 않는 이유는, 아마 자기보다 강하기 때문이겠지. 마인답게 정말 졸렬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없어. 그딴 거.”

뭐, 믿진 않겠지만. 대답을 듣자마자 속마음을 숨기려는 듯, 환한 미소를 짓는 박휘성. 역시 마인 예정자답게 연기 실력 하나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나도 마인이 될 거라는  몰랐으면 진짜 기쁜 표정을 짓고 있다고 속아 넘어갔겠지.

“그, 그렇구나! 대답해줘서 고마워!”

대답을 듣자마자,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사라지는 박휘성. 음, 더 이상 정보를 캐내긴 힘들 것 같았던 모양이네. 역시. 아무래도 저 새끼한테 찍힌 것 같은데. 한동안 귀찮을지도 모르겠네. 혹시 모르니 마나를 더 모아두는 게 좋겠어. 대충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교실을 향했다.

“흐으음….”

이제야 미심쩍은 점을 눈치챘는지 침음성을 흘리는 김유진.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더니, 이내 즐거운 듯한 표정을 짓는다. 엥. 즐거운 표정이라고?

“왜 웃어?”

“아…아무 것도 아냐!”

뭐지 얘. 무슨 생각을 했는지, 또 실실 웃는 김유진을 무시하고 앞을 바라보았다. 여태까지 경험한 바로는, 얘는 신경 쓰면 손해더라고. 원작에선 안 이랬던 것 같은데. 뭐가 문젤까. 김유진에 대한 고찰을 잠시 하다가, 이내 상태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현재 보유중인 마나]

3/20

아, 역시 부족하네. 이왕 마나 필요한 거 깐 김에, 이도영한테 오늘 입은 옷이라도 달라고 해볼까. 그래도 화분 대신 옷을 걸어두는  좀 이상하려나. 마나 생각하면 오히려 그게 나을 것 같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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