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김유진(1)
한국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사의 자식이라는 혈통. 압도적인 화염 마법에 대한 적성. 어릴 때부터 마나를 갈고 닦을 수 있는 우수한 환경. 그리고 마법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재능. 소녀는 마법사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소녀가 가지고 태어난 것 중 하나만이라도 갈망하는 이들이 차고 넘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녀가 마법에 빠지는 것 또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자신이 그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그리고 소녀는, 김유진은 그 희귀한 예외에 속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과연, 대마법사의 자식이라는 건가. 아무리 매직 미사일이라고 해도, 이 어린 나이에 마법 시전에 성공하다니.’
‘벌써부터 화염을 만들어 내시다니…정말 엄청난 재능입니다!’
‘어린아이가 펼쳤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완성도네요. 역시 대마법사님의 따님다워요.’
마법을 익히는 것은 그리 어렵진 않았다. 소녀가 타고난 재능은 소녀가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을 제시했고, 자신의 재능이 인도하는 대로 따르면, 그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다른 이들의 기대 섞인 시선에 충실히 응하며, 소녀는 더욱 많은 부담을 쌓아올렸다.
그리고 그 부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그녀의 아버지의 것이었다.
‘과연 내 딸이로구나.’
소녀가 마나를 처음 몸 안에 쌓은 날. 소녀의 아버지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따스한 손길과 부드러운 미소. 평소에도 다정하신 아버지였지만, 이 정도로 환하게 기뻐하시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미소를 짓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소녀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버지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
물론, 소녀가 천재가 아니라도, 설령 소녀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소녀의 아버지는 변함 없이 소녀를 사랑할 것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가 부모가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을 두려워하듯이, 소녀 또한 그랬다. 다른 아이들과 소녀가 한 가지 차이가 있었다면, 대부분의 아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지만 소녀는 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소녀가 타고난 혈통이, 압도적인 마법에 대한 적성이, 누구라도 부러워할 우수한 환경이, 소녀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만들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부모의 실망과 직면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부모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소녀는 여전히 아버지의 실망을 겪지 못했다. 그 미지를 두려워했다.
어느새 소녀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변하는 건 없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기대에 응하기 위해, 매일을 마법에 쏟아부었다. 무엇보다 즐거웠던 마법이 어느 순간부터 의무가 되었고, 그럼에도 마법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매일매일을 마법에 쏟아부은 탓에, 소녀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과 흙장난을 할 시간에, 소녀는 마법 서적을 한 권 더 읽어야 했고, 다른 아이들과 수다를 떨 시간에, 서클의 마나량을 한 줌이라도 더 늘려야 했으니까.
그녀의 아버지가 그러한 자신을 걱정하는 것도 모르고, 소녀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수련을 거듭했다. 타고난 재능에 우월한 환경, 그리고 꾸준한 노력이 더해져, 소녀는 또래 중에서도 단연 두각을 보였다. 아니. 두각 정도가 아니라,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제 나이 또래 아이들이 기초 마법을 배울 때, 소녀는 이미 계열을 특화하는데 성공했으니까.
`벌써 특화 마법을 익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역시 피는 못 속이는 법이군요. 정말 압도적인 재능입니다.`
`이러다 부녀가 같이 대마법사의 칭호를 얻을지도 모르겠는데요? 하하하!"
친구를 사귀고 싶긴 했지만, 괜찮았다. 친구와 노는 것보다는 칭찬을 듣는 게 기분 좋았으니까. 아버지의 기특하다는 표정을 보는 것이 더 기뻤으니까.
그럼에도 가끔 외로움을 참기 힘들 때면, 소녀는 도서관에서 몰래 로맨스 소설을 읽었다. 소설의 대사와 묘사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외로움을 달랬다. 소설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우정이나 사랑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긴 했지만, 여전히 소녀에게는 아버지께 칭찬 받는 일이 더욱 중요했기에, 꾹꾹 눌러담으며 다만 상상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또 지나가고, 중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던 때, 소녀는 처음으로 자신을 향한 기대에 응하지 못했다.
소녀가 참가한 대회는 꽤 큰 규모였다. 하지만 딱히 긴장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 크기의 대회는 자주 나갔었으니까. 그리고 모든 대회에서 우승은 항상 소녀의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의 마법은 소녀의 화염에 미치지 못했다. 그 정도 마음으로 나간 대회. 그리고 김유진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상대는 마치 얼음을 형상화한 듯한 외모를 가진 소녀였다. 북극여우를 인상케하는 날카로운 눈매와,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새하얗기 그지 없는 피부가 인상 깊은 소녀. 시합이 시작된 이후, 김유진이 패배하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김유진이 그토록 자신하던 화염 마법은 상대의 얼음을 녹이지 못했다. 펼쳐낸 방어 마법은 상대가 쏘아낸 얼음덩이에 순식간에 박살났다. 여태까지 쌓아올린 실력이, 노력이, 자부심이, 정면으로 깨져나갔다. 처음으로 겪는 패배에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김유진에게, 소녀가 무심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약하네.”
여태까지 쌓아온 모든 노력을 뭉개버리는 한 마디. 방금 겪은 압도적인 실력 차에, 굴욕감마저 들지 않았다. 반박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김유진은 상대에게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자리를 피했다. 자신이 내려간 이후, 관중들이 자신을 쓰러뜨린 상대에게환호를 보내는 모습을 보며, 소녀는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만약, 아버지가 내게 실망하셨다면 어떡하지. 이제 머리를 쓰다듬어주지 않으실지도 몰라. 잘했다고 칭찬해주시지 않을지도 몰라. 분함과 불안감이 뒤섞인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녀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겨우 들어 아버지에게 향했다. 그리고.
“수고했구나. 역시 내 딸이야.”
아버지는 소녀의 패배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는 듯, 평소처럼 다정하게 칭찬을 건넸다.
"저, 졌어요…."
"괜찮아. 열심히 했으면 그만이란다."
"…아버지를 실망시켰는데도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자신에게 매달리는 딸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여전히 따스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항상 그랬듯이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실망하지도 않았지만, 혹시라도 실망시켜도 상관 없단다. 그래도 너는 내 딸인걸."
그녀가 패배한다해도, 그를 실망시킨다해도, 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의 딸을 사랑했다. 그 당연한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은 김유진은, 더 이상 마법에 집착하지 않았다.
***
그와 별개로, 김유진의 생활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마법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친구를 사귀려고 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친구를 사귀기는 요원했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소녀는 영웅사관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입학식 다음날, 김유진은 자신을 쓰러뜨렸던 소녀에게 한 번 더 꺾였다.
‘약하네.’
1위와 2위, 13단계와 11단계. 한 등수 차이지만 두 단계나 차이나는 결과. 처음으로 패배했던 그 날, 상대가 무심하게 내뱉은 한 마디가 다시 귓가에 맴돌았다. 능력 측정을 마치고, 기숙사에 누워서 그 날의 기억을 되새겼다. 처음 겪었던 패배. 처음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순간. 비록, 아버지는 괘념치 않는다고 하셨지만, 처음으로 겪은 패배는 김유진에게 큰 충격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입학 두 번째 날, 교실에 들어선 김유진은 이상하게 눈에 띄는 소녀를 발견했다. 자신에게 첫 패배를 안겼던 이설화, 그 소녀와 비슷한 무표정, 차가운 분위기를 가진 여자애. 하지만 이상하게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 친근감에 김유진은 어느새 소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아, 미친. 깜짝이야.”
그리고 말을 걸자마자, 차가워 보이는 첫인상은 바로 박살났다. 경박한 욕설. 하지만 불쾌감은 커녕, 오히려 친밀감이 느껴졌다. 분명 초면인데 어째서일까. 호기심을 가득 담은 시선으로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소녀의 외모에 대한 감상은 간단했다.
‘예쁘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 초록색의 동그란 눈동자.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뚜렷한 이목구비와 작은 얼굴. 자신도 어디서 밀리는 외모는 아니었지만, 눈 앞에 상대와 비교하기는 부끄러울 정도로 압도적인 미인. 귀찮은지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확 들어올정도의 미인이었다.
“되게 쿨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말 걸어봤어! 혹시 이름이 뭐야?”
“유시아.”
유시아라고 하는구나. 아까부터 들던 친밀감에 생긋 웃어보이자, 눈 앞의 소녀가 의문 섞인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문득 작은 욕망이 피어올랐다. 혹시라도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적으로 느껴지는 친밀감에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친구하지 않을래?”
답변은 긍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