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김유진(3)
수업이 끝나고, 이내 점심시간이 되었다. 여전히 새근새근 자고 있는 시아를 깨우자, 졸음기로 흐려진 눈빛으로 시아가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아야! 점심 같이 먹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시아를 끌고 가려다, 돌아가는 시아의 목을 보고 시선을 옮겼다. 헤에….
“잠깐만.”
내가 아까 시아가 시선을 보냈던 소년을 바라보기도 잠시, 이내 시아가 내게 양해를 구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방향을 보아하니 방금 바라본 소년에게 말을 걸려는 듯 했다. 와아, 되게 적극적이네.
시아가 소년에게 다가가 입을 열자, 소년이 놀란 듯 몸을 퍼뜩 떨었다. 당황한 표정을 짓는 소년을 시아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아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게 보였다. 으으, 그런데 멀어서 뭐라고 말하는지는 안 들리네.
아쉬움에 혀를 한 번 차고 시아와 소년을 구경하기도 잠시, 이내 대화가 끝난 듯 몸을 돌린 시아를 따라 소년이 걸음을 옮겼다. 어라, 이렇게 바로 데려온다구?
“시아야, 쟤는 누구야?”
대충 무슨 관계인지는 이미 짐작이 갔지만, 모르는 척 시아에게 질문하자 시아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시선을 맞추고 있자, 말문이 막힌 시아를 대신해, 소년이 자기소개를 했다.
“난 이도영이라고 하는데. 너는?”
이도영이라고 하는구나. 고개를 끄덕이고 내 이름을 밝혔다. 내 이름을 듣자 눈 앞의 소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저러지? 그 반응에 고개를 갸웃하자, 이내 소년이 표정을 정돈했다. 으음, 그런데 시아는 얘한테 왜 반한걸까? 지인이라도 되나? 소꿉친구라던가. 몇 가지 가설을 세워봤지만, 아무래도 틀린 가정인 듯 싶었다.
“혹시 시아랑은 이미 알던 사이야?”
“음…굳이 따지자면 어제 처음 대화하긴 했는데.”
어제 처음이라구? 그럼 첫눈에 반했다는 거네? 진짜 소설에서만 보던 연애담 같은 이야기에 흥미로운 눈빛으로 소년과 시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시아는 내가 소년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조금 불편했는지, 날카로운 시선으로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질투인가? 진짜? 흥미로운 모습에 입가에 살짝 미소가 맺혔다. 계속 소년과 시아를 바라보자, 내가 소년에게 웃음을 짓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시아가 표정을 구겼다. 응, 알았어. 알았어. 날카로운 시선에 소년에게서 떨어져 시아에게 다가섰다. 자리를 옮기자는 내 말을 듣고나서야, 시아가 기분이 풀렸는지 인상을 폈다.
“시아야! 이제 가자! 도영이 너도!”
소년의 이름을 부르자, 시아가 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기분이 나쁜 건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런 눈빛일까? 생각은 잠시였다. 설마 이름 불렀다고 그러는 거야?
‘의외로 되게 쑥맥인가보네.’
사실 시아가 말을 짧게 하는 건, 귀찮아서가 아니라 쑥쓰러워서 그런 건가? 흐음, 그런 생각을 하며 시아의 얼굴을 올려다보자, 시아는 어느 새, 또 소년에게 눈을 돌리고 있었다. 교양인답게 모른 척 하며, 시아의 팔을 잡아끌었다.
***
식당으로 가는 내내, 시아의 얼굴을 구경한 결과. 어느 정도 확신이 섰다. 시아는 확실히 저 남자애를 좋아한다. 어떻게 아냐고? 그치만, 저 남자애한테 다가가기만 하면 표정이 펴지는 걸.
교실에서 나오자마자 불편한 듯 조금 찡그려지던 표정이, 저 소년. 도영이한테 가까이갈 때마다 확 풀렸다. 입가도 기분 좋다는 듯 꿈틀거리고, 짜증과 귀찮음이 섞여 있던 날카로운 눈빛도 꽤나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까부터 계속 저 소년의 옆으로 가고 싶다는 듯, 시아의 몸이 움찔거렸다.
‘처음 본 사람을 이렇게 좋아할 수가 있나?’
그냥 평범한 남자애로밖에 안 보이는데. 그렇게 잘생긴 것도 아니고, 키도 작고. 나보다는 크지만, 시아보다는 조금 작았다. 고등학생이라기보단 중학생에 가까운 외모였다. 흐음…시아는 저런 타입을 좋아하나?
그렇게 고민을 하다보니, 어느새 식당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꽤 괜찮은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집에서 먹던 식사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해 보이는 음식들이었다.
음식을 열심히 고르자, 시아는 이미 다 골랐다는 듯, 벌써 자리를 잡아 앉아 있었다. 고른 음식을 들고 시아의 옆자리에 앉자, 시아의 시선이 물끄러미 나를 향했다. 으응? 왜 쳐다보지?
-털썩
그 의문은 길지 않았다. 도영이가 음식을 고르고 자리에 앉자, 시아는 도영이를 바라보았다가, 살짝 아쉽다는 눈빛으로 도영이의 빈 옆 자리를 바라보았다. 같이 앉고 싶었구나. 고개를 끄덕인 뒤 시아를 바라보자,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간 시아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흐으음….
‘내일부턴 몰래 비켜줘야지.’
그렇게 결정을 내리자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 나, 완전 큐피트 아니야? 헤헤. 식사 도중 갑자기 웃음을 흘리자, 시아와 도영이가 이상하다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도영이면 몰라도, 시아가 날 그렇게 보는건 좀 너무하지 않나? 적반하장이잖아…. 약간 드는 억울함에 볼을 부풀렸다가, 시아의 시선을 피해 식사를 재개했다.
***
식사를 마치자 도영이는 훈련하러 가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아쉬운 듯한 눈빛으로 도영이의 빈 자리를 바라보는 시아를 데리고 교실로 향했다.
도영이가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는지, 아까까지만 해도 꽤 환하게 펴져있던 시아의 표정이 다시 구겨졌다. 그렇게 좋은가? 예전에 읽었던 소설에서 말하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와 한 순간도 떨어지기 싫어한다고 했다. 처음 그 구절을 읽었을 때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시아의 표정을 보면 무슨 의미였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시아를 쳐다보며 걸음을 재촉하던 도중, 이내 교실에 도착했다.자리에 막 앉은 시아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빈 자리를 바라보았다. 도영이의 자리였다.
“역시 더 친해져야 하나.”
아, 도영이 생각했구나. 아무래도 빈 자리가 허전한 모양이었다. 우으…그래도 나도 친군데. 너무 도영이만 생각하는 거 아냐? 살짝 든 질투심에 시아와 눈을 맞추고 못 들은 척 능청을 떨었다. 조금 놀려줘야지.
“응? 뭐라고?”
“아무 것도 아냐.”
내 놀리려는 의도가 읽혔는지, 아니면 방금 전까지 도영이를 생각한 게 새삼 부끄러웠는지, 시아의 대답은 꽤나 빨랐다. 그 당황한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왜 웃냐는 의문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아를 보며, 대충 말을 돌렸다. 아, 그래도 이건 물어봐야지! 궁금하잖아.
“그런데 도영이랑은 어떻게 알게 된 거야?”
그 질문을 하자마자 시아는 놀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적이 잠시 흐르고, 이내 시아가 티나게 말을 얼버무렸다.
“그, 그냥 어쩌다보니 알게 됐는데.”
‘나한테 도영이 얘기를 하긴 싫은가보네.’
아까 잠깐 도영이한테 웃음을 보냈을 때, 내게 보내던 시선을 생각하면, 혹시라도 내가 경쟁자가 될까봐 불안한 듯 했다.
“그런 것치곤 꽤나 신경 쓰는 것 같던데?”
생각을 마치고 입을 열자, 시아가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찡그려진 표정을 짓는 게, 자신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흐음….이거 그거지?
그, 썸 타는 관계라고 해야 하나? 자기 감정이 어떤지 잘 모르는 그런 느낌. 소설에서 되게 많이 본 묘사라서 딱 떠올랐다. 흥미로운 느낌에 눈을 빛내자, 시아가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너무해….
***
다음 날 아침, 교실에 들어와 있는 시아에게 인사를 건냈다.
‘또 도영이 쳐다보네.’
들키기는 싫은 듯 힐끔 쳐다본 정도였지만, 아까부터 시아한테서 시선을 떼지 않은 내게는 충분히 보였다. 역시, 좋아하는 게 맞다니까. 그렇게 시아를 힐끔힐끔 염탐하던 도중, 시아가 중얼거렸다.
“진짜 몰래 말을 걸어야하나….”
뭘? 뭘 하려구? 기대감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작게 내뱉었다. 소리가 들렸는지, 시아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젓자, 한심하다는 듯 시아가 약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아침 시간을 보내던 도중, 교관이 교실에 들어왔다. 시끌벅적하던 교실에 정적이 흐르고, 이내 교관이 입을 열었다. 대충 컨디션을 조절하라는 말, 내일 대련시험이 있을 거라는 말. 몇 가지사실 전달을 마친 교관은 이내 자리를 비웠다. 그보다 대련이라고?
‘약하네.’
대련이라는 말에 불쾌했던 기억이 튀어나와 표정을 약간 찌푸렸다. 그 불쾌한 기억을 날려보내려 고개를 작게 저은 순간, 옆 자리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대련이라는 말이 막 나왔을 때부터 표정이 찡그려졌던 시아가, 이내 고개를 돌려 도영이를 바라보았다. 음? 왜 쟤를 바라보는 거지? 의문에 고개를 갸웃한 순간, 옆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저 꼴찌는 쪽팔려서 어떻게 하냐?”
“그러니까, 능력 측정 때 2단계 나온 사람은 쟤가 유일하잖아.”
“순식간에 져버려서 울음이라도 터뜨리는거 아냐?”
“푸흡, 그거 설득력 있네.”
능력 측정 시험 날, 교관에게 대놓고 경고를 받았던 남자가 옆의 다른 남자와 함께 도영이를 바라보며 떠들고 있었다. 아, 도영이가 그 꼴찌였구나. 그러면….
그 사실을 깨닫고 시아를 다시 바라보았다. 여전히 시아는 도영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체념과 각오가 섞인 시선이었다.아, 그렇구나.
‘얼마나 좋아하길래.’
저렇게 신경을 쓰는 걸까? 얕은 궁금증을 안고, 계속해서 도영이를 바라보고 있는 시아의 얼굴을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