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화 〉김유진(4) (20/167)



〈 20화 〉김유진(4)

점심시간까지, 시아는 도영이를 계속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저럴 생각인걸까. 답답한 느낌에 속으로 중얼거리자마자, 시아가 독백을 내뱉었다.

“애초에 쟤 말고는 별 관심 없지만.”

시아가 무의식적으로 내뱉은말을 듣고, 내 얼굴에 피가 몰렸다. 으, 너무 직설적인  아냐?
붉어진 내 얼굴을 본 시아가 내게 의문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돌린 시아가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도영이를 바라보며, 살짝 답답한듯 일그러지는 표정. 그리고 이내 시아가 다시 중얼거렸다.

“훈련 시간을 기대해봐야 하나….”

으으…이거 완전 들으라고 하는  아니야? 도와달라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진한 감정이 담긴 말에 표정이 다시 흐트러졌다. 시아가 도영이를 바라보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멍하니 시아가 도영이를 바라보던 도중, 도영이가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이쪽으로 향했다. 그대로 둘이 눈을 마주치자마자, 도영이가 시선을 돌렸다.

‘시아랑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러지?’

어제 처음 이야기했을 때부터, 도영이가 시아에게 보이던 반응에 머리에 물음표가떠올랐다. 고개를 갸웃한 순간, 시아가 실망했는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음…뭔진 모르겠지만.

‘도영이가 나빴네.’

소설에서도 주인공들이 이럴 때마다 답답했는데, 현실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다.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자 고맙다는 답을 돌려준 뒤, 잠에 든 시아에게서 시선을 옮겨 도영이를 노려보았다.

“…?”

갑작스러운  시선에 당혹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도영이를 한참 노려보다가, 휙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잠에 빠진 시아를 바라보며 다짐했다. 어떻게든 이어줘야지.


***


수업이 끝나자마자 다함께 식당을 향했다. 시아보다 빠르게 자리에 앉은 뒤, 내 옆에 앉으려는 시아에게 도영이의 옆에 앉을 걸 권했다. 아닌 척 하면서도, 자리에 앉자마자 밝아지는 시아의 얼굴을 보자, 가슴에 뿌듯한 감정이 차올랐다.

그렇게 식사를 하던 도중, 시아와 도영이의 손이 맞닿았다.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올라가는 입꼬리를 다잡았다. 흐음…그래도 뭔가 아쉬운데. 아, 그거나 물어봐야겠다.

“그러고보니 시아랑 도영이는 처음 만났을  어떻게 만났길래 친해진거야?”

“컥! 커흡….”

질문을 내뱉은 순간, 도영이가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이내 사레가 들려 컥컥거렸다. 시아는그런 도영이를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 안 친한데.”

그렇게 말해도, 등을 두드려주면서 그러면 설득력이 없는데. 내게 비밀로 하려는 듯한 태도에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한  더 되묻자,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한 시아를 조용히 쳐다보았다. 으음, 이대로 가면 말해줄 것도 같은데? 그러던 도중, 겨우 진정했는지 도영이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그게….”

 순간, 시아가 손으로 도영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 잠깐만. 시, 시아야?

내 말을 듣고, 나를 노려보는 시아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시아에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으읍…읍…!”

거의 졸도하기 직전인 것처럼 얼굴이 새파래진 도영이가, 최후의 단말마라도 되는 듯한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 모습에 놀라 시아가 손을 떼자마자, 도영이가 겨우 살아남았다는 듯, 숨을 크게 들이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아, 이런.

도영이가 자리에 앉던 도중, 힘이 빠져 식탁에 있던 접시를 엎었다. 옷 위에 그대로 쏟아진 음식에 당황한 표정을 짓던 시아가, 이내 도영이의 옷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으음…그런데, 이렇게 보니까 뭔가….

‘학교에서…저, 저래도 되나…?’

뭔가, 남사스러운 자세였다. 도영이도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기겁한 표정으로 시아를 만류하고 있었다. 됐다는 말과,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한창 오가고, 이내 침묵이 일었다.


“아….”

시아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더니, 이내 얼굴이 새빨개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붉어진 건 처음인 것 같은데. 그런 감상도 잠시, 시아가 얼굴을 붉힌 이유가  눈에 들어왔다. 저게 그, 그으….

그 사유를 깨닫자마자 눈을다른 곳으로 옮겼다. 감정이 한계를 넘어섰는지 멍한 표정을 짓는 시아와, 필사적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도영이. 셋 사이에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


점심 식사가 끝나고, 도영이가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아까까지의 어색한 침묵이아직도 자리에 남아있었다. 그 와중에도, 시아는 아쉬운지 도영이의 빈 자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번  노려봐야겠네.”

뭐…? 뭘 노려…? 아까 그걸…? 아까 새하얘졌던 머리에 들려온 폭탄 발언에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여전히 빤히 도영이의 빈 자리를 바라보는 시아에게서 눈을 돌려 필사적으로 바닥을 쳐다보았다.

풋풋한 연애소설이 갑자기 장르가 바뀐 느낌이었다. 차마 시아와 눈을 마주칠 자신이 들지 않아 바닥을 바라보았다.


***


점심 시간 이후, 훈련을 마친  먼저 교실에 들어간 시아를 따라 교실로 향했다. 으으…좀 기다려주지. 혼자 들어가다니. 살짝 섭섭한 기분에 투덜거리며 계단을 올랐다. 빠른 걸음걸이로 복도를 지나고, 교실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서며 외쳤다.

“시아야! 나 왔어!”

어라, 어디갔지. 비어있는 시아의 자리를 보고 고개를 돌려 시아를 찾았다. 그리고, 이내 시아를 발견…했는데….

'뭐, 뭐, 뭐하는거야…?'

시아가 도영이의 옷을 얼굴에 가져간 채로 서있었다. 어…그, 그, 그러니까…? 뭐, 뭐하는거지? 혹시라도 다른 사람의 옷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선을 내리자, 환하게 열려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도영이의 가방이 눈에 잡혔다. 아, 확실하네.

“어…그거…도영이 옷이지?”

내 질문에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이내 시아가 홍시처럼 붉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을 듣자,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설마, 시아가 저…저런….

차마 생각이 더 이어지지 않아 시아를 그저 바라보자, 시아가 이내 해탈한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 모르는 척 해줘야겠다. 안 그러면 창문에서 뛰어내릴  같아. 벌써 눈물이 고여있는걸.

숫제 토마토처럼 새빨갛게 변한 시아를 바라보며 모르는 척 입을 열었다. 내 말이 이어질 때마다, 시아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그런데 뭐라고 해야하지?

“그…아까 음식 묻은  신경 쓰였던 거야?”

빳빳히 굳은 머리를 굴려 대충 핑계를 꺼내자, 시아가 마치 구원받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걸 속는구나아….

필사적으로 내게 맞장구 치는 시아의 모습에, 살짝 웃음이 터졌다. 그러자 시아가 다시 움찔하며 눈을 피했다. 아, 이런….

그렇게 한참을 모르는 척을 하자, 그제서야 시아가 안심했다는  한숨을 쉬었다. 휴우…어찌어찌 넘어간건가?

아무래도 그 생각은 조금 일렀던 것 같다.

“그…역시 빨아주는 게 좋겠지?”

어…? 뭘…? 교복을? 왜?

이해할  없는 말에 다시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어, 뭘 하려고…? 아까 그거? 아, 아니지? 그냥 진짜 세탁만 해주는거지? 서, 설마…또 그러겠어?

흔들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교복을 말한  맞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는 시아를 보고 잠시 말문이 막혔다. 태연한 척 살짝 떨리는 시선을 피해 간신히 동의를 표하자, 시아가 성공했다는 듯 입꼬리를 꿈틀거렸다.

아, 맞나보네….

최대한 모르는 척 하며, 그만두라는 의미를 담아 에둘러 도영이한테 허락을 받으라고 말하자, 시아는 알겠다는  고개를 흔쾌하게 끄덕였다. 어…? 이게 아닌데?

도영이한테 허락을 받으라고 하면, 부담스러워서 그만  줄 알았는데. 저렇게 쉽게 끄덕일 줄은 몰랐다. 설마…교복 정도는 쉽게 주고 받는 사이인가? 벌써…? 어, 근데 그게 무슨 사이지? 어느새 삼천포로 뛴 생각을 멈추고, 시아를 따라 자리에 앉아 도영이를 기다렸다. 으...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그런데….



***



학생들이 하나 둘 몰려오고, 모두가 모인 후에도 도영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내, 다른 반 담당 교관이 하교 지시를 내리자, 다른 학생들이 모두 흩어지고 우리 둘만이 남았다.

“시아야, 그래서 어떻게 할거야?”

“걔한테 가봐야지. 너는?”

아, 결국 가는구나. 대답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게슴츠레 좁혀지는 눈을 최대한 펴고 입을 열었다. 역시, 나도 따라가야겠다.

‘그, 그래도 내가 도와줘야지…!’

오늘 아침에 비하면 꽤 힘이 빠진 각오였다. 그치만, 그건 좀 그렇긴 하잖아….

*


훈련장으로 향하자, 교관님과 함께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도영이가 보였다. 열정으로 달아오른 분위기에 감탄하기도 잠시, 이내 꽤 친근해보이는사이에 눈을 좁혔다.

‘너무 가까운데….’

교관님이랑 설마 그렇게 될 리는 없겠지만, 은근히 가까워보이는 거리감이 눈에 거슬렸다. 그리고 얼마 뒤, 시아가 교관님이 떠난 자리에 홀로 앉아있는 도영이에게 다가갔다.

도영이와 거리가 가까워지자마자, 시아의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도영이에게 가져온 짐을 넘겨주며, 시아가 바로 본론을 말했다. 갑자기 나온 아까의 일을 상기시키는 화제에 도영이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러기도 잠시, 시아가 말을 잇자마자 부끄러워하던 표정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변했다.

'갑자기 세탁이라니….'

도영이도 뭔가 이상한 기미를 느꼈는지, 아니면 내가 표정관리를 실수했는지, 시아와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의문에  표정을 지었다. 으으, 이걸 도와줘야하나…? 아무리 그래도 좀 그런데…. 그렇게 고민하며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민하던 순간, 시아가 도영이의 가방을 빼앗아 들었다. 헐….

막무가내로 도영이의 가방에서 교복을 꺼내든 시아가, 그걸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교복을 손에 넣은게 기쁜지 시아가 생글생글 웃었다. 처음으로 보는 웃는 모습이었다. 되게 예쁘긴 한데…. 사유를 생각하자마자 착잡한 기분이 들어 시아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도영이를 바라보자, 도영이는 멍한 표정으로 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

“아…그…고마워.”

멍하니 시아를 바라보던 도영이가, 쑥쓰럽다는 듯 말을 더듬었다. 분위기 자체는 좋은데. 되게 풋풋한데…. 그, 그래도. 사이는 가까워 진  같으니까, 다행이겠지? 그렇다고 치자. 착잡한 마음에 두 사람에게 고개를 돌려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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