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지리산 던전(1)
대련수업 다음 날, 주말이 코앞으로 다가와 살짝 풀어진 교실 내 분위기를 느끼며 턱을 괴고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아마 쟤가 주말마다 외출을 나갔었지. 고아원을 간다고 했나?
‘설정상 고아니까.’
시간이 날 때마다 가끔 자기가 자랐던 고아원에 방문한다고 원작에서 나오긴 했는데. 뭐, 초반부를 지나니까 작가가 그 설정을 까먹었는지, 아예 안 가지만. 나 참, 냉정한 놈.
그러고보니이번 주말이면 원작 이벤트 중 하나 아닌가. 고아원에서 같이 자랐던 소꿉친구랑 우연찮게 만나는 그런 이벤트. 아마 그 상대가….
‘이설화였지.’
걔도 고아였다가 재능을 보고 입양된 케이스니까. 뭐, 시간상으로 따지면 고아원에서 이설화가 입양된 후에 이도영이 들어갔으니, 딱히 지금 안면은 없는 건가? 아, 모르겠다. 내 알 바는 아니지.
그나저나, 주말에 이도영이 외출을 나가면, 굳이 나도 여기 있을 필요가 없는데. 마나 회복 방법도 찾아봐야 하고. 나도 그냥 외출이나 나갈까.
‘지리산이나 한 번 가볼까.’
혹시라도 산에서는 마나 회복이 될지도 모르잖아. 기숙사에서 키우는 화초 정도만으로 숨 쉬는 게 편해진 걸 고려하면, 숲이면 진짜 마나를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뭐, 안 될 수도 있긴 한데. 이게 내 소설에서는 원래 없었던 설정이라 가늠이 안 되네. 비슷한 묘사라고 해봐야, 정령이 마기를 정화하는 묘사밖에 없었으니까. 설정 좀 세세하게 짤 걸 그랬나.
뭐, 그거 말고도. 지리산에 있는 원작 이벤트도 할 겸. 겸사겸사지.
“시아야, 밥 먹으러 가자!”
생각을 정리하던 도중 들려온 김유진의 말에 몸을 일으켰다. 그래, 일단 밥이나 먹자.
***
“시아는 이번 주말에 뭐 할꺼야?”
“나? 외출할건데.”
식사 도중, 질문을 던져오는 김유진에게 대답하며 눈을 마주쳤다. 뭐, 집에 안 가고 수련에 열중하는 부류도 있겠지만, 그게 난 아니거든.
“어디 가려고? 본가에?”
“아니, 나 고아인데.”
뭐, 이 몸에 빙의되기 전에도 그랬지만. 가족이 없는 건 이 몸뚱아리도 마찬가지니까. 별 생각 없이 대답하자, 대답을 들은 김유진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으음, 실수했나.
“아…그…미안….”
“됐어. 별 신경 안 쓰니까.”
애초에 왜 미안해 하는거지. 가족이 없으면 없는 거지. 내 생각과는 다르게 급격히 무거워진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덤덤하게 식사를 계속하자, 이도영이 나를 바라보았다. 뭔데.
“….”
뭐지, 아무 말도 안 할거면 왜 보는거래. 내 얼굴에 와닿는 묘한 시선에 표정을 찌푸리자, 이내 이도영이 시선을 거뒀다. 침묵도 잠시, 이내 김유진이 여전히 당황한 낯으로 입을 열었다.
“…그, 그래서 주말에 어디 가려고…?”
“지리산. 볼 일이 있어서.”
미안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떨리는 김유진의 목소리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들은 김유진의 표정에 궁금증이 조금 섞였다. 하기사, 나도 남이 갑자기 산에 볼일이 있다고 하면 궁금하긴 하겠네,
“지리산…?”
방금 전 자기가 한 말을 여전히 신경 쓰는 듯,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김유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안에 있는 미발견 던전을 찾아야 해서.’
뭐, 찾기엔 지리산이 많이 크긴 하지만, 찾다보면 나오겠지. 이 몸뚱아리의 성능이면 뭐, 탐색 자체는 그리 힘들진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어느정도 장소도 특정되어 있고, 막상 산에 갔는데 마나가 회복되지 않으면 조금 곤란하긴 하겠다만….
[현재 보유중인 마나]
6/20
상태창을 힐끗 바라보고, 이도영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원작대로라면, 딱히 지리산에서 마나를 쓸 일은 많지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점심을 다 먹고 나도 7밖에 안 될텐데. 최소한 절반은 채워둬야겠지.
“야, 방과 후에 좀 도와주라.”
“아…그거…?”
상념을 마치고 넌지시 말하자, 알겠다는 듯 이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대충 말해도 알아듣네. 뭐, 내가 얘한테 도와달라고 할 게 이것밖엔 없긴 한데. 게슴츠레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는 김유진을 무시하고, 다시 식사를 이어나갔다. 쟤는 왜 저럴까.
***
“그런데 너는 왜 있냐?”
“음…그냥?”
뭐라는 거야.
내 질문을 무시하고 배시시 웃는 김유진을 바라본 뒤,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래. 내가 뭐라고 한다고 듣기나 하겠냐. 방과 후, 학생들이 전부 나가 텅 빈 교실의 창문으로 노을빛이 새어들어왔다.
“야, 좀 가까이 와 봐.”
아까부터 멀찍이 떨어져 내 눈치만 바라보고 있는 이도영에게 입을 열었다. 도와준대매 새끼야.
‘진짜 답답해 죽겠네.’
긴장했는지, 머뭇거리며 쭈뼛쭈뼛 다가오는 꼬라지에 눈살을 좁혔다. 그냥 내가 가는게 낫겠네.
걸음을 옮겨, 단숨에 이도영에게 접근한 뒤, 손을 잡았다. 또 목덜미에 머리를 들이댈 줄 알았는지, 꽉 감았던 이도영의 눈이 이내 의문을 담고 나를 향해 뜨였다.
“…?”
물음표를 띄운 이도영과 김유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내 손에 잡힌 이도영의 손을 들어올려 얼굴에 가져다댔다. 목덜미보다는 약하지만, 여전히 강렬한 청량감에 잠시 몸을 떨었다. 그 청량감도 잠시, 밀려오는 감각 속에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왜 손보다 목덜미가 마나 회복량이 더 많지?’
접촉 면적이나, 피부 노출 면적으로 따지면, 맨손이 당연히 옷을 입은 상체 부분보다 회복량이 많아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도 잠시, 다시 숨을 들이켜 마나를 회복했다. 아, 몰라. 알게 뭐람. 그렇게 한참 뒤.
[현재 보유중인 마나]
20/20
오, 엥간하네. 처음으로 모조리 회복된 마나에, 그제서야 잡고 있는 손을 놓았다. 시선을 올려 이도영을 바라보자, 아직 부끄러움이 남아 있는지 이도영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고맙다.”
“아…응…그, 그래.”
어째 반응이 시원찮네. 미묘한 대답에 묘한 기분이 들기도 잠시, 이도영의 옷을 바라보자, 깜빡하고 있던 물건이 떠올랐다. 이걸 까먹고 있었네.
“아, 참. 이거 받아가라.”
내 가방에서, 저번에 이도영에게서 세탁을 핑계로 가져갔던 교복을 꺼내 건네주었다. 이걸 이제야 돌려주네. 뭐, 사람 많은 교실에서 건네주긴 좀 그러니까. 아, 근데 뭔가 좀 아까운데…. 음.
“야. 부탁이 하나 있는데.”
“부탁?”
이걸 말할까 말까. 아무리 그래도 좀 심한가. 흐음…뭐, 이제와서 그렇게 말하기도 애매하지? 생각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이걸로 갈아입고,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나 좀 주라.”
“…어?”
음, 역시 좀 그런가. 멍한 표정을 지은 이도영과, 입을 벌리고 나를 바라보는 김유진의 반응에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래도. 혹시 모르는데.
“저…시아야. 그, 그건 왜…?”
“저번에 말했잖아. 마나 회복에 필요하다고.”
태연하게 대답하자 그제서야 김유진이 얼굴에서 당황을 지워냈다. 그와 반대로,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는 이도영에게 한 번 더 질문했다.
“안 되냐?”
“아….”
조금 꺼리는 듯한 반응. 음, 완전 싫은 건 아니고, 부끄러운 모양인데. 아, 생각해보니 지금 갈아입기는 무리가 있으려나. 쯧, 뭐. 어쩔 수 없지.
“알았다. 생각해보니 지금 갈아입긴 힘들겠네.”
“하아….”
내 말을 듣고나서야 안심했다는 듯, 김유진과 이도영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허, 참. 아주 죽이 척척 맞네.
***
주말이 되어김유진, 이도영과 인사를 나누고 학교 밖으로 나섰다. 여전히 매캐한 공기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잠시. 이내 가방에서 작게 새어나온 맑은 공기에 표정을 풀었다. 역시, 받아내길 잘했네.
가방에 든 이도영의 교복 덕분에, 꽤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아, 덕분에 살겠네.
지리산에 도착하자,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근처 식당에서 끼니를 간단히 해결한 뒤, 지리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던전은 강가 근처에 있었으니까, 강물을 따라 걸으면 금방 나올 것이었다.
그리고 한참 뒤.
“너무 쉽게 생각하고 왔나?”
살짝 피곤해진정신에, 바닥에 천을 깐 채 나무에 기대앉았다. 아, 이게 생각보다 찾기 힘드네. 방향은 아니까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어디에 있을까. 미발견 던전이.
휴식도 잠시, 이내 몸을 일으켜 다시 강가를 쭉 따라서 걸었다. 벌써 포기하긴 그렇잖아.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마나를 조금 소모해서 몸을 강화해도, 여기서는 마나가 회복된다는 점이었다.
‘이러면 굳이 이도영한테만 매달릴 필요는 없겠네.’
뭐, 지리산 정도의 산인데도 마나 회복량이 그리 많지는 않다는 걸 감안하면, 웬만하면 이도영한테 달라붙는게 베스트겠지만. 비상시에는 한 번고려해볼 선택지 정도는 되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던 도중 이내 목적한 던전을 발견했다. 정확히는, 던전의 입구를 발견했다.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꽤 큰 강. 그 강물이 흐르는 물줄기 옆에 쌓인 언덕에서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졌다. 빙고. 드디어 찾았네.
고개를 끄덕이고 언덕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더욱 강해지는 이질감에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나, 여기가 맞다.
‘개방되지 않은 미발견 던전은 마나를 써서 입구를 강제로 열어야 한다고 했지?’
[현재 보유중인 마나]
20/20
꽉 찬 마나량. 아까 조금 소모한 마나는 어느새 회복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거 총량을 늘릴 방법은 없나? 역시 포인트 시스템인가. 그걸 복구해야 하나.
[보유 마나 1000을 이용해서 스킬 탭을 복구할 수 있습니다.]
4/1000
[보유 마나 3000을 이용해서 포인트 시스템을 복구할 수 있습니다.]
12/3000
어라, 저거 왜 올라가있냐. 고개를 돌려 떠오른 팝업을 다시 읽자, 저번엔 본 적 없던 문구가 보였다.
[최대치를 넘어서 회복되는 잉여 마나는 자동으로 시스템 복구에 사용됩니다. 현재 스킬 탭 : 포인트 시스템에 각각 투입되는 잉여 마나의 비율은 1 : 3입니다.]
헐. 그럼 아까부터 몇 시간동안 회복한 잉여마나가 16이라는거네. 내가 있던 시간에 비하면, 생각보다 회복량이 더 적었다. 그건 그렇고.
‘쯧, 나중에 고민해야지 이건.’
지금 고민해봤자 별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팝업을 닫고,손에 마나를 응집해 칼날을 만들어낸 뒤, 눈 앞의 이질감이 드는 위치에 그대로 손날을 내리찍었다.
-찌지지지직!
무언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던전으로 들어가는 게이트가 열렸다. 가방에 있는 준비물을 챙기고 곧바로 던전 안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