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던전 공략 체험(1)
“가이아의 권능을 사용할 수 없다구요?”
뭔 헛소리야그게. 원작에서 그랬잖아. 인간의 육신이 아니라면 권능을 더 잘 다룰 수 있을거라고.
당황 섞인 내 질문을 들은 헤르메스가 이내 말을 이었다.
[그래. 그 힘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알고 있느냐?]
“그야…봉인된 상태….”
아, 설마.
갑작스레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말을 멈췄다. 내 반응에 힘을 실어주듯, 헤르메스가 긍정의 뜻을 표했다.
[그래, 가이아의 권능은 인간이 품기에는 너무나도 강대한 힘. 그럼에도 그 아이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그 힘이 대부분 봉인되어 있는 덕분이란다.]
“그러면 엘릭서를 먹으면 봉인이 풀리는 게 아닌가요?”
인간의 몸이 담지 못할 권능이라서 봉인된거면, 육체를 갈아치우면 풀려야하는거 아니야?
[아니, 반대란다. 그 봉인의 방식이 문제야.]
권능을 봉인한 방식? 무슨 방식이길래.
궁금증에 고개를 갸웃하자 헤르메스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 아이의 육신은 어마어마한 재능을 타고났단다.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정도지.]
그야 당연하지. 주인공이니까. 그래서 그게 어쨌다고?
[하지만 그런 대단한 육신이라도, 결국 인간의 몸. 가이아의 힘을 담기에는 역부족이지.]
그래서 봉인했다 이건가. 뭐,그건 알고 있는 사실이고.
참고로 권능을 봉인한 사람의 정체는 이도영의 부모님이다. 흔히 주인공한테 붙은 출생의 비밀 설정 같은 거지. 걔한테 알려 줄 생각은 없지만.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면 곤란하거든.
“아무튼 그게 왜 문제인데요?
[그 권능의 방식은, 신체의 모든 잠재력을 그러모아 댐을 만들어낸 것과 마찬가지란다.]
“댐…?”
[그래. 가득 고인 물을 조금씩 방류하는 것으로 유지하는 거대한 저수지를 만들어낸 거지.]
아, 무슨 소리인지 이제야 알겠네.
이도영의 권능을 봉인한방식은, 육체의 잠재력을 통해 권능이 넘쳐흐르는 걸 막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봉인하지 못한 권능은, 댐에서 물을 방류하듯이 주변의 마나를 정화하는 방식으로 소모하고 있는 거고.
‘재능이 없는 이유가 봉인 탓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매커니즘인 줄은 몰랐네. 그러면 성장을 제대로 못한 이유는 그건가? 조금씩 새어나오는 권능도 신체가 감당하기 부담스러워서?
뭐, 그러면 왜 봉인을 유지한 채, 엘릭서를 먹이면 안된다는 건지 알겠다.
“봉인을 유지한 채로 엘릭서를 먹이면, 결국 봉인이 더 강화되는 건가요?”
[…그래.]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결국은 인간의 육체. 가이아의 권능을 완벽히 봉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그 탓에 지금처럼 권능이 조금씩 새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신의 육체라면 달라.’
신의 육신은 품은 잠재력 자체가 격이 다르다. 봉인을 유지한 채, 엘릭서를 먹인다면 그 봉인은 어마어마하게 견고해지겠지. 권능을 꺼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그러면 마나 흡수도 더는 못하게 될 테니, 나도 같이 망하는 거지.’
둘 다 사이 좋게 퇴학 후 세계멸망 엔딩이다. 와, 바로 안 먹이길 잘했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헤르메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무슨 방법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겠지. 빨리 털어놔.
[흐음….]
내 질문을 들은 헤르메스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래, 이것도 ‘거래’니까. 답해주도록 하마.]
아, 아직도 꽁해 있었어? 겁나 쪼잔하네 진짜.
[방법은 간단하단다. 봉인을 푸는 순간 엘릭서를 먹이면 되지.]
아, 그래? 진짜 간단하네. 의외로 간단한 해결책에 고개를끄덕이자, 헤르메스가 흥미롭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흐음…봉인을 풀 자신은 있는 모양이구나.]
정확히는 푸는 게 아니라 깨뜨리는 거지만. 뭐, 그게 그거지. 원작 각성 이벤트 그대로 따라가면 되는 거잖아.
‘아,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상한데.’
원작에서는 그럼 권능이 해방된 걸 어떻게 버틴거냐? 잠시 새어나온 권능만으로 몸이 제대로 성장을 못하는 수준이면.
“저기,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그래.]
살짝 기대감 어린 헤르메스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하고 입을 열었다. 얘도 반응이 참 이상해. 뭐, 그건 그렇고.
“인간의 육체로는 가이아의 권능을 다 받아낼 수 없다고 했잖아요?”
[그렇지. 인간이 견디기는 힘든 힘이니까.]
“그러면 엘릭서를 먹지 않은 상태에서 봉인이 풀리면 어떻게 되는거죠?”
[흐음….]
내 질문을 들은 헤르메스가 침음성을 흘렸다. 잠시간 침묵이 이어지고, 이내 헤르메스가 대답했다.
[일단 봉인이 풀렸으니, 억눌려졌던 잠재력은 모조리 깨어나겠지. 하지만.]
하지만?
[어마어마한 권능을 버티지 못한 육신이 점점 망가지기 시작할거다. 권능을 쓰면 쓸수록 더더욱. 그리고, 점차 몸에서 권능이 새어나가겠지.]
잠깐, 그러면 원작에서 각성 후 정화력이 상승했다던 묘사는.
‘그냥 권능이 질질 새어나가는 거였어?’
허, 이건 진짜 예상 못했는데.
당황에 찬 헛웃음을내뱉자마자 헤르메스가 말을 이었다.
[물론, 가이아의 권능은 생명 그 자체. 망가지는 육신은 어찌어찌 고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라, 그럼문제 없나? 아니, 문제 없을리가 없잖아. ‘육신은’ 고칠 수 있다고 했지? 그러면 고칠 수 없는 건.
[권능의 행사를 받아내는 영혼은 점점 열화되겠지. 육신이 버티지 못하기에 과한 권능을 사용하진 못하겠지만, 그 말은 육신이 권능의 반동을 완화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단다.]
즉, 영혼이 작살난다는 뜻이네.
‘미친, 진짜 큰일 날 뻔했네.’
미리 엘릭서 안 구해왔으면, 구해왔어도 벌써 먹였으면, 시작부터 망한 게임이었다는 거잖아? 이런 미친. 이게 뭔 말도 안 되는 외통수야?
소름 끼치는 상상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와, 원작대로 갔으면 진짜 망할 뻔했다.
어라? 잠깐만.
‘원작에서 실패한 이유가 그럼 이건가?’
뭐야, 그러면 나중에 각성할 때 엘릭서만 먹이면 게임 끝이야? 혹시 나 이제 주인공 믿고 쉬어도 되는 거야?
그 생각을 하자마자 웃음이 절로 피어났다. 와, 개꿀이잖아? 주인공 각성까지만 뻐팅기다가, 각성하고 나면 사관학교 자퇴하고 놀고 먹으면 되는 거네?
[음…? 더 물어볼 것은 없느냐?]
“네, 고마워요.”
헤르메스의 질문에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 뒤, 패스를 닫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넘쳐나는 환희에 베개에 얼굴을 묻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싸, 개꿀.
*
“너무 일찍 일어났나.”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상쾌한 기분. 아, 이 생활도 얼마 안 남았구나. 차오르는 행복감에 미소를 지으며 기숙사를 나섰다.
‘아침마다 겪는데도 어째 이 공기는 익숙해지질 않네.’
매캐한 공기. 항상 들이마시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공기에도 생각보다 기분이 그리 나빠지지 않았다. 웃음을 흘리며 발을 재촉해 교실을 향했다.
“안녕!”
“그래, 안녕.”
“…엥?”
언제나처럼 환하게 인사하는 김유진에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자, 김유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뭔데. 내가 웃으니까 이상하냐?
어이가 없어져 싸한 시선을 보내자, 김유진이 입을 열었다.
“혹시 오늘 기분 좋은 일 있어?”
있지. 엄청 좋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김유진이 궁금증 섞인얼굴로 내게 질문했다.
“뭔데?”
“…설명하긴 힘드네.”
아무리 그래도 놀먹각이 잡혀서좋다고 하기엔 좀 쪽팔리잖아. 몇 마디 대화를 나누기도 잠시, 이내 신유정이 교실에 들어왔다.
‘왠지 되게 오랜만에 보는 기분인데.’
[호오, 기세가 남다른 인간이구나.]
우리 교관이 좀 각이 잡힌 사람이긴 하지. 헤르메스의 감탄을 흘려넘기고 교탁에 선 신유정을 바라보았다. 진지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는 신유정을 보며 웃음을 지웠다. 적어도 각성 전까진 제대로 해야지. 뭐, 이제 한 달도 안 남았으니까.
“자, 다들 주말은 잘 보낸 모양이군. 오늘은 새로운 훈련이 예약되어 있다.”
교실을 한 번 가볍게 훑어본 신유정이 이내 리모컨으로 대형 스크린을 켰다.
“영웅들의 주 업무가 뭔지는 알고 있겠지?”
신유정이 가볍게 질문을 던지자, 여러 가지 답변이 쏟아졌다. 치안 유지, 마인 토벌, 몬스터 사냥. 그리고 던전 공략. 이게 정답이네.
“그래. 던전 공략이다.”
신유정은 잠시 숨을 들이마시더니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은 조를 짜서 던전 공략을 체험할 예정이다. 진짜 던전은 아니지만 큰 차이 없으므로 긴장하는게 좋을 거다. 그리고 조장의 경우, 여태까지 훈련과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낸 이들을 선발하겠다.”
그렇게 말한 신유정이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머금었다.
“물론, 조장이 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지. 처음으로 팀을 이룬 대원들을 잘 조율하지 못하면 공략에 실패할 수밖에 없을테니 말이야.”
그 말을 듣고 옆을 쳐다보자, 김유진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음, 뭐. 나랑 얘는 떨어지는 거 확정이네.
“조장으로 선출된 이에게는 각자 대원을 뽑을 권한이 부여된다. 포지션에 맞춰서 팀을 구성하도록.”
나 참, 너무 주먹구구 아닌가? 뭐, 실제 던전 공략에서 이런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신입생한테 즉석으로 맞춘 팀에서 팀워크를 맞추라니. 조금 버겁지 않아?
“먼저, 조장으로 선출된이들을 호명하겠다. 호명된이들은 점심시간까지 조를 구성해오도록.”
‘아싸한텐 좀 너무한 요구인데.’
아, 모르겠다. 대충 아무나 데려와서 짜야지.
“좋아, 이들이 대장이다. 한 마디 하자면, 비록 진짜 던전은 아니라 해도, 항상 최선을 다하도록.”
이내 호명을 마친 신유정은 용무를 끝냈다는 듯 한 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비웠다. 허, 진짜 알아서 짜라고?
“저…우리 같은 조 하지 않을래?”
교관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벌써 다가오기 시작하는 놈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얘가 누구더라. 일단 칼 쓰는 놈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 귀찮아.
“일단 비켜줄래.”
비켜 좀. 길 막지 말고. 뻘쭘한 표정으로 몸을 치우는 놈에게 적당히 인사를 건네고 이도영에게 향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모이는 시선. 내게 향했던 시선이 이내 내 목적지에 있는 이도영에게 향했다. 하기사, 객관적으로 보면 내가 얘를 데려갈 이유가 없긴 하네. 뭐,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야,내 팀 와라.”
"…그래."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영의 반응을 본 뒤, 고개를 들어 이 쪽을 향해 쏠린 시선을 마주했다. 왜인지 모르게 흥미로 가득 찬 시선에 기분이 묘하게 나빠졌다.
[하하하, 꽤나 재미있는 상황이구나.]
재밌냐? 난 기분 나쁜데. 뭘 봐,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