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던전 공략 체험(2)
미묘해진 분위기는 금새 사그라들고, 이내 다시 떠들썩해진 교실에서 나머지 조원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리 잘 구해지지는 않았지만.
‘애초에 이렇게 팀을 만들면 하위권은 나가리잖아.’
원작에서는 주인공의 비참함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이었겠지만, 지금 보면 꽤나 골 때리는 조 편성 방식이었다.
‘그래서, 역시 마법사를 구해야겠지.’
보통 팀을 구성하는 인원은 5명. 근접 둘에 원거리 셋이다. 물론, 무조건 그렇게 맞출 필요는 없다.
‘그, 뭐더라. 탱크 버스터인가 하는 공략 진형도 있었으니까.’
마법사 넷에 궁사 하나였나? 원거리 영웅들만 모아서 적을 포착하자마자 녹여버리는 전략을 펼치는 구성이라고 하던데. 물론, 매우 불안정한 포지션이기에 특정 던전에서만 유효한 전략이기도 하다.
아무튼, 근접 둘, 원거리 셋이 가장 기본적인 팀의 구성이라는 거다. 원거리의 경우, 적어도 사수 하나와 마법사 하나는 필수고.
‘사수는 정찰, 마법사는 지원을 겸하니까.’
사수의 경우 우월한 시력과 동체시력으로 적이 다가오는 것을 빠르게 포착할 수 있고, 만약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이 나타났을 경우 마법사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내 조는 마법사가 절실하지.’
사수는 압도적인 1등, 마법사는 압도적인 꼴찌. 언밸런스의 극치나 다름 없다. 이런 조에 들어올 상위권 학생은 없겠지, 아마.
“저기, 잠시 괜찮아?”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도중,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시선을 앞으로 향하자, 꽤나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남학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얘 이름이…뭐지?
“혹시 네 조에 들어갈 수 있을까?”
흐음? 흥미로운 눈길로 잠시 몸을 훑었다. 단련 수준을 보니 근거리나 궁사는 아니고, 마법사네.
“마법사야?”
“맞아.”
확인차 던진 질문에 가볍게대답한 상대. 실력에 꽤나 자신이 있는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시선을 내려 명찰을 확인했다. 강혜성. 모르는 이름이네.
‘헤르메스 님, 얘 어느정도 수준이에요?’
내가 본다고 누군지 알 리가 있나. 패스를 향해 질문을 건네자 이내 헤르메스가 답했다.
[흐음, 딱히 대단한 실력은 아니니라. 하기사 불의 힘을 타고난 아이에 비교하는 건 무리겠지만…. 그래도 이 안에서 중상위권 정도는 되는 것 같구나.]
김유진한테 비교하면 안 되지. 당연히. 그래 봬도 마법사로서 격이 다른 수준인데. 다만 비교 상대가 이설화라 조금 처지는 것 뿐이고.
“그래, 들어 와.”
중상위권이라, 나쁘진 않네. 하위권만 들어올 줄 알았는데. 내가고개를 끄덕이자 마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강혜성이 불쾌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런데 얘 뭔가 기분 나쁜데.
“그런데 하나만 물어봐도 괜찮을까?”
“맘대로.”
내 대답을 들은 강혜성이 이도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살짝 움찔한 이도영을 보며 강혜성이 입을 열었다.
“얘를 꼭 데려갈 이유가 있어?”
응, 있는데. 적어도 너보단 중요해. 그 말을 듣고 눈썹을 좁힌 나를보며 강혜성이 말을 이었다.
“마법도 제대로 못 쓰는 반푼이잖아. 아무리 봐도 쓸모가 없을 것 같은데 말이야.”
태연한 목소리로 독설을 쏟아낸 강혜성이 손을 내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아하니, 제 말이 꽤나 흡족한 모양이었다.
‘와, 면전에서 사람을 이렇게 까는 놈은 처음이네.’
시선을 돌려 이도영을 바라보자, 주눅 든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보고 있다. 음, 마나 얘기는 별로 밝히고 싶지 않은데. 이 새끼, 질이 나빠 보여서 더더욱. 뭐, 그보다 더 짜증나는 것도 있지만.
[하, 주제를 모르는 인간이구나.]
그러게나 말이야.
경멸 섞인 헤르메스의 목소리에 가볍게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지금 더 마음에 안 드는 건.
‘지가 뭐라고 나한테 입을 털어.’
까도 내가 까지. 생판 처음 보는 떨거지가 욕하니까 기분이 좀 더럽네.
생각도 잠시, 살짝 찌푸린얼굴로 강혜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야.”
“응?”
내가 당연히 지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한 듯, 강혜성은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진짜 웃기는 놈이네 이거.
“꼬우면 그냥 꺼져.”
제 까짓 게 어디서 나한테 훈수질이야. 건방진 새끼가.
“…뭐라고?”
“꼬우면 꺼지라고. 두 번 말하게 만드네.”
내 말을 듣고 멍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강혜성을 향해 한 번 더 욕을 박았다. 당황도 잠시, 내 욕설을 듣고 열 받은 모양인지, 강혜성이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걱정돼서 말해줬더니 무슨….”
걱정은 개뿔. 말하는 꼬라지가 그게 아닌데. 어이가 없어 픽 헛웃음을 뱉은 뒤 팔짱을 꼈다.
“그냥 훈수 두지 말고 좀 꺼지라고, 허접 새끼야.”
벌써 세 번째로 말하네. 내 욕설을 들은 강혜성이 잠깐 몸을떨더니 이내 훽 돌아섰다. 그리고는 이도영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하! 기둥서방 놈이 여자 하나 잘 물어서 좋겠네?”
그 말을 남기고 빠르게 자리를 뜨는 강혜성.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고 잠시 눈을 감았다.
허, 어이가 없네. 기둥서방? 여자를 물어?
‘죽여버릴까.’
밀려오는 빡침에 이를 갈기도 잠시, 내게 와닿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얘는 왜 이런 표정이야 근데?
“왜.”
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도영.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잠깐 침묵하던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마나 때문이야?”
밑도 끝도 없는 질문. 잠깐 무슨 의미인가 고민하다가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뭐, 조원으로 들어오라고 한 거?”
이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거 아니냐? 그 이유만은 아니지만.
“당연하지.”
내 대답을 들은 이도영이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것 뿐만은 아니지만.”
“…그럼?”
예상치 못했다는 듯, 이도영이 귀를 쫑긋 세웠다. 눈을 마주한 채 손가락을 들어 이도영의 머리를 가리켰다. 내 동작에 얼굴에 의문을 띄운 이도영을 향해 말을 이었다.
“너,필기 1위잖아. 나는 필기는 젬병이라.”
“필기…? 그렇긴 한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이도영이 말 끝을 흐렸다.
“나는 던전에서 어떻게 지휘해야 하는지 잘 모르니까, 지휘는 너한테 맡길거야.”
이건 반은 사실이다. 원작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던 이벤트는 기억하지만,일반적인 던전이 어떤지는 관심없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조별과제는 질색이라고. 내가 지휘를? 아싸한테 뭘 바라는 거야. 그렇다고 지휘를 다른 놈한테 맡길 수는 없고.
‘내가 마나를 회복해야 한단 걸 아는 놈이 없으니까.’
그것까지 감안해서 지휘를 할 수 있는 놈은 결국 이도영 뿐이다.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지휘를 하라고?”
“어.”
멍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이도영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내 이도영이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아, 귀찮게 하네.
표정을 구기고 이도영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불안감에 찬 눈을 마주하자 가볍게 짜증이 일었다.
“야, 못할 것 같으면 안 해도 돼.”
금새 바뀐 내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짓는 이도영. 그 얼빠진 얼굴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지휘를 안 하면 내가 귀찮아지거든?
“근데 단순히 마나 셔틀로 얹혀가고 싶어? 나라면 아닐 것 같은데.”
이건 거짓말이다. 얹혀가는 게 제일 꿀인데, 굳이 왜 나서서 고생하냐?
그래도 이도영에게는 이 말이 꽤 효과가 있었는지, 불안감을 품었던 눈이 이내 날카롭게 뜨였다. 금새 각오를 다진 이도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뭐, 됐네.
“그래서 할 수 있겠어?”
내 질문을 들은 이도영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흡족한 반응에 어깨를 툭 치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새끼, 그래도 깡은 있네.”
이래야지 내가 편하지. 그러기도 잠시, 헤르메스가 산통을 깨듯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조원은 더 안 구하느냐?]
아, 참. 까먹고 있었네.
*
다른 조원을 구하는 건 그리 어렵진 않았다. 잘난 놈들은 전부 다른 조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이 쪽도 완전히 경쟁력이 없는 건 아니니까. 이도영이라는 디메리트가 있다고 해도, 나를 보고 들어오는 놈들도 꽤 있다는 거지.
‘뭐, 이도영이 지휘한다고 하니까 몇 명이 더 빠지긴 했는데.’
하나같이 나한테 한심하다는 시선을 보내서 좀 빡치긴 하더라. 아니, 내가 지휘를 못하면 남한테 맡기는 게 맞는 선택 아니냐? 어이가 없네.
아무튼, 그렇게 몇 명이 또 걸러지고. 남은 놈들을 데려와서 조를 구성했다. 헤르메스의 말대로면 반에서 중상위권인 마법사 하나. 그리고 중위권인 검사 둘. 그리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조원 목록]
[조장, 사수 유시아]
[검사 김민우]
[검사 마진철]
[마법사 이도영]
[마법사 최윤아]
점심시간이 끝나고, 발급받은 조원 목록을 들고 가상 던전의 입구로 향했다.
“아, 왔구나.”
“어.”
내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는 이도영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도착해 주위에 앉아 있던 최윤아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저, 저기…잘 부탁해!”
“어, 그래.”
소심해 보이는 인상답게 작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최윤아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이도영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얼마 후, 다른 조원들도 이내 모습을 드러냈다.
“하하, 반가워!”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호남형의 남자. 이름표를 보자 마진철이라고 쓰여있었다. 와, 얘 되게 터프하게 생겼네.
인사를나눈 뒤, 마지막 조원에게 시선을 향했다. 마진철과는 정반대로 과묵해보이는 인상. 온 몸에 깔린 묵직한 분위기에 작게 감탄을 내뱉었다.
“오….”
분위기 쩌네.
“아, 안녕.”
마지막 조원, 김민우에게 최윤아가 인사를 건네자, 김민우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내가 흥미로운 눈길을 보내자 이내 김민우가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피했다.
‘얘 뭔가 되게 있어보이네.’
흥미로운 모습에 감상평을 내리던 중, 이도영이 김민우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어라. 저렇게 과묵한 애 아니었는데…?"
잉. 이건 뭔 소리래.
호기심에 이도영에게 질문하려던 순간, 소란스럽던 장소가 단숨에조용해졌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 새 앞에 서 있는 신유정의 모습이 보였다. 한 차례 강렬한 시선으로 주위를 훑은 신유정이 입을 열었다.
"다들 모인 모양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