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던전 공략 체험(3)
조용해진 분위기에 곁에 앉은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긴장으로 뻣뻣히 굳은 표정. 다른 조원들도 마찬가지인 것을 확인하고 다시 신유정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야?’
앞을 바라보자마자 이쪽을 응시하는 신유정과 눈이 마주쳤다. 흥미로 가득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가 이내 이도영에게 닿았다. 그 시선에 내가 고개를 갸웃한 순간 신유정이 입을 열었다.
“그래. 모두 조는 제대로 짠 모양이군. 조 편성에 만족스러운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지만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상당수의 아이들이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뭐. 나는 별 신경 안 쓴다만, 대다수는 아무래도 만족하긴 힘든 조 편성 방식이니까.
아이들의 반응을 차분히 관찰한 신유정이 이내 말을 이었다.
“원하는 조원을 데려오지 못한 이들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시험의 성적은 단순히 공략 결과만으로 판정되지 않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의문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반응을 본 신유정이 입가에 짓궂은 미소를 띠었다.
‘당연한 거지.’
이딴 식으로 조를 편성했는데 결과만 따지면 상위권이 모여있는 조가 지나치게 유리하잖아.
썩어도 영웅 사관학교니까. 그 정도로 편파적인 대우는 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 체험의 목적은 던전에서 겪을 상황을 미리 체험하는 거고, 단순히 공략 속도만이 판정 기준은 아니라는 거다. 중요한 건 팀워크지.
생각을 정리하던 도중, 이 쪽으로 다시 시선을 향한 신유정과 눈이 마주쳤다. 이도영과 나를 번갈아 바라본 신유정이 재미있다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이번 체험의 성적은 개인 점수와 조별 점수에 따라 책정된다. 조별 점수는 그 조가 얼마나 활약했느냐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다.”
잠시 말을 멈춘 신유정이 다시 씨익하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번 체험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개인 점수지. 개인 점수는 단 하나의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얼마나 조에 기여했느냐. 자신이 속한 조가 아무리 선전을 했다고 해도, 정작 자신이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았다면 고득점은 할 수 없을 거다.”
그 말을 들은 조원들의 시선이 전부 이도영에게 향했다. 이도영의 목울대가 들썩거렸다.
“그리고 지휘자의 경우, 그 지휘가 얼마나 적절한가에 따라 추가적으로 성적에 영향이 있을 거다. 좋은 지휘를 했다면 전투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했다고 해도 만회할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조를 제대로 이끌지 못했을 경우 기여도가 높다고 해도 점수가 깎이게 되겠지.”
그 말을 들은 학생들 사이에서 잠시 웅성거림이 일었다.
“조장이면 가장 성적이 높은 사람인데, 전투 기여도가 낮을 수가 있나?”
“글쎄…그냥 조장한테 추가 점수를 더 주려고 그러는 거 아냐?”
옆 자리에서 나누는 몇 마디 대화가 예민한 청력을 통해 내게 들려왔다. 응, 그거 아니야.
‘애초에 신유정은 지휘를 해야 하는 게 꼭 조장이라고 말한 적 없어.’
조장이라는 이름이랑 가장 높은 성적 탓에 잠시 헷갈렸을 뿐이지. 애초에 가장 능력이 뛰어난 놈은 전투에 참가하는 게 이득이지, 굳이 지휘를 할 필요가 없거든.
몇몇 이들은 이미 그를 예상한 듯 태연한 표정으로 신유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받은 신유정이 가볍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얼마 후, 어느정도 소란이 진정되자 신유정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그러면 던전 공략 체험을 시작하겠다. 순번을 나눠서 여러 차례로 입장할 예정이니, 스크린에 이름이 적혀 있는 조들은 앞으로 나오도록.”
말을 마친 신유정이 리모콘을 누르자, 입구 위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 여러 개의 이름이 표시되었다. 아, 첫 번째네. 별 상관은 없다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조원들이 우르르 따라 일어났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가만히 서있자, 뭐하냐는 듯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팔짱을 꼈다..
“왜 날 봐?”
하나같이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짓는 조원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이도영을 바라보자,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넌 뭐하냐?
팔짱을 낀 손을 풀어 이도영의 등을 떠밀어 중앙으로 내세웠다. 살짝 휘청거리는 이도영을 손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지휘는 얘가 할건데.”
“아….”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조원들이 낮은 탄성을 흘렸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미묘하게 와닿는 시선에 표정을 찌푸렸다.
‘뭔데. 이 분위기.’
*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무기질적인 실내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널찍한 통로에 가득 찬 기계장치가 꽤나 공포감을 조성했다. 사이버펑크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위이잉
조원들이 전부 들어오기 무섭게, 입구가 큰 소리를 내며 틀어막혔다. 가만히 서서 이도영을 바라보자, 이도영이 어색한 표정으로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일단, 민우랑 진철이는 선봉에서 천천히 전진해줘. 윤아는 그 뒤에서 마법을 준비해주고. 시아는 맨 뒤에서 혹시 무언가 다가오진 않는지 경계를 해줬으면 해.”
태도랑 다르게 꽤 능숙하네. 이도영이 말한 대로 진형을 갖춘 뒤 이내 전진을 시작했다. 안쪽을 향해 얼마나 들어갔을까, 무기질적인 금속 벽으로 점철되어 있던 광경은 어느 새 동굴 내부로 바뀌어 있었다.
[꽤나 수준 높은 환상 마법이구나.]
이게 유사 던전 체험이라 이거지. 눅눅하고 끈덕끈덕한 동굴의 공기가 그대로 몸에 와닿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있는 이도영 덕에 숨을 쉴 때의 불쾌감은 없었지만.
풍경에 감탄하며 걸음을 옮기기도 잠시, 이내 멀리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을 포착해 발걸음을 멈췄다. 아, 괴수네.
“멈춰.”
“뭐야? 뭔가 있어?”
내 말을 듣자마자 마진철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지금 장난하냐? 앞을 경계해야 할 놈이 바로 고개를 돌리네.
“고개….”
“뒤를 보면 안 돼. 계속 앞을 경계해 줘.”
“아, 미안하다. 실수했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이도영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마진철이 사과를 남기고 바로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오, 능숙하네.
“뭔가 보였어?”
“어.”
차분한 목소리로 이도영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고개를 끄덕여 답한 뒤, 눈에 힘을 집중해 움직임의 대상을 바라보았다. 꽤 커다란 덩치를 가진, 딱딱한 등딱지를 가진 괴수. 거북이의 형태를 닮은 괴수였다.
“자이언트 터틀인가.”
내 설명을 들은 이도영이 작게 중얼거렸다. 설명을 들어보니, 단단한 등껍질이 특징인 괴수라고 했다. 아니, 그냥 디따 큰 거북이네. 그래서 이름도 자이언트 터틀인 모양이었다.
“시아야, 머리를 맞출 수 있겠어?”
거북, 자이언트 터틀을 바라보며 이도영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당연하지. 일격에 죽일 수도 있다. 꽉 찬 마나통을 흘깃 눈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럼 일단 머리를 맞춰 줄래? 죽여도 괜찮으니까.”
아, 죽여도 괜찮아? 그거야 뭐 어렵지 않지. 저런 약점이 훤히 드러난 괴수는 기습에 취약하니까.
[궁술(A+)가 적용됩니다.]
[마나가 매우 부족합니다. 궁술(A+)가 궁술(C-)로 하향됩니다.]
-쐐애액!
적당히 마나를 불어넣은 화살이 빠르게 날아가 자이언트 터틀의 눈에 정확히 박혀 들어갔다. 머리 깊숙하게 박힌 화살이 자이언트 터틀의 뇌를 곤죽으로 만들었다.
뀌에엑. 작은 단말마를 끝으로 자이언트 터틀이 바닥에 엎어졌다. 단 한 발만에 끝난 결과에 어이가 없어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진짜 한 발이네….”
최윤아가 긴장이 풀린 듯, 허무한 표정을 짓고는 이쪽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게나 말이다.
*
자이언트 터틀을 넘어, 계속해서 안으로 향했다. 들어갈수록 다양한 몬스터가 튀어나온 덕에, 화살 원툴로 진행하기는 무리인 상황도 꽤 있었다. 아예 물리공격이 통하지 않는 사령 계열의 몬스터라던지, 점으로 수렴하는 공격은 가볍게 회복하는 재생력을 가진 몬스터라던지. 지금 상대하고 있는 몬스터도 그런 종류였다.
-서걱
“후아…! 빡세네.”
“후욱…후욱….”
방금 전 튀어나온 몬스터는 샌드 골렘. 핵의 위치를 모르는 이상, 화살을 아무리 꽂아봤자 순식간에 재생하기에, 나는 뒤에서 견제 정도만 했다. 그나마 화살이 박히면 잠깐 움직임에 제한이 걸렸으니까.
뭐? 진짜 상대 못 하는 거냐고?
‘당연히 거짓말이지.’
헤르메스가 설마 골렘의 핵 하나 못 찾겠냐. 얘들도 참여 점수는 따야지. 그리고 무협지에서 흔히 실력의 삼 푼은 숨기랬잖아.
‘삼 푼이 아니라 삼 할도 넘겠지만.’
어쨌든, 나는 딱히 실력을 전부 드러낼 생각이 없다. 그래봤자 자퇴하는 것만 더 귀찮아질 테니까. 안 그래도 사수 계열에서 1위인데, 굳이 더 드러낼 필요도 없고.
샌드 골렘을 쓰러뜨린 뒤,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이도영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뭔데.
“왜.”
“…아무 것도 아냐.”
뭐지, 이 자식. 갑자기 묘한 시선으로 쳐다보길래 용건이 있는 줄 알았더니, 그냥 고개를 돌려버린다. 뭐하냐는 표정으로 잠깐 이도영을 바라보았다가, 이내 내게 향해진 세 쌍의 시선에 눈을 좁혔다.
“…무슨 할 말 있어?”
“아, 아니….”
가장 먼저 내 질문을 받은 최윤아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대답했다. 용건이 없으면 왜 바라보는 거래? 이번엔 김민우를 바라보자, 김민우가 바로 내게서 눈을 피했다. 뭐하냐 얘는. 반응하기도 귀찮아 한숨을 푹 내쉬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기묘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하, 꽤나 고생하겠는걸.”
마진철이 이도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호쾌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 맥락 없는 행동에 이도영이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쟤는 진짜 뭐냐.’
그런 이도영의 표정을 보고 다 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 마진철이 이내 제 자리로 돌아갔다. 어이가 없네.
그렇게 휴식을 취하기도 잠시, 충분히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심층부로 향했다. 꽤나 오랜 시간을 걸었다고 느꼈을 때쯤, 지금까지와는 꽤나 분위기가 다른 장소에 도착했다. 거대한 공동, 그리고 닫혀있는 입구. 문으로 보이는 곳 앞에 멈춰 선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보스 룸인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