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던전 공략 체험(4)
보스 룸. 일반적인 던전에서 던전의 핵이 위치한 장소이자 가장 강력한 몬스터,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는 장소의 명칭. 던전의 공략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들어가야 하는 장소임과 동시에 던전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곳이다.
그리고 그런 보스 룸만이 가지는 특징이 하나 있다. 다른 구역의 경우, 더 이상 전투를 진행하기 힘들 경우 후퇴하는 것이 가능하다. 들어온 입구는 폐쇄되었다고 하나 숙련된 마법사라면 그 입구를 다시 개방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니까.
‘그래서 공략 팀에 마법사 하나는 꼭 필요한 거지.’
공략이 불가능한 던전인데 마법사가 없으면 그냥 갇혀서 죽을 수도 있거든.
물론, 마법사가 없거나 조의 마법사가 결계를 열 수 없다고 해도 탈출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불확실한 확률이긴 해도 던전을 탐색하다 보면 얻을 수 있는 귀환석을 사용해도, 던전에서 탈출하는 것이 가능하니까.
‘뭐, 그래도 마법사를 데려가는 게 확실하니까. 마법사가 그것 외에는 필요 없는 것도 아니고.”
뭐, 그건 그렇고 여긴 진짜 던전이 아니니까, 굳이 마법사까지도 필요 없긴 하다. 처음 들어왔을 때, 막힌 입구로 되돌아가면 나갈 수 있겠지. 죽는 것보다는 중도 포기하고 나가는 게 성적 면에서 더 낫기도 할테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거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보스룸 입구를 바라보던 이도영이 이내 조원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입을 열었다. 만약 보스를 잡을 자신이 없다면 여기서 돌아가는 게 맞긴 하니까. 보스 룸의 경우 한 번 들어가면 보스를 잡기 전까진 탈출이 불가능하거든.
일부 지형을 제외하면 이동이 매우 자유로운 던전의 다른 구역과 달리 보스 룸의 경우 입장한 순간 입구가완전히 폐쇄된다. 만약 귀환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근처에 위치한 미궁의 핵이 쏘아내는 파장에 의해 사용이 불가능하다. 즉, 강제로 배수진을 쳐야 한다는 거지.
“….”
이도영의 질문에 조원들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 나야 아무래도 상관 없다만. 가만히 이도영의곁에 선 채 조원들의 의견을 기다리자, 이내 가장 먼저 최윤아가 입을 열었다.
“나는…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아.”
긴장한 표정으로 말을 마친 최윤아가 슬쩍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숙였다. 엥.
‘왜 내 눈치를 봐?’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뭔가 억울하네.
최윤아의 말에 이어 김민우가 입을 열었다.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오, 얘 말하는 거 처음 들은 것 같은데. 호기심에 시선을 향하자 이내 김민우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듯 움찔 몸을 떤 김민우가 고개를 휙 돌렸다.
“…?”
‘쟤 뭐하냐?’
고개를 돌리자마자 최윤아와 눈이 마주친 김민우가 고개를 푹 숙였다. 최윤아가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그런데.
“음, 나도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가능성이 낮다면 모를까, 솔직히 이 정도면 보스도 잡을 수 있을 것 같거든.”
김민우 덕에 형성된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마진철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이도영이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나를 바라봤다. 음, 나?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나.
“시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보스를 잡아야 점수를 더 받잖아.”
그럼 들어가야지. 여태까지 오면서 쌓은 지휘 점수가 좀 되긴 하겠지만, 지금 이도영은 전투 기여도가 0이니까 조금이라도 더 추가 점수를 쌓아두는 게 좋을 거다. 아, 그리고.
“너, 보스랑 싸울 때에는 마법도 조금 써 둬.”
“응…?”
마법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이도영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마법으로 싸우라는 게 아니라.
“보조 마법은 쓸 수 있잖아.”
보조 마법, 흔히 버프라고 불리는 마법은 사용자의 마력도 사용하지만, 버프를 받는 대상자의 능력과 마법의 완성도가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즉, 마력이 부족한 이도영이라고 해도 버프 마법의 효능은 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뭐, 절대적인 연습량이 부족하니까, 딱히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우세하진 않겠지만.’
마나량이 부족해 제대로 마법을 수련하지도 못했음에도, 다른 마법사들과 비슷한 숙련도라는 점은 칭찬해줄만 하다. 물론,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진행하면서 보조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있다만.
최윤아를 향해 잠깐 시선을 보낸 뒤 입을 열었다.
“쟤가 보조 마법까지 맡으면 부담이 클 테니까.”
“하, 하지만…나는 지속 시간이….”
보조 마법의 유지 시간은 사용된 마력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 가용 마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도영의 마법은 지속 시간이 매우 짧다는 뜻이다. 시전하려면 접촉이 필수적인 보조 마법의 특성상 이건 꽤나 큰 문제니까.
‘뭐, 혹시나 하는 비상 사태에 대비해 마력을 아껴 둔 것도 있겠지만.’
이도영이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최윤아가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던 탓에 딱히 쓸 일이 없었다. 애초에 효과 자체는 큰 차이가 없기도 하고. 지금까지는 한두 번 사용하면 마력이 오링나는 이도영한테 굳이 버프를 받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근데 보스 전 후에는 이도영이 마법을 쓸 일이 없을 테니까.’
마지막 전투 기여도 정도는 챙겨 둬야지. 뭐, 얼마 되진 않겠지만.
생각을 마치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도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내 말을 듣자마자 이도영의 얼굴에 의문이 차올랐다. 그 표정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네 버프는 나한테만 걸어 주면 돼. 다른 사람한테는 걸지 마.”
어차피 이도영은 지휘를 제외하면 딱히 하는 일이 없어서 후방에 있으니까. 같은 후방에서 전투에 참여하는 내게는 그리 큰 문제는 없지만, 전방에 있는 놈들은 다시 마법을 받기 힘들거거든. 쟤네는 최윤아한테 버프를 받는 게 낫다.
“어…어…?”
왜인지 모르게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이도영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볼에 와닿는 따가운 시선에 잠시 고개를 돌렸다.
‘얘들 왜 이러냐?’
흥미진진한 눈길을 보내는 마진철. 얘는 김유진 과구나. 생긴 건 천지차이지만. 악감정 없이 냉혹한 평가를 내리고 시선을 돌리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김민우와 홍조를 띤 최윤아의 눈에 들어왔다.
‘아,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에 생각을 멈추고 다시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이도영은 아직도 붉은 얼굴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 빠르게 하려던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전투 기여도도 좀 올려야 할 거 아냐. 마지막이니까.”
얻을 수 있는 건 전부 얻어둬야지. 그 말을 듣자마자 이도영이 깜빡하고 있었다는 듯, 이제야 알아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헐, 진짜 까먹고 있었어? 말해두길 잘했네.
“아, 그…고마워.”
“감사는 됐어.”
나중에 신나게 굴러줘야 하는데, 이 정도야 뭐.
별 거 아니라는 내 태도에 이도영이 여전히 새빨간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허…이거 참….]
뭐, 왜, 뭐.
머리에 들려온 헤르메스의 한숨에 얼굴을 찌푸렸다. 왜 시비야 갑자기.
*
어색한 분위기에서 준비를 마치고, 이도영이 다시 보스 룸 앞에 섰다. 들어가기 직전, 한 번 더 점검하려는 듯 꽤나 날카로운 눈길로 조원들을 바라본다. 그러기도 잠시.
“….”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이도영이 다시 얼굴을 붉혔다. 아까 말한 뒤로 계속 저러네.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건가. 표정을 살짝 구기자 이도영이 이내 시선을 피하고 입을 열었다.
“크흠, 그…다들 준비 됐어?”
“응, 됐어.”
“….”
뻘줌하다는 표정으로 작게 헛기침을 뱉은 이도영의 질문에 최윤아가 가장 먼저 대답했다. 시선이 마진철에게 향하자, 마진철이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김민우? 걔는 고개만 끄덕이더라. 되게 신기한 컨셉이야.
그 다양한 반응에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이 내게도 질문을 던졌다.
“…시아, 너는?”
“다 됐어.”
짤막한 내 대답을 들은 이도영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전투 진형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점검한 뒤, 검사 둘을 선봉에 세운 채 조심스레 보스 룸 내부로 향했다.
-스르릉
내부에 들어온순간, 귓가에 들려온 문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에 뒤를 바라보았다. 완벽하게 폐쇄된 입구. 시선을 떼고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기도 잠시, 이내 저 멀리 무언가의 형체가 눈에 띄었다.
“멈춰. 뭔가 보였어.”
내 말을 듣자마자 전원이 발걸음을 멈췄다. 경계를 강화한 검사들을 흘끗 바라본 뒤, 형체에 시선을 집중했다. 소량의 마나가 눈으로 흘러들어가자, 마치 야시경을 낀 듯, 어두웠던 시야가 순식간에 밝아졌다.
거대한 옥좌. 형형색색한 장식물. 그리고 그 위에 위치한 무언가의 실루엣. 꽤나 거창한 분위기에 속으로 피식 웃음을 흘리며 눈을 좁혔다. 흐릿하던 실루엣이 점점 더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데스 나이트…인가.”
내 설명을 들은 이도영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조원들의 몸이 살짝 움찔했다. 음, 언데드라…. 상대하기 좀 까다롭긴 하겠네.
생각도 잠시, 이내 어떻게 할지 정한 모양인지, 이도영이 잠깐 감았던 눈을 떴다. 또렷한 눈으로 조원들을 바라본 이도영이 계획을 설명했다. 음, 뭐. 괜찮은 것 같네.
고개를 끄덕인 후, 조원들이 각자 자리로 향했다. 전투 태세를 다시 한 번 확인한 이도영이 이내입을 열었다.
“시아야.”
오냐, 알겠다.
시위에 화살을 겨누고, 보스를 향했다. 퉁,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발의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