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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화 〉의문(1) (37/167)



〈 37화 〉의문(1)

나를 응시하는 신유정의 시선을 맞받아치며 표정을 굳혔다. 어디서 트집을 잡으려고 들어?

“네, 그게 왜요?”

“흐음…?”

흥미롭다는 듯 작게 탄성을 내지른 신유정이 나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허? 지금  번 해보자는 거지?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태연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자 신유정의 눈썹이  차례 꿈틀했다. 왜, 생각대로 안 되는 모양이지? 무표정한 내 얼굴을 바라보던 신유정이 입을 열었다.

“그래, 힘을 숨겼더군?”

“…굳이 숨긴 건 아니고, 그냥 안 쓴거죠.”

숨기긴 뭘 숨겨. 마력 화살도 대련 수업 때 이미 선보였는데. 내 대답을 들은 신유정의 눈썹이 한 차례 더 꿈틀거렸다.

“그래. 그 말은 훈련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뜻인가?”

말꼬리를 잡는 신유정의 트집에 한  입꼬리를 비집어 올렸다. 아, 진짜   해보자는 거구나. 짜증나게. 싸늘한 눈으로 신유정을 노려보며 한 마디 쏘아붙였다.

“이번 훈련은 단순히 개인의 실력을 보는 시험이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하라는 대로 해줬는데 뭐가 문제인데? 짜증나게. 솟아오른 짜증에 표정을 굳히자 이내 신유정의 표정 또한 차갑게 얼어붙었다. 따가운 시선이 오가고, 내가 한 마디를  쏘아내려는 순간 신유정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말대로다.”

“…네?”

갑작스레 바뀐 분위기에 당황한 채  마디를 내뱉자 신유정이 웃음기 섞인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대견하다는 시선에 어이가 없었다. 아니, 뭔데?

“이 시험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협동력을 보는 시험이지. 그래, 네 말이 맞다. 네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해냈다면 오히려 성적은 지금보다 더 낮게 나왔을 거다.”

아, 그래? 그래서 왜  잡은 건데 그럼?

어이가 없다는 시선을 보내자 신유정이 재미있다는 듯 다시 웃음을 흘렸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신유정이 말을 이었다.

“그리 화낼 필요 없다. 이 시험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 건지 아니면 단순히 남자친구를 위한 건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니.”

아, 그래. 납득 가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잠깐. 뭐라고?

“남자친구?”

“그래. 이번에 지휘를 맡은 그 생도 말이다.”

어, 내가 남자친구가 있었나? 아, 남자인 친구 말하는 건가? 그래. 이도영의 성별이 남자긴 하지. 개소리야 시발.

순간 어지럽게 꼬인 머리 속에 선명한 분노가 차올랐다. 아니, 이젠 교관까지 개소리를 하네.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참아내고 입을 열었다.

“남자친구, 아닌데요.”

“음…?”

내 대답을 들은 신유정이 의문 섞인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다들 이렇게 나를 못 엮어서 안달이지? 어이가 없네 진짜.

[흐음….]

머리 속에서 헤르메스의 침음성이 들려왔다. 그치? 너도 어이 없지 않냐? 그러기도 잠시 신유정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그래.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아니. 중요하거든?’

태연하게 넘겨버리는 신유정을 쏘아보자 신유정이 알겠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그래. 그래서 할 말은 그게 다야?

더 할 말이 있냐는 내 시선을 받은 신유정이 이내 입을 열었다. 진지하게 바뀐 목소리에 쏘아보던 시선을 거두고 표정을 굳혔다.

“원래는 이게 용건의 전부였는데 굳이 아니라고 하니 하나만 묻겠다. 이도영 생도를 그렇게 성심성의껏 돕는 이유가 뭐냐?”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는 대답을  눌러담았다. 내가 이도영을 챙겨주는 이유?

‘주인공이니까.’

걔 아니면 세계가 멸망하니까. 근데 이걸 말하면 미친 놈 취급밖에  받겠지. 아, 지금은 놈이 아니라 년인가? 아무튼.

“…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딱히 할 말을 고르기 힘들어 한참을 고민하다 겨우 입을 열었다. 개인적인 사유라고 하면 어째 또 이상한 오해를 살  같거든. 그런 오해는 질색이라고. 아무리 몸이 여자라도 내가 이도영이랑 그런 사이가 된다? 그건 좀….

“그럴 만한 가치라고?”

내 대답을 들은 신유정이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고개를 갸웃하던 신유정이 내게 다시 질문을 건넸다.

“그럴 만한 가치라, 정확히 뭘 말하는 거냐?”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건가요?”

자꾸 캐물어. 귀찮게.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자 신유정이 잠시 입을 닫았다. 그리고  초 후, 신유정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먼저 말해두자면 나는 이도영 생도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아, 그래. 신유정은 원래 열정 가득한 사람을 좋아하니까. 어, 그런데 개인적으로. 라고?

“개인적…이라면?”

설마, 나한테 이도영이 남자친구냐는 개소리를 한 이유도…? 갑자기 스쳐지나간 생각에 식은 땀을 흘리자 신유정이 표정을 싸늘하게 굳혔다.

“그런 쪽의 감정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도록.”

아, 그래. 놀랬잖아.

살짝 어색해진 분위기를 해소하듯 한숨을 푹 내쉰 신유정이 말을 이었다.

“이 사관학교에서도 그 정도로 훈련에 성실히 임하는 생도는 드무니까 말이야.”

하긴 걔가 좀 미친 수준이긴 해. 애초에 잠재력을 전부 봉인에 끌어썼다는 건 사실상 마력불능체나 다름없는 조건인데. 어떻게든 서클을 만들어낸 데다가 사관학교에 입학까지 했으니까. 그것도 독학으로.

‘뭐, 마나 운용은 따로 배웠다지만. 적어도 이론은 진짜 독학한 거니까.’

학생으로 따지자면 교과서만으로 공부해서 서울대에 갔어요! 수준. 아니 그것보다 아득히 높은 수준의 노력이다. 진짜 뼈를 깎는 수준의 노력이라 이거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내게 미묘한 시선을 보낸 신유정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 이번엔 또 왜?

“하지만 진지하게 말하면, 이도영 생도는 재능이 없어. 더 이상 성장하는 건 무리가 있다.”

헛소리. 하지만 가이아의 권능이라든지,  권능의 봉인이라든지. 그런사정을 모르는 신유정에게는 그렇게 보일 만하다.뭐, 솔직히 말해서 봉인을 풀지 못하면 가망성이 없는 것도 맞으니까.

[가이아의 권능을 지닌 이에게 재능이 없다는 평가를 내리다니. 참으로 희극적인 상황이구나.]

그러게. 참 웃기긴하네. 헤르메스의 메시지에 속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신유정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가르치는 생도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 씁쓸한 듯, 작게 한숨을 내쉰 신유정이 나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도영 생도의 제적을 고려하고 있다.”

뭐? 이건 또 뭔 미친 소리야. 순간 구겨진 표정을 본 신유정이 그럴  알았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그렇게 열정 넘치는 생도가, 무의미한 가능성을 좇아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아. 결국 꺾이지 않는 나무는 부러질 뿐이지. 차라리 다른 길을 향하는 게 이도영 생도에겐 나은 길이다.”

아, 그래. 나름대로 진지하게 이도영의 장래를 생각했다는 건 알겠다. 근데, 그건 아니지.

“아뇨.”

내 단호한 부정에 신유정이 살짝 당황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헛소리하지 마. 걔가 나가면 누가 세계멸망을 막을 건데?

“그 말은 틀렸어요.”

“…틀렸다고?”

응. 틀렸지. 소설 내용 상 완전 틀렸다고. 오답이란 말이야.

“교관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이도영은 약하지 않아요.”

꺾이긴 개뿔. 걔가 꺾이면 이 세상 목숨 줄도 반으로 꺾이는 거야.  마디 한 마디, 진심이 담긴  플로우에 신유정이 흔들리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기세를 몰아 말을이었다.

“그리고 이도영이 재능이 없다는 말도 틀렸어요.”

“무슨….”

“지금은 재능이 없어 보이겠죠. 하지만, 나중에는 누구도 걔한테 못 비빌걸요.”

넌 원작 안 읽어봤지. 난 읽어 봤어.

“…그걸 어떻게 믿지?”

“이도영을 믿지 못하겠으면 믿지 마세요.”

“…믿지 말라고?”

내 말을 들은 신유정이 의문에 찬 시선을 향했다. 그 시선을 마주하고 당당히 말을 이었다. 조금만 기다려봐. 이도영 코인 바로 떡상할테니까.

“이도영이 아니라 이도영을 믿는 저를 믿어보세요.”

어?

잠깐만. 이게 아닌데?

조금만 시간을 두고 지켜보라고 하려 했는데. 갑자기 예전에 어디선가 봤던 명대사가 생각나서….

‘아, 미친. 마지막에 갑자기 뭔 개소리야.’

겁나 오글거리네. 망했다.

좆됐음을 직감하며 표정을 구긴 순간이었다. 내 말을 들은 신유정이 갑작스레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너를 믿으라고?”

어…? 통했어?

바닥을 바라보던 시선을 올려 신유정에게 향하자 호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 어떻게든 되긴 됐나보다.  이게 통하네?

얼떨떨한 내 시선을 받으며 신유정이 다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진짜로 바로 제적시킬 생각은 없었다. 교칙은 교칙이니까 말이야.”

‘에라이.’

그럴 거면  그 따위로 말한 건데? 괜히 쪽만 팔았네.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신유정을 바라보자, 신유정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너를 한 번 믿어보도록 하지. 기대하고 있겠다.”

“아, 네….”

어이가 없네. 진짜. 왜 부른거야 대체.

힘이 쭉 빠져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려던 순간.

-쿵!

-타다닥!

문 밖에서 꽤 큰 충돌음이 울려퍼지고, 누군가가 급하게 달려나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엥. 이건  뭐다냐.

문을 열고 바깥을 바라보자 이미 소리를  범인은 사라진 듯   복도만이 눈에 들어왔다. 아, 모르겠다. 피곤해. 다시 한 번 신유정에게 인사를 건넨 뒤 교무실에서 나왔다. 꽤 상쾌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아, 드디어 쉴 수 있겠네. 이제야 좀 편안해진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겨 기숙사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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