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화 〉의문(2) (38/167)



〈 38화 〉의문(2)

다음 날 아침, 교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습관적으로 이도영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마찬가지로 나를 바라보던 이도영과 눈이 마주쳤다.

“…!”

-휙

눈이 마주치자마자 이도영은 당황한  눈을 크게 뜨더니 고개를  돌렸다. 어, 이건 좀 짜증나는 반응인데.

어제까지만 해도 잘만 얘기했으면서 또 왜 저러는 거래. 게슴츠레한 눈으로 이도영을 노려보자,  시선을 받은 이도영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진짜 왜 저래?

“시아야 안녕!”

꽤 오래 노려봤는데도 끝까지 고개를 돌리고 있는 이도영의 모습에 진지하게 짜증이 일기 시작한 순간, 김유진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래, 안녕.”

한숨을 한 번 내뱉고 김유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유진의 눈길에 속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얜 또 왜 이래.’

과하게 부담스러운 시선에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마자 김유진이 내게 질문했다.

“어제 체험은 잘 끝났어?”

“어.”

아, 그거 때문인가. 그래, 잘 끝나긴 했지. 주인공  점수도 좀 챙겨줬고. 근데 쟤는 배은망덕하게 저러고 있네. 나 참.

질문에 대답하자마자 다시 치밀어 오르는 괘씸함에 고개를 돌려 이도영을 한  더 노려보았다. 여전히 이도영은 반대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와, 진짜 고개 한 번을 안 돌리네. 독하다, 독해.

“…혹시 도영이랑 무슨  있었어?”

내 반응에 김유진이 알쏭달쏭하다는 듯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걸 내가 알겠냐고. 나도 갑자기 쟤가  저러는지 모르겠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놈이.

“…아무 일 없었어. 던전 체험 끝난 후부터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그때도 그냥 멍한 표정이었지. 딱히 저런 반응은 아니었거든. 멍한 거야 거의 한나절은 지휘하는데 집중했으니 피곤할 만하니까. 그런데 오늘은 진짜 왜 저러냐고.

“그래?”

내 대답을 들은 김유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별  없었는데. 그냥 던전 체험 끝나고, 내가 신유정이랑 몇 마디 얘기하는동안 쟤는 먼저 갔으니까. 어, 잠깐만.

“아….”

갑자기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에 신음성을 흘렸다. 신유정과 대화를 나누고 교무실에서 나갈 때 들렸던 발소리. 그 주인이 이도영이라면.

‘그러고보니 교무실에서 나왔을 때….’

이상할 정도로 상쾌한 기분이었지. 숨 쉬기 불편하지도 않았고. 환기가 안 되는 복도인  감안해도, 이도영이 잠깐 지나간 정도로 그 정도로 공기가 깨끗해지는 건 말이 안 된다.

‘아니, 잠깐만. 그럼 다 들은 거야?’

신유정이남자친구니 뭐니 헛소리  것도, 내가 본인한테 그렇게 칭찬을 보낸 것도, 마지막에 헛소리한 것도  들었다고? 잠깐만. 진짜 잠깐만.

“이도영이 아니라 이도영을 믿는 저를 믿어보세요.”

순간 패닉에 빠진 머리에 어제 내가 내뱉었던 최대의 헛소리가 떠올랐다. 아니,  그딴 말을. 이런 미친. 진짜 그걸 들었다고?

“아…아….”

솟구치는 수치심에 얼굴에 피가 가득 몰렸다. 화끈거리는 얼굴에 차마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아니, 왜. 왜. 대체 왜 이런 상황이 자꾸 생기는데?

“시, 시아야…?”

갑작스럽게 발작을 시작한 나를 보고 김유진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 그냥 죽을까. 아니, 그걸 왜 엿듣냐고. 이리저리 날뛰는 감정도 잠시, 이내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결국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

고개를 숙인 탓에 시야를 가득 채운 나무 책상을 응시하며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직까지 방금  충격의 여파로 머리가 띵하게 울리는 느낌이었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뱉고 고개를 들었다.

-드륵

때마침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교관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이는 노년의 교관이 교탁에 서서 입을 열었다.

“오늘은 간단한 테스트를 볼 예정이란다.”

테스트? 예고도 없이?

시선을 힐끗 돌려 주위를 둘러보자, 갑작스러운 시험 선언에 당황한 생도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나만 몰랐던  아닌 모양이네.

그나저나 김유진, 얘는 뭐 이리 자신만만한 표정이지. 수업  들은 건 나랑 마찬가지 아닌가? 시선을 김유진에게 향하자, 이제야 진정했냐는 김유진이 내게 태연하게 미소를 보냈다.

아. 잠깐만. 또 떠올랐어.

그 웃음을 보자마자 다시 상기되기 시작한 기억에 얼굴을 붉히기도 잠시, 이내 진짜 시험을 치르려는 듯, 가져온 파일에서 시험지와 답안지를 꺼내는 교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와, 진짜 시험을 보나 보네.’

망했네. 공부  했는데. 아니. 근데 솔직히 내가 이론 수업을 따라가는  무리지. 이 몸뚱아리에 빙의한지  달도 안 됐는데. 애초에 강의를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제대로 이해가 안 간다고.

예상되는 처참한 성적을 합리화하며 이도영에게 시선을 향했다. 갑작스러운 시험에도 불구하고 이도영은 꽤나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시, 원작 내내 필기 1등다운 패기라고 해야 하나. 그러기도 잠시,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시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이도영의 모습에 시선을 돌렸다. 제발 반응하지 마. 내가  쪽팔리니까.

 다시 피가 몰리기 시작한 얼굴을 필사적으로 진정시키며 내게 건네진 시험지를 받아들었다. 모든 학생들이 시험지를 받은 걸 확인하자마자 교관이 입을 열었다.

“시험지는 다들 받았으니 먼저 몇 가지만 말해두도록 하마. 일단 가장 먼저, 예고도 없이 치르는시험이니만큼 이 시험의 결과는 정식으로 성적에 집계되지는 않을 거란다.”

‘그럼 왜 보는데.’

귀찮게. 뭐, 성적에 들어가지 않으면 다 찍고 자도 상관은 없겠지만. 아니, 생각해보니까 애초에 이도영이 각성하고 나면 자퇴하려고 했었지? 성적에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었네.

“이 시험을 보는 이유는 너희가 수업에서 배운 것들을 얼마나 체득했냐를 확인하기 위해서란다. 물론, 성적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대충 풀고 자는 학생은, 내가 앞으로 유심히 지켜보게 되겠지.”

가벼운 협박을 곁들이며 설명을 마친 노교수가 교실 내부를  번  둘러보았다. 수업 중에  사람이 대부분이니 뭐, 그래도 동료는 많네. 속으로 헛소리를 중얼거리며 뒷면이 보이게 엎어둔 시험지를 빤히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음, 망했다.

“자, 그럼 이제 문제를 풀기 시작하거라.”

그 말을 듣자마자 학생들이 엎어뒀던 시험지를 뒤집는 소리가 들렸다. 시험지 상단에 이름을 쓰고 문제를  훑어보았다.

‘응, 하나도 모르겠네.’

대체 무슨 소린지 이해하기도 힘든 문제가 시험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감상을 느낀 이들이 꽤 됐는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여럿 들려왔다.

-사각사각

‘음?’

그렇게 멍하니 있기도 잠시, 옆 자리에서 들려온 펜을 놀리는 소리에 흘끗 시선을 향했다. 시험지에 펜으로 무언가를   없이 적고 있는 김유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헐.

‘뭔데. 너는 왜 술술 풀고 있는데.’

아니, 너도 공부  한건 똑같잖아. 이거 실화냐?

아, 그러고보니 김유진은 원작피셜 필기 2위였지. 와. 이거 좀 억울한데. 동료인 줄 알았는데. 배신자였어?

잠깐 스쳐지나가는 헛소리도 잠시, 시선을 돌려 시험지와 답안지를 다시 바라보았다. 음.

역시 전혀 모르겠다. 아니, 이걸 어떻게 풀어. 주어진 조건을 통해 적정값을 계산하라는데, 난 이 조건이 뭘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공식? 공식은 당연히 모르지. 아, 그냥 포기하지 뭐.

[흠, 재미있는 문제로구나.]

그렇게 결정을 내린 순간. 갑자기 헤르메스의 목소리가 머리 속에서 들려왔다. 재밌냐? 나는 재미 없는데. 괜히 속으로 태클을 건 순간이었다.

[1번 문제의 답은 3번이로구나.]

엥?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무리 지혜의 신인 토트의 신격을 가졌다고 해도, 한 번도 접한 적 없는 분야에 비빌 수가 있나?

갑자기 치고 들어온 의문에 고개를 갸웃하며 패스를 향해 생각을 보냈다.

‘저기, 답이 그건지 어떻게 아셨어요?’

[수업은 같이 듣지 않았느냐?]

소리야. 네가 언제 수업을 들어. 아, 잠깐만.

‘설마 패스로 전달된 그거? 내가 졸면서 들은 강의?’

아니,  제대로 듣지도 않았는데. 그것만 듣고 이걸 푼다고? 와, 이게 지혜의 신격을 가진 짬밥인가? 미친, 버스 개꿀이네.

[흐음, 2번은 5번인가.]

패스를 통해 계속 주어지는 답안에 펜을 들었다. 아니, 그냥 던질 생각이었는데, 이러면  얘기가 다르지. 그렇게 일단 시험지에 답안을 받아 적은 후, 답안지에 옮기기 위해 시험지를 내려다보다 문득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굳이 필기까지 다 맞을 필요가 있나.’

어차피 한 달 후엔 나갈 건데. 필기 시험까지  맞으면 굳이 관심만 쏠리는 거 아닌가. 갑자기 든 생각에 고민을 이어가다 결정을 내렸다.

‘그냥 적당히 틀리지 뭐. 아예  틀리는 것도 괜히 귀찮아질  같으니까.’

쉬워보이는 문제는 전부 정답에 체크하고,  봐도 어려운 문제는 오답 중 아무거나 골라서 찍는 식으로 마킹을 시작했다. 물론, 뭐가 쉽고 어려운지 제대로 구분을 못하긴 했지만. 나한테는 무슨 문제건 어려운데, 헤르메스는 반대로 무슨 문제건 고만고만해 보여서 구분하기 힘들단다.

이런 기만자 같으니. 헛소리를 중얼거리며 마킹을 마쳤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교관이 시험 종료를 외쳤다. 적당히 손을 댄 답안지를 제출했다.

“다들 시험 보느라 수고 많았다. 문제의 정답은 칠판에 적어두도록 하마. 그리고, 성적에 집계는 되지 않겠지만 등수는 나올 테니 시험을 못 본 이들은 반성하도록.”

아, 예.

제출된 답안지를 정리하며 교관이 말을 마쳤다. 몸을 돌려 분필로 칠판에 답을 적은 교관이 이내 교실을 나섰다. 아, 시험 보는 동안 수업시간이 다 지난건가. 개꿀이네. 시선을 앞으로 향하기도 잠시.

"시아야, 잘 봤어?"

김유진이 나를 바라보며 질문했다. 아니, 그런 거 묻지마. 이 기만자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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