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의문(3)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유진에게서 눈을 피했다. 내가 푼 건 아니라 자랑하기도 뭐하고.
“뭐, 그럭저럭 봤어.”
난감한 질문을 적당히 뭉개서 대답하며 시험지를 집어들었다. 그 동작을 지켜보던 김유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같이 채점해볼래?”
“아니. 채점할 생각 없는데.”
“에엑…. 왜?”
왜기는. 시험지랑 답안지에 쓴 답이 다르니까 그렇지. 애초에 내가 푼 것도 아닌데 굳이 채점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내가 연신 거절하자 볼을 살짝 부풀린 김유진이 채점해보겠다며 시험지를 들고 칠판 앞으로 향했다.
‘와, 바글바글하네.’
채점을 하기 위해 칠판 앞으로 몰린 이들을 바라보며 시험지를 접어 책상 밑에 넣어두었다. 시선을 약간 옆으로 향하자 김유진과 같이 채점하고 있는 이도영의 모습이 보였다.
‘잘 봤나보네.’
꽤 뿌듯한 듯 옅게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얼마 후, 채점을 끝낸 이도영이 고개를 들었다.
“아.”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시 붉어지려는 얼굴을억누르고 태연한 표정을 짓자 이도영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래도 아까보단 반응이 옅네. 미묘한 감상을 남기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도 채점을 끝낸 듯 고개를 들었다.
채점을 끝낸 듯 자리로 돌아가려는 이도영과 몇 마디를 나눈 김유진이 이내 자리로 돌아왔다. 뭔 얘기를 한 거래. 뭐, 대충 히로인 이벤트 같은 거겠지. 누가누가 시험 더 잘 봤나. 이런 거 말이야.
대충 납득을 끝낸 뒤, 제 자리에 앉은 김유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잘 봤냐?”
“응? 으음…나쁘진 않은 것 같아!”
내 질문에 살짝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던 김유진이 이내 대답을 입에 담았다. 뭐, 잘 봤다니 다행이네.
“그럼 다행이네.”
“으음…시아는 진짜 채점해볼 생각 없어?”
“어.”
굳이 해서 뭐해. 어차피 내가 푼 것도 아닌데. 고개를 끄덕이자 내 시험지가 궁금하다는 듯 김유진이 책상 밑에 시선을 향했다. 적당히 그 시선을 무시하자 이내 풀이 죽은 듯, 김유진이 책상에 늘어지게 엎드렸다.
*
다음 강의가 끝나고, 이내 점심시간이 되었다. 이도영, 김유진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가려던 순간이었다.
“저기, 잠시만.”
뭐야?
갑자기 누군가가 말을 걸어와 시선을 그쪽으로 향했다. 얜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무표정한 시선으로 말을 건 사람을 응시하자, 상대가 용건을 입에 담았다.
“이론 교관님이 널 찾으시던데.”
“나?”
“어. 유시아 생도는 교무실로 오라고.”
뭐야, 귀찮게. 대충 고맙다는 의미를 담아 상대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뒤 고개를 돌려 김유진과 이도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너희끼리 밥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이것도 나름 히로인 입지를 다질 기회 아닌가. 단 둘이서 밥을 먹는다니.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김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기다릴 테니까 다녀와!”
동의한다는 듯, 옆에서 이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우, 고마워라.
‘줘도 못 받아먹네.’
속으로 한심하다는 의미의 한숨을 한 번 내쉰 뒤 교무실로 향했다.
*
교무실에서 있었던 대화는 별 영양가는 없었다. 문제가이상하게 맞고 틀린 걸 처음 추궁 당했을 땐 들켰다 싶었는데, 그냥문제를 찍어서 맞춘 걸로 오해했으니까.
“앞으로는 찍지 말고, 모르겠는 건 차라리 백지로 제출하려무나.”
찍지 말고 성실하게 시험에 응시하라는 설교 몇 마디에 죄송하다는 사과를 남기고 다시 교실로 향했다. 교실에 돌아오자, 어째서인지 내 책상 앞에 서있는 김유진과 이도영이 황급히 나를 바라보았다.
“뭐해?”
“아, 아무것도 아냐…!”
내가 질문을 던지자 티 나게 당황을 표하는 김유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식은 땀 한 방울을 흘리는 모습에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휴우….”
모른 척하기도 힘드네.
책상 위에 시험지가 펼쳐져 있는 걸 보니, 공부 잘하는 것들 둘이서 서로 풀이라도 맞춰 본 모양이었다. 이것들 뭔데 이리 성실해? 주인공이랑 히로인이라 이거지?
“밥이나 먹으러 가자.”
배가 고프진 않은데, 분위기가 어째 좀 어색하긴 하네. 그렇게 말하고 이도영을 바라보자, 이도영이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아니, 이번엔 또 왜 저래.
*
식사를 마치고 교실에 돌아오자, 아까 쪽지시험의 결과가 게시되어 있었다. 1등과 2등은 나란히 이도영과 김유진이었다. 기만자 맞았네.
짧은 감상을 내린 뒤 내 이름을 찾아 눈을 굴렸다. 흠, 대충 중상위권인가. 살짝 높긴 한데 뭐, 괜찮네.
“어?”
옆에서 들려온 의문 섞인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김유진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공개된 성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뭐 잘못됐냐?
“왜 그래?”
등수에 이상이라도 있나.
김유진을 바라보며 질문하자 김유진이 내가 그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내가 물어보는 게 뭐 잘못됐냐?
“저…시아야? 너 괜찮아?”
“뭐가. 등수?”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김유진을 보며 대답했다.
“나쁘지 않은데. 왜?”
적당히 노린 등수라서 꽤 만족스러운데. 대충 그런 감정을 담아 대답하자 김유진이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왜 이러는 거래.
“그, 채점해봤을 땐 분명….
채점? 무슨 채점? 내 꺼?
그 말을 들은 내가 의문을 얼굴에 띄우자 김유진이 실수했다는 듯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래봤자 이미 들었는데. 그보다 내 점수를 채점해봤다고? 언제?
‘아.’
아무래도 내가 교무실 다녀오는 동안 시험지를 본 모양이었다. 쯧, 그걸 보네.
“내 시험지 봤어?”
“…응.”
내 질문에 김유진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시무룩하게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대답했다. 아, 진짜 봤구나. 뭐, 볼 수도 있지.
아, 근데 얘 말고도 이도영도 봤나 그럼?
“혹시 이도영도 봤어?”
“아….”
봤나보네. 에휴. 한숨을 폭 내쉬자 김유진의 몸이 크게 움찔 떨렸다. 이래서야 뭐라고 하기도 애매하네.
“다음부턴 물어보고 봐.”
“…괜찮아?”
뭐가, 내 시험지 본 거? 별 생각 없는데. 어차피 진짜 내 성적도 아니고.
대충 진짜 내 점수가 아니라는 말만 빼고 대답하자 김유진이 다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입을 열었다.
“저…근데 도영이는 아무 잘못 없어. 내가 멋대로 보자고 한 거니까….”
아, 그래. 걔가 그럴 성격이 아니긴 하지. 그나저나 이도영은 잘못이 없다 이건가. 벌써부터 지극정성이네.
“그래, 알아.”
“…응?”
고개를 꾸벅 숙이기도 잠시, 내 대답을 들은 김유진의 눈에 의문이 서렸다.
“걔가 그럴 성격은 아니잖아.”
“…에. 그, 그렇긴 한데.”
또 미묘한 눈빛을 보내는 김유진의 시선에 어이가 없어 입을 닫았다. 아니, 지 말에 동의해줘도 이러네.
“저, 그런데 혹시 답 밀려썼어?”
침묵도 잠시, 김유진이 나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밀려썼냐고? 아니, 그건 아니긴 한데. 으음….
“글쎄. 왜?”
“그…시험지는 전부 정답이던데….”
진짜 다 맞췄나 보네. 역시 지혜의 신이라 이거지. 앞으로도 필기 준비는 할 필요 없겠다. 뭐, 얼마 남지도 않았지만.
“그래?”
잡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김유진이 이상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냥 별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건데.
“…진짜 신경 안 쓰는구나….”
작게 중얼거린 김유진이 나를 바라보며 고민에 빠진 듯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돌기도 잠시, 이내 고민을 마친 김유진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이도영이 교실로 들어왔다. 게시된 쪽지시험의 결과를 확인하던 이도영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시선을 향했다. 아, 또 아까 그거야?
김유진과 나눴던 대화가 떠오르자마자,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은 이도영이 내게 시선을 한 번 보내더니 이내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어라, 저 반응은 또 뭐지.
이상한 반응에 시선을 이도영에게 향하자, 이도영이 이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이번엔 시선을 피하지 않는 이도영의 모습에 순간 당황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아니, 왜 이리 일관성이 없어?’
진지한 표정으로 한참 나를 바라보던 이도영이 이내 결심했다는 듯 주먹을 꽉 쥐더니, 내게 눈짓으로 인사를 보내고 고개를 돌렸다. 진짜 뭐지.
대체 왜 그러는지 물어보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이내 교실 문이 열리고, 교실 안으로 들어온 교관이 강의를 시작했다.
‘아,진짜.’
타이밍 참 안 맞네.
살짝 밀려온 짜증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
모든 일정이 끝나고, 학생들이 하나 둘 하교를 시작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평소대로라면 훈련실에 향했을 이도영이 어째서인지 여전히 교실에 앉아있었다. 어느새 텅 빈 교실 안에, 나와 이도영, 그리고 김유진만이 남았다.
‘쟤, 오늘따라 되게 이상하단 말이야.’
왜 저러는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후 이도영에게 향하려던 순간, 이도영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헀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당황하기도 잠시, 이내 가까이 다가온 이도영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꽤나 진지한 얼굴. 힐끗 시선을 돌려 김유진을 바라보자 흥미롭다는 듯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돌겠네.’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이도영에게 다시 눈을 돌렸다. 어차피 용건이라 해봐야 별 거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말을 걸려던 순간이었다.
“저기, 유진아.”
“응?”
“둘이서만 얘기하고 싶은데, 잠시 비켜줄 수있을까?”
그 말을 들은 김유진이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뭔 말을 하려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이도영을 바라보자, 이도영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진짜 뭔 일 있나.'
“시아야, 그럼 나 먼저 갈게!”
고민도 잠시, 김유진이 이내 내게 활기차게 인사를 건네더니 교실을 나섰다. 아니, 가지 말아봐. 지금 분위기 겁나 어색하다고.
“….”
정작 김유진이 나가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도영의 모습에 눈을 찌푸렸다. 교실 안에서 한참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아, 진짜 분위기 미치겠네.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 뭐라고 입을 열려던 순간, 이도영이 먼저 말을 시작했다.
“저기,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물어봐? 그래. 일단 말해보던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이도영이 다시 입을 닫았다. 아니, 뭘 물어보려고 이렇게 뜸을 들여? 그리고 얼마 후, 이도영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궁금했던 건데, 나한테 왜 그리 잘해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