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의문(4)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이도영이 영웅이라는 직업을 지망하게 된 계기는 꽤나 단출했다.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고, 타인에게 의지가 되는 이가 되고 싶었다. 그것은 아마 이도영이 고아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는 존재가 없는 어린 아이가, 최소한 미움을 받지 않는 방법은 착한 아이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즉, 이도영에게 있어 타인을 돕는 행위는 자신을 긍정하는 일이었다. 타인을 도왔을 때 돌아오는 긍정적인 반응을 통해, 이도영은 자신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걸 인정할 수 있었다.
물론 굳이 영웅이 아니라도,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업인 직업은 다양했다. 하지만 이도영이 하필이면 영웅을 지망하게 된 이유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어른의 영향이었으리라.
이도영이 자란 고아원은 그리 큰 시설은 아니었다. 유일하게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고아원의 원장이 퇴역 영웅 출신이라는 점 정도겠지. 이도영이 들은 바로는, 현역 시절 마인을 추격하던 도중 원장이 부상을 입었고, 그 부상이 악화되어 팔을 잃었다고 했다. 팔을 잃은 탓에 영웅을 계속할 수 없게 되자, 그제서야 은퇴를 결심했다고.
원장은 그리 대단한 영웅은 아니었다. 실제로 추격하던 마인은 그리 강한 상대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부상을 입고 난 후 퇴역을 결심하는 것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이 팔로는 다른 사람을 돕기는 커녕,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조금 슬프더구나.”
어느 날, 진득하게 술에 취한 원장이 의수가 달린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그 덕에 고아원을 차릴 수 있었으니 차라리 다행이었다는 말을 덧붙이며.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원장의 눈에는 영웅이라는 직업에 대한 짙은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도영은 그 날의 대화 이후, 영웅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
처음 영웅이 되고 싶다는 말을 꺼냈을 때, 원장이 보인 반응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이도영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더더욱. 하지만 알려준 마나 연공법을 통해, 어떻게든 서클을 만들어낸 이도영을 본 후에는, 더 이상 반대를 표하지는 않았다.
“독한 놈.”
자신처럼 타인을 위하는 영웅이 되고 싶다는 이도영의 말을 들은 원장이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아마 사관학교에 간다 해도 그리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을 거라고. 그러나 이도영은 그렇게 말하는 원장의 눈에서 비치는 자신을 향하는 뿌듯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영웅이 되기 위해 쏟은 노력의 대가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결국 사관학교에 입학한 이도영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감정은 경멸이었다.
“쟤가 걔야?”
“어, 압도적으로 꼴찌라는데.”
“헐, 그런데 저런 실력으로 사관학교엔 왜 들어온 거래?”
처음 능력 측정 시험을 치르고 나온 이후,그를 보며 쑥덕거리는 소리가 이도영의 귓가에 들려왔다.성장 환경 때문인지, 선천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타인의 감정에 민감한 이도영이었기에, 자신을 향한 눈빛에 담긴 감정을 더더욱 잘 알 수 있었다. 경멸, 아니면 동정.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두 가지 감정이지만, 그를 바라보는 이들이 보이는 감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보다 낮은 상대에게 향하는 감정이라는 점.
그러한 시선이 불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럼에도 이도영은 그 시선을 흘려넘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재능이 부족한 것도,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측정 시험이 끝난 직후에 들려온, 명백하게 자신을 겨냥한 조롱. 그 조롱이 아프게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정작 이도영에게 진정으로 아프게 다가온 것은, 그 말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인 자신의 태도였다.
조롱을 던진 이에게 교관의 질책이 향하고, 다른 이들이 해산할 때까지 이도영은 멍하니 서서 상념에 잠겨 있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한참을 고민에 빠져 있던 순간, 누군가가 자신의 팔을잡아끌었다. 그리고 얼마 후, 소년은 뭐라 말하기 힘든 일을 경험했다.
*
유시아라는 소녀는 이도영에게 매우 특이한 존재였다. 기묘하기 짝이 없던 첫 만남. 이유를 알 수 없이 느껴지는 친근감. 그리고 자신을 향한 묘한 태도.
사관학교에서 어울리게 된 다른 친구, 그리고 유시아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인 김유진마저 오해하는 모양이었지만, 이도영은 알 수 있었다. 유시아가 자신에게 가진 감정은 그런 달콤한 감정은 아니라는 것을.
물론, 다른 이들이 착각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유시아가 자신에게 보이는 태도는 매우 의미심장하게 보였기에.
자신을 향할 때마다 풀어지는 표정. 시시때때로 자신에게 향하는 눈길.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감. 묘하게 자신을 챙겨주는 행동. 그 오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는다고 하면, 잠깐만 생각해도 한 손으로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유들이 떠올랐으니까. 때로는 이도영마저 헷갈릴 정도로.
하지만 이도영에게 가장 이상하게 다가온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첫 만남부터 마치 자신에 대해 잘 알고있다는 듯한 친근한 눈길. 그리고 그와 반대로 때때로 느껴지는 낯선 거리감. 감정에 충실한 행동과 말투에도 불구하고, 마치 세상에서 겉도는 듯한 기묘한 분위기. 약간의 호감을 담아, 이도영은 유시아를 조금 특이한 친구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대련 수업 이후, 그 감상은 한 번 더 격변했다. 조금 더 믿기 힘든 방향으로.
*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 자신에게 접촉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밝힌 이후, 유시아의 행동은 더욱 거리낌이 없어졌다. 그 이전이라면 혹시라도 이상한 오해를 사지 않을까 하지 않았던 행동도 가볍게 행했으니까 .그래, 예를 들자면 지금 하는 행동 말이다.
내 손을 꽉 잡은 채로, 팔을 들어 자신의 손등을 입술 가까이 가져간 유시아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 탓에 손등에서 느껴지는 간질거림에 묘한 자극이 느껴졌다.
‘예쁘긴 진짜 예쁘네.’
그런 감정이 없다는 건 알지만, 누가 본다면 오해할 수밖에 없는 행동. 눈을 꼭 감은 유시아의 얼굴에서 시선을 피했다. 더 바라보기에는 민망한 감정이 치솟아 견디기 힘들었으니까.
“고맙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자, 이제야 만족했다는 듯 유시아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감사를 전했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미소에 멍해지기도 잠시,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당황 섞인 반응을 본 시아의 시선에 한심하다는 감정이 섞였다. 어쩔 수 없이 의식할 수밖에 없는 자신과 달리, 티끌만큼의 사심도 보이지 않는 유시아의 눈길에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이만 갈게.”
“그래. 잘 가라.”
시아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일을 생각하기도 잠시, 이내 한 가지 상념이 머리에 떠올랐다.
‘내가 도움이 된다고 했지.’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체감이 가는 말은 아니었다. 자신이 있어야 마나가 회복된다고는 하나, 그 회복 과정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니까. 내가 도움을 주고 있다는 말을 들어도, 그리 실감이 나지 않았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
내가 정말 도움이 될 수 있는 건지. 하지만 적어도 자신을 향한 기대가 있는 것은 분명했기에, 나는 유시아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
“얘를 꼭 데려갈 이유가 있어?”
“마법도 제대로 못 쓰는 반푼이잖아. 아무리 봐도 쓸모가 없을 것 같은데 말이야.”
던전 체험에 들어갈 조원을 구하던 도중, 조원이 되겠다며 다가온 이가 나를 가리키며 한 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나 회복을 제외하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 확실했으니까.
마지막까지 악담을 남기며 사라진 상대에게서 시선을 떼고, 복잡한 감정으로 시아에게 시선을 향했다. 방금 전 들은 말이 꽤나 짜증났는지, 잔뜩 구겨진 표정을 지었던 시아가 나를 보고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왜.”
“마나 때문이야?”
“뭐, 조원으로 들어오라고 한 거?”
시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물어보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었다. 마나 회복을 제외하면 내가 필요한 곳이 전혀 없었으니까.
“당연하지.”
역시.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순간, 시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 뿐만은 아니지만.”
“…그럼?”
“너, 필기 1위잖아. 나는 필기는 젬병이라.”
필기.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자 시아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자신은 지휘를 할 자신이 없으니, 내가 지휘를 하라는 말.
“내가 지휘를 하라고?”
“어.”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시아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부정적인 감정이 치민 순간이었다.
“야, 못할 것 같으면 안 해도 돼.”
“근데 단순히 마나 셔틀로 얹혀가고 싶어? 나라면 아닐 것 같은데.”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리 속이 환하게 개인 느낌이 들었다. 얹혀 가는 게 아니라,나도 제대로 된 역할을 하라는 말. 즉, 내게도 역할이 있다는 말.
‘나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도움이 되는 것을 체감할 수도 없는 마나 공급원 따위가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다. 할 수 있겠냐는 시아의 질문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시아가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새끼, 그래도 깡은 있네.”
사나운 말투였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나를 향한 기대. 그 기대를 알아챈 순간. 사관학교에 입학한 이후, 처음으로 짙은 충족감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