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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화 〉변화(1) (42/167)



〈 42화 〉변화(1)

처음으로 마음을 자각한 이후, 소녀를 바라볼 때마다 이도영은 묘하게 달아오르는 뺨을 자각할 수 있었다. 좋아한다. 그 정도의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어떠한 감정이 있다는 것 정도는 명확했다.

수업이 시작하기  아침의 교실. 멍하니 자리에서 유시아를 바라보기도 잠시, 이내 갑작스럽게 고개를 돌린 시아와 이도영의 눈이 마주쳤다.

“…!”

눈이 마주치자마자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훽 돌리기도 잠시, 이내 계속해서 쏘아지는 시선에 이도영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그리고 열심히 시선을 피하기도 한참이 지나고, 이내 교관이 교실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은 간단한 테스트를 볼 예정이란다.”

당황한 표정을 짓는 대부분의 아이들과 공부를 한 모양인지 꽤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는 몇몇 아이들. 이도영은 당연히 후자에 속해 있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이도영이 이내 얼마 전 소녀에게서 들었던 말을 기억에서 떠올렸다.

“나는 필기는 젬병이라.”

아, 그러고보니 시아는 괜찮으려나. 고개를 돌려 시아를 바라보자, 그 쪽도 자신을 바라보던 것은 마찬가지였는지  다시 눈이 마주쳤다. 확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또다시 고개를 돌렸다.

‘…미치겠네.’

아까부터 제대로 조절되지 않는 감정에 이도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시험지를 책상에 뒤집어 올려 둔 이도영이 이어지는 교관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 시험의 결과는 정식으로 성적에 집계되지는 않을 거란다.”

‘다행이다.’

적어도 시아한테  일은 없겠네.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생각이었다.

 생각에 흠칫하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은 다시 소녀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 없다는  권태로운 표정. 적어도 필기 점수에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도영이 이내 시작 신호와 함께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


‘어렵진 않네.’

문제를  풀고 난  속으로 중얼거린 말이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시험지를 들고 칠판 앞으로 향했다.

“아, 도영아!”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김유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손에 들고 있는 시험지를 가볍게 들어올린 김유진이 입을 열었다.

“우리 같이 채점할래?”

“응.”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인 후 채점을 시작했다.

“그런데 시아는?”

“채점 안 하겠다고 하던데?”

“그래?”

‘진짜 필기 시험에 신경 쓰기 싫었나보네.’

속으로 그렇게 독백하며 이내 채점을 마쳤다. 특히 고난이도였던 한 문제를 제외한 모든 문제가 정답이었다. 만점이 아니어서 아쉽지만, 예상보다 더욱 높은 고득점. 흐뭇해진 기분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자마자 이내 또 시아와 눈을 마주쳤다.

‘역시 신경 쓰이나.’

그나마 익숙해진 덕인지, 아니면 시험점수 덕인지, 더 이상 붉어지지않는 얼굴에 안도하며 다시 눈을 피했다. 아닌 척 해도, 유시아도 역시 필기 시험 결과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잠깐 생각에 빠진 순간, 이내 채점을 마친 김유진이 입을 열었다.

“잘 봤어?”

그렇게 말한 김유진이 자신의 시험지를 보여주었다. 내 것보다는 못하지만, 매우 높은 점수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표정을 본 김유진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기도 잠시, 이내 내 시험지를 보고 다시 시무룩한 얼굴로 되돌아갔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이내 각자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시험지를 타인에게 보이는 게 불편한 듯, 책상 밑에 넣어둔 시험지를 몸으로 몰래 가리는 시아를 보고 생각에 잠겼다.

‘필기에는 자신 없다고 했지.’

그러면 적어도 필기라는 분야에서는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딱히 도와달라고 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잡념도 잠시, 이내 다음 강의를 시작하기 위해 들어온 다른 교관을 향해 주의를 돌렸다.

*

점심시간, 식사를 하려 가려던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다가와 시아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잠시만.”

용건이 있냐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는 시아의 시선에 살짝 주눅든 표정을 지은 상대가 입을 열었다.

“이론 교관님이 널 찾으시던데.”

“나?”

“어. 유시아 생도는 교무실로 오라고.”

이론 교관이? 왜?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시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그 말을 마친 상대가 자리를 피하고, 묘한 표정을 짓던 시아가 나와 김유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너희끼리  먹어야 할 것 같은데.”

그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밀려온 아쉬움에 묘하게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기도 잠시, 그건 싫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하는 김유진에게 동의하듯 고개를끄덕였다.

“아냐! 기다릴 테니까 다녀와!”

그 말을 들은 시아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움도 잠시, 이내 다시 밀려온 안도감에 살짝 얼굴을 굳혔다. 감정 조절이 이상할 정도로 되지 않았다.

‘미치겠네.’

속으로 끙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이자, 이내 시아가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교실을 나섰다. 그리고 나와 김유진만이 남은 교실에서 김유진이 음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저런 표정이래.’

조금 당혹스러운 기분에 시선을 보내자, 김유진이 이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말했다.

“도영아, 시아 시험지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지 않냐고? 물론 궁금했다. 하지만.

“시아가 싫어할 걸.”

“으음…몰래 보면 괜찮지 않아?”

“그래도 남의 걸 함부로 보면 안 되지.”

내 말을 들은 김유진이 아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이 궁금하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이론 교관은 시아를 왜 부른 걸까?”

“글쎄….”

딱히 잡히는 이유는 없는데. 오늘 시험 점수 때문인가. 그렇게 말하자 김유진이 설득력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시험을 너무 못 본걸까?”

“그렇겠지? 아마.”

실기의 경우도 낙제한 사람은 추가로 부르거나 하니까, 필기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김유진이 결심했다는 듯 말했다.

“역시 확인해볼래.”

“….”

호기심이 잔뜩 깃든 시선으로 김유진이 책상을 바라보았다. 말리려고 해도 딱히 말려질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조금 궁금했으니까. 이내 몰래 시아의 책상에서 대충 접힌 시험지를 꺼낸 김유진이 책상에 시험지를 폈다.

“채점해보게?”

“채점만 할거야. 그래도 시아한테 미안하니까.”

막상 꺼내고 나니까 친구의 비밀을 캐는 것이 미안해진 듯, 표정을 살짝 찡그린 김유진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한 문제. 한 문제. 빠르게 답을 확인하던 김유진의 표정이 점점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어라…?”

당혹 섞인 신음성을 내뱉은 김유진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다.

“저, 이거 좀 봐봐.”

“왜?”

찝찝한 표정으로 김유진에게 다가가 시험지를 채점하기도 잠시, 이내 채점이 끝나자마자 김유진과 마찬가지로 당황스러워진 기분에 속으로 중얼거렸다.

‘필기에 자신 없다며…?’

만점인데. 심지어 자신보다 높은 점수였다. 순간 잘못 채점했나 싶어 빠르게 다시 채점을 해보아도 바뀌지 않는 결과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필기는 젬병이라.”

소녀가 했던 말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그것도 거짓말이었어? 살짝 느껴진 배신감도 잠시, 이내  거짓말의 이유를 떠올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왜?’

나를 이렇게까지 도와줄 이유가 뭐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에 빠지려던 순간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황급히 시선을 돌리자, 어느새 교실에 들어온 시아가 나와 김유진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뭐해?”

“아, 아무것도 아냐…!”

당황한 반응을 보이는 김유진에게서 시선을 돌린 시아가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당황도 잠시, 시아의 얼굴을 보자마자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질문하려던 말을 애써 속으로 삼켰다. 대답을 듣기에는 아직 용기가 모자랐다.


*


점심 식사 이후, 평소처럼 훈련장에 향했다. 오늘따라 유독 형편 없게 느껴지는 자신의 실력에 표정을 구겼다. 훈련을 마치고, 우울한 기분으로 교실로 향하자 교실에는 아침 테스트의 결과가 출력되어 있었다. 그리고.

“왜?”

자신의 성적이 가장 위에 있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황급히 시선을 돌려 시아를 바라보았다. 왜 내가 1등이지? 시아는? 시선을 내리자, 그제서야 자신의 성적에 비해 꽤 아래에 위치한 시아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일부러 틀린 건가.’

진짜 필기에는 자신 없다고 하려고? 왜? 굳이 그럴 이유가 뭐길래?

각종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물음표를 띄우기도 잠시, 이내 확정된 답에 숨을 들이쉬었다.

‘나 때문에?’

적어도 필기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유도된 빈틈이었다면  뭘 해줄 수 있을까. 급격히 진지해진 고민에 입술을 짓씹었다. 어제 들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도영이 아니라 이도영을 믿는 저를 믿어보세요.”

왜 나를 그렇게까지 믿는 거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제와는 다르게, 그 신뢰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한참을 시아를 바라보다 이내 결심을 내렸다.  나를 이렇게 도와주는지 물어봐야겠다. 주먹을 꽉 쥐며고개를 끄덕였다.

*


김유진, 유시아, 그리고 나. 셋만 남은 교실 안.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시아의 반응을 무시하고 김유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기, 유진아.”

“응?”

“둘이서만 얘기하고 싶은데, 잠시 비켜줄 수 있을까?”

그 말을 듣자마자 흥미로 가득  시선을 보내는 김유진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묵묵히 시아를 바라보았다. 평소와는 명백히 다른 내 행동에 시아가 당황 섞인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이내 김유진이 자리를 비우자, 이내 교실 내에 침묵이 맴돌았다.

“저기, 하나 물어봐도 될까?”

한참 시간이 지난 이후, 상념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내 질문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시아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질문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궁금했던 건데, 나한테 왜 그리 잘해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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