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변화(3)
아침, 김유진은 자리에 앉아 비어 있는 옆 자리를 바라보았다.
‘어제는 무슨 얘기를 했으려나.’
도영이 되게 진지해 보였는데. 나까지 쫓아내고 말이야.
어제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김유진은 이도영을 향해 궁금증 담긴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이 있는 쪽을 바라보던 이도영과 눈이 마주쳤다.
“…!”
눈이 마주치자마자 놀란 표정을 짓는 이도영. 그 시선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은 이도영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아 자리네?’
미묘하게 비틀린 시선의 방향이 자신의 옆 자리, 유시아의 자리를 향했다는 걸 깨닫자마자 김유진의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맺혔다. 그 표정을 본 이도영이 식은 땀을 삐질 흘렸다.
-드르륵
그리고 얼마 후, 평소와 같은 시간에 교실에 들어와 자리로 다가오는 시아에게 김유진이 인사를 건네려던 순간이었다.
“…안녕.”
“아, 그래. 안녕.”
김유진보다 먼저 인사를 건네는 한 사람. 머뭇거리는 그 목소리를 들은 유시아가 웬 일이냐는 듯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인사를 받았다.
‘어라?’
어제까지만 해도 도영이가 아침에 인사하는 일은 없었는데? 굳이 일어나서 다가가기까지 하면서 인사를 한다구?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다시 자리로 되돌아가는 이도영에게 김유진이 흥미롭다는 시선을 보냈다.
‘어제 자리를 비켜준 보람은 있었나 봐.’
꽤나 사이가 진전된 것처럼 보여 미소를 짓기도 잠시, 이내 자리에 앉은 시아에게 김유진이 평소처럼 인사를 건넸다.
“시아야 안녕!”
“그래. 안녕.”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유시아의 반응을 보며 김유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시아는 평소랑 전혀 차이 없는 것 같은데?’
도영이가 고백했다거나 그런 거 아니었어? 호기심도 잠시, 김유진이 이내 입을 열었다.
“저기, 시아야?”
“왜?”
“어제 도영이랑 무슨얘기했어?”
생각하는 표정도 잠시, 이내 유시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김유진의 질문에 대답했다.
“별 얘기 없었는데?”
‘…이게 아닌데?’
그럼 도영이는 어제 뭘 한 거야?
의문 섞인 시선으로 이도영을 바라보자, 유시아에게 시선을 보내지 못하겠다는 듯, 반대 편을 향하고 있는 이도영의 얼굴이 김유진의 눈에 들어왔다.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그 모습에 김유진은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헐…’
진짜 무슨 얘기를 했길래 저런대?
궁금증 섞인 시선으로 유시아를 바라본 김유진은 이내손으로 볼을 긁적였다.
‘자네….’
되게 태평한 얼굴로 곤히 아침 잠에 빠져 있는 모습. 잠시 깨워서 물어볼지 말지 고민하기도 잠시, 이내 김유진도 엎드려 그냥 잠을 청했다.
*
시간이 흘러,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식당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이도영을 관찰하던 끝에 이내 생각을 마쳤다.
‘역시 이상해.’
어제 확실히 무슨 일이 있었다. 적어도 도영이한테는. 방금전, 식당으로 향하는길에서 도영이가 보인 모습만 봐도 확신할 수 있었다.
꽤 적극적으로 시아에게 말을 거는 태도, 그리고 평소와는 다르게 보폭을 맞춰서 걷는 걸음걸이. 마지막으로 계속해서 시아의 표정을 살피는 눈길. 그 모든 점을 종합한 후, 결론을 내렸다.
‘도영이도 시아를 좋아하나 봐.’
여태까지는 조금 신경 쓰이는 반응을 보이긴 했어도 그런 감정은 아닌 것 같았는데, 이제는 확실해졌다. 도영이도 시아를 좋아한다. 그 생각이 들자 흐뭇한 웃음이 절로 피어났다. 자신을 향해 왜 그러냐는 시선을 보내는 시아에게 미소를 보냈다.
“…?”
어이가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는 시아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둘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식사를 마친 시아가 가볍게 고개를 돌리자마자 도영이가 손을 뻗었다.
“자, 이거 써.”
“어...? 그, 그래. 고맙다.”
손을 뻗어 휴지를 뽑은 도영이가 그것을 시아에게 건네주었다. 예상치 못한 도영이의 친절에 당황한 듯 휴지를 받아 든 시아가 그걸로 입술을 가볍게 닦았다.
“오늘은 훈련하러 안 가?”
그 모습에 괜한 심술이 돋아 흥미 섞인 질문을 던지자 도영이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러고보니 그렇다는 듯 의문 섞인 시선으로 시아가 도영이를바라보았다.
“오늘은 좀 쉬려고.”
“아하….”
일부러 말 끝을 흐리자 도영이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 모습에 웃음을 흘리기도 잠시, 이내 자신을 향해 시선을 보내는 시아에게 웃음을 보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안 봐도 안 뺏어가는데.’
오히려 도와준다면 도와줄 텐데. 아무리 그래도 조금 경계심이 심한 거 아냐? 시아가 보내는 자신을 향한 의문 섞인 시선을 그렇게 해석하며 속으로 가볍게 투정을 부렸다.
*
‘얘네 진짜 뭐하냐?’
아침부터 자꾸 자신을 향하는 두 쌍의 시선에 영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특히, 이도영의 시선은 최근에 추가된 거라서 더더욱 그럤다. 그러고보니 오늘 아침에는 웬일인지 나한테 인사도 했었지. 그래도 뭐, 하나는 잘 된 것 같으니까. 이도영이 보인 반응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멘탈 케어는 제대로 됐나 보네.’
내가 쳐다볼 때마다 뭔가 미묘한 표정을 짓기는 한다만, 적어도 우울한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훌륭하게 상담을 해낸 것 같아 이도영을 바라본 채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내 웃음을 본 이도영이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어라, 이건 좀 기분이 나쁜데. 기껏 상담해줬더니. 불쾌한 기분에 눈을 매섭게 뜨기도 잠시.
“헤에….”
옆에서 들려온 탄성 소리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얘는 오늘 따라 또 왜 이래. 슬슬 다시 아파오는 머리에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이내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드르륵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온 담당 교관의 모습. 그러고보니 오늘이 그날이었지. 1년간 활동할 동아리를 정하는 날.
‘솔직히 귀찮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긴 한데.’
뭐, 한 달 후면 이제 볼 일 없을 테니까. 한 번쯤은 경험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애초에 아무것도 안 고르는 건 불가능하기도 하고.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 스트레스 해소는 필수적이라나 뭐라나. 아무튼 그런 이유로, 취미생활을 즐길 동아리 하나 정도는 필수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이거다. 철저하게 인싸틱한 발상에 속으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게 제일 힐링 아닌가.’
애초에 나는 밖에서 뭘 하기에는 공기 때문에 제약이 많으니까. 뭐, 그 덕에 어떤 활동을 할지는 이미 결정된 거나 다름없다.
‘결국 이도영 따라 가야지, 뭐.’
스트레스 해소는 모르겠다만, 숨이라도제대로 쉬려면 일단 이도영한테 붙어 있어야 하니까. 확실히 귀찮아질 것 같은 예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
이도영이 가입할 동아리 정도는 알고 있다. ‘봉사활동’. 딱 지 같은 걸 고른다니까. 뭐, 그리 많지 않은 여가 시간에 굳이 봉사활동까지 하고 싶어하는 이들은 적었기에, 동아리 자체에 들어가는 건 쉬웠으니 다행인가.
‘다행이겠냐고.’
진짜 귀찮네.
이도영과 함께 동아리 장소로 이동하면서 속으로 불평을 내뱉었다. 아니, 진짜 내가 봉사활동까지 해야 하나. 신청했으니 해야지 뭐. 그나마 학교 다닐 일이 얼마 안남았으니 참는다.
짜증을 참기 위해 한 달이라는 기간을 계속해서 마음 속에서 중얼거리며 이도영과 함께 동아리 부실로 향했다. 참고로 김유진은 다른 동아리에 들어갔다. 봉사활동이 좋은 활동이긴 하지만 동아리 시간엔 다른 걸 하고 싶다던가? 솔직히 할 말이 없긴 하더라.
“저기.”
“응?”
부실로 향하던 중, 이도영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용건이 뭐냐는 눈으로 바라보자 이도영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혹시 이 동아리 신청한거, 나 때문이야?”
응, 당연하지. 숨 쉬려면 난 너 따라갈 수 밖에 없다니까. 긍정의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이자 이도영이 얼굴을 붉혔다. 얘 진짜 무슨 병이라도 있나. 맨날 얼굴이 빨개지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지병에 대한걱정도 잠시, 이내 부실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부실에 들어가자마자 인사를 건네는 이도영을 따라 적당히 인사를 한 뒤 내부를 둘러보았다. 봉사활동은 주로 학교 밖으로 나가서 하는 활동이다 보니, 딱히 부실에 있는 비품은 많지 않았다. 구경도 잠시, 금세 흥미를 잃고 동아리 부원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응, 전부 누군지 몰라.
‘그나마 회장이 누군지는 알겠네.’
유일하게 눈에 띄는 외모.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단발을 한 여인이었다. 꽤 미인이라 할만한 외모를 지닌 상대를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정보를 떠올렸다. 아마 원작에서는 현재 3학년이라고 했던가. 주무기는 검이었던 것 같고.
‘그러고보니 원작에서 이도영한테 검을 가르친 상대가 쟤였지?’
원작 히로인 중 하나였으니까, 아마 맞을 거다. 대충 생각을 마친 순간,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
활기찬중저음의 목소리. 상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이내 목소리의 주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 얘구나.
“또 만나네!”
“…그래.”
마인 예정자. 박휘성이었다. 역시 아직은 계약을 하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귀찮은 기분이 들어 눈을 찌푸리자 박휘성이 섭섭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반응하면 좀 슬퍼지네.”
지랄.
어이가 없어 가볍게 쏘아보자 언제 울상을 지었냐는 듯 능청스럽게 내게 미소를 보낸다. 더 상대하기도 피곤해 고개를 돌리자익숙한 백발이 보였다. 이설화였다.
“안녕.”
“그래, 안녕.”
무뚝뚝하게 내게 건네는 인사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고보니 원작에서 박휘성이 마인이 된 계기가 그거였지. 자기는 이설화를 짝사랑하는데, 정작 이설화는 이도영한테 관심을 보여서였던가. 별 찌질한 이유도 다 있네.
갑자기 내가 보낸 경멸 섞인 눈빛에 박휘성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 지금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으니 됐나. 뭐, 난 곧 나갈거니까. 내 알 바는 아니긴 하지. 마인 따위한테 각성도영이 질 리도 없고.
대충 생각을 정리한 뒤, 박휘성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사담을 몇 마디 나누기도 잠시, 이내 신입생들이 다 왔는지 확인하려는 듯 고개를 돌려 부실을 한 번 쭉 훑은 회장이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봉사활동 부의 회장, 백소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