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7화 〉부활동(1) (47/167)



〈 47화 〉부활동(1)

다음 날, 아침 강의를 끝낸  동아리 부실로 향하려 몸을 일으켰다. 내가 일어서자마자 이도영이 옆에  달라붙어 같이 걸음을 옮겼다.

‘얘 진짜 왜 이래.’

어째 거리감이 좀 가까운  같은데. 마나 회복 때문에 그러나? 고개를 한 번 갸웃한  문을 열자 요 며칠 자주 보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

“…어, 그래. 안녕.”

한숨을 작게 내쉬고 내게 인사를 건넨 남자, 박휘성에게 마주 인사했다. 싱글싱글 웃는 얼굴이 조금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이설화의 얼굴도 보였다.

“안녕.”

“그래….”

얘는 이도영 보러 왔겠고, 박휘성은 이설화 따라온 건가. 아무래도 귀찮아질 것만 같은 예감에 한숨을 한 번 더 내쉬었다. 아, 그냥 다 꺼져. 이도영만 빼고. 그래도 숨은 쉬어야지.


*

‘백소월한테 플래그 꽂는 날이 오늘이었던가.’

 다시 형성된 싸늘한 분위기에서 눈을 돌려 생각에 잠겼다. 원작 기준으로 봉사활동  활동 시간에 백소월이 이도영한테 관심을 갖게 됐으니까. 오늘이 맞겠지. 뭐.

‘오늘은 그럼 별다른 일은 없겠네.’

주인공 각성 전까지는 별 사건 없는 게 아카데미 물 국룰이니까. 뭐, 그래도 이벤트 하나 정도는 있었지만.

이벤트라는 단어가 생각나자마자 무심코 고개를 돌려 박휘성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느끼자마자 눈을 마주치더니 박휘성이 능글맞은 웃음을 흘린다. 아, 진짜  저러는 거래? 눈살을 찌푸리고 매섭게 노려보자 박휘성이 작게 웃음 짓더니 미안하다는 듯 내게 손을 흔들었다.

‘시비 거는 건가.’

대응하기도 귀찮아 시선을 돌리자 어째서인지 이도영의 표정이 굳어 있다. 얘는 또  이래? 툭 툭 쳐서 주의를 끌고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 있냐?”

“어? 아, 아니.”

내 질문을 받자 살짝 흠칫한 동작을 취한 이도영이 이내 굳은 얼굴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 별일 없으면 됐고. 고개를 돌려 다시 앞을 바라보자 어째서인지 조금 경직된 듯한 박휘성의 표정이 보였다. 뭐지? 전염병인가?

‘난 모르겠다.’

지들이 알아서 풀리겠지. 뭐. 내 알 바인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앞을 바라보자 나를 바라보는 이설화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니, 너는  왜 그러는데.

무슨 일이냐는 눈으로 나를 향한 시선을 마주 바라보았다. 몇 초간 계속 시선이 오가고, 이설화가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아니, 뭔데? 눈싸움? 고개를 갸웃한 순간, 이설화가 내게 작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바보.”

바보? 누가? 내가? 헐, 어이가 없네.

갑작스레 들은 욕설에 어안이 벙벙해 멍한 표정을 짓기도 잠시, 이내 표정을 구겼다. 아니, 갑자기 시비를 거네. 솔직히 쟤보단 내가 낫지 않나? 백치미 컨셉 주제에.

‘와, 그새 튀었네.’

어이가 없어 멍을 때린 그 순간에 벌써 이설화는 나한테서 한참 떨어져 있었다. 뭐라도 하려면 이도영한테서 확실히 떨어져야 하는 거리. 짜증으로 얼굴을 찌푸렸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래. 내가 졌다. 내가 졌어.

‘인생 진짜….’

속으로 푸념을 되뇌며 걸음을 옮겼다.

*

벌써 대부분의 부원이 모였는지 부실 내부는 꽤나 북적거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 대충 비어 있는 자리에 앉자 내 왼쪽에 이도영이, 오른쪽에 박휘성이 앉았다. 이도영은 그렇다 치고, 넌 뭐야?

따지듯 눈길을 보내자, 이내 박휘성의 옆자리에 이설화가 앉았다. 아, 그래. 이도영한테서 이설화를 최대한 떨어뜨리시겠다. 머리  잘 쓰네. 가볍게 감탄이 담긴 눈길을 보내자 박휘성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아주 좋댄다.

가만히 앉아 앞을 바라보자 이내 회장, 백소월이 부실에 들어왔다. 여전히 냉철하기 그지없는 인상이었다.  얼굴이 그렇게 바뀐다니, 참 신기하다니까. 감상을 늘어놓기도 잠시, 이내 백소월이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은 봉사활동 부가 활동하는 첫날입니다. 먼저, 모두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고개를 숙인 백소월이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움직임에 어깨까지 내려온 단발이 가볍게 살랑거렸다. 그나저나 말투 진짜 딱딱하네. 뭐, 그것도 특색 있긴 한데.

“오늘부터 주마다 한 번씩, 저희는 학교 외부로 봉사활동을 떠납니다. 봉사 활동지는 다양하게 바뀌겠지만, 기본적으로 조별 활동으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그래. 원작에서도 그랬으니까. 봉사활동 부가 향하는 곳은 보통 양로원이나 고아원 같은, 그리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는 않은 장소다. 뭐, 가끔 환경 미화에도 참여하거나 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는 거지. 즉, 전원이 다 같은 장소로 가는 건 무리가 있다는 거다.

“기본적으로 신입생 분들 2명, 2학년 부원분들 2명, 그리고 인솔자로 3학년 부원이 한 명. 이렇게 다섯 명이 한 조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는 이때 이도영이랑 이설화가 같은 조가 됐었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오른쪽에 앉은 박휘성을 흘긋 바라보았다. 그래도 원작이랑 다르게, 지금은 이설화랑 짝이 될 수도 있겠네. 내가 이도영이랑 같은 조가 되면 되니까. 생각을 마치자 백소월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신입생 분들의 조 구성의 경우, 소외되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공정하게 추첨으로 정할 예정입니다. 친한 이들끼리 모여서 봉사활동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니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어? 잠깐만. 뭐라고? 추첨으로 정해?

‘엿됐다.’

잠깐만, 원작에서도 이랬나? 기억이 제대로 안 나는데. 이도영이랑 이설화가 같은 조가 됐다는 것만 기억에 남아있어서 어떻게 같은 조가 됐는지는 까먹고 있었다. 아니, 진짜 추첨으로 정한다고?

나만 당혹감을 느낀  아닌지,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려 이도영을 바라보자, 마찬가지로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큰일 났네. 만약 이도영이랑 떨어지면 어떻게 버텨야 하냐?

고민에 빠지기도 잠시, 이내 백소월이 소란을 진정시키듯 입을 열었다.

“아마 조 편성 방법이 마음에 드시지 않는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우리 동아리는 봉사활동을 위한 동아리지 친목 활동을 위한 것이 아님을 명심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난 친목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인데. 머리를 싸매기도 잠시, 이내 간단한 대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지리산 갈 때처럼 하면 되긴 하겠네.

‘또 교복털이범이 되어야 하는 건가.’

하느님, 오늘도 정의로운 도둑이 되는 걸 허락해주세요. 허락받고 가져가는 거니 도둑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안심이 되자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하는 농담을 구석으로 치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뭐. 같은 조가 되면 베스트지만, 다른 조가 되어도 죽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맹렬한 눈으로 이도영이 입고 있는 옷을 바라보자, 이도영이 소름이라도 돋은 듯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뽑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제가 인솔을 맡을 1조부터 뽑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원작에서는 이도영이 이설화랑 같이 1조였지. 이번에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나라는 추가요소가 불러온 나비효과가 크길 바랄 수밖에. 제발 같은 조가 되게 해주세요. 대상을 알  없는 기도도 잠시, 이내 결과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1조, 이도영, 이설화.”

모르는 이름  개와 익숙한 이름 두 개. 원작대로구나. 치밀어 오르는 허탈감에 한숨을 내뱉기도 잠시, 고개를 돌려 이도영과 눈을 마주쳤다.

“저…괜찮겠어…?”

작은 목소리로 이도영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괜찮냐고? 당연히 안 괜찮지. 그런데 어쩌겠어. 한숨을 내쉬고 귓가에 작게 속삭여 답변을 고했다.

“안 괜찮으면 어쩌겠어.”

 말을 들은 이도영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그 표정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뭐,  옷이라도 가져가야겠네. 도와줄 거지?”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군말 없이 순순히 도와주니  좋긴 하네. 이도영이 보인 반응에 씩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다 도와주니까 기특하긴 하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도영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항상 도와줘서 고마워.”

“아, 아냐….”

그 말을 들은 이도영의 얼굴이 다시 새빨개졌다. 아, 모르겠다. 얘 진짜 무슨 병이라도 있는 것 같긴 한데. 어차피 병이야 엘릭서 먹이면 고쳐지겠지. 그럼 됐네. 생각은 여기서 끝. 상념을 마치고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4조를 추첨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으신 분들은 자동으로 5조에 속하시게 될 예정입니다.”

와, 벌써 다 추첨했어? 여태까지 내 이름은 안 불렸으니까, 지금 결정되겠네. 고개를 끄덕이고 백소월을 가만히 응시했다. 직후, 추첨을 마친 백소월의 입이 열렸다.

“4조, 유시아, 박휘성. 4조의 인솔자는 이시혁 부원이 맡아주실 예정입니다.”

아, 잠깐만. 박휘성이라고? 백소월의 입에서 추첨 결과를 듣자마자 이도영의 얼굴이 빳빳하게 굳었다.  반응에 찌푸려지던 얼굴을 바로잡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뽑힌  난데 왜 네가  화를 내냐? 어이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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