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부활동(2)
딱딱하게 굳은 이도영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얘 왜 이래? 그러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이상할 정도로 강렬하게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순간 당황스러운 감정이 일었다. 아니, 뭔데. 그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리자마자 박휘성이 웃으며 내게 말을 건네왔다.
“같은 조네?”
“그러게.”
고개를 끄덕인 내 반응을 본 박휘성이 내 옆자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도영과 눈이 마주친 듯, 시선을 고정한 박휘성이 이내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 새끼들. 신경전 하나는 엄청나네. 그나저나 이도영 얘는 뭔데 이러지. 아직 각성도 못 한 주제에. 솔직히 한 주먹거리잖아.
“…시아야.”
몇 초간 시선이 오가고, 이내 박휘성에게서 시선을 거둔 이도영이 나를 불렀다.
“왜.”
“그거 어떻게 받아갈 거야?”
내가 고개를 돌리자 이도영이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굳이 대명사를 쓸 거면 귓속말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의문도 잠시, 이내 그 질문에 대답했다.
“조금 이따가 건네줘. 가방 안에 넣어둘 테니까. 어차피 지금 막 조를 짠 이상, 중간에 준비 시간은 줄 테니까.”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옷을 나한테 벗어주면 얘는 뭐 입냐? 궁금함에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속삭였다. 궁금하면 물어보는 게 맞지.
“그런데 너. 갈아입을 옷은 있어?”
내 질문을 들은 이도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그걸 왜 여기까지 가져왔냐? 신기한 눈빛으로 이도영을 쳐다보자, 이도영이 민망하다는 듯,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혹시 너한테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항상 여벌 옷은 가지고 다녀.”
오, 이거 좀 감동스럽네. 그 대답을 들은 뒤 이도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자, 이도영이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그 반응에 피식 웃으면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건네주었다.
“고마워.”
“그, 그래….”
감사 인사에는 익숙하지 않다는 듯, 뺨을 긁적이는 이도영에게서 시선을 옮겨 앞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당부드리자면, 저희는 단순히 취미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우신 분들에게 도움을 전함으로써 영웅으로서 가져야 할 책무를 다시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길다, 길어.’
마지막까지 길디긴 연설을 마친 백소월이 이내 주의사항을 간결하게 전달했다. 30분 정도 준비시간을 준 후에, 조별마다 정해진 위치로 모이라는 지시였다. 아니, 이렇게 짧게 말할 수 있으면서 굳이 왜 연설은 그리 길게 하는 거지? 이해가 안 가네.
속으로 몇 마디 투덜거린 후, 이도영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는 타이밍에 맞춰 박휘성도 몸을 일으키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 같은 조인 김에 같이 가지 않을래?”
“아니, 잠시 얘한테 받을 게 있어서. 먼저 가 있지그래?”
내 말을 들은 박휘성의 웃음이 살짝 흐트러졌다. 흠, 그러고 보니 이설화랑 이도영이 같은 조였지? 쯧, 짝사랑이 불쌍하니까 봐준다.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아니면 따라오든지. 금방 갈 테니까.”
“그래도 돼?”
내게 반문을 던진 박휘성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준 뒤 이설화의 앞으로 향했다. 와, 얘는 그냥 연설 시간 동안 잤네. 내 시선을 느낀 이설화가 그제서야 눈을 비비면서 기지개를 켰다.
“…안녕?”
안녕은 개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이내 이설화가 몸을 일으켰다. 그건 그렇고, 얘, 자기가 이도영이랑 같은 조인 건 아는지 모르겠네. 의문 섞인 시선도 잠시, 이내 이설화가 내게 질문했다.
“할 말 있어?”
“어.”
내 대답을 들은 이설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을 보며 말을 이었다.
“너, 네가 누구랑 같은 조인 지는 아냐?”
“음…도영이?”
오, 이걸 아네. 어떻게 알았대. 신기하단 눈으로 쳐다보자 이설화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얼굴이 되니까 이런 동작도 볼만하단 게 우스웠다. 허, 참.
“뭐, 어쩌라고.”
“나 바보 아니야.”
아, 그래. 알았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본론을 입에 담았다.
“그래서 이도영이랑 같이 갈 거냐?”
“응. 도영이랑은 아는 사이니까. 같은 조이기도 하고. 나도 같이 갈래.”
그럼 뭐, 됐네.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이도영의 옆으로 향했다. 박휘성과 이설화에게 눈짓을 보낸 뒤 걸음을 옮겼다. 그런 내 얼굴을 향해 이도영이 당황 섞인 시선을 보냈다.
“괜찮을까?”
“뭐가?”
“그거 말이야.”
귓속말을 속삭이는 이도영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니, 어차피 가방에 담아서 주면 되잖아.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쯧,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빨리 좀 가지. 속으로 한 번 더 투덜거린 뒤 발걸음을 옮겼다.
***
이도영의 옷을 받아 가방에 넣은 뒤, 4조에 지정된 집합 장소로 향했다. 옆에서 나와 보폭을 나란히 한 채 걷는 박휘성에게 잠깐 시선을 향했다가, 이내 눈을 떼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후, 집합 장소에 도착했다.
“반가워. 우리 초면이지?”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성이 나와 박휘성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고개를 끄덕이자 씨익 웃은 남성이 이내 설명을 시작했다.
“다들 모였으니까 설명을 시작할게. 일단 내 이름은 이시혁이라고 해.”
알아. 아까 들었으니까. 속으로 한 마디 중얼거리기도 잠시, 이시혁이 빠르게 설명을 마쳤다. 얘는 좀 마음에 드네. 간결하잖아.
대충 내용을 짤막하게 정리하면, 4조가 향할 자원봉사지는 고아원. 매주 한 번씩 봉사하러 갈 예정이란다.
‘고아원이라.’
애들 돌보는 건 귀찮은데. 애초에 내 성격상 애들이랑은 별로 안 맞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며 옆을 돌아보자 가벼운 미소를 띤 박휘성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얘는 왜 웃고 있대? 고개를 갸웃했다가 이내 다시 시선을 돌렸다. 설명을 마친 이시혁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만 출발하도록 할까?”
*
집합 장소에서 목적지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입구에 도착해 시설의 정경을 가볍게 눈으로 훑었다. 새것처럼 깨끗하진 않지만, 정성이 꽤나 담긴 듯 단정하게 정리된 건물이 꽤 인상적이었다. 인솔에 따라 고아원 내부로 들어가자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시혁이 형이다!”
“오빠!”
오, 뭐야. 되게 반기네. 우다다 달려 나온 아이들이 이내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흠칫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좀 상처인데. 묵묵히 바라보기도 잠시, 이내 아이들이 나를 향해 배꼽 인사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무시하기도 뭐해서 가볍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자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 이건 좀 무리인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를 둘러싼 아이들이 시끌벅적 떠들기 시작했다.
“예쁜 누나다!”
“언니는 이름이 뭐예요?”
“언니도 사관학교 학생이에요?”
순진무구한 눈빛과 함께 내게 밀려오는 질문 세례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이었다. 차분한 이시혁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얘들아,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네!”
그 말을 듣자마자 우르르 안으로 들어간 아이들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허, 이렇게 쉽게? 놀란 시선으로 바라보자 이시혁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다 착한 아이들이야.”
그런 것 같긴 하네.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와 박휘성을 본 이시혁이 다시 웃음을 흘리며 안으로 안내를 시작했다. 음, 되게 맘에 드네, 이 사람. 능력 있어. 감상을 흘리며 이시혁의 뒤를 따랐다.
*
적당히 원장과 인사를 마친 뒤, 잡일을 시작했다. 아이들과 어울려주는 건 어떠냐는 말은 들었지만, 그건 좀 힘들어서. 청소와 빨래를 마친 뒤 창문 밖으로 붉은 저녁노을이 걸린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 어떻게 가방에 있는 옷으로 공기를 정화했냐고?
‘입었지.’
아직 각성하지 않은 탓에, 성장이 더딘 덕분인지 나랑 옷 사이즈 차이가 그리 안 나더라. 뭐, 디자인 자체는 아무 차이도 없으니까. 그리고 마나가 빠져나가는 게 아까워서 그 위에 겉옷을 하나 더 걸쳤다.
뭐, 아무튼 그렇게 해서 공기 자체는 해결됐다는 거다. 뭐, 오늘 하루 이상 가지는 않을 테니 임시방편이지만. 적어도 지금은 충분하다는 거지. 내부로 들어가자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고 있는 박휘성의 모습이 보였다.
‘쟤가 제일 신기하단 말이야.’
마인 후보라서 걱정했는데, 의외로 애들이랑 되게 잘 어울려준다. 딱히 연기도 아닌 것 같고.
‘봉사활동 좋아한다던 말이 진짜였나.’
생각해보니 아직 마인은 아니기도 하고, 쓸만한 놈이니까 차라리 교정해서 전력으로 써먹는 게 낫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로 인상이 바뀌었다. 저게 연기일 가능성도 고려해야겠지만, 원작에서 보인 행보를 생각하면 그 정도로 연기가 뛰어난 놈인 것 같지는 않고.
대충 생각을 정리하자, 어느새 놀이가 끝났는지, 몸을 빼낸 박휘성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뭐, 할 말이라도 있나? 고개를 갸웃거리자 박휘성이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얘, 진짜 맛이 갔나? 왜 자꾸 처웃어?
“왜?”
“그냥.”
어이가 없네. 한심하단 시선을 보내자 박휘성이 또 웃음을 흘렸다. 뭘 쪼개. 눈을 살짝 찌푸리자 박휘성이 이내 내게 입을 열었다.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그래.”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 살짝 경계심을 일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벌써 공격하진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내 태도를 본 박휘성이 한 번 더 웃음을 흘린 뒤, 발걸음을 옮겼다. 조용히 뒤를 따르기도 잠시, 이내 인적 없는 공터가 나왔다.
‘이런 장소는 언제 봐 둔 거래?’
궁금증에 고개를 갸웃하자 이내 박휘성이 입을 열었다.
“오늘 어땠어?”
“그냥 그랬는데.”
내 대답을 들은 박휘성이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뭔데. 왜 그러는데?
“그…봉사활동 부 들어온 게 그 친구를 따라온 거라고 했지?”
“어.”
이도영 말하는 거면 맞지. 설마 떨어질 줄은 몰랐지만. 고개를 끄덕이자 박휘성이 미묘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그런 것치고는 오늘 되게 열심히 일하던데.”
뭐, 시키니까 했지. 힘든 일도 아니고.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이내 박휘성이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봉사활동은 어땠어?”
“뭐, 나쁘지 않았어. 재미는 없었지만.”
애들이랑 노는 건 좀 힘들어서. 애 보는 건 좋지만, 애 보는 건 싫다. 이거지. 속으로 재미없는 농담을 하기도 잠시, 이내 박휘성과 눈이 마주쳤다. 와우, 왜 이래.
“나는 오늘 되게 즐거웠는데.”
“애들 좋아하냐?”
“응. 좋아해.”
오, 그래? 살짝 놀란 시선으로 바라보자 박휘성이 조금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이래. 고개를 갸우뚱하자 이내 박휘성이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 좀 안 좋은 기억이 있거든. 그래서 애들이 좋아.”
“….”
갑자기 이런 화제가 나오니까 딱히 할 말이 없네. 갑작스레 무거워진 분위기에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런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박휘성이 말을 이었다.
“부모님께 학대를 당했거든. 뭐, 사실 숨겨진 얘기도 아니야. 조금만 알아봐도 알 수 있는 얘기니까.”
‘그런 것치곤 원작에서 딱히 들은 적 없는 것 같은데.’
생각도 잠시, 이내 이어지는 박휘성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원작에 나온 적 없는 정보니까. 집중해야겠지.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지?”
“어.”
내가 어떻게 아냐. 고개를 끄덕이자 박휘성이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으로 보는 부정적인 표정이었다.
“그냥 궁금해서. 그 친구한테 왜 그리 신경을 쓰는지.”
누구? 이도영? 내가 걔한테 신경을 쓰는 게 니가 왜 궁금한데? 이해가 가지 않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박휘성이 자기 인생 썰을 풀기 시작했다. 아, 이거 좀 길어질 것 같은데.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뱉은 뒤,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