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1화 〉부활동(5) (51/167)



〈 51화 〉부활동(5)

아주 어렸을적,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래, 그 이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말이다. 적어도 그때는 어머니께서 내게 집착을 보이진 않으셨으니까. 비록 나를 볼 때마다 애증이 깃든 눈빛을 향하시긴 했지만,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게 한없이 무관심하시긴 했지만. 적어도 직접적인 학대는 없었다는 점에서 조금 나은 평가를 내릴  하다고 생각한다.

 시절의 어머니는 폐인에 가까우신 분이셨다. 자신의 자식을 보면서 자신을 버린 상대를 떠올리고, 그를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어머니께서 나를 사랑해주시길 바랐었다. 아니,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작은 관심이라도 주시기를 바랐다. 물론, 그 자그마한 소원이 최악의 형태로 이뤄질 줄은 몰랐었지만.

“혼자서 자력으로 마나를 각성하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어머니께서 좋아하실까요?”

“그래. 당연히 좋아하실 거다.”

마나를 각성한 첫날, 학교의 선생님과 나눈 짧은 대화. 그 대화 이후, 기쁘게 집으로 돌아가서 어머니께 마나를 각성했다고 말씀드렸다. 분명히 내게 칭찬해주실 거라는 기대를 가득 품고. 그리고 그때 들었던  마디.

‘그래서?’

무표정한 얼굴로 그렇게 한 마디를 내뱉으신 어머니는 평소처럼 내게 저녁을 차려주신 이후,  그랬듯이 또 밖으로 나가셨다. 아직도 나는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홀로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를 하고 잠에 들었던 그날의 밤을 생생히 기억한다.

*


그랬던 어머니는 내가 마나를 각성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께서 찾아오신 이후 급격히 바뀌셨다. 그래.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충분히, 아니 넘칠 정도로 관심을 쏟아부어 주는 사람으로. 아버지께서 내게 말한, 쓸 만하다는 한마디가만들어낸 기적이었다.

‘그리 좋은 기적은 아니었지만.’

그날 이후, 완전히 태도를 바꾸신 어머니는 나를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저녁마다 매일같이 집을 나가셨던 어머니는 더는 밖을 향하지 않으셨다. 밖에서 사용하던 비용마저 아껴서 내게 쏟아부으셨으니까. 새벽에 일어나서 늦은 밤에 집에 돌아오는 나날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행복했던 것 같다. 적어도 훈련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밤이면, 어머니께서 내게 칭찬을 해주셨으니까.

그 기묘한 관계. 모자간의 관계라고 하기에는 꽤 일그러진 관계는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바랬던 건, 내가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께서 또 찾아오시는 것이었겠지만, 아버지는 그날 이후 더는 찾아오지 않으셨으니까. 그리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어머니는 점점 기준점을 높이기 시작하셨다.

“네가 부족하니까 그이가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는 거야!”

“더 강해져야 해! 강해지지 않으면 너는 나한테 필요가 없다고!”

온종일 화살을 쏘아내도, 손에 물집이 잡히다 못해 부르틀 때까지 활을 잡아도, 어머니께서는 여전히 내게 만족하지 못하셨다. 만족하실 수 있을 리 없었다. 애초에 어머니께서는 내 성장이 아니라 아버지가 돌아오시기를 원하신 거였으니까.

그리고 몇 년 후, 끝이 보이지 않는 훈련에 나도 점점 지쳐가던 어느 날 아침, 어머니께서 다정하게 내게 말을 건네셨다.

“더는 노력할 필요 없어. 휘성아.”

어머니께서 내 이름을 제대로 불러준 건 아마 그 날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날 밤, 어머니께서는 악마를 불러내셨으니까.

일렁이는 흑색의 불길한 마기. 보는 것만으로 불쾌하기 짝이 없는 형태. 그 형상을 몸에 두른 어머니께서 내게 말을 건네왔다. 아니, 그게 진짜 어머니였을까? 나는 아직도 ‘그것’의 진짜 정체를 알지 못한다.

“이 힘을 받아들이면, 너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을 거다!”

“더 강해져야 한다. 강해지지 않으면 나한테 버림받을 뿐이야!”

머릿속에서 마구 울리는 불길한 목소리. 눈앞의 그것은 분명 어머니였지만, 동시에 어머니가 아니었다.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혐오감과 불길함이 치솟는 괴이한 형태. 차마 그 두려움을 견딜 수 없어, 나는 결국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게 ‘어머니’를 향한   번째 반항이자 마지막 반항이었다.

*


정신없이 집에서 도망쳐 나온 다음 날, 공포에 떨면서 집으로 돌아간 내가 맞이한 것은, 어머니의 싸늘한 주검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아버지께서 나를 다시 찾아오셨다.

“너를 거두러 왔다.”

여전히 딱딱한 목소리. 그럼에도 약간 다정함이 비치는 시선. 그 시선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필사적으로 무시했다. 그 시선에 실린 감정을 받아들이면, 어머니가 너무 비참해지니까. 아니, 내가 너무 비참해지니까.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간 이후, 나는 새어머니를 처음으로 마주했다.

“미안하다…. 미안해….”

새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품에 끌어안으시더니 눈물을 흘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는 나를 보며 말하는 새어머니에게서, 전혀 알고 싶지 않던 정보들이 내 귀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사실 아버지는 내게 관심이 없었다는  아니라는 것, 어머니에게 빌미를 줄까 봐 찾아오지 않았을 뿐, 내 얘기는 항상 듣고 계셨다는 것. 새어머니 자신 또한 나를 거두고 싶었지만, 어머니 탓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는 것.

그 말을 듣고 난 후,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면, 어머니의 주검을 마주한 이후에도 없었던 환청이, 밤에 잠을 청할 때마다 가끔 들려오기 시작했다는 것.

“저들이 너를 정말 사랑하는 것 같아? 아니, 네 능력을 사랑하는 거야. 네가 하찮아지면 금방 버림받을걸? 네 어머니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밤마다 들려오는 환청은 꽤 집요했다.  환청을 피하고자 수련에 몰두할수록, 더더욱 교묘하게 내게 속삭여 왔으니까. 그 탓일까, 점점 가족들 사이에서 겉돌기 시작한 것은. 아니, 원래부터 나는 끼어든 불순물이었으니까. 그게 맞는 일일지도. 그리고 웃음이라는 가면을  채, 접촉을 피하는 내게 어느날 새어머니가  가지 제안을 건네왔다.

“영웅 사관학교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니?”

그곳에 가면 더욱 수준 높은 훈련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는 말. 그 말은 꽤 솔깃하게 들렸다. 나뿐만 아니라, 환청에게도.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


사관학교에 입학한 이후, 처음으로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 생겼다. ‘나보다 강한’ 여자. 이름이 유시아라고 했던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경험하는 패배는 아니었지만,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한 이후 또래에게 패배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첫 만남은 더욱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한 번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자 점점 더  여자에게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늘 차가운 얼굴을 짓고 있는, 웃음을 연기하는 자신과는 정반대의 모습.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욱 신경이 쓰인 건, 항상 같이 다니는 그 남자였다.

‘압도적인 꼴찌라고 했던가.’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가치가 없어 보이는 남자였다. 하찮기 그지없는 실력.  그런 녀석을 데리고 다니는 거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쩐지 불쾌감이 들었다. 내가 더 강한데. 어째서? 왜? 그리고 점점 사관학교에 입학한 이후, 더 잦아지기 시작한 환청이 내 의문에 답하듯 속삭였다.

“너보다  여자가 강하기 때문이지. 너나, 그 남자나, 그 여자에겐 결국 자신보다 약한 이들이니까. 그러니까, 너는 더 강해져야겠지?”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


부 활동을 정한 이후, 향한 부실에서 우연히 유시아를 만났다. 여전히 내게 무관심한 모습에 살짝 아릿한 감정이 느껴졌다. 정확히 무슨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째서인지 불쾌한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은, 이내 이도영이란 남자를 만나자마자 밀려온 불쾌감에 휩쓸려 사라졌다.

“….”

어째서인지 사라진 환청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신경전을 벌이기도 잠시, 내가 유시아와 같은 조가 되었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을 듣자마자 얼굴을 찌푸린 이도영을 향해 피식 웃음을 보냈다.

*

고아원에 도착한 이후, 한참을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싫어하지 않았으니까. 가끔 봉사활동을 가기도 했고. 물론 환청은 내가 봉사활동을 가는 걸 질색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봉사활동에  매진하기도 했다. 뭐, 그것도 취미라면 취미였겠지.


그렇게 한참을 놀아준 이후, 이내 나를 바라보는 유시아의 시선이 살짝 바뀐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묘하게 간질거리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입을 열었다.

“잠시 얘기  할 수 있을까?”

“…그래.”

고개를 끄덕인 유시아와 함께 외진 곳으로 향했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작은 공터. 오늘 유시아를 만난 이후부터 어째서인지 들리지 않는 환청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의미 없는 잡담을  마디 하다가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않았던’ 자신의 사정. 그걸 입에 담은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동정이라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내게 관심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그런 감정을 가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내 생각에 완전히 대치되는 행동을 보여주는 이였기에 그랬던 것 같다.

‘능력이 없다면 버림받을 거야.’

환청의 말은 별로 듣고 싶지 않았지만,  말만은 동감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야기를 전부 들은 유시아의 눈은, 유감스럽게도 처음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마디 질문이 오가고, 얼마 후, 유시아가 내게 물었다.

“너는 왜 사관학교에 들어온 거야?”

강해지고 싶으니까. 강해지지 않으면, 버림받을 테니까. 그래서 눈앞의 상대가 더욱 신경 쓰였다. 누구보다 열등한 이에게 관심을 주는 모습이 이상할 정도로 눈에 밟혔다. 내 대답을 들은 유시아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게 아니라?”

“그…그건….”

할 말이 없었다. 나 자신조차 돌보지 못하는 이가,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당황한 내 목소리를 들은 유시아가 가만히 말을 이었다.

“이도영은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서 사관학교에 들어왔다고 했어.”

 말을 듣고 나서 깨달았다. 아, 그러면 나는 이 여자에게 절대 관심을 받을 수 없겠구나. 그 뒤로 이어진 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유시아를 바라보던 순간이었다. 예상치 못한 말이 귓가에 들려왔다.

“그래도 너한테도 그런 마음이 어느 정도 있다는  아니까.”

이해할 수 없는 말. 머릿속에 의문이 솟구쳤다. 나한테? 어딜 봐서? 혼란스러운 내 시선을 마주한 유시아의 입이 다시 열렸다.

“봉사활동이 취미라며? 아니야?”

“마…맞긴 한데….”

“아까 아이들이랑 어울린 것도 진심이었지?”

그 말을 끝으로 유시아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한테 굳이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유시아가 퉁명스럽게  마디를 내뱉었다.

“뭐, 그냥 그렇다고.”

그 말을 내뱉은 뒤, 부끄러운 듯 유시아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붉은 석양빛이 유시아를 비췄다.  순간, 어째서인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저 시야를 가득 채운 붉은 빛만이 머릿속에 잔상처럼 남았다. 가슴 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밀려들어왔다.

“이제 더 할 말 없지?”

“…응.”

“그럼 돌아가자.”

멍하니 대답한 내 말을 듣고, 유시아가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이으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할 수 있을까? 우습게도, 그 답은 쉽게 나왔다. 적어도,  앞의 상대 하나는 진심으로 위할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부실에 돌아온 후,  부탁을 듣고 단둘이 남아준 유시아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할 말이 뭐냐는 질문에 답하려 필사적으로 머릿속을 뒤졌다. 그리고 점점 찌푸려지는 유시아의 표정이 한계에 달하기 직전, 입을 열었다.

“그…나한테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있을 거라고 했지?”

“…어.”

의문에 찬 표정으로 유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을 듣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나는 사실 잘 모르겠어. 나한테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이 진짜 있는지.”

“…그래서?”

긴장으로 턱턱 목이 막혔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눈빛 가득 의문을 담은 유시아의 시선을 마주하고 입을 열었다.

“그래도 적어도 한 명 정도는 내가 위할 수 있을 것 같아.”

“한 명…?”

무슨 생각을 하는지, 유시아가 고개를 돌려 부실 문을 바라보았다.  대상이 자신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듯한 행동. 살짝 웃음이 흘러나오려는 것을 참고 입을 열었다.

“응. 적어도 한 명,  하나만은 내가 진심으로 도울  있을 것 같아.”

내 대답을 들은 유시아가 순간 알아듣지 못했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당황한 그 모습을 보며,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입에 담았다.

“아무래도 나는,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내 말을 들은 유시아의 눈이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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