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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화 〉인식(1) (52/167)



〈 52화 〉인식(1)

 새끼는 갑자기 뭔 개소리를 하는 거지.

귓가로 들려온 말이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있는지 모르겠어? 네가 모르면 그걸 누가 알아. 뭐, 내가 네 마음에 들어가서 찾아줘야 되냐?

의문을 담고 박휘성의 얼굴을 바라보자 이내 박휘성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적어도  명 정도는 내가 위할 수 있을 것 같아.”

 명이라, 이설화인가. 뭔가 미묘한 분위기에서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걸 왜 나한테 말해? 그 의문을 담고 고개를 갸웃한 순간, 박휘성의 입에서 헛소리가 튀어나왔다.

“적어도  명, 너 하나만은 내가 진심으로 도울 수 있을  같아.”

“…?”

 왜 도와?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는 말에 멍하니 박휘성을 바라보기도 잠시, 이내  얼굴을 보며 한 번 웃음을 흘린 박휘성이 더 미친 소리를 내뱉었다.

“아무래도 나는,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갑자기?’

뭐지, 지금 맥이는 건가? 이게 그 고백해서 혼내주는 그런 거냐? 뭔 개소리야, 미친 놈이.

전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헛소리에 본능적으로 표정이 찡그려졌다. 아니, 말이라도 많이 나눠봤으면 몰라. 내가 쟤랑 몇 마디나 했다고?

‘그 전에, 애초에 왜 대상이 나야?’

원작 존중 안하냐고. 아, 뭐. 내가 있는 시점에서 이미 원작은 말아먹긴 했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냐? 진짜 정신 나갈 거 같네.

“…당황스러운 것도 이해할 수 있어. 솔직히 갑작스러울 테니까.”

아니까 다행이네. 아니, 오히려 아니까 문제인가. 갑작스럽다 못해 어이가 없는데, 그냥? 혼란스러운 머리에서 어찌어찌 말을 짜내 질문을 던졌다.

“…왜 나야?”

아니, 이설화 어디다 팔아먹었냐고. 마인 새끼야. 내 질문을 들은 박휘성이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잠시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그냥 나보다 강한 사람이라서 눈길이 갔어.”

아, 그냥 질걸. 급격히 대련수업 결과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어차피 자퇴할 건데,  성적 챙기겠답시고 빡겜했지. 멍청한 새끼.

‘아니, 그런데 무슨 전투종족도 아니고, 강하다고 고백을 박는게 말이 되냐?’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린 순간, 박휘성이 말을 이었다.

“그다음에는 이도영한테 하는 행동에 신경이 쓰이더라고.”

내가  했다고. 그냥 붙어만 있었는데, 별 진짜. 아니, 그보다 본론만 말해, 이 새끼야.

‘빙의하기 전에는 고백을 받기는 커녕 해본 적도 없는데.’

기껏 처음 고백을 받았는데 하필 상대가 남자네. 진짜 돌겠다. 급격히 어지러워지는 시야를 간신히 부여잡고 박휘성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때까지는 사실 단순히 흥미라고 생각했어.  네가  애한테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지 궁금했거든.”

능력이 없으면 버려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그 애를 챙기는 너를 이해할 수가 없었어.

‘굳이 따지면 나도 능력 때문에 챙긴 건데.’

주인공만 아니었으면 솔직히  일 없었어. 거지 같은 체질. 개 같은 종족. 잡생각도 잠시, 이내 밀려드는 피로감에 속으로 한숨을 삼킨 순간 박휘성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오늘  말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무슨 생각? 눈을 가늘게 뜨고 박휘성을 바라보았다.

“나는 너한테 평생 관심을 받을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

어, 뭐. 솔직히 말하면 관심이 없는 건 아닌데. 그런  관심은 아니고, 미리 싹을 자를지 말지 고민하는 거지만. 아무튼, 이것도 관심이라면 관심 아냐? 내 표정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박휘성은 그런 나를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네가 나한테도 다른 이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해  순간 깨달았어.”

그렇게 하면 네가 나한테 관심을 가져준다고 생각하니까 뭐든지 할  있을  같더라. 어렸을 때, 어머니한테 그랬던 것처럼.

박휘성의 말을 전부 들은 뒤, 작게 침음성을 흘렸다.

“음….”

‘뭔 개소리지.’

나만 이해 안 가? 그래서 지 어머니 얘기는  나오는 거야. 나보고 어쩌라고.

‘진짜 설명 거지같이 하네.’

뭐, 말은 이렇게 하지만 쟤가 나한테  이러는지 이해하긴 했다. 아까 과거사까지 들었으니까 대충 심리가 예상은 가거든. 그러니까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결국, 제 어머니의 빈자리에  끼워 넣고 싶은 거잖아?’

아까 쟤도 그랬잖아. 능력이 없으면 버려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그 상황에서 내가 쟤를 이설화보다 먼저 조져버렸다 이거네.

‘그럼 원작에서 이설화한테 빠진 계기도 그거겠네.’

뭐, 수업 중에 졌다거나 그런 사소한 이유일 테지. 그런 상황에서 이설화가 약해 빠진 이도영한테 관심을 보이니까, 본인 생각이랑 다르게 행동하는 이설화한테 더 신경이 쓰이게 되고. 그리고.

‘그 상황에서 이도영이 각성, 박휘성을 추월해버렸다는 건가.’

안 그래도 불안정하던 정신은 그걸 기점으로 완전히 망가졌을 테고, 자신을 추월한 이도영을 다시 추월하기 위해 마인 계약을 맺었다. 그것 참, 이렇게 보니까  깔끔하네.

‘나는 거기에 더해서, 봉사활동 가서 헛소리까지 해버린 거고.’

능력이라는 기준 대신 다른 기준을 세워줬으니까, 이번에는  기준대로 행동해보겠다는 건가. 어렵진 않은 일이겠지. 단순히 대상만 바꿨을 뿐이지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온 일일 테니까. 그 대상이 제 어머니에서 나로 바뀌었을 뿐.

대충 상황을 정리한 후, 속으로 짤막하게 감상을 남겼다.

‘망했네.’

이거 아무래도 원작 이설화보다 심하게 플래그를 꽂아버린 것 같은데. 원작에서 이설화한테 관심을 주게 되는 계기를 전부 가져가 버린 데다가, 독자적인 플래그까지 꽂아버렸으니.

아니, 나는 이럴 줄은 몰랐지. 쓸만한 빌런 새싹 하나 개심시키려다가 이게 뭔 개 같은 상황이냐.

‘그냥 개심이고 뭐고, 마인이 되건 말건 내버려둘까.’

각성한 후에는 알아서 이도영이 처리하겠지. 원작대로 알아서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지도. 얘가 얼마나 성장할지도 모르고, 변수를줄인다는 측면에서는 그게 나을 수도 있다. 다만.

‘솔직히 그냥 그렇게 내버려두긴 찝찝한데.’

아예 사연이 없는 놈도 아니라서, 그냥 내버려 뒀다간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단 말이야. 그래도 꼴에 몇 마디 얘기 나눠봤다고 정이라도 들었나, 미운 정이지만.

속으로 혀를   찬 뒤, 박휘성을 바라보았다. 조금 긴장한 듯, 박휘성은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이걸 또 어떻게 설득해야 하냐. 까딱하면 타락 루트인데. 귀찮네. 대충 고민을 끝낸  말을 골라내 입에 담았다.

“…그게 나를 좋아하는 이유라고?”

“응.”

대답을 들으니까 갑자기  빡치네. 고백해놓고 지가 상대를 좋아하는 이유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놈이 어딨냐?

‘차라리 그냥 상남자답게 이렇게 말하던가.’

거, 내가 만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대한테 점점 정감이 가더이다. 그대가 내게 감정이 없는  알지만, 그래도 한  이 마음을 전해보고는 싶었소.

근데 생각해보니 어떻게 말하건 간에 내용이 결국 고백이니까 그냥 엿 같네. 감정이 없는 걸 알면 그냥 입을 닫는 게 맞지. 고백으로 혼내주는  아니라.

머릿속에 떠도는 헛소리를 대충 욱여넣은 뒤, 박휘성을 다시 바라보았다. 어떻게 돌려서 꺼지라고 말해야 마인 계약을 안 맺으려나. 쯧, 역시 그 컨셉을 이어가는 게 낫겠지.

“그게 왜 나를 좋아하는 이유야?”

무표정한 얼굴로 내뱉은 내 말을 들은 박휘성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건 네가 그냥 나한테 바라는 점이잖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휘성을 보며 말을 이었다.

“단순히 내 관심을 받으려고 뭐든지 할  있다고?”

“그, 그래….”

“그건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야, 나한테 의존하는 거지.”

의존이라고 해야 할지. 집착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건전한 관계는 아니거든, 그건.

‘뭐, 성장 배경을 생각해보면 이해는 간다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그런 방식 말고는 모르는 놈이니까. 왜 이러는지는 알아.아는 데, 그걸 내가 굳이 받아줄 필요는 없잖아?

“….”

 말을 들은 뒤, 한참을 묵묵히 서있는 박휘성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말이 많은 듯, 꿈틀거리던 입술이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망부석이라도  마냥 서있는 박휘성을 바라보며 쐐기를 박았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네 감정은 받아줄 수 없을 것 같아.”

음, 너무 칼 같았나. 그런데 여지를 남기고 싶진 않거든. 쯧, 그래도 멍하니 서있는 걸 보니까 좀 불쌍하긴 한데.

가만히 서서 몇 가지 생각을 떠올리던 도중, 묵묵히 상념에 빠져 있던 박휘성이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바뀌면….”

“응?”

“…내가 바뀌면…. 그러면 괜찮은 거야?”

아, 돌겠네.

무심코 빠져나오려는 한숨을 겨우겨우 삼켰다. 바뀌면 좋기야 하지. 전력이 늘어나니까.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너랑 그런 관계가 되는 건, 내 한계 밖이거든? 애초에 남자든 여자든,  몸뚱이로는 딱히 사귈 생각 없기도 하고.

“아니, 미안하지만 시간상 무리일 것 같은데.”

그 대답을 듣자마자 박휘성이 고개를  숙였다가 이내 이상한 점을 캐치한 듯, 의문에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시간상…?”

원래는 이건 딱히 말할 생각 없었는데. 그래도 깔끔하게 포기하게 하려면 이것까지 까는 게 나을 것 같네. 뭐, 이렇게 말했는데 마인이 되면 그건 내 능력 밖이고.

“나,  사관학교 자퇴할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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