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인식(3)
“오늘은 실제로 영웅들이 활동하는 몬스터 서식지로 견학을 갈 예정이다.”
짤막하게 말을 뱉은 신유정이 리모컨을 조작해 모니터를 켰다. 스크린에 오늘 목적지에 대한 정보가 표시되었다.
“물론 아직 햇병아리인 너희가 직접 전투를 하는 일은 없을 거다. 오늘은 단순히 영웅들의 활동이 가져온 결과를 보러 가는 거니까.”
‘글쎄, 전투는 있을 것 같은데.’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원작대로 마인이 습격하게 되면 사상자가 어느 정도 나오긴 할 거다. 뭐, 교관들이 따라가기는 하지만, 신유정을 제외하면 마인을 혼자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으니까.
‘새내기 생도들이 마인을 막을 수 있을 리도 없고.’
신입생 중 압도적으로 규격 외인 이설화조차, 현재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영웅들에게 비하기엔 무리가 있다. 물론 성장 속도를 보면 금방 따라잡긴 하겠지만. 최소한 그게 지금은 아니거든.
‘그렇다고 아무것도 못 하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포획 중 탈출했다는 건 만전의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는 거니까. 여기 애들 전체와 한 번에 붙는다면 상대할 수야 있긴 하겠지. 다만 문제가 있다면, 지금 여기 있는 놈들은 진짜 실전을 경험한 적 없다는 거다. 당연히 나도 포함해서.
‘제대로 뭉쳐서 상대하면 이길 수 있긴 하겠지만,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뭐, 그래도 신유정의 리타이어만 막으면 어떻게든 되긴 되겠지. 다른 교관들은 몰라도 신유정 정도라면, 혼자서도 마인을 어느 정도는 상대할 수 있으니까. 잘하면 아무도 안 죽고 끝날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마치고 앞에서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가고 있는 신유정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번 이벤트의 키 포인트는 저 양반이라는 거다. 이기지 못해도 시간만 끌어준다면, 영웅들이 탈출한 마인을 포획하러 올 테니까.
“목적지에 도착하면, 예정된 코스에 따라서 견학을 진행할 거다. 중간중간에자유시간도 있을 테니,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은 넣어두도록.”
가볍게 웃으며 말을 잇는 신유정을 보며 대충 마음을 정리했다. 아, 그런데 솔직히 진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좀 쫄리네. 이도영 각성만 끝나면 진짜 자퇴한다. 놀고먹을 거라고. 돈이 부족할 것 같으면 인방이라도 하지, 뭐. 농담이지만.
*
처음 게이트가 열리고 던전이 형성되었을 때, 혼란에 빠진 인류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 각지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다. 그로 인해 던전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은 대부분 영웅의 분투를 통해 소탕했지만, 아직도 몬스터가 일부 남아 있는 지역이 존재한다.
‘뭐, 소탕을 못 하는 건 아니고, 안 하는 거에 가깝긴 한데.’
예산과 인력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나? 그거 말고도 여기서 수급하는 몬스터 소재는 사용처가 매우 다양하니까. 필요에 따른 타협 같은 거지.
‘아쉽게도 마석 같은 건 없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고, 강한 몬스터한테서 부산물로 나오는 경우도 있긴 한데. 적어도 그 정도로 강한 몬스터는 여기에 없다. 굳이 이 장소를 정의하자면 쪼렙 사냥터 정도로 말해 두면 되겠지. 수준이 너무 높은 몬스터는 풀어놓기엔 좀위험하거든. 그런데 이런 장소에 생도들이 가도 되냐고?
‘견학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사냥터 안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까.’
실제로 사냥터 안은 무법지대에 가까워서 생도가 들어가기엔 좀 그렇다. 2~3학년쯤 된다면 모를까, 우리는 아직 신입생이니까.
출입하는 이들은 의무적으로 액션 캠과 통신 장비를 착용해야 하니까 어느 정도 보완은 되지만. 그래도 공권력이 닿기 힘들다는 특성상, 범죄자들이 가끔 숨어드는 경우도 있거든. 새내기한텐 조금 위험하다, 이거지.
아무튼, 그러니까 우리가 향하는 곳은 그 몬스터 부산물을 일차적으로 가공하기 위한 산업 도시다. 정확히는 도시와 사냥터를 잇는 중계 구역 같은 곳이라고 보면 되겠지.
“목적지에 도착했다. 모두 하차하도록.”
버스가 멈추고 신유정의 목소리에 따라 옆자리에서 졸고 있는 김유진을 흔들어 깨웠다.
“으으음…도착했어?”
“어.”
눈가를 비비며하품을 하는 김유진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먼저 버스에서 내렸다. 뒤따라 내려오는 김유진을 흘깃 본 뒤 먼저 내려서 서 있는 이도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쟤, 오늘따라 왜 저런대.’
요즘은 좀 친근해진듯하더니 갑자기 또 거리를 벌리네. 고개를 갸웃한 뒤 이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야.”
“…응?”
가까이서 얼굴을 보자 밤이라도 샌 모양인지 안색이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와, 뭐냐?
“밤이라도 샜냐?’
“아…어제 잠을 못 잤거든.”
밤에 뭐 했길래. 아니, 생각해보니 별로 알고 싶진 않아.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도 잠시, 내게서 몸을 피하는 이도영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얘 진짜 왜 이래?
“…그래?”
“응.”
아, 모르겠다. 지 알아서 풀리겠지. 생각을 마치고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김유진과 함께 줄을 맞춰서 섰다. 앞서서 걸음을 옮기는 신유정을 따라 발을 움직였다.
“시아야, 저거 봐.”
“어.”
거대 몬스터의 시체를 실은 대형 화물차가 바쁘게 길을 오가고 있었다. 와우, 실제로 보니까 대단하긴 하네. 감탄도 잠시, 이내 풀어진 긴장을 다시 조였다.
‘탈출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경보가 울리고 나서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대부분 사전에 저지하긴 하지만 가끔 몬스터가 사냥터를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경비를 보고 있는 인원 일부가 처리를 위해 나서게 되니까, 필연적으로 경계 태세가 느슨해진다.
‘몇 마리도 아니고 갑자기 수백 마리가 탈출에 성공하는 건, 주인공 효과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만.’
아무튼, 전에 없을 정도로 거대한 대탈출 덕에 운 좋게 경계에 빈틈이 생긴 순간, 포획해뒀던 마인이 탈출하게 된다는 거다. 그리고 하필이면 생도들이 그 근처에 있었다는 거고.
‘나 참, 우연도 적당한 수준이어야지.’
작위적인 상황 설계에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을 다시 바라보았다. 감탄을 머금고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는 천진난만한 모습도 잠시, 이내 나와 마주친 이도영이 당황한 듯 시선을 돌렸다. 아니, 진짜 왜 저래.
‘좀 빡치네.’
내가 해준 게 얼마인데. 음, 생각해보니 아직 별로 해준 건 없긴 한데. 그래도 저런 반응이 불쾌한 건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볼 일도 얼마 안 남긴 했지만. 대충 감정을 추스른 뒤 생각을 이어나갔다.
‘일단 쟤는 최우선으로 지켜야겠지.’
혹시라도 나비효과로 다치게 되면 큰일이니까. 봉인이 풀리는 것도 마찬가지고. 까먹고 있었던 탓에 엘릭서 안 가져왔거든. 응? 갑자기 봉인이 왜 나오냐고?
‘이도영의 봉인을 풀 열쇠가 마인이니까.’
정확히는 마기다. 이도영이 가진 정화의 권능은 마기를 감지하면 폭주하듯 날뛰게 되니까. 뭐, 원작 기준으로는 오늘 각성하진 않으니까 괜찮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주의는 해 두기로하자.
“시아야, 저거 봐! 저거!”
옆에서 들려오는 김유진의 목소리에 생각을 마친 뒤, 다시 견학에 집중했다. 경보가 울릴 때까진 조금 쉬어도 괜찮긴 하겠지, 뭐.날카롭게 세워진 긴장을 조금 느슨하게 푼 뒤, 김유진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아니, 근데 얘는 왜 이리 활기차냐? 솔직히 이젠 별 재미 없는데.
*
-위이이이잉!
얼마 뒤, 한창 구경에 빠져있을 무렵. 갑작스럽게 어마어마한 크기의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당황도 잠시, 경보음이 울린 이후 흘러나온 안내 방송을 듣자마자 신유정이 얼굴을 굳혔다.
[긴급 사태입니다. 대량의 몬스터가 지정된 구역을 벗어나 도시로 향하고 있습니다. 방문자분들은 혹시 모를 위험을 막기 위해, 안전한 곳으로 향해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비상사태다! 전원, 빠르게 모이도록!”
신유정의 목소리가 닿기도 전에, 이미 경보를 들은 생도들이 순식간에 신유정의 앞으로 집합했다. 얼굴은 죄다 당황 섞인 낯빛이긴 하지만, 괜히 사관학교 생도가 아니라는 듯 질서정연한 모습이었다.
“좋아, 모두 나를 따라오도록 해라!”
그 모습을 본 신유정이 고개를 끄덕인 뒤,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안전한 곳이라, 역시 영웅들이 지키는 곳이겠지. 대부분의 영웅은 몬스터 요격을 위해 이미 나갔겠지만, 혹시 모를 비상사태를 위해 최소한의 영웅들은 도시 내부에 있으니까.
빠르게 걸음을 옮기면서도 끊임없이 생각을 이었다.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다. 긴장한 나머지 온몸의 신경이 꽉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아, 진짜 실전이구나.
“조심해.”
“으, 응…?’
내 말을 듣자마자 당황한 듯 반문하는 김유진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기며 가방에 넣어둔 케이스에서 활을 꺼내 들었다. 갑작스레 무장을 시작한 나를 아이들이 당황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신유정의 시선이 나를 향한 순간이었다.
-쿠과광!
“키에에에에에엑!”
근처 건물의 벽이 박살남과 동시에, 그 내부에서 인간이 냈다고 믿기 힘든 괴성이 울려 퍼졌다. 신유정이 당황한 눈으로 그쪽을 바라보자, 이내 내부에 있던 마인이 모습을드러냈다.
“마인? 왜 여기에…?”
마인을 본 순간, 잠시 놀란 듯 중얼거린 신유정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입을 열어 생도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니, 당장 피해라! 어디로든 좋으니! 내가 시간을 끌겠다!”
그 말을 듣자마자 뿔뿔이 흩어져 다른 곳을 향하는 생도들을 가볍게 훑은 마인이 이내 움직이려는 듯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을 본 신유정이 전투태세에 접어들었다.
“시, 시아야…?”
“어, 튀자.”
옆에서 들려온 김유진의 불안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계 태세를 유지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와, 막상 마주치니까 진짜 빡세네. 좀 쫄린다. 애써 태연한 척 중얼거리며 거리를 벌렸다. 빠르게 달려 이도영이 위치한 근처까지 다가간 이후, 잠시 숨을 돌렸다.
‘그래도 일단 바로 나한테 달려들지는 않을 테니까.’
저 정도로 정신이 망가진 마인은 사실상 본능대로 행동하는 짐승이나 다를 바 없다. 즉, 본능적으로 가장 강한 것처럼 보이는 상대를 노린다는 거다. 그러므로 원작에서도 그랬듯이, 첫 번째 목표는 신유정이다.
“키에에에에엑!”
[조심해라!]
대치 상황도 잠시, 이내 마인이 괴성을 지르며 자리를 박찼다. 서 있던 자리에 발자국이 남을 정도로 강하게 발을 박찬 마인이, 이내 어마어마한 속도로 목표를 향해 달려들었다. 신유정이 아니라, 거리를 벌린 나를 향해.
‘어?’
시발, 잠깐만. 이게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