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인식(4)
“미친.”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마인의 모습을 보며 짧게 읊조렸다. 손에 쥔 활에 정신을 집중하고 바로 마나를 끌어 올렸다.
“피해라!”
“꺅!”
[궁술(A+)가 적용됩니다.]
[마나가 매우 부족합니다. 궁술(A+)가 궁술(B-)로 하향됩니다.]
스킬을 적용할 때마다 느껴진 익숙한 일체감과 동시에 마력 화살을 형성했다. 빈 활시위에 걸린 마력 화살이 한계까지 당겨진 활대의 장력을 받아 그대로 쏘아졌다.
-쐐애액!
어마어마한 기세를 타고 날아간 마력 화살이 마인의 머리에 직격했다. 아니, 한순간 그런 것처럼보였다.
-카가가가각!
일순간 마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어마어마한 마기가 방어막을 형성했다. 방어막에 직격한 마력 화살에서 끔찍한 파열음을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얼마 후, 끝내 방어막을 뚫지못한 화살이 허공에 녹아들듯 사라졌다.
‘역시 한 발로는 안 되나.’
시선을 흘깃 돌려 시스템 창을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깎여나간 마나량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 아무리 이도영이 옆에 있다고 해도, 이대로면 오래는 못 버틴다.
“감히 어딜!”
그 순간, 외침과 동시에 자리를 박찬 신유정이 마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꽉 쥔 주먹에 가득 맺힌 권기가 그대로 마인의 복부에 때려 박혔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타격이 얕았다.
“키에에에에엑!”
순식간에 모여든 마기가 권격의 충격을 1차로 흡수하고, 이미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변형된 육신이2차로 충격을 막아낸다.주먹에서 느껴진 물렁한 감촉에타격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음을 직감한 신유정이 인상을 구겼다.
“젠장.”
“키에에엑!”
마치 망치로 철판을 때린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내 신유정의 몸이 하늘을 날았다.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날아오는 일격을 막아낸 듯 신유정의 왼팔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니,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긴 개뿔.’
그냥버틸 수만 있는 수준이잖아. 솔직히 버티기도 힘들어 보이는데.원작에서 학생들이 아작이 난 이유가 뭔지 알겠다. 저걸 어떻게 이겨.
“키히익.”
웃음 섞인 괴음을 내뱉은 마인이 나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하, 귀찮은 날파리를 치웠으니 다시 상대해주겠다. 이건가. 그런데 진짜 상대가 쓰러졌는지는 제대로 확인해야지. 활시위에 다시 한 번 마력 화살을 메기며 마인의 어깨너머를 바라보았다.
-후우웅!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과 함께, 재차 마인을 향해 달려든 신유정의 발이 마인을 향해 휘둘러졌다. 방어막에 공격이 막히자마자 발에서 느껴진 반탄력을 이용해 거리를 벌린 신유정이 다시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이어지는 공격을 받아낸 방어막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오, 이거 되나? 감상을 흘린 순간, 마인이 몸을 돌려 유형화된 마기를 쏘아냈다. 허, 참. 어그로 제대로 끌렸네. 그럼 개꿀이지.
시위에 메겨진 화살을 마인을 향해 쏘아냈다. 포물선을 그리며 곡사로 쏘아진 화살이 이내 실금이 일어난 방어막에 직격했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내며 박살난 방어막 안으로, 정신을 차린 김유진이 펼쳐낸 마법이 뒤를 이었다. 흐음, 이거 꽤 괜찮은 연계기인 것 같은데.
“키에에엑!”
고통스러운 듯 괴성을 토해내는 마인에게서 시선을 뗀 뒤, 고개를 돌려 이도영을 바라보았다.혹시라도 방해될까 싸움에 참여하지 못하는 듯, 이도영은 분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아니, 새끼야. 보지만 말고 일해. 네가 키포인트라고.
“야, 너도 쏴.”
“…!”
당황한 듯 놀란 표정을 지은 이도영이 이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도영이 펼쳐낸 마법은 매직 미사일. 다른 이들의 화려한 공격에 대비되는초라한 마법에 이도영이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쏴.”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고개를 끄덕인 뒤 마법을 날렸다. 몇 초 후, 느릿느릿 날아간 매직 미사일이 마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마인은 하찮다는 듯 마기가 깃든 손으로 매직 미사일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이었다.
“캬아아아아아악!”
마인의 손에 일어난 마기가 녹아들 듯 사라지고, 맨손에 닿은 매직 미사일이 마인의 손을 바스러뜨렸다. 마치 불에 지져진 것처럼 흉측하게 일그러진 손을 보며 마인이 고통이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마인의 반응을 본 모두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나만 빼고.
뭐, 이도영은 마인 한정 카운터나 다름없으니까. 이 정도는 놀랍지도않다. 나중에 각성하고 나면 마인은 근처에 다가가기도 힘들 테니까.
[호오, 각성하지도 못했는데 이 정도인가.]
머릿속에 울린 헤르메스의 목소리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이거 잘하면 아무도 안 죽고 끝나겠다.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쿠드득
괴이한 소리와 함께 마인의 바스러진 손이 변형을 시작했다. 와, 미친. 징그러. 감상도 잠시, 이내 변형을 마친 마인의 팔이 신유정을 향해 휘둘러졌다.
“키에엑!”
“…크윽.”
방어는 했지만 역시 타격을 전부 흘리는 건 무리였던 모양인지, 신유정이 고통 섞인 신음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인을 향해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냈다. 옆에서 함께 마법을 시전하는 김유진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다시 매직 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이도영을 흘긋 바라보고 말했다.
“준비만 하고 지금 쏘지는 마. 넌 필살기니까.”
“아, 응!”
그나저나 나도 마나 얼마 안 남았는데. 곁눈질로 시스템을 확인하자, 1/4밖에 남지 않은 마나 수치가 눈에 들어왔다. 와, 미친.
‘터보 모드 아니었으면 진작에 오링났겠네.’
이도영이 마기로 권능을 자극받은 덕에 평소보다 마나 회복량이 늘어난 상태가 아니었으면, 쪽도 못 쓰고 당할 뻔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간이었다.
마인의 맹공을 받은 신유정이 다시 하늘을 날았다.
“미치겠네.”
아니, 저 새끼는 지치지도 않나. 무슨 에너자이저냐고. 진짜 안심할 틈이 없네.
짜증 섞인독백을 내뱉자마자, 확인사살을 하려는 듯 마인이 땅을 박차고 널브러져 있는 신유정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래. 아까 경험에서 배웠다 이거냐? 진짜 돌겠네.
“쏴!”
내가 외치기 무섭게 이도영이 마인을 향해 매직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리고 나와 김유진의 공격이 마인의 발을 묶은 사이, 매직 미사일이 마인의 근처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직격 직전.
“키에엑!”
괴성을 내지른 마인이 매직 미사일을 피해 하늘로 뛰어올랐다. 허공에서 유영하듯 자세를 잡은 마인이 이도영을 향해 팔을 겨눴다. 순식간에 팔이 마치 대포처럼 모습을 바꾸고, 이내 포신의 형태를 띤 팔에 어마어마한 마기가 집약되었다.
‘아니, 이거 어째 장르가 바뀐 거 같은데?’
얼빠진 독백도 잠시, 이내 마인의 팔에 맺힌 마기가 일섬을 그렸다. 일직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마기에 맞서기 위해 화살을 쏘아냈다.그 순간이었다.
[마나가 부족합니다. 궁술(B-)가 제한됩니다.]
‘좆됐다.’
쏘아낸 화살에 깃든 마나가 급격하게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쏘아진 화살은 이내 허무하게 광선에 잡아먹혔다. 내 화살을 잡아먹고도 전혀 기세를 잃지 않은 광선이 이도영을 향해 날아들었다.그 광선을 보자마자 김유진이 다급하게 친 방어막이 순식간에 깨져나갔다.
아, 잠깐만. 이거 맞으면 진짜 죽는다. 주인공이고 뭐고, 진짜 죽는다고. 다행히도 스킬만 제한됐을 뿐이지, 여전히 흡수하고 있는 마나 덕에 시스템 자체는 작동하는 듯 몸은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그걸 깨닫자마자 멍하니 서있는 이도영을 옆으로 밀쳤다.
콰아앙!
이도영의 몸이 순식간에 떠밀려 피격지점을 벗어나고, 이내 내 팔을 아슬아슬하게 빗겨서 지나간 광선이 바닥에 때려 박혔다. 그리고 밀려온 충격파에 의해 내 몸이 반대쪽으로 튕겨 나갔다.
“아으윽….”
존나 아파. 그보다 까딱하면팔 날아갈 뻔했네. 외팔이는 진짜 에반데.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키에에에에엑!”
허공으로 뛰어오른 마인을 따라 날아간 매직 미사일이 마인의 몸에 직격했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마인이 허공에서 추락했다. 털썩. 바닥에 떨어진 마인이 다시 몸을 변형시키기시작했다. 끈질긴 생명력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진 순간이었다.
“뭐야, 벌써 다 죽어가잖아?”
태평한 목소리와 함께, 마인을 향해 하늘에서 무수한 마법이 쏟아졌다.
‘아, 이제야 왔네.’
마법을 모조리 처맞은 마인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다시 바닥에 널브러졌다. 완전히 무력화된 마인을 향해 속박 마법을 펼친 상대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와, 설마 이 마인을 이 인원으로 상대했다고?”
그것도 생도들이? 대단하네. 나직이 튀어나온말을 듣고 그제야 긴장이 풀려 숨을 들이마셨다.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커헉…!”
마치 폐를 태우는 듯한 고통. 어마어마한 고통에 마치 뇌가 망가질 것만 같았다. 도저히 숨을 쉴 수 없는 괴로움에 표정이 절로 찌푸려졌다. 괴로움에 못 이겨 숨을 컥컥대자, 김유진이 놀란 표정으로 내 이름을외쳤다.
“시아야!”
“…!”
도저히 대답을 뱉을 수 없는 괴로움에 고개를 돌린 채 연신 기침을 내뱉었다. 내 모습을 본 이도영이 다급히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괜찮아?”
근처에 다가온 이도영이 내게 손을 얹으며 당황과 걱정이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순간, 고통스럽던 공기가 사라지고, 시원한 청량감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며칠간 갈증에 시달린 사람이 물을 마셨을 때 느끼는 쾌감이 이러할까? 순식간에 뒤바뀐 감각에, 제대로 사고를 이어갈 수 없었다. 본능에 몸을 맡기고 이도영의 품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시, 시아야?”
귓가에 들려온 당황스러운 목소리는 이내 느껴진 어마어마한 쾌감에 묻혀 사라졌다. 뒤로 향하려는 이도영의 몸을 팔로 단단히 끌어안은 채, 정신없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한참 후,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온 순간이었다.
“이야, 열렬하네.”
뻣뻣한 움직임으로 이도영의 품에서 머리를 뗀 후 고개를 돌리자,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는 영웅의 얼굴이 보였다. 아니, 잠깐만.
“뭐, 한창때인 건 좋지만, 이젠 조금 진정해주지 않을래?”
나와 이도영을 번갈아 응시한 영웅이 농담하듯,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
왜 맨날 이따위지. 밀려오는 스트레스가 너덜너덜해진 정신에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몸에서 힘이 빠지고 균형을 잃은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점점 흐려지는 시야에, 가까워지는 이도영의 품이 들어왔다.
아니, 잠깐만. 이건아니지.
그 생각을 끝으로 결국 정신을 잃었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