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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화 〉인식(5) (56/167)



〈 56화 〉인식(5)

쓰러지는 유시아의 몸을 얼떨결에 자신의 품에 받아낸 이도영이 이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시, 시아야?”

가까이 다가온 순간 유시아의 몸에서 훅 풍겨온 체향에 이도영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음에도, 유시아에게서는 땀 냄새는커녕 싱그러운 과일 향 비슷한 향기가 났다.

“흐음.”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유시아의 몸을 떼어내는 이도영을 바라본 영웅이 짧게 콧소리를 내뱉었다. 수치심도 잠시, 이내 기절한 유시아에 대한 걱정이 밀려온 이도영이 고개를 돌려 영웅을 바라보았다.  꽤나 간절한 시선을 받은 영웅이 이내 손을 내밀었다. 검지를 유시아의 이마 한가운데 가져다 댄 영웅이 이내 마법을 시전했다..

-파아앗

영웅의 손가락 끝에서 짧게 빛이 점멸하고, 유시아의 정수리 위에 푸른 고리가 생겨났다. 푸른 고리는 신체 부위에 맞춰 크기를 조절하면서 서서히 내려가 유시아의 몸을 스캔했다. 얼마 뒤 스캔이 끝나고, 음음하고 짧게 소리를 낸 영웅이 이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그냥 약한 마기 중독이니까.”

“마기 중독이요?”

걱정하지 말라고 하기엔 너무 흉흉한 이름 아니냐는 듯한 표정으로 김유진과 이도영이 영웅을 바라보았다.  시선에 담긴 감정을 느낀 영웅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진짜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 이 정도는 위험한 수준은 아니야.”

뭐, 아까는 조금 반응이 격렬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체질적으로 마기랑 극성인 모양이네.

영웅의 말을 들은 후에야 안심했다는 듯, 김유진과 이도영의 표정이 약간 풀렸다.  풋풋한 모습을  영웅이   더 미소를 지은 뒤 이도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아주 서로 지극정성인데, 역시 사귀는 사이인가?”

“…아뇨.”

그 질문을 들은 이도영이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가, 유시아와 자신을 번갈아 보는 영웅의 시선에 짧게 대답을 마쳤다. 그 미묘한 반응에 숨겨진 감정을 알아챈 영웅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흐음, 대충 무슨 사이인지는 감이 오는데.”

콧소리를 내며 짓궂은 미소를 띤 영웅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담긴 웃음기를 눈치챈 이도영이 다시 얼굴을 붉혔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쓰러진 신유정에게 생각이 미친 듯, 김유진이 작은 목소리로 영웅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교관님은 어떻게….”

“아, 그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응급처치는 해뒀으니까.”

그 말을 듣고 둘이 고개를 돌리자, 푸른 장막에 휩싸인 채 허공에 떠 있는 신유정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완전히 긴장이 풀렸는지, 김유진이 힘이 빠진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중얼거렸다.

“다행이다아….”

그 모습을 보고서 긴장이 풀린 이도영도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얼마 후, 모습을 드러낸 구급요원들이 유시아와 신유정을 병원으로 이송하기 시작했다.

“뭐, 이제 내 일은 끝난 모양이네.”

구급차에 신유정의 몸이 실린 것을 확인한 영웅이 입을 열었다. 그 중얼거림에 이도영이 시선을 향하자, 다시 미소를 지은 영웅이 이도영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 동작을 본 이도영이 영웅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이내 영웅이 이도영에게 몇 마디를 속삭였다.

*


‘무거워.’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던 도중, 문득 그러한 감각이 느껴졌다. 무언가가 나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 그리고  감각을 자각한 순간, 더욱 강한 압박감이 자신을 짓누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바위에 깔린 듯, 압도적인 중량에 짓밟히는 감각. 갑작스럽게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영혼이 서서히 갈려 나가는 듯한 끔찍한 감각이었다. '자신'이라는 존재가 분해되는 듯한,  공허한 감각에 점점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늪에 빠진 이가 완전히 침잠하듯, 정신을 잃으려던 순간이었다.

[정신 차리거라.]

“…아.”

머릿속에 헤르메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감겨 있던 눈이 순식간에 뜨였다. 갑작스레 열린 시야로 환한 빛이 쏘아졌다. 순식간에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가지각색의 정보에 멍하게 쉬고 있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여긴.

“병원…?”

시야를 가득 채운 흰 색의 가구. 상쾌한 공기 속에서 약하게 느껴지는 소독약 냄새.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는 것을 알려주듯, 사관학교의 교복이 대충 걸려있는 근처의 의자. 내부를  번 쭉 훑은 뒤 고개를 밑으로 굽히자,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에서 환자복 특유의 무늬가 보였다. 아, 병원 맞네.

‘왜 병원이래.’

딱히 입원할 정도로 크게 다치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기절은 왜 했더라?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기절하기 직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머리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도영한테 코를 박았다가, 또 거지 같은 오해를 샀던….

“아, 미친.”

 같네. 완전히 떠오른 기억에 표정을 구기기도 잠시, 이내 의문이 하나둘 머릿속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기절하기 전에 그 고통은 뭐였지. 진짜 죽을 것 같았는데.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마인의 팔에서 뿜어졌던 광선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걸 팔이라고 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역시 그게 원인이겠지.’

아무래도 쏘아졌던 그 빔이 폭발하면서 흩어진 마기를 들이마신 탓이 아닐까. 평상시 오염된 공기만으로도 그렇게 힘든데, 마기에 노출됐으면 그 정도로 아플 만도 하지.

‘어, 근데 그러면 나 마인이랑  싸우나.’

이건 또 곤란한데. 아니, 뭐. 어차피 이도영 각성하고 나면 자퇴하고 백수 라이프를 살 거라지만, 문제는 이도영이 각성할 때  번 더 마인을 마주쳐야 한다는 점이다. 알아서 각성하라고 내버려 두기에는, 각성하자마자 엘릭서를 먹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서 말이지.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무책임하게 고민을 끝낸 뒤 침대에 몸을  뉘었다. 시트가 몸을 푹신하게 감싸 안았다. 아니, 솔직히 고민한다고 딱히 바뀌는  없잖아. 이번 전투에서도 끝나기 직전까지는 마기를 들이마신 적도 없고. 마침 무기도 활이니까 나는 그냥 견제만 하면 되겠지, 뭐. 고민 끝. 생각을 마치고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그 느낌은 뭐였지.’

머릿속에서  감각을 되새기자, 이내 방금 느꼈던 불쾌한 감각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다시 그려졌다. 마치 내 정신이 무언가에 짓눌려 갈리는 듯한 소름 끼치는 감각. 원인을 알 수 없기에 더욱 불쾌한 감각이었다. 머릿속에서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감각에 무의식적으로 헤르메스의 이름을 불렀다.

“헤르메스.”

[그래.]

그런데 이걸 뭐라고 물어봐야 하는 거지. 고민도 잠시, 병실 내부에 감도는 침묵이 불편해 일단 입을 열려는 찰나, 헤르메스가 선수를 쳐서 말을 건네왔다.

[그 힘은 더는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힘? 뭔 소리야?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내게 유일하게 힘이라고 할만한, 시스템에 생각이 닿았다. 아니, 시스템을 쓰지 말라고?

‘에반데.’

그걸 안 쓰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냐. 그렇게 생각한 순간, 헤르메스가 말을 이었다.

[아예 사용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오늘처럼 한계를 넘어서 사용하지 말란 뜻이지.]

한계를 넘어? 의문도 잠시, 이내 전투 막바지, 이도영을 밀칠 때의 상황이 다시 떠올랐다. 마나가 전부 소모되어서 스킬이 제한됐을 때, 그것과는 상관없다는 듯 멀쩡히 움직인 몸. 시스템의 능력치 적용은 별개인 줄 알고 넘겼는데, 만일 그게 아니었다면?

[영혼이 육신이 품고 있는 힘을 감당하지 못하니, 봉인에서 허용된 수준 이상의 힘을 과도하게 발휘한다면 결국 영혼이 붕괴하게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연결된 통로를 통해 도울 수 있었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으니.]

뒤이은 헤르메스의 말이 내 추측이 옳았음을 증명하듯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러니까 내가 영혼이 망가질 뻔했다고?

영혼이 망가진 존재가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이성을 상실했던 마인이 그 예시니까. 악마와의 계약으로 얻은 과한 권능을 남용하다, 영혼이 침식당해버린 괴물. 까딱하면 걔처럼 될 뻔했다, 이거지? 와.

‘진짜 좆될 뻔했네.’

순식간에 팔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필사적으로 정신을 진정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조금 전 감각이 영혼이 힘에 침식당하는 감각이었다는 건가. 원작 이도영은 그 감각을 매일 느꼈다, 이거지? 엄청나네, 진짜.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잠시, 이내 헤르메스의 말에서 한 단어를 캐치했다.

“봉인?”

시스템이 봉인이라고? 고개를 갸웃하면서 중얼거렸음에도, 헤르메스는 할 말을 마쳤다는 듯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새끼 요즘 말 안 거네. 무슨 일 있나?

의문도 잠시, 이내 갑작스럽게 문밖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발걸음 소리에 신경을 돌렸다. 음, 누가 오는  같은데. 시선을 문으로 향하자, 이내 문이 열리고 발걸음 소리의 주인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 일어났네.”

이도영이었다. 엥.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의문 섞인 시선으로 이도영을 바라보자 이도영이 머쓱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언제 깨어날지 기다리고 있었지.”

의사 선생님이 별다른 이상은 없으니 곧 깨어날 거라고 하셨거든.

이도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굳이, 새삼스럽게. 그런  반응을 본 이도영이 볼을 긁적이더니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이내 이도영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다른 용무도 있고.”

다른 용무? 뭔데?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자 이도영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에 순간 당황이 밀려왔다. 뭐야, 왜 이리 진지해?  부탁하려고.

그런 내 반응을 본 이도영이 이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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