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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화 〉오해(1) (57/167)



〈 57화 〉오해(1)

의문 섞인 표정으로 이도영을 바라보는 내게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하지만. 구해줘서 고마워.”

어째서인지 무언가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마친 이도영이 잠시 숨을 들이마셨다.

응? 지금 그거 말하려고 분위기 잡은 거냐? 고맙다는 말은 아까 이미 말했잖아.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도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궁금할까 봐 말하지만, 교관님은 건강에 이상은 없으시대.”

아, 그래.  양반이야 원작에서도 죽지는 않았으니까, 뭐. 그러고 보니 이번엔 사상자 없겠네? 오, 원작보단 나아진 건가. 생각을 끝낸 뒤, 고개를 끄덕여 반응하자 이도영이 이내 뒤에 몇 마디를 더했다.

“건강에 큰 이상은 없으시지만, 그래도 회복하시느라 며칠은 쉬셔야 할 것 같다고 하셔.”

만신창이가 됐는데 며칠밖에  쉰다는   놀라운데. 사관학교 교관직 너무 블랙인  아니냐? 뭐, 회복 자체는 육체 계열 영웅인 데다가 병원에서 특급 케어까지 들어갈 테니, 금방 안 끝난다면 이상하겠지만.

시시한 잡생각에 빠져있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의 말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우리 학급도, 오늘 있었던 사고 때문에 며칠 쉬게 될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

오, 이건 개꿀인데. 아니, 개꿀은 아니지. 그러면 며칠 간은 얘 만나기 힘들어지잖아. 으음, 그래도 방 안에서 안 나오면 별 상관은 없으려나.

고민을 마치고 이도영을 바라보자 이도영은 어째서인지 더욱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얘는 아까부터 얼굴이 왜 이래?

“그런데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응…?”

지 표정이 구겨져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는지,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내게 의문 섞인 눈길을 보냈다. 그 시선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되게 불편한 표정이던데.”

뭐, 진짜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러고 보니 오늘 좀 이상하던데. 요즘 따박따박 인사도 하더니만, 오늘은 어째 갑자기 거리를 자꾸 벌리더라? 어이가 없어 눈을 가늘게 뜨고 이도영을 바라보자, 이도영이 입을 열지 말지 고민하는 듯,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니, 진짜 사람 답답하게 하네. 좀 쿨하게 말하라고.

대답을 독촉하듯 시선을 이도영의 얼굴에 고정해 빤히 바라보자, 얼마 후 이도영이 못 이기겠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뭔데. 빨리 말하라고. 그런 표정을 짓자 이내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그…마인의 마지막 공격에서  구해줬을 때. 왜 그랬어?”

뭘?  소리야? 질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진짜 뭔 개소리지?

“…왜 구해줬냐고 묻는 거야?”

내 질문을 들은 이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구해줬는데 왜 구해줬냐고 질문을 들을 줄은 예상 못 했는데. 어이가 없다는 내 표정을 본 이도영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마인이 나한테 공격을 날렸을 때, 날 밀쳐줬잖아.  덕에 공격을 피할  있었고.”

그래, 그랬지. 고개를 끄덕인 나를 바라본 이도영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했다.

“그때, 잘못하면 네가 대신 공격당할 뻔했어.”

그렇긴 하지. 아, 설마 그래서 죽상인 거야?  참. 안 맞았으면 됐지. 왜 그러냐?

뭐, 그리고 맞아봤자 팔 한 짝인데. 팔 하나 날아가는 건 좀 그렇긴 하지만 주인공이 죽어서 세계 멸망 루트 타는 것보단 낫지. 아니, 솔직히 좀 많이 에바긴 하지만.

다시 다른 곳으로 향하기 시작한 생각을 멈춘 뒤, 이도영을 바라보자 이내 이도영이 우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다른 직업도 아니고, 넌 궁사잖아.”

응? 그게 뭔 상관이냐? 궁사면 그러면 안 된대? 고민도 잠시, 이내 머릿속에 해답이 떠올랐다.

아, 그러네. 궁사는 팔이 하나라도 날아가면 아예 활을 못 쏘지? 뭐, 다른 직업이라고 해서 팔이 날아가도 괜찮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검사나 마법사 같은 직종에 비하면 궁사는 팔이 날아갔을 때의 재활이 불가능이나 다름없으니까. 아, 뭐….  그러는지 이제야 알겠네.

그래. 대충 왜 그러는지는 알겠는데….

아니 진짜 무슨 개복치도 아니고. 자꾸 애가 멘탈이 나가네. 원작에선 이런 유리멘탈 아니었잖아.

치밀어 오른 답답함에 작게 한숨을 내쉰 뒤, 나를 바라보는 이도영에게 입을 열어 대답했다.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말라고?”

축 처진 목소리로 되물어오는 이도영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니, 솔직히 내가 다치는 거 무섭다고 남 죽는 거 내버려두는 놈이 영웅 지망생인 건 꼴이 우습지 않냐? 물론 내가 딱히 열렬한 영웅 지망생은 아니고, 오히려 예비 자퇴생이긴 한데. 아무튼간에.

그 말을 적절히 순화해서 전해주자 이도영이 할 말이 없다는 듯이 입을 꾹 닫았다. 논파 끝. 깔끔하네.

그렇게 생각하며 결정타 한 마디를 더했다.

“뭐, 영 찝찝하면 나중에 갚던가.”

그때는 내가 사관학교에 없겠지만. 보물외상 같은 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이도영을 바라본 순간, 이도영의 표정이 변했다. 어, 뭐야. 뭔가 잘못 말했나?

“…나중에 갚으라고?”

“그래. 나중에 갚으면 되지.”

“어떻게?”

음? 어라, 내가 예상한 건 이 반응이 아닌데? 얘 갑자기 왜 이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마자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넌 사관학교에 남아 있을 생각 없잖아.”

어, 뭐라고?

순간 당황스러움에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그렇긴 한데. 맞긴 한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냐?’

내가 사관학교 탈주 각을 잡긴 했는데, 그걸 내가 얘한테 밝힌 적은 없는데? 뭐냐, 어떻게 알아낸 거냐? 내가 자퇴 계획을 밝힌 상대는 어제 박휘성이 끝인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 얼마  교무실에서 있었던 일이 박휘성과 대화를 나누었던 상황과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아, 설마 또 그때처럼 엿들은 거냐?

‘…이 새끼, 사실 공기청정기가 아니라 도청기였나?’

아니, 그것까지 들은 거야? 미치겠네. 잠깐만, 그러면 이 새끼. 박휘성이 나한테 고백한 것까지 들었겠네? 아, 이건 좀. 진짜 에반데.

갑작스레 깨달은 사실에 표정이  구겨졌다. 수치심으로 피가 쏠리기 시작한 얼굴을 숨기려 고개를 숙였다. 그런 내 반응을 본 이도영이 미안하다는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엿들은  미안해.”

미안하면 새끼야, 미안할 짓을 하면 안 되지. 네가 그러고도 주인공이냐?

그렇게 속으로 욕설을 내뱉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걸 듣고 나서 의문이 들더라. 왜 네가 지금 자퇴를 하려고 하는지.”

내가 자퇴하는 게 뭔 상관이라고? 어차피 각성하고 나면 말해줄 생각이었는데. 김유진한테도 마찬가지고.

생각도 잠시, 이내 그렇게 말한 이도영이 갑작스럽게 말을 멈췄다. 미묘한 침묵에 숙인 고개를 살짝 들어 시선을 위로 향하자,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도영과 눈이 마주쳤다.

 뭔데 갑자기 이러냐? 아니, 좀 부담스러운데.

그 강한 시선에 불편한 기분이 들어 다시 고개를 돌리자, 이내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문득 얼마 전에 네가 한 말이 생각나더라고.”

한 달이면 내 재능을 알 수 있을 거라는 말이.

이도영의 말을 듣자마자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아니, 잠깐만. 여기서 이걸 엮는다고? 아니, 맞긴 한데. 그렇긴 한데…. 이걸  들켰네? 이런 미친.

내 반응을  이도영이 확신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젠 빼박이네. 진짜 빼도 박도 못한다. 할 말이 없네요. 젠장.

“오늘 마인을 상대하면서 깨달았어. 나도 내 마법이 마인한테 그렇게 효과적일 거라고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너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더라.”

그렇지?

그렇게 물어올 이도영에게 뭐라 대답할 말이 없어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너무 아는 척했나. 그냥 수상하다고 광고를 하고 다녔네, 젠장. 고개를 끄덕인 뒤, 침묵하는 나를 보며 이도영이 확인사살을 하듯 물었다.

“네가 말한 내 재능이라는 게, 그게 맞지?”

“그게 맞긴 한데….”

일단 맞긴 한데, 조금 다르거든? 아직 각성  했거든?  미묘한 대답을 들은 이도영이 입을 닫았다. 한동안 방 안에 어색한 침묵이 맴돌고, 얼마 뒤,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도…대답 안 해줄 거지?”

아니, 그걸 밝히기엔 내가 조금 말해야 하는 사실이 많거든. 이걸 진짜 까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에 빠진 순간, 이도영이 내 얼굴을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어.”

아니,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저기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침울한 표정을 지은 이도영이 이내 나를 바라보더니 한  더 질문을 던졌다.

“곧 자퇴할 거야?”

아, 이건  뭐라 답해야 하냐. 진짜 머리가 아프다.

밀려오는 두통에 눈살을 찌푸렸다. 내 표정을 본 이도영은 이내 혼자 결론을 내린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축 처진 목소리로 짤막하게 말한 이도영이 이내 몸을 일으켰다. 아니, 가려고?  분위기에서? 미치겠네. 그렇다고 가지 말라고 하기엔, 뭐라고 말하기도 어색한데. 입을 열지도 닫지도 못한 채, 쩔쩔매는 나를 바라보며 이도영이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건넸다.

“오늘 구해줘서 고마워.”

아까 들었던 말이면서도 분위기가 전혀 다른 말이었다. 그렇게 감사 인사를 전한 이도영은 이내 병실을 나섰다. 혼자 남은 병실 안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아니, 그나저나 이거 어떻게 해야 하냐?

“미치겠네.”

이 정도면 진짜 어딜 봐도 최소 흑막이잖아. 그냥 수상한 기색을 펄펄 풍기고 다녔네, 내가.

“아, 시발.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각성만 끝나면 진짜 튈 거야. 내가 튀고 나면 어떻게든 지들끼리 알아서 잘하겠지. 난 몰라. 모르겠다고. 이제 내  바 아니야. 정신승리를 마친 뒤, 베개에 머리를 뉘었다.

“인생….”

진짜 되는 거 하나도 없네. 거지 같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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