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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화 〉오해(2) (58/167)



〈 58화 〉오해(2)

이도영이 자리를 비우고 얼마 후, 누군가 내 병실 문을 작게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노크 소리를 향해 짧게 대답을 내뱉었다. 그러자 이내 의사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꽤 피로한 모양인지, 짙은 다크서클이 인상적이었다. 터벅터벅 걸어와 내 앞에  의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몸이야 편하지. 정신적으로는  피곤하지만. 고개를 끄덕여 질문에 답하자 이내 의사가 설명을 시작했다. 기절한 이유는 단순 탈진이지만, 마기 중독 증세 탓에 내일까지는 입원하면서 상태를 봐야 한다나? 혹시라도 다른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한다.

‘딱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속으로 태클을 삼키고 알겠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반응을 본 의사가 몇 마디를 더했다. 병원비는 이미 다른 이가 수납했으니 따로 낼 필요는 없고, 식사는 간호사가 가져다줄 테니 굳이 움직일 필요도 없다나 뭐라나.

‘병원비는 누가 낸 거래?’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 대충 넘겼다. 뭐, 사관학교에서 내줬겠지. 수업 중에 다친 건데. 근데 여기도 학교 안전공제가 있나?

*

다음 날, 휴대폰을 켜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자 몬스터 대탈출과 관련된 기사가 어마어마하게 올라와 있었다. 뭐, 화제성이 어마어마하긴 하지. 지금까지 소수의 몬스터가 탈출한 적은 있어도,  정도로 거대한 몬스터 웨이브는 처음이었을 테니까.

그래도 원작에서는 몬스터 웨이브보다 사관학교 생도들의 피해가 더 주목받았다고 했었는데, 이번엔 사망자 하나 없이 마인을 물리친 덕분인지 그 정도로 화제가 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대충 생각을 마치고 다시 헤드라인을 훑어보던 도중, 한 기사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영웅 사관학교 신입생, 체험학습 도중 마인에게 습격.]

“오.”

화제성이 밀린다고는 해도 기사가 있긴 있네. 아니, 생각보다 많다. 몬스터 대탈출도 대탈출이지만, 사관학교 생도들이 습격당했다는 사건도 조회수 뽑아먹기는 충분하니까. 심지어 그 대상이 마인이라면 더더욱.

손가락으로 화면을 눌러 기사를 클릭했다. 순식간에 로딩이 끝나고 이내 기사 내용이 휴대폰 화면에 표시되었다. 스크롤을 내리며 기사를 빠르게 읽어나갔다. 기사를 전부 읽은 뒤, 짧게 숨을 내뱉었다.

“허, 이거 참.”

무슨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어 놨네. 아니, 사관학교 생도면 예비 영웅이 맞긴 하고, 내가 자퇴할 예정이란 건 두  밖에 모르니까. 아무리 그래도 금칠도 적당히 해야지. 뭔, 마인을 상대로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용감히 맞섰다느니, 덕분에 인명 피해가 나는 걸 막을 수 있었다느니. 낯 뜨거울 정도로 호의적인 논조로 작성된 기사에 얼굴이 괜히 뜨거워지는  같았다.

뭐, 이렇게 노골적으로 칭찬하는 이유는 뻔하지만.

‘김유진 때문이겠지.’

정확히는 김유진 아버지의 영향일 것이다. 한국에서 제일 뛰어난 마법사, 그리고 대마법사라는 칭호는 가벼운 게 아니니까. 생각을 마친 뒤,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기자 이내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더 눈에 들어왔다.

[사관학교 생도들을 습격한 마인의 정체는?]

오, 이거 좀 재밌어 보이네. 다시 손가락을 놀려 기사 제목을 클릭한 순간이었다.

-똑똑

“시아야, 나야.”

병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와 함께 김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휴대폰을 선반 위에 올려둔 뒤 들어오라고 말하자, 이내 병실 문을열고 들어온 김유진이 의자에 앉았다. 가만히 김유진을 바라보고 있자, 나를  김유진이 입을 열었다.

“갑자기 쓰러지길래 얼마나 걱정했는데.”

나도 내가 갑자기 쓰러질 줄은 몰랐지. 머쓱한 얼굴로 볼을 긁적이자 김유진이 다행이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고, 이내 김유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퇴원은 언제쯤 할 수 있대?”

“아마 오늘 하게   같은데.”

어차피 별 이상도 없는 거, 혹시나 해서 하루 정도 머무르면서 경과를 본 거니까. 오늘 퇴원한다고 하면 보내줄 거다.  대답을 들은 김유진이 한 번 더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며칠간 학교를 쉰다는데, 알고 있었어?”

“그래. 들었어.”

이도영이 말해주고 갔으니까. 내 말을 들은 김유진이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이내 선반으로 시선을 옮겼다. 선반에는 이도영이벗어두고 간 외투가 올려져 있었다. 저거, 의자에 계속 걸어두긴 그래서 개어둔 건데. 확인을 마치고 다시 고개를 돌린 김유진이 이내 입을 열었다.

“도영이, 왔었구나?”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하자 김유진이 그럴 줄 알았다며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 쓰러졌을 때, 도영이가 엄청 걱정하더라.”

“그래?”

뭐, 일어날 때까지 기다린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근데 태도는 왜 그랬대? 이해가 안 가네. 고개를 갸웃하며 내가 생각에빠진 동안, 김유진이 시선을 돌리다가 선반에 올려둔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

화면 켜져 있었네. 뉴스 제목을 읽은 김유진이 짧게 신음성을 내뱉었다. 음? 뭐, 왜. 무슨 문제 있나?

휴대폰을 가져와 빠르게 글을 읽어내리고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별 얘기 없는데? 길드가 마인을 포획해 뒀는데, 몬스터 웨이브를 틈타 탈출했다는 말이잖아. 아, 잠깐만.

‘생각해보니까 마인을 왜 포획해.’

원작에서는 그냥 사고의 영향으로 길드가 망했다고만 나와서 대충 넘어갔는데, 생각해보니 마인은 보통 즉시 사살이 원칙. 이번처럼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포획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니라면 굳이 마인을 잡아둘 이유가 없다. 그렇다는 건….

‘마인 가지고 뭐라도 하려고 했다, 이거지.’

그리고 딱히 생각나는 건, 전부 그리 좋은 목적은 아니네. 표정을 굳히고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 나를 본 김유진이 이내 말을 이었다.

“그…걱정할 필요 없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하자, 정작 걱정하지 말라던 본인은 걱정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이건 또 뭔 반응이야? 물음표를 얼굴에 단 내게 김유진이 싸늘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 길드,  망할 테니까.”

‘엥.’

뭐지, 이 급발진. 당황한 표정을 지은 내게 김유진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니, 그…그렇게 말해 놓고 웃으면 조금 무섭거든.

‘하기야  망하는  이상하긴 하네.’

하마터면 김유진이 휘말릴 뻔했으니까. 생각해보면 얘 진짜 금수저였지. 살짝 다른 시선으로김유진을 바라보았다.

“으음…아무튼 별 이상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시선을 받자마자 애써 화제를 바꾸려는 듯, 김유진이티 나게 말을 돌렸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김유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

“그럼 이만 갈게, 시아야. 학교에서 봐!”

“그래.  가라.”

인사를 건넨 김유진이 이내 자리를 비우고, 다시 혼자가  병실에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얼마 후, 설명을 마친 의사가 이내 자리를 비웠다. 다시 텅 빈 병실 안에서 혼자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이거 참, 아무래도.

‘좀 꼬였지?’

솔직히  꼬인 정도가 아니라, 아주 대차게 꼬여버렸다. 단순히 초반에 잠깐 등장하는 조력자 포지션 정도만 잡으려고 했는데, 얼떨결에 수상한 플래그를너무 밟아버린 모양이었다.

‘이래서야 꼼짝없이 흑막이잖아.’

어제, 이도영이 보인 반응을 다시떠올리고 표정을 찌푸렸다. 쯧, 솔직히 내가 봐도내가 수상하긴 해.

‘그래도 짜증 나는  어쩔 수 없지만.’

솔직히 구해줬는데 그런 태도는  아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김유진이 전해준 말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너 쓰러졌을 때, 도영이가 엄청 걱정하더라.”

‘어쩌라고.’

그게 걱정했다는 놈 반응인가. 짜증도 잠시, 이상하게 축 처져 있던 이도영의 떠올라 찌푸려진 표정을 풀었다. 그래도 걱정하긴 한 것 같은데. 태도는 좀 그랬지만, 신경 써줬는지 옷은 벗어두고 갔고. 아니, 그런데 내가 이런 걸 왜 고민하고 있지. 잠시 상념에 잠겼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거….’

어차피 각성만 끝내면 자퇴할 예정이라, 최대한 머릿속으로 정 안 주려고 했는데, 어째 이미 조금 정이 붙어버린 모양이었다. 김유진도 그렇고, 이도영도 그렇고. 박휘성? 걔는 별 상관없고. 뭐,  불쌍하긴 하지만.

“아니, 모르겠다.”

정이 들었건 아니건, 어차피  헤어질 애들인데. 신경 그만 써야지. 억지로 결론을 내리고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인터넷을 끄고 메인 화면으로 향하자, 문자 메시지 알림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콘을 터치해 메시지 함으로 들어가자 어제 송신된 메시지가 하나 보였다. 발신인은 이도영이었다.

[오늘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

“나 참.”

이거 하나 보낸 거야? 어이가 없네. 사과문은 육하원칙에 맞춰서 쓰라고. 태클도 잠시, 이내 문자를 보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이 새끼 성격 보면 소심해서 이것도 고민하다가 겨우 보냈겠지. 손가락을 놀려 적당히 답장을 전송했다.

[ㄱㅊ 앞으론 그러지 마라]

아, 그래도 이건 말해 둬야지, 미친놈.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이도영을 향해 문자를 한 장  보냈다.

[그리고 담부턴 대화 엿듣지 말고]

한참 뒤, 그제야 메시지를 확인한 듯 이도영이 내게 답신을 보내왔다.

[응. 미안해.]

그래서 알겠다는 거야, 모르겠다는 거야. 아, 뭐. 알아들었겠지. 대충 생각을 마치고핸드폰을 선반에 올려둔 뒤, 몸을 일으켰다.


뭐, 두고 간 옷도 약빨이 다했는지 공기도 슬슬 나빠지는 것 같은데, 이제 퇴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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