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오해(5)
“그러니까 내가 마인 때문에 너랑 친해진 거라고 생각했다고?”
방과 후, 이도영에게 찾아가 다시 추궁을 시작하자, 이내 이도영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 설명을 전부 듣고 난 뒤, 어이가 없어 무심코 반문했다.
“…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영의 모습에 벙찐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런데 이거 헛소리긴 한데 되게 설득력 있네.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도 맞고, 이도영 각성 후에는 볼 일 없는 것도 맞으니까.
‘근데 이게 이렇게 될 수가 있구나.’
어느새 이도영 머릿속의 내 이미지는 마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사관학교에 입학한 근성가이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물론 남자는 아니지만, 아무튼. 아니, 뭐. 진짜 이유는 설명하기도 힘드니까 이런 착각으로 넘길 수 있으면 좋기는 한데. 내가 알지도 못한 사이 그런 사연이 생겨버렸단 건 정말 놀랍네.
‘뭐, 그러면 얘가 왜 이러는지는 알겠다.’
친구인 줄 알았던 놈이 사실 다른 목적이 있어서 일부러 친해졌던 거라면 배신감 느낄 만하지. 뭐, 내가 딱히 손해를 끼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런 거니까. 굳이 손해라고 하면 히로인 플래그를 몇 개 꺾긴 했는데, 그건 알지도 못할 테니 제외하고. 아니, 애초에 주인공이란 놈이 여색에 빠지면 안 되는게 맞지. 나는 잘못한 거 없다.
뭐, 그건 됐고 아무튼 어떻게 대처할지는 결정했다. 결국 얘가 이러는 건 내가 자기랑 친해진 게, 의도적이었다는 게 문제잖아?
생각을 마치고 다시 이도영을 바라보았다. 이도영이 손에 힘을 가득 준 탓에, 깍지를 낀 손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도영이 착잡한 표정을 지은 채 나와 시선을마주했다. 그런 이도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야.”
“응.”
축 처진 목소리로 이도영이 내 부름에 대답했다. 그 침울한 분위기에 괜히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음…그래도 좀 미안하긴 하네. 고개를 살짝 저어 생각을날려버린 뒤 말을 뱉기 시작했다.
“그래, 사실 처음에 너한테 의도적으로 접근하긴 했어.”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며 잠시 숨을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네가 하나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착각…?”
착각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이도영이 고개를 들고 나를바라보았다. 자기가 방금 들은 말이 맞냐는 듯 따지는 시선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런 내 반응을 본 이도영이 우울한 기색도 날려버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솔직히 말해서 단순히 네 힘을 확인만 하려고 한 거면, 굳이 너랑 친해질 필요 없었어.”
“그, 그건…마나 때문에….”
아, 그러네. 말문이 막혀 순간 입을 닫았다. 그러자 이도영의 얼굴이 다시 침울해졌다. 아, 돌겠네.
“마나 때문에 접근한 건 맞지만, 마나 때문에 친해지려고 한 건 아냐.”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이도영이 나를 바라보았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이도영에게 빠르게 말을 이었다.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너는 꽤 마음에 드는 타입이라고. 어쩌다 보니 친해진 거지, 딱히 의도를 가지고 너랑 친해지려고 했던 건 아냐.”
이건 진심이다. 계획상으로는 이 정도로 친해질 생각은 없었으니까. 친해져 봐야 메인 스토리 라인에 끌려가기밖에 더하겠냐고. 내 말을 들은 이도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쐐기를 박기 위해 한 마디를 더했다.
“애초에 나는 원래 너랑 친해질 생각 없었거든.”
그 말까지 듣고 나자, 이도영이 갑자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라, 말이 좀 이상했나? 생각해보니 뉘앙스가 좀 구리다. 잽싸게 뒤에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너나 김유진이랑 친해진 건 무슨 목적을 가지고 그런 게 아니라는 얘기야.”
거기까지 말하고 난 뒤, 적당히 숨을 골랐다. 가만히 이도영의 반응을 살피기도 잠시, 이내 이도영이 내게 입을 열었다.
“…진짜?”
“어.”
빠르게 질문에 긍정하자 이내 이도영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제 끝난 거 맞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이내 갑작스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이도영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야, 그러고 보니.”
“응?”
고개를 갸웃하는 이도영을 바라보며 몇 시간 전,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분명 나한테 안부를 묻던 박휘성이 얘를 보자마자 자리를 피했던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냐? 그 질문을 던지자 이도영이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다문 이도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니, 진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러냐? 원작에서는 마인화 전까지는 딱히 큰 접점은 없었던 것 같은데.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계속 이도영의 얼굴을 쳐다보자, 이내 이도영이 입을 열었다.
“그…네 얘기를 좀 했어….”
“내 얘기?”
“응, 네 안부를 물어보더라고.”
구라 치지마. 그 얘기만 좀 나눴는데 왜 오늘 그런 반응이 나와. 계속 이도영을 응시하며 무언으로 추궁하자, 이내 이도영이 더 견디기 힘들다는 듯 조심스레 설명을 시작했다.
*
“그러니까 걔한테서 마인이랑 비슷한 느낌이 났다고?”
“아주 조금이긴 한데.”
혹시라도 내가 오해하지 않을까, 불안한 표정을 지은 이도영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 말을 요약하자면 학교가 쉬는 동안,훈련장에서 훈련하다가 박휘성을 마주쳤는데 박휘성이 이도영한테 내 안부를 물어봤다고 했다.
‘내 안부를 왜 얘한테 물어봐?’
뭐, 나랑 친한 사람이라고 해봐야 이도영이랑 김유진뿐이니 그럴 수도 있긴하지만. 아무튼 간에, 내 안부에 대해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던 이도영이 순간 박휘성에게서기시감을 느꼈다고 했다. 어디선가 느껴본 듯한 감각이었다고.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조금 꺼림칙한 느낌이 들긴 했는데, 그 느낌이 마인한테서 받았던 감각이랑 비슷하더라고.”
어라, 아직 계약한 상태도 아닐 텐데 그런 느낌이 들어? 그러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걔한테 날카롭게 군 이유가 그거였냐? 그 말을 들은 내가 급격히 표정을 굳히자 이도영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걔가 마인이라는 건 절대 아냐. 걔 얘기를 들어보니까, 왜 걔한테서 그런 느낌이 드는지는 알겠더라고.”
혹시라도 뒷담화가 될까, 빠르게 말을 보충하는 이도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니, 그보다 걔한테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알겠다는 건 뭐냐?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이유를 알겠다고?”
“응…말해주기는 힘들지만.”
아니, 뭐. 대충 마인 계약 관련한 얘기겠지. 대충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이도영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걔랑 얘기를 좀 나눴거든. 그래서 서로 말하기가 조금 어색해졌어. 그게 전부야.”
‘음. 진짠가?’
빤히 이도영의 얼굴을 바라보자, 당당하게 내게 눈을 마주쳐왔다. 뭐, 원작 보면 거짓말도 제대로 못 하는 놈이니까. 맞겠지. 별 관계도 없는 놈들끼리 다른 사람한테 말하기 뭐한 사정까지 밝혔으면, 충분히 사이가 어색해질 만도 하다. 고개를 끄덕이자 이도영이 이내 슬그머니 내게서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한참동안 장내에 침묵이 흘렀다.
“…저기.”
점점 어색해지는 분위기가 갑갑해지기 시작할 무렵, 이도영이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왜.”
“자퇴…진짜 할 거야?”
몇 번을 물어보는 거냐.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자 이도영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지. 쿨하게 좀 보내 줘라. 잡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이도영이 다시 질문했다.
“역시…그 체질 때문에?”
“어.”
‘그런데 진짜 이 오해 개꿀이네.’
자퇴 핑계 뭐라고 댈지 고민이었는데, 그냥 이 핑계 대 버리면 끝이잖아. 오늘 대화로 거둔 짭짤한 수익에 기쁜 마음이 들었다. 웃음을 속으로 삼킨 뒤 이도영을 바라보자 이도영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체질방패가 효과가 좋았는지, 딱히 별말 없이 수긍하는 모습에 속이 개운해졌다. 이런 기분은 되게 오랜만인데. 잠깐 또 침묵이 일고, 다시 분위기가 어색해지려는 순간 내가 입을 열었다.
“뭐, 얘기 끝났으니까 이만 갈까.”
“…응.”
고개를 끄덕인 이도영에게 가볍게 인사를 보낸 뒤, 자리를 나섰다. 아, 그나저나 이 핑계 진짜 편하네. 오랜만에 뒷끝 없이 개운해진 기분에 입꼬리를 올려 씨익 웃었다.
***
유시아가 이만 자리를 떠나고, 남은 빈자리를 응시하며 조금 전 했던 말을 떠올렸다. 박휘성과 마인 관련 대화를 한 탓에 서로 어색해졌다는 말. 전부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얼마 전, 박휘성과 그 대화를 나눈 이후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나저나 너도 시아 좋아하지?”
이야기가 끝나고 미묘해진 분위기에서 갑작스레 박휘성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박휘성이 말을 이었다.
“나, 시아한테 고백했는데 차였었거든. 그런데 너도 시아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한 번 물어봤어.”
역시나 정답인 모양이네. 당연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박휘성과 시선을 마주했다. 이상하게 그 말을 듣자마자 불쾌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내게 박휘성이 한 마디를 더했다.
“뭐,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네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진심이거든.”
진지한 표정을 지은채 박휘성이 말을 끝마쳤다. 그 후, 가만히 시선이 오가기도 잠시, 이내 갑작스레 솟아오른 충동에 무의식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나도 진심이야.”
“…그래?”
갑작스레 굳어진 분위기에서 이내 박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급격히 어색해지기 시작한 분위기 속에서 박휘성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뭐, 그건 그렇고. 오늘 마인 관련 얘기 고마웠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조심해야겠네.”
종종 들려온다는 환청. 내 얘기를 듣고, 그 정체가 악마일지도 모른다는 짐작이 들었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에 대한 감사를 말한 박휘성이 이내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박휘성이 자리를 비웠음에도 여전히 소란스러운 훈련장 안에서, 내가 방금 내뱉었던 말을 되새겼다.
‘나도 진심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던 말. 그 안에 실린 감정을 그제야 완전히 자각할 수 있었다. 어째서 유시아에게 자신이 이리 신경 쓰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유시아의 자퇴는, 단순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대가 사라지기 때문에 아쉬운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나, 시아를 좋아하는구나….’
그 감정을 자각한 순간, 예정된 이별에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현재, 시아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적어도 나랑 유진이랑 친해졌다는 건 진심이었다고 했지. 그러면.
‘체질만 아니라면, 사관학교에 남을 수도 있는 건가.’
하지만 어떻게? 고개를 갸웃하기도 잠시, 이내 머릿속에 몇 가지 정보가 떠올랐다. 자신의 근처에 있으면 마나를 회복할 수 있다는 말. 그리고 마인에게 극렬한 효과를 보이는 자신의 특성. 그리고 마기에 노출된 순간, 자신에게 달라붙어 숨을 들이켜던 시아의 모습. 그 정보를 조합하자, 하나의 해결책이 나타났다.
‘내 재능은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했지?’
그렇다면, 굳이 시아가 자퇴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제서야 알게 된 자신의 특성. 그 특성을 발휘하면 시아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는 쉽게 떠올랐다.
‘유진이.’
정확히는 김유진의 아버지. 한국 최고의 마법사이자, 대마법사의 칭호를 가진 그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생각을 마치고 교실 문을 나섰다.벼랑 끝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기분이었다. 한 줄기 희망을 품고 아무도 없는 교실을 나섰다.